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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제국의 두 거물, 파리에서 ART로 격돌

2019년 10월호

명품제국의 두 거물, 파리에서 ART로 격돌

2019년 10월호

루이비통이냐 구찌냐...최고 명품이 벌이는 숨막히는 접전
럭셔리 왕국의 미래 걸린 ‘2차 미술대첩’ 그 내막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세계 럭셔리업계를 양분하는 명품 거물이 파리에서 예술로 격돌한다. 루이비통(Louis Vuitton), 모엣헤네시(Moet-Henessy) 등 60여 개 명품 브랜드를 휘하에 둔 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1949~)과 구찌, 보테카베네타 등을 보유한 케링(Kering)그룹의 창업주 프랑수아 피노 명예회장(1936~)은 자신들의 고국에서 ‘미술대첩 2라운드’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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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아르노 LVMH그룹 회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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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피노 케링그룹 명예회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두 사람은 일찍이 명품기업 인수합병(M&A)을 둘러싸고 피 튀기는 전쟁을 벌인 바 있고, 예술 투자로 수차례 대결을 벌인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계 최고의 예술도시 파리에서 벌어지는 본격적인 예술대첩이다. 이번 대결은 투입예산만 수천억원, 수조원을 호가하는 매머드 프로젝트요, 그룹의 미래가 걸린 투자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지극히 루이비통다운 뮤지엄...아르노의 성취

먼저 시동을 건 쪽은 루이비통의 오너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다. 아르노 회장은 지난 2014년 10월 파리 개선문 근처 불로뉴 숲에 환상적인 뮤지엄을 개관했다. 과거 프랑스 왕실의 사냥터였던 아클리마타시옹 공원에 들어선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은 건축부터가 남다르다. 푸른 녹음 사이로 눈부시게 하얀 유리범선이 자리 잡은 것 같기도 하고, 뭉게구름들이 살짝 내려앉은 듯도 하다. 비정형의 투명한 건물에 초록빛 나무와 흰 구름이 투영되면 초현실적인 조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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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려드는 파리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개관하자마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파리의 문화 명소’로 급부상하며 연간 100만여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으는 루이비통 미술관은 아르노 회장의 오랜 꿈이 이룬 예술적 성취다. 미국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디자인한 건축은 워낙 복잡하고 까다로운 데다 공기도 오래 걸려 실현이 불가능할 것으로 관측됐다. 때문에 공사에 100여 명의 전문가가 참여했고, 3000여 명의 인력이 투입돼 6년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당초 건립예산 1억2700만달러(약 1348억원)를 훌쩍 상회했음은 물론이다. 두 배가 들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정확히 얼마의 돈이 투입됐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아르노는 “꿈에 가격을 매기려고 들지 마라”고 답변을 거부했다. 최근 미국의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2위의 슈퍼리치로 등극한 그는 상상 이상의 자금이 투입된 자신의 럭셔리 미술관을 매주 토요일마다 찾는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로부터 “회장님, 미술관이 너무 멋져요”라는 찬사를 들으면 아마도 둥실 하늘 위를 걷는 기분일 것이다.

연면적 1만1700㎡에 무려 11개의 대형 전시실을 갖춘 루이비통 미술관에는 아르노 회장이 수십 년에 걸쳐 수집한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 게르하르트 리히터, 백남준 등 기라성 같은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또 파리시립미술관에서 일하다 디렉터로 기용된 수잔 파제는 매년 2~3회의 기획전을 큐레이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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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의 아르노 회장이 자신의 미술관을 환상적으로 설계한 프랑크 게리(왼쪽)와 함께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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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 LVMH 회장이 수집해 뮤지엄에 내건 미국 유명작가 바스키아의 회화.


평소 건축에 각별히 관심이 많던 아르노 회장은 파리시로부터 아클리마타시옹 공원부지를 뮤지엄 건립지로 불하받은 뒤 어떤 건물을 지을까 심사숙고했다. 그러다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을 직접 보고는, “어떻게 저런 놀라운 건축을 실현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감탄했다. 그리곤 그 길로 건축가를 만났다. 게리는 흰 종이에 거대한 돛단배를 스케치해 시안으로 제시했고, ‘여행’을 루이비통의 테마로 삼고 있는 아르노는 두말 없이 오케이했다. 어딘가로 곧 떠날 듯한 유리범선 형상의 뮤지엄은 그렇게 탄생했다. 미술관의 정식 명칭은 ‘창조를 위한 루이비통 재단(The Louis Vuitton Foundation for Creation)’이다. 럭셔리 패션을 이끄는 오너로서 창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하는 그는 뮤지엄이 창조의 화수분이 되길 소망하고 있다.

