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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 수밖에 없었다” 아들을 죽인 엘리트 관료의 고뇌

2019년 08월호

“죽일 수밖에 없었다” 아들을 죽인 엘리트 관료의 고뇌

2019년 08월호

친아들을 식칼로 찔러죽인 아버지는 도쿄대 출신에 차관까지 지낸 엘리트
히키코모리·가정폭력 일삼던 아들이 초등생에게 분노를 쏟자 범행 결심
日에선 “고뇌에 찬 아버지의 결단”이란 평가 많아

|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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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후 자수한 구마자와 히데아키의 모습. [사진=ANN]


2019년 6월 1일, 40대 히키코모리 남성이 식칼에 찔려 잔인하게 살해됐다. 범인은 피해자의 아버지인 구마자와 히데아키(熊澤英昭·76)였다. 부자 간의 살인사건이란 사실도 자극적이었지만, 범인인 아버지가 도쿄대 출신에 농림수산성 차관까지 지낸 엘리트였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관료사회라 불리는 일본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엘리트가 왜 친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찔러죽일 결심을 한 것일까.

피해자인 구마자와 에이이치로(熊澤英一郞·44)는 백수로 집에서 게임만 하는 ‘히키코모리’였다. 하지만 히키코모리라는 사실이 범행의 원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사건이 벌어진 당일, 히데아키의 집 근처 초등학교에선 운동회가 열리고 있었다. 에이이치로는 운동회 소리가 시끄럽다고 화를 냈고, 그 과정에서 히데아키와 말다툼이 일어났다. 이때 히데아키의 머릿속을 스친 건 며칠 전 가와사키(川崎)에서 벌어진 흉기난동 사건이었다. 한 50대 남성이 길거리에서 칼을 휘둘러 19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인데, 피해자 대부분이 등교하던 초등학생이었다. 히데아키의 머릿속에선 자신의 아들도 어린아이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이윽고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분노의 화살이 아이들에게 돌아가선 안 된다.” 히데아키가 ‘시끄럽다’라고 화를 냈다는 사실에서 가와사키 흉기난동 사건을 떠올렸다는 점이 지나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히데아키의 불안에는 근거가 있었다. 에이이치로는 중학생 때부터 꾸준히 자신의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해 온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이이치로는 자신의 트위터에 중2 때부터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과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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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이치로가 19세일 때 본인이 생전에 다른 트위터 유저에게 보낸 사진.


히데아키는 아들과 말싸움을 벌이고 몇 시간 후 식칼로 게임을 하던 아들을 찔렀다. 경찰에 따르면 에이이치로는 복부 2회, 옆구리 2회, 견갑골 아래 등에 1회 찔렸으며, 양손과 팔에 방어흔이 남아 있었다. 이 중 옆구리와 복부에 찔린 상처가 치명상이었으며, 사인은 과다출혈이었다.

방어흔으로 볼 때 에이이치로는 마지막까지 살기 위해 반항한 점이 드러난다. 히데아키는 피를 흘리고 쓰러진 아들을 방치한 채 바라보다가 경찰에 자수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도착했을 때 히데아키는 넋을 잃은 듯 멍한 표정이었다고 했다.

경찰 조사에서 히데아키는 “아들이 흥분해서 나와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있었다”며 “어린 아이들에게 적대감을 표출하는 걸 보고, 가와사키 흉기난동 사건처럼 주위에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장남을 찔렀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가 아들을 살해하기 전 “죽일 수밖에 없다”고 쓴 메모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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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이치로의 트위터 계정. “만일 살인면허를 얻을 수 있다면 제일 먼저 구보(愚母·자신의 어머니를 낮춰 부르는 말)를 죽이겠다”(위),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구보를 때려서 쓰러뜨렸을 때의 쾌감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아래)라고 쓰여 있다.


엘리트 아버지와 ‘서브컬처’에 빠진 아들

고위 공직자 출신의 살인 사건이라는 점,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다는 점 때문에 이 소식은 일본 전역으로 퍼졌다. 동시에 ‘달라도 너무 다른’ 부자의 모습도 얘깃거리가 됐다.

히데아키는 명문 중의 명문으로 꼽히는 도쿄대학을 나와 1967년 현재의 농림수산성인 농림성에 들어갔다. 이후 경제국장 등을 거쳐 2001년 관료 출신으로는 최고위직이라고 볼 수 있는 사무차관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 문제가 된 광우병 파동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2002년 1월 퇴임했다. 이후엔 체코 대사를 거치고 은퇴했다. 이른 퇴임을 했지만 히데아키는 주변에서 일처리로나 인성으로나 높은 평가를 받아 온 인물이었다. 사건이 보도된 이후에도 히데아키의 지인들은 그가 책임감이 높고 온화한 인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반면 아들인 에이이치로는 애니메이션 학원을 다니다가 애니메이션 전문학교를 중퇴했다. 트위터와 픽시브 등에는 게임과 관련된 그림을 꾸준히 올리는 등 서브컬처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듯한 인생을 살았다. 온화하다는 평을 받는 아버지와 달리, 트위터나 게임 내에서는 ‘혐한 우익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예사였고,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싶다는 글도 여러 차례 올렸다. 다른 트위터·게임 유저들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고위 관료라는 사실을 과시하는 모습도 보였다. 또 에이이치로는 다른 유저들에게도 심한 말을 일삼는 ‘악플러’로 유명했다. 이 때문인지 사망 직후 그의 트위터나 픽시브 계정에는 명복을 비는 글보다 자업자득이라며 조롱하는 글이 더 많이 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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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고 있는 니챤의 백수들에게. 2018년 5월 지불예정분의 이용명세합계 32만3729엔. 이번 달 내가 신용카드로 지불한 금액이다. 너희 부모가 필사적으로 일해서 버는 급료보다 많지”라고 적혀 있다.


게다가 에이이치로는 자신의 부모에게 매달 40만엔의 용돈을 탔는데, 이 가운데 30만엔 이상을 게임 ‘현질’에 사용했다. 아무리 고위 관료를 지낸 인물이라고 해도 은퇴 후 매달 40만엔이나 되는 돈을 용돈으로 주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 일본에서 정년퇴직한 30년 근속 공무원의 연금 수령액이 평균 24만엔가량이라는 점에 비춰봐도 그렇다. 사건의 상세한 내용이 알려지면서 일본에선 히데아키의 범행을 ‘고뇌에 찬 결단’으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늙은 부모에게 오랜 기간 폭력을 휘두르며 경제적으로도 착취한 패륜아가 주변의 어린아이들에게까지 분노를 표출하자 아버지가 이를 막으려 한 것이란 평가다. 특히 히데아키가 자신을 향한 폭력에는 침묵했으나, 주변에 대한 폭력을 막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도 동정을 산 것으로 보인다. 무죄가 어렵다면 집행유예가 나와야 한다는 반응부터, 죄값을 치른 뒤에 사회로 복귀하길 바란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일각에선 일본 특유의 문화가 낳은 참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정폭력 등 좋지 않은 이야기는 드러내지 않고 내색하지 않는 일본의 문화가 구마자와 집안을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간 게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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