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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침략한 일본...한국도 지지 않는다

2019년 09월호

한국경제 침략한 일본...한국도 지지 않는다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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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반도체 1차 이어 화이트리스트 제외 2차 경제보복
강제징용 배상 등 정치·외교에 경제 끌어들여
“지지 않겠다”...韓도 화이트리스트 맞불


| 김홍군 기자 kiluk@newspim.com


8월 2일 오후 청와대에서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의 얼굴에서는 비장한 각오가 느껴졌다. 평소의 부드러운 표정은 사라지고, 눈에서는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7분 30여 초간 이어진 모두발언에는 날이 서 있었다. “역사에 역행하는 이기적인 민폐”,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 등 이례적으로 강한 발언이 쏟아졌다.

문 대통령을 화나게 한 건 일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오전 우리나라의 국무회의 격인 각의를 열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8월 7일 공포됐으며, 21일 뒤인 8월 2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백색국가는 자국의 안전 보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첨단기술과 전자부품 등 전략물자를 타 국가에 수출할 때 허가를 면제받는 국가를 말한다. 그동안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영국,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등 총 27개국이 지정돼 있었다. 2004년 백색국가로 지정된 한국은 이 리스트에서 빠지는 첫 번째 나라가 됐다.

그동안 3년에 한 차례씩 포괄허가만 받아오던 일본 기업들은 앞으로 한국에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마다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기간도 1주일에서 최대 90일로 늘어나고, 허가 유효기간은 3년에서 6개월로 대폭 줄어든다. 정부는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바뀌는 전략물자가 1194개 품목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 민감 품목으로 분류돼 이미 건별 허가가 적용되고 있는 품목, 국내에서 사용되지 않는 품목, 소량 사용 또는 대체 수입이 가능한 품목 등을 제외하면 총 159개 품목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에 대해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거부하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대단히 무모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일본의 수출 규제는 명백한 경제 보복”이라며 “일본에 상응하는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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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반도체·디스플레이...2차는 전방위 타격

백색국가 제외 조치는 일본의 2차 경제 보복이다. 앞서 일본은 7월 1일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3개 품목을 포괄적 수출허가 대상에서 제외하고 개별허가로 바꾸는 1차 경제 보복을 전격 발표했다.

이들 품목은 한국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TV·스마트폰·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들로,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제조에,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기판 제작에, 에칭가스는 반도체 세정에 쓰이는 핵심 소재로 일본이 세계 시장의 70~90%를 점유하고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일본에서만 수입해야 하는 소재나 부품들을 골라냈고, 우리가 가장 아프다고 느낄 1~3번을 짚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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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는 아베 일본 총리. 일본은 이틀 뒤인 7월 1일 한국으로 수출하는 반도체 등 주요 부품에 대한 수출 규제를 발표했다. [사진 = 청와대 사진기자단]


정치·외교 갈등이 경제 보복으로

아베 정부의 경제 보복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첫 배상 판결이 나온 지 8개월여 만에 이뤄졌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30일 징용 피해자들이 일했던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을 시작으로 위자료 지급을 명령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렸다. 이후 일본 정부는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국제법 위반 상태가 됐다며, 한국 정부에 이를 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사법부 판결에 개입하지 않고 피해자 중심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청구권협정에 따른 중재위 가동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한국 정부가 한·일 양국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재원을 조성해 위자료를 주자고 제안했지만, 이는 일본이 거부하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말 아베 정부와 함께 도출한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백지화한 것도 일본이 거론하는 신뢰 훼손의 한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작년 12월 동해상에서 발생한 한국 해군 구축함과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 간 갈등과 진실 공방 역시 한·일 관계를 악화시켰다.

일본 정부는 신뢰가 깨진 한국과의 ‘수출관리 운용상의 재검토’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등으로 비롯된 정치·외교적 갈등에 경제 영역을 끌어들였다는 것이 보편적 인식이다.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우대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을 때리면 지지도가 올라가는 분위기에서 자기 정치를 위해 경제 보복 조치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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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우지 경제서→펠리컨 경제로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가마우지’에서 ‘펠리컨’으로 바꾸겠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8월 5일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우리 모두가 합심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가마우지는 중국에서 가마우지의 목 아래를 끈으로 묶어 물고기를 잡아도 못 삼키게 한 뒤 어부가 가로챈 일화를 빗댄 말이다.

한국이 소재·부품·장비를 일본에 의존함으로써 다른 국가에 수출을 해도 정작 이득은 일본에 돌아가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이다. 정부는 일본의 경제 보복에 1차적으로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로 맞선다는 계획이다. 5년 내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 등 6대 분야 100대 품목의 공급안정성 확보를 목표로, 2028년까지 7조8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특히 안보상 수급 위험이 크고 주력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20개 품목은 국산화 및 수입선 다변화로 1년 내 공급 안정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글로벌 소재·부품·장비 기업 인수합병(M&A) 및 투자 확대를 위해 총 37조5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도 제공하기로 했다.