이 미술관이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자 파리시는 공원 내의 기존 컬처뮤지엄과 각종 시설의 리노베이션도 루이비통 측에 의뢰했다. 아클리마타시옹 공원은 이제 향후 50년간 루이비통의 예술기지로 확실히 자리 잡게 됐다. 파리 샹젤리제가의 루이비통 본점 꼭대기층에 아담한 갤러리를 조성하고, 이를 오랫동안 운영했던 루이비통이 마침내 브랜드 위상에 걸맞은 아트 플랫폼을 구축한 셈이다.

이에 탄력을 받은 아르노 회장은 루브르박물관 옆의 옛 사마리텐 백화점을 ‘슈발 블랑 파리(Cheval Blanc Paris)’ 호텔로 개조 중이다. 2020년 봄에는 루이비통이 만든 럭셔리한 아트 호텔이 오픈할 예정이다. 이 호텔에는 센강을 내려다보며 근사한 작품 속에 둘러싸여 차 한잔 음미하는 카페도 조성된다.

보다 더 과감한 피노 명예회장의 ‘빅 피처’

루이비통의 아르노 회장이 지극히 우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뮤지엄을 만들었다면, 라이벌인 프랑수아 피노 케링그룹 명예회장은 훨씬 과감하고 도전적이다. 그는 요즘 세계에서 가장 큰 사립미술관을 루브르 인근에 짓기 위해 바삐 뛰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지구촌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엄청난 도전이자 전무후무한 프로젝트다. 그런데 뮤지엄 부지가 공교롭게도 루이비통의 슈발 블랑 호텔과 지근거리인 데다 개관 시점도 엇비슷해 이래저래 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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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봄 피노 회장의 미술관으로 개관하는 파리의 옛 상업거래소.


피노 회장은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쁘렝땅 백화점과 통신판매업체 라후드뜨 등이 포진한 PPR그룹을 설립하고 억만장자가 됐다. 그러다 1990년대 말 매물로 나온 이탈리아 브랜드 구찌를 놓고 숙적인 아르노와 피를 말리는 인수합병전을 치렀다. 결국 구찌를 품에 안은 뒤론 백화점 등을 정리하고 럭셔리 산업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PPR은 보테카베네타, 생로랑, 발렌시아가, 알렉산더 맥퀸을 연달아 인수하며 LVMH를 필적할만한 명품 왕국으로 급부상했다. 회사명도 PPR에서 케링(Kering)그룹으로 바뀌었다.

10여 년 전 회사를 아들(프랑수아 앙리 피노)에게 물려준 피노 회장은 요즘 아트 비즈니스에 올인하고 있다. 세계 1위의 미술품경매사(2018년 매출 70억달러, 8조3000억원) 크리스티도 소유 중인 그는 크리스티 경매와 함께 이탈리아 베니스, 프랑스 파리에 산재한 자신의 미술관을 챙기느라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피노 회장은 2005년까지만 해도 파리에 자신의 아트컬렉션을 선보일 현대미술관을 지으려 했다. 르노자동차의 공장이 옮겨가며 공터가 된 파리 센강의 세갱(Ile Seguin) 섬을 부지로 점찍고,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 의뢰해 미술관을 건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처음 반색했던 파리시가 허가를 차일피일 뭉개며 시간을 끌자 실망한 피노는 “꼭 프랑스일 필요가 있느냐”며 돌연 이탈리아 베니스로 방향을 돌렸다. 2년마다 세계적인 미술제 베니스 비엔날레를 개최하지만 이렇다 할 현대미술관이 없어 체면이 안 섰던 베니스로선 ‘돈과 작품을 모두 대겠다’는 피노 회장이 굴러들어온 복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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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쿤스의 거대한 스테인리스 조각 ‘Hanging Heart’. 피노회장의 수집품이다.


베니스시 당국이 극진하게 대접하며 각종 편의를 제공하자 피노는 베니스의 옛 귀족가문인 그라시가(家)의 ‘팔라조 그라시(Palazzo Grassi)’를 인수해 2006년 자신의 미술관을 오픈하고 대대적인 개관전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1677년 건립된 베니스의 세관건물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를 개조해 2009년 더욱 큰 미술관을 열었다. 오랜 기간 방치됐던 낡고 거대한 세관창고는 안도 다다오의 손길을 거쳐 멋진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했고, 베니스를 찾는 세계의 미술관계자들과 여행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오랜 라이벌인 아르노 회장이 불로뉴 숲에 초현대식 미술관을 짓고 전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얻자 ‘가슴 저 밑에 묻어뒀던 숙제’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여든이 넘도록 실현하지 못한 ‘파리 미술관’을 위해 피노는 다시금 분연(?)히 일어섰다. 3500점을 넘어선 컬렉션의 규모와 질, 혁신성과 파괴력은 그 누구도 필적할 수 없을 것이란 자신감도 작용했다.

