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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지고 선전 뜬다 공산당, ‘선전을 홍콩으로’

2019년 10월호

홍콩 지고 선전 뜬다 공산당, ‘선전을 홍콩으로’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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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운명 홍콩 쇠퇴 가속 전망
뜨는 도시 선전, 홍콩 대체설 확산


| 강소영 중국전문기자 jsy@newspim.com


‘동양의 진주’ 홍콩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반면 홍콩의 배후지로 여겨졌던 광둥성 선전(深圳)은 경제력과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아시아 대표 국제도시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홍콩이 범죄인 인도 조약 반대 시위로 촉발된 민주화 운동으로 혼란에 빠진 시기, 선전은 강력한 성장 ‘부스터’를 장착하고 홍콩의 지위를 넘보고 있다.

중국 남부의 대도시 선전이 급부상하게 된 것은 지난 8월 19일 발표된 중앙정부의 선전 개발 정책 때문이다. 중국은 선전을 세계 일류 국제도시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선전 개발계획의 공식 명칭은 ‘중국특색사회주의 선행시험구’.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선전의 지속적 경제·산업 발전과 더불어 ‘정치적 위상’까지 격상시키는 국가적 차원의 전략이다. 1980년 경제특구로 지정된 후 개혁개방 1번지에서 첨단 IT산업과 창업의 혁신기지로 성장한 선전이 정치·경제·산업을 모두 아우르는 ‘정치특구’로 진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선전의 경제 발전은 홍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 홍콩의 번영이 없었다면 오늘날 선전의 발전도 상상하기 힘들다. 홍콩이 본토에 반환되기 1년 전인 1996년 천커신(陳可辛) 감독이 제작한 영화 ‘첨밀밀(甜蜜蜜)’은 과거 중국인들에게 홍콩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홍콩의 ‘젖’을 먹고 자란 선전이 미래에는 홍콩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중국 내부의 ‘자만심 어린’ 다짐에서 홍콩과 선전의 뒤바뀐 운명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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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초기 ‘시간은 금, 효율은 생명’이라는 표어가 선전 시내에 걸려 있다. [사진=중국 공산당 선전시위원회]


선전-홍콩 격동의 역사, 과거와 현재

무협소설 ‘의천도룡기’의 작가 김용(金庸)의 일화는 과거 홍콩과 선전의 대비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홍콩은 19세기 세계 열강의 침략전쟁 속에서 중개무역을 통해 경제와 산업이 크게 발전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중국 공산화로 1950년대 경제가 잠시 타격을 입기도 했지만, 공산당을 피해 중국에서 넘어온 대자본가들과 지식인들로 인해 경제 번영의 기회를 다시 잡게 됐다.

30대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던 김용은 1950년대 말 홍콩 매체 대공보(大公報)를 나와 명보(明報)를 창설했다. 그러나 신생 매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높지 않았고, 그는 의천도룡기와 연예 기사로 어렵게 회사를 이끌고 있었다. 김용과 ‘명보’의 전기는 회사 설립 3년째인 1962년에 찾아왔다.

그해 연이은 자연재해에 대기근이 덮치자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광둥(廣東) 지역 사람들이 선전을 통해 홍콩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당시 본토인이 홍콩에 들어오기란 쉽지 않았고, 홍콩과 인접한 선전엔 난민들로 넘쳐났다.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양식표 배급도 끊기고, 홍콩 정부와 주류 매체들도 본토 난민을 외면하면서 난민들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이때 김용의 명보가 이 사실을 홍콩 전역에 알렸고, 배고픔과 질병에 시달리는 동포의 실태를 접한 홍콩 현지에선 이들을 돕기 위한 온정이 이어졌다. 자선 후원금도 명보로 몰렸다.

명보가 난민들의 소식을 집중 보도하기 시작한 지 7일 만에 난민들의 참담한 실태를 외면했던 홍콩의 주류 매체들도 관련 보도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홍콩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민들이 거처할 대피소를 마련했고, 이민국에선 홍콩 입경이 가능한 신분증 발급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일을 계기로 1년 누적 발행량(구독자 수)이 2만8000부에 불과했던 명보의 발행량은 1일 평균 3만5000부로 급증했다. 홍콩 사회에서 김용의 명성과 영향력도 갈수록 높아졌다.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2018년 10월 30일, 김용이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마침 그해 홍콩과 선전의 뒤바뀐 운명을 예고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선전의 경제 규모가 처음으로 홍콩을 추월한 것. 홍콩특별행정구 통계처에 따르면 홍콩의 2018년 국내총생산(GDP)은 2조8453억1700만홍콩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해 선전시의 GDP는 2조4222억위안으로 집계됐다. 위안화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선전의 GDP가 홍콩보다 221억위안(약 3조7800억원)이 많다.

사실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선전의 홍콩 추월은 일찌감치 예견돼 왔다. 개혁개방을 통해 제조업으로 부를 축적한 선전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첨단 산업도시로 탈바꿈하며 고속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중국 기술력의 자랑 화웨이(華為), 세계 최대 게임사이자 종합 IT기업 텐센트(騰訊 텅쉰), 세계 1위 드론제조사 DJI 등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선전에 본사를 두고 있다. 선전은 ‘중국의 실리콘 밸리’, ‘창업 인큐베이터의 본거지’ 등으로 불리고 있다.