성윤모 장관은 “지금의 현실은 우리 앞에 놓인 불확실성으로 인해 어려움이 커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동안 숱한 위기를 극복해 온 우리 경제와 산업의 저력을 믿고 있다”며 “100대 핵심 전략품목들은 조기에 공급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중점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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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원들이 8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브랜드의 로고가 새겨진 상자를 짓밟고 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맞대응 카드도 꺼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관계부처장관회의를 거쳐 8월12일 전략물자 관련 수출입 고시 개정안을 발표했다. 현재 ‘가’와 ‘나’로 분류된 전략물자 수출지역 구분을 ‘가의1’ ‘가의2’ ‘나’로 세분화 해 일본을 ‘가의2’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일본은 현재 미국, 독일 등과 함께 ‘가’ 지역 29개국에 포함돼 있다. 국내 기업이 ‘가의 1’ 지역 국가에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 심사기간은 5일 이내지만, ‘가의2’또는 ‘나’ 지역 국가에 수출할 때는 허가신청서와 전략물자판정서, 계약서, 서약서 등 내야 할 서류 종류가 ‘가의1’ 지역의 2~3배에 이르고 심사기간도 15일로 늘어난다. 정부가 관리하는 전략물자는 총 1735개다.

다만 일본의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한국산 비중이 적어 일본의 경제 보복과 비교해 한국의 맞대응이 얼마나 효과를 낼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올 상반기(1∼6월) 일본의 총 수입액 39조1321억엔 중 한국에서 수입한 금액은 1조6228억엔으로 4.2%다. 한국의 수입에서 일본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 가까이다. 한국산 의존도가 높은 철강 제품 등은 대체 수입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략물자에 포함되지 않는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도 거론되지만, 일본 반도체의 한국산 의존도도 약 17%로 높지 않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도 한국 정부의 맞대응 카드로 거론된다. 지소미아는 한국과 일본이 군사 기밀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맺은 협정으로, 2016년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병력 이동과 사회 동향, 북 핵·미사일 관련 정보 등을 일본과 공유하기 위해 체결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기 직전 국회에 출석해 “지금은 유지 입장이나, 앞으로 상황 전개에 따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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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재팬!’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일본이 2차 경제 보복을 단행한 이후 첫 주말인 8월 3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일본의 경제 보복을 비판하기 위한 집회에는 갑작스럽게 내린 폭우에도 불구하고 680여 개 시민단체와 시민 5000여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가 적힌 옷을 입고, 침략과 식민지배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와 경제 보복을 비판했다. 집회를 주최한 아베 규탄 시민행동은 “일본이 침략과 식민지배의 역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경제·군사적 하위 파트너로 길들이겠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며 경제 보복의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했다. 시민행동은 일본이 경제 보복을 철회할 때까지 촛불집회를 이어 간다는 계획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불매운동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일본 대표 자동차 브랜드인 토요타의 7월 판매량이 40% 가까이 감소하는 등 일본차 판매가 뚝 떨어졌다. 유니클로와 ABC마트, 아사히맥주 등 소비재 기업들의 매출도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다. 일본 여행을 보이콧하는 관광객이 늘어나며 일본 노선 취항을 축소 또는 폐지하는 국적항공사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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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정권 규탄 3차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한·일이 방법 찾아라”...뒷짐 진 미국

일본의 경제 보복에서 비롯된 한·일 경제전쟁이 격화하고 있지만,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미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8월 1일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일본 양국이 갈등을 완화할 방법을 찾길 바란다”며 거리를 뒀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일 간 갈등이 심화됐지만, 어느 한쪽 편에도 서지 않는 자세를 취해 왔다.

기미야 타다시 도쿄대 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절대 개입 안 한다”며 “일본이 규제 조치의 이유로 안전 보장 문제를 내세운 것도 미국의 정보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 일본 내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신뢰 회복이 해법...양국 정상 다가서야

한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은 양국의 갈등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일본 내부에는 한국 정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상당히 강하다”며 “실타래처럼 얽힌 한·일 관계가 빠른 시일 내 정상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기미야 교수도 “이번 조치는 미국의 묵인하에 이뤄진 것이라고 본다”며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것은 헛수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해법은 대화를 통한 신뢰 회복이다. 이민환 교수는 “장기적으로 볼 때 양국이 신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신뢰가 없으면 언제든지 이런 일들이 계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마이니치신문은 “한·일 정부가 (자국 내) 여론을 의식해 상호 비난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라며 “양국 정상이 서로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가 양국 모두에 상처를 남길 우려가 있다”며 경제 보복 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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