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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값, 어떻게 책정되나

2019년 09월호

그림값, 어떻게 책정되나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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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미술품 가격결정 매뉴얼’ 등장
불투명한 작품값 결정 구조에 산출근거 제시
학력·경력 점수화 둘러싸고 ‘부적절’ 비판도


|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문제는 가격이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미술품은 특히 가격이 문제다. 냉장고나 자동차처럼 정가가 매겨진 공산품이 아니어서 초보자들에게는 작품값이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작가가 제시하는 가격이 과연 타당한지, 믿을 수 있는 금액인지 가늠키 어렵다. 주위에선 ‘그림값은 일단 깎고 봐야 한다’고들 하는데, 얼마나 깎아야 할지도 알 수 없다. 심정적으로는 절반에 달라고 싶지만, 그러다 망신을 당할 수도 있어 주저하게 된다. 그렇다면 미술품 가격은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화랑에 전속된 작가들은 화랑 대표와 머리를 맞대고, 시장 상황 등을 감안해 가며 가격을 매긴다. 하지만 국내에서 활동하는 미술가 중 화랑에 전속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다수는 스스로 전시장을 빌려 전시를 열고, 작품을 판매한다. 결국 작가 자신이 주위 선후배의 가격을 고려해 매기게 된다. ‘누구는 얼마 받는데, 내가 그보다 못할 게 없으니 이 정도는 받아야지’라는 마음이 크게 작용한다. 대단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거의 모든 작가가 그렇게 가격을 매긴다. 즉 자신과 엇비슷한 경력의 동료 작가 작품값을 참고해 가격을 책정한다. 그러니 작품의 수준이라든가 시장성과는 무관한, 납득하기 어려운 가격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처럼 주먹구구식이었던 작품값을 제대로 산출할 수 있는 매뉴얼이 국내 최초로 개발돼 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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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와 실거래가 간 간극을 없애기 위해 가격을 대폭 낮추고, 정찰제를 표방한 마니프아트페어 전시장.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김영석(61) 감정위원장은 최근 ‘한국미술품 시가 감정을 위한 모형과 매뉴얼’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1990년 미술계에 투신해 2003년 미술 월간지 ‘아트프라이스’를 창간했고, 미술품의 유통가격을 연구하는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를 이끌고 있다. 매년 ‘작품가격’이란 책자를 펴내며 작품값을 분석해 온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Artbank) 의뢰로 작품가격 결정 모형을 제안하게 됐다.

김 위원장은 “미술시장의 투명성 확보와 거래 활성화를 위해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보유한 통상가격을 토대로 작가의 경력 기간, 학업 특성, 전시 활동, 사회적 인지도, 작품성, 시장성(환금성·선호도)을 점수로 환산해 작품 통상가격을 산출하는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한국미술시장에서 유명 작가 작품의 가격과 변동 추이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대다수 작가의 작품값에 관한 정보는 찾기 어렵다. 결국 수요자는 가격이 불투명한 작품의 구매를 꺼리게 되고, 이는 미술시장이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져 모형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아트마켓에서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는 작품값의 산정 근거가 처음으로 제시되자 논란이 뜨겁다. 경매가, 화랑거래가를 참고하는 게 타당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물론 경매에서 거래되는 작품은 가격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경매사가 매긴 추정가와 낙찰가가 명확히 공표돼 가격 신뢰성이 높다. 하지만 경매서 거래되는 작가 수는 전체의 0.1%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생존 작가는 33% 선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경합이 벌어질 경우 낙찰가는 시장가보다 몇 배 오르고, 반대로 응찰자가 적을 경우 화랑이나 아트페어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아주 낮게 낙찰되는 경우도 많다.

더욱 큰 문제는 대다수 작가의 경우 ‘정찰가격’이 없어 작가가 부르는 값과 실거래가 사이의 간극이 심해 이중적 가격구조가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감성적 작품을 정량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작가에게 검증받을 기회를 주고 이중가격 형성을 막기 위해 협회가 축적한 데이터베이스와 오랜 시가감정 노하우를 토대로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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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가격 결정을 위한 정량적 평가

미술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고려돼 온 여러 변수를 정량화해 작가들의 통상 작품가격을 산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➀ 작가가 매년 개인전에 준하는 전시 활동을 한 경우 작업경력으로 간주한다. ➁ 작가를 파악할 수 있는 학업 특성, 전시 활동내용, 인지도를 3등급으로 평가한다. ➂ 작업 경력, 학업 특성, 전시활동 내용, 인지도를 평가해 회화의 경우 10호(53cm×45.5cm)를 기준 크기로 통상가격을 산출한다. ➃ 작품의 가격 책정이 의뢰되면 보존 상태를 파악해 평가한다. ➄ 의뢰 작품의 크기별 가격을 적용비율에 준해 산정한다. ➅ 의뢰 작품의 작품성과 시장성을 전문위원들이 평가해 통상가격에 적용한 후 최종가격을 책정한다.

