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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파’ 정치인 아베 신조 한국경제에 칼을 꽂다

2019년 09월호

‘친한파’ 정치인 아베 신조 한국경제에 칼을 꽂다

2019년 09월호

日총리 첫 현충원 참배 아베 “한국에 필설로 표현 못할 고통 줬다” 발언도
재집권 후에도 ‘러브콜’ 보냈지만 계속되는 홀대에 미련 접어
日국민 韓제재 지지...꼬인 실타래 풀기 쉽지 않을 것


|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


2006년 10월 9일.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흑석동 국립현충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일본 역대 최연소 총리로 기대를 한몸에 받던 그는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현충원을 참배했다. 평민 출신 의병장 신돌석, 의열단원으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 일본 총독 부임 시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 등 애국선열을 모신 이곳에서 그의 참배는 의미가 컸다.

아베 총리는 1차 내각(2006~2007) 당시만 해도 ‘친한파’로 분류되던 정치인이었다. 그의 부인 아키에(昭恵) 여사가 유명한 한류팬이라는 점도 한국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아베 총리는 이때 “한국인들에게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줬다”며 “과거사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싶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의 친한(親韓) 기조는 2012년 말 재집권 당시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랬던 아베 총리가 달라졌다. 2019년의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해 “국가 간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며 “신뢰가 훼손됐다”고 말하고 있다. 달라진 건 말뿐만이 아니다. 그는 한국 경제에 직접 칼을 겨누고 있다. 지난 7월 4일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 강화를 시행하더니, 8월 2일 각의(국무회의)에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같은 반한(反韓) 행보의 표면적 이유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위안부 재단 해산이다. 하지만 단지 두 사건 때문에 아베 총리가 바뀌었다고 하기엔 친한파이던 과거의 아베 총리가 설명되지 않는다. 아베 총리는 대체 왜 ‘변절’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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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난 당시 한·미·일 3국 정상. 왼쪽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로이터 뉴스핌]


한국에 수차례 건넨 ‘러브콜’...돌아온 건 푸대접

“박근혜 대통령님 오늘 만나서 반갑습니다.”

2014년 3월 25일 네덜란드 헤이그. 아베 총리는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첫 대면한 박 대통령에게 한국어로 인사했다. 관계 개선 의지를 담은 나름의 성의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입술을 꾹 깨물 뿐이었다. 결례라면 결례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듬해 열린 2015년 한·일 정상회담은 아베 입장에서 ‘푸대접’의 절정이었다. 박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아베 총리가 일본대사관 근처 한정식 집에서 일본대사 등 수행원들과 점심 식사를 한 것이다. 일본 여론은 총리가 홀대받았다는 분노로 들끓었다. 심지어 일본 정부가 수차례 박 대통령과의 오찬을 제안했지만, 청와대에서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양국 공동 기자회견도 없었다.

이에 일본 언론에서는 “아베의 러브콜은 끝났다”는 진단을 내렸다.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해 한 호의적 발언도 점점 사라졌다.

아베 총리는 2012년 말 재집권에 성공한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에 가고 싶다”며 한국에 호감을 드러냈다. 한국에서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 음식을 먹고 문화를 즐기고 싶다고 반복해 말했다.

사실 그가 재집권한 당시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아베 총리의 러브콜은 뜻밖이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덴노(天皇·일왕) 사죄 발언으로 일본 내에선 혐한 분위기가 확산됐다. 혐한 서적이 넘쳐나고 거리엔 헤이트스피치가 등장했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아베 총리는 꿋꿋이 한국에 러브콜을 보냈다.

일본 언론에선 아베 총리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고 봤다. 그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무상은 친한파 정치인이었다. 평소 한국 정치인이나 기업인과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유명하다. 아베 총리 역시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고향인 야마구치(山口)현의 재일동포 기업인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당시 한국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거물 정치인의 자손이었던 박 대통령에게 아베 총리는 동류 의식을 느낀 것 같다는 분석도 나왔다.

아베 총리의 친한 행보는 지지 기반의 한 축인 극우들에 의해 ‘한국계가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베 총리도 계속된 푸대접과 홀대에 점점 실망하는 기색을 보였다. 2014년 헤이그 3개국 정상회담 이후 아베 총리의 한국 언급은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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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8월 26일 도쿄를 방문한 이범석(왼쪽) 외무장관과 악수하는 아베 신타로 외무상. [사진=지지통신]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

물론 아베 총리가 관계 개선 노력 자체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 한국에 대한 러브콜 자체가 단지 개인적 호감만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베 총리의 머릿속엔 중국이 있었다.

2010년 센카쿠(尖閣) 열도 문제로 중국과 대립각을 세웠던 일본은 ‘희토류 수출 규제’라는 날벼락을 맞는다. 세계 선진국이라는 일본의 자부심은 이때 중국의 수출 규제와 불매 운동에 상처를 입었다. 재집권한 아베 총리는 중국 견제를 위해선 한국과 관계 개선을 해야 한다는 계산을 세웠다. 한·미·일 동맹을 굳건하게 세워 동북아 세력 균형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친중 노선을 걷던 박근혜 정부와 엇박자를 냈다. 일본 주간지에는 계속되는 푸대접에 아베 총리가 한국을 비난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공식적으로 아베 총리는 ‘미래지향적 관계’를 언급했고, 과거사를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2015년 12월 나온 한·일 위안부 합의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에서 많은 반발을 불러왔던 이 합의는 사실 아베 총리에게도 정치적 리스크가 굉장히 큰 결단이었다. 아베 총리의 지지층인 보수 측에서는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냐’는 비난이 나왔다. 아베 총리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로 지지층을 설득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으로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파기됐다. 화해·치유재단이 해산된 것이다. 어렵게 만들어낸 합의가 파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자 아베 총리는 자국 내에서 거센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결국 지지층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그는 한국에 강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에서 내린 강제징용 배상 판결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 정부는 1965년 협정으로 청구권 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이었다. 대법원의 판결 이후 일본 정부는 한국에 해결을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는 “사법부를 존중한다”는 발언뿐이었다.

아베 총리는 지난 7월 수출 규제 카드를 꺼내든 이후 “신뢰 훼손”이란 말을 반복하고 있다. 8월 6일 히로시마(広島) 원폭 74주기 추모식 기자회견에선 한국에 대해 “국가와 국가 관계 근본에 관한 약속을 확실하게 지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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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규탄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정권 규탄 3차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 [사진=로이터 뉴스핌]


‘브레이크 역할’ 日여론도 악화...관계회복 어려워

악화된 양국 관계는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일 관계에서 일본 내 여론은 관계 악화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왔지만 이번엔 다르다. 일본 내 여론도 “한국은 믿을 수 없다”로 바뀐 것이다. 강제징용 판결 후 일본 정부의 대화 요구에 한국 측이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게 컸다.

NHK가 8월 2~4일 18세 이상 일본인 22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 지지율은 49%로 3주 전(45%)보다 4%포인트 올랐다. 게다가 응답자의 55%는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지지한다”고 답했다.

아베 총리가 최근 개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점도 한·일 관계 회복을 어렵게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21일 참의원(상원) 선거가 끝난 후 아베 총리는 “내 사명으로서 헌법 개정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전후 체제 탈피를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는 헌법 9조 개헌은 이를 위한 밑바탕이다.

하지만 헌법 9조 개정은 아직도 일본 내 반발이 있다. 때문에 아베 총리에게는 여론을 결집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 아베 총리가 목표로 내세우는 개헌 시기는 2020년이다. 최소한 이 시기까지 그의 ‘한국 때리기’는 개헌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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