중국 국내 경제에서도 선전의 위상은 남다르다. 총생산 기준으로는 상하이, 베이징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인구 1인당 GDP는 19만3338위안으로 중국 도시 가운데 가장 높다. 선전시에서 산업이 가장 발달한 지역인 난산구(南山區)의 1인당 GDP는 서유럽 선진국인 네덜란드를 추월했다. 세계 13위 수준이다. 이 지역 직장인들의 평균 월급은 1만1377위안으로 선전시 전체 평균보다 20%, 중국 전국 평균보다 25% 높다. 오늘날 선전은 인구 2000여 만명, 세계 30대 국제화 도시로 성장했다. 과거 많은 중국 본토인이 더 나은 삶을 위해 홍콩으로 건너왔지만, 이제는 선전에서 미래를 찾는 홍콩인들의 역유입도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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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특구에서 정치특구로 급부상

지난 8월 19일 중국 국무원이 선전을 ‘중국특색사회주의 선행시험구’로 지정한 것은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다. 일각에서는 선전이 과거 경제특구로 지정된 것과 같이 역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방침으로 해석한다.

중국 주요 매체들의 분석과 전망에 따르면 향후 선전에서는 각종 개혁 정책과 혁신적인 실험이 이뤄진다. ‘선행’이라는 표현에서 새로운 실험과 개혁 조치가 선전에서 우선적으로 이뤄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인민은행이 준비 중인 법정 디지털 화폐도 선전에서 처음 도입될 전망이다. 5G 등 차세대 첨단산업 육성도 집중적으로 진행된다.

개혁의 방법도 바뀌었다. 과거 경제특구에서는 ‘선행선시(先行先試)’가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선행시범(先行示範)’의 방향으로 진행된다. 선행선시는 특구에서 먼저 실험을 해본 후 성과가 우수하면 다른 지역으로 확대한다는 개념이다. 선행시범은 먼저 시행해 시범을 보인다는 의미로 과거의 선행선시보다 더욱 진취적이다. 선전의 ‘개혁’이 현재를 넘어 미래 진행형임을 시사한다.

‘중국특색사회주의’라는 문구는 선전의 정치적 위상이 격상됐음을 시사한다. 중국의 핵심 행정조직인 국무원이 직접 발표한 것도 이 정책의 권위성을 보여준다. 중국특색사회주의는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제시한 이념이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017년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표방하며 덩샤오핑의 정신을 계승했음을 선포했다. 개혁개방의 상징이자 덩샤오핑의 선견지명이 증명된 선전이 ‘중국특색사회주의 선행시험구’로 선정된 배경이기도 하다.

선전의 ‘선행시험구’ 지정은 시기적으로도 매우 민감한 시기에 이뤄졌다. 홍콩이 민주화 시위 사태로 심각한 혼란에 빠졌고, 홍콩과 베이징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극한의 대립 상황에 놓인 시점에 전격 발표됐다. 이 때문에 베이징이 선전을 홍콩 대체 지역으로 키우려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홍콩과 인접한 위치도 선전의 정치적 무게를 더하는 요인이다. 갈수록 통제가 힘들어지는 홍콩을 막아내기 위한 방어선으로서 선전의 가치가 더욱 올라갔기 때문이다.

홍콩 힘빼기 플랜B 가동...뜨는 선전, 지는 홍콩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가 거세지고 있는 시점에 발표된 선전 육성 정책은 ‘베이징’의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이 외부의 견해다.

홍콩과 인접한 선전을 집중 육성해 홍콩의 국제적·경제적 지위를 약화시키고, 선전을 홍콩을 대체할 지역으로 내세우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선전-홍콩 합병을 중앙정부가 나서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선전의 역량을 대폭 강화하는 방식으로 홍콩의 존재감을 약화시키고, 더 나아가 홍콩이 자연스럽게 선전에 의존하도록 하면 홍콩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친중국 성향의 언론인 서우파이서우(手拍手)도 유사한 견해를 밝혔다. 호주의 중국어 매체 바스티유 포스트(Bastille Post)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서우파이서우는 선전의 ‘선행시험구’ 지정은 홍콩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플랜B’가 발동됐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회유와 위협에도 홍콩 시민의 반발이 줄어들지 않자, 선전을 통해 우회적으로 홍콩의 ‘힘’을 빼는 작업에 돌입했다는 것. 그는 ‘선행시험구’ 지정으로 선전의 정치적 파워와 경제 실력이 막강해지고, 이는 향후 홍콩과 홍콩 시민의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선행시험구’ 발표 방식에서도 중국 정부의 비장한 결심을 엿볼 수 있다. 서우파이서우에 따르면 이 계획은 원래 중앙 판공청이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8월 18일 돌연 중공중앙 국무원으로 변경됐고, 이로 인해 ‘선행시험구’ 지정의 등급이 개혁개방 당시 ‘경제특구’ 지정 수준으로 격상됐다.

‘선행시험구’ 라는 타이틀도 엄청난 권력을 암시한다. ‘선행시험구’는 중국 본토 각지에서 추진되는 각종 ‘개혁시험구’보다 상위 개념으로, 향후 선전은 중앙정부의 별도 허가 없이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각종 우대 및 시범 정책을 독자적으로 시행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선전 정부가 자발적으로 중앙정부에 개혁 정책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서우파이서우는 설명했다.

그는 선전의 지위 격상이 홍콩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콩 시위대가 홍콩 국제공항을 점령해도 선전과 광저우 국제공항이 홍콩의 비즈니스를 접수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으며, 쇠퇴일로에 있는 홍콩의 운명은 홍콩의 엘리트, 상인 및 정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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