이 같은 과정에 따라 개발된 모형은 P=[‘KP·1/3 (A+E+F)]×(M+V)]로 나왔다. 어려운 수학 공식 같으나 각 요소의 영문 앞자인 △P(Price)=가격 △KP(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통상가격) △A=Academic Background(학업 특성) △E=Exhibition Activity(전시활동), △F=Fame(인지도) △M=Marketability(시장성) △V=Value of work(작품성)를 따서 만들었다.

학업 특성 항목은 출신학교와는 상관없이 미술 비전공 1점, 대학 졸업 2점, 대학원 졸업 3점으로 매기고, 전시활동은 대관전 1점, 기획전 2점, 초대전 3점으로 차등을 둔다. 인지도 측정은 작품의 미술관 등의 소장 여부, 방송 및 신문(언론)의 보도 내용 등을 평가해 최대 3점을 준다.

즉 작가 통상가를 바탕으로 특정 작품의 보존 상태, 크기별 가격, 작품성, 시장성을 따져 10호당 최종가격을 책정하게 된다. 작품성과 시장성 평가는 협회 소속 감정위원과 전문위원이 작업 재료, 작품 주제, 제작 시기, 경매 성적 등을 반영해 각각 -4점부터 4점까지 나눈다.

협회는 매뉴얼에 의거해 경력 23년 차의 화가 이정웅(1967년생)의 작품값을 산출해 봤다. 학업 특성은 회화 전공(학사·석사)으로 3점, 전시활동은 기획전 등 2점, 사회적 인지도는 KBS·MBC 등 방송매체와 신문에 수차례 보도돼 3점이 부여됐다. 수상 경력은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2회 등이 반영돼 3점, 작품 소장 이력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돼 3점이 매겨졌다. 이 같은 정량평가에 정성평가를 더해 이정웅의 72.7cm×50cm(20호) 크기 부조회화 ‘The sacred grove-001’의 작품값은 252만원으로 책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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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째 사과 그림을 그려온 윤병락의 2018년작 유화 ‘가을향기’. 시세상승률이 반영돼 10호 150만원이었던 최초 가격이 현재 500만원으로 크게 올랐다. [사진=노화랑]


정량평가보다 비중이 훨씬 큰 정성평가

작가는 그동안 10호 기준 작품값을 200만원으로 책정해 왔는데, 20호 크기의 이 작품을 ‘KP·1/3 (A+E+F)]×(M+V)’에 대입해 보니 200만×2=400만원×0.9(크기별 가격)=360만원×작품성±0점(0% 가산)+시장성 -3점(-30%)으로 나왔다. 10명의 감정 전문위원이 참여한 정성평가에서 작품성(0)+시장성 -3점(-30%)을 받으면서 최종 252만원으로 가격이 산출된 것이다.

반면에 이정웅의 같은 크기 작품으로 한옥마을을 표현한 ‘City story’는 작품성과 시장성에서 전문위원으로부터 좀 더 높은 평가를 받아 288만원이 산출됐다. 두 작품에 대해 당초 작가 자신은 각 360만원을 매겼고, ‘City story’는 이미 판매된 바 있다.

결국 같은 작가의 똑같은 크기 작품이라 해도 작품성과 시장성을 평가할 경우 최종가격은 달리 나오게 됨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금액은 1차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을 예시한 것으로, 만약 이정웅 작가의 작품이 2차 시장(경매 등)에서 거래될 경우 가격은 달라지게 된다. 김 위원장은 “이처럼 분류표에 따른 평가점수를 가격에 대입해 본 결과 개발모형의 적정성이 부합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작가들의 시장 검증 기회와 함께 작품값의 신뢰도를 높여 미술시장이 좀 더 활성화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매뉴얼에 대해 일부 시장연구자, 작가, 화랑들은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학력, 전시 경력, 소장 이력 등을 단순히 정량화하는 데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가장 많다. 일례로 아무리 작품성이 뛰어나도 고졸 작가는 학력 항목이 1점인 것은 문제라는 것. 학력, 경력 같은 요소의 의미가 점점 없어져 가는 시대에 이를 점수화하는 것은 전근대적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김 위원장은 “자동차를 몰려면 운전면허가 필요하듯 작가 활동을 위해서는 데생이라든가 구도, 재료 이해 등의 교육이 필요해 이를 반영했다. 그리고 그 점수는 1~2점 차이에 불과하다”며 “이번 시가감정 모형은 어디까지나 진행형이며, 각계 의견을 청취해 계속 수정 보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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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량평가와 정성평가를 거쳐 288만원의 가격이 매겨진 이정웅의 20호 크기 부조회화 ‘City story 001’. 작가가 책정한 가격은 360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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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작가의 같은 시기 작품임에도 시장성에서 낮은 평가를 받아 작품값이 252만원으로 책정된 이정웅의 ‘The scared grove 001’.