우아하고 세련됐으나 다소 상식적인 미술을 추구하는 아르노와 달리, ‘혁신적인 미술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는 포부는 팔순의 노신사를 뛰게 만들었다. 파리시로부터 로마의 판테온과 비슷한 큐폴라(둥근 지붕)와 24개의 아치로 이뤄진 지름 40m의 옛 상업거래소(Bourse de Commerce)를 50년간 장기 임대한 피노는 또다시 안도 다다오를 캐스팅해 내부 공간을 대대적으로 바꿨다. 건축가는 과거 옥수수, 밀가루 등의 곡물을 저장하던 뻥 뚫린 돔 내부에 전시실을 들여 현대미술을 품을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리노베이션에 자그마치 10억유로(약 1조3220억원)가 투입됐다는 후문이다.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는 필생의 역작을 위해 피노는 모든 걸 쏟아부은 셈이다.

파리 미술관 개관이 임박해 오자 피노는 퐁피두 센터와 손잡고 세계적인 작가의 매머드 작품전을 동시에 열기로 협약도 체결했다. 지난 2014년 베니스에서 영국의 악동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대대적인 블록버스터 쇼를 통해 대규모 아트 이벤트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현대미술은 예측불가능하고, 한계가 없어야 한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피노는 모더니즘 작가인 몬드리안에서부터 현존하는 최고 유명 작가인 제프 쿤스까지 다양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워낙 파워풀하고 독특한 작품이 즐비해 과연 어떤 것을 앞세워야 할지 고민이라고 마틴 베테노드 피노재단 관장은 토로했다.

이처럼 탄탄한 자본력을 갖춘 프랑스의 ‘라이벌 명품 거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적으로 파리에 뮤지엄을 건립하자 파리 시당국은 무척 고무된 표정이다. 미국 뉴욕, 영국 런던에 빼앗긴 현대미술 주도권을 이참에 되찾아오자는 심사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아르노와 피노의 미술관은 파리를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되돌릴 것이다. 파리를 위한 엄청난 선물”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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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낡은 세관창고를 개조해 미술관을 만든 피노 회장이 무라카미 다카시의 조각 ‘밀크’를 개관전에 내놓았다.


도대체 왜 아트 비즈니스일까?

그렇다면 왜 명품 제국의 수장들이 수천억, 수조원을 쏟아부으며 미술품 수집과 뮤지엄 건립에 열을 올리는 걸까.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는 고객들에게 ‘고가 사치품=명품’이라는 환상과 신비감을 계속 심어주기 위해선 아트와의 협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럭셔리의 정점에는 순수미술, 곧 ‘파인아트’가 자리 잡고 있고, 디자인의 뿌리도 거슬러 올라가면 ‘미술’이기에 럭셔리 기업의 미래를 위해 아트컬렉션은 필수항목이라고 보는 것.

다음으로 고정적인 소비자에게 예술적 긍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는 고도의 판매전략이 아닐 수 없다. ‘캐시미어를 걸친 늑대’로 불리는 아르노 회장이 자신의 천문학적인 자산을 아무런 계산 없이 쓸 리는 없다. 일각에선 초고가 작품을 사들이고, 최고급 미술관 건립을 위해 돈을 물 쓰듯 쓰는 배경을 색안경을 쓰고 보기도 한다.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고 사치품을 만드는 기업의 오너이기에 이처럼 최고 수준의 뮤지엄을 만들 수 있고, 작품을 수집하며 이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투자와 기여를 통해 현대인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면 이는 분명히 긍정적인 측면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화예술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남는 장사인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즉 잘만 운용하면 최고로 부가가치가 높은 투자인 것이다. 슈퍼리치들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유망주들이 뜨기 전에 작품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결국 20~30년이 지나면 작품값이 수십, 수백 배로 뛰어올라 막대한 수익을 올리게 된다.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 기술력이 거의 평준화된 4차산업 시대에 향후 유망한 것은 ‘창조산업’이다. 뉴 밀레니엄 이후 창조산업에 박차를 가하는 영국이 전체 GDP 중 무려 29%가 DCMS, 즉 예술과 미디어, 스포츠에서 나오는 것이 좋은 예다.

이제 누가 뭐래도 ‘아트 앤 비즈니스(Art & Business)’ 시대다. 피노 회장을 비롯한 일군의 미술계 인사들이 750억원을 후원해 베니스에서 요란하게 벌인 데미안 허스트의 블록버스터 전시가 1조원대 매출을 달성했다는 소식이 이를 잘 뒷받침해 준다. 고수들은 이를 누구 보다 먼저, 누구보다 확실히 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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