해외에서도 작품가격 모형 연구 활발

미술품이 예술품인 동시에 투자가치를 지닌 재화로 인식되면서 많은 나라에서 작품 가격 모형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화가들의 작품가격을 비교 분석한 진스버그(Bluelens Ginsburgh, 1993), 미국의 미술품 거래를 통한 가격 모형을 연구한 피어스(Angello Pierce, 1996), 1780~1970년에 제작된 회화 거래의 가격지수 모형을 연구한 앤더슨(Anderson R. C, 1974) 등이 그 예다.

국내에서도 작품가격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미술시장에서 작품가격과 크기의 비례관계를 연구한 서진수(2005), 호당가격제의 타당성을 수치로 나타낸 남준우(2008), 한국 근현대 화가의 그림가격지수를 연구한 최정표(2012) 등의 연구가 그것으로, 작품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가격 모형의 여러 패턴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연구들은 분석 대상 작품이 대부분 유명 작가에 국한돼 일반 작가들에 적용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번에 공개된 매뉴얼에 대해 작업 경력, 언론 보도 같은 정량적 항목이 정성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중견 화랑 대표는 “미술품의 시장가치에 학력, 전시 횟수 등이 중요하게 반영되던 시대는 지났다. 문제는 얼마나 독창성을 지녔으며, 얼마나 미래에 통할 수 있는 작품이냐에 달렸다”면서 “작품값을 공식에 집어넣어 결정하는 것은 난센스이며, 시장에서 가격이 자유롭게 형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트마켓 연구자인 서진수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미술시장연구소장)는 “미술품 가격은 자연가격과 시장가격으로 나뉘는데, 이번 매뉴얼은 자연가격 산정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시 경력, 소장 이력 등을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가 중요하고, 적용에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정성평가에서도 가중치 부여가 보다 면밀하고도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평했다.

반면에 ‘가격 결정구조가 불투명하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 온 미술계가 처음으로 자체 가격 산출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편 지난 2008년 설립된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작품시가 감정과 더불어 국내 18개 경매사의 경매가격 수집 및 조사, 주요 아트페어에서 거래된 작품 수량과 가격을 취합해 분석해 왔다. 또한 작가, 사용 재료, 주제, 제작 시기, 작품 크기 등을 고려한 거래 평균가격을 산출해 일반에 공개해 오고 있다. 협회 설립자인 김영석 감정위원장은 “지난 2014년부터 법원의 특수 분야 전문감정인으로 위촉돼 화재, 침수, 이혼, 도난 사건 등에 얽힌 미술품 시가감정을 시행하며 작품값에 대한 객관적인 모형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면서 “아트마켓이 커질수록 이 같은 요구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근현대 회화의 경매가격 분석과 가격지수 연구로 박사학위도 취득(홍익대, 2015년)한 그는 “최근 들어 경매와 아트페어에서 외국 작품의 비중이 날로 증가해 한국 작가들은 기로에 처해 있다. 이는 우리 작가 중 눈길을 끌 새로운 작품이 별로 없는 데다 고객의 요구를 못 따라가기 때문”이라며 “보다 참신하고 다양한 작가층이 생기려면 합리적인 가격 책정이 선행돼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모형 내용을 접한 미술계 일각에서는 작업 경력, 언론 보도 같은 ‘정량적’ 항목도 정성적 성격을 띤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작품의 시장가치에 학력이나 전시 횟수가 어떠한 타당성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작가의 작품가격을 평가하고 시장에 두루 알려 이중가격 형성을 막고, 시중에서 검증받을 기회를 주자는 취지”라면서 “한국미술협회 소속 작가만 해도 3만여 명이 넘는데, 현재 우리 미술시장은 극소수 유명 작가 작품값만 알려진 상황이어서 이의 해결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협회 측은 1차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품 3600점의 시가를 감정하고, 작품가격 평가를 의뢰하는 작가·기관·회사·법원을 대상으로 이 모델을 적용해 가격을 산출할 계획이다. 동시에 매뉴얼도 현장 지적을 수용해 계속 보완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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