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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한 당신 카프리(Capri)로 떠나라

2019년 08월호

열심히 일한 당신 카프리(Capri)로 떠나라

2019년 08월호

| 조용준 작가 digibobo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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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고 항공권 구매 사이트를 들여다보게 만들기에 충분한 카피였다. 그러나 이 문구에는 ‘어디로?’가 빠져 있다. 어디로 떠나야 좋을까.

일반적으로 여행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관광형과 휴양형이다. 하나라도 더 보고자 악착같이 쏘다니는 ‘뚜벅이형’이 있는 반면, 편안하고 느긋한 휴식을 즐기는 ‘베짱이형’이 있기 마련이다. 평소 강도 높은 일에 지친 사람들은 단연 관광지보다는 휴양지에 마음이 더 끌릴 것이다.

이탈리아 카프리(Capri) 섬은 휴식을 위한 여행에 단연코 최고의 장소다. 이 세상에 많고도 많은 휴양지 가운데 딱 하나만 고르라면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고를 수 있는 곳이 바로 카프리다. 바로 그랬기에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도 자신의 신혼여행 장소로 이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물론 카프리 섬으로 가는 여정이 쉽지는 않다.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내린 다음에도 로마 중앙역으로 가서 기차로 나폴리로 이동해야 하고, 나폴리 중앙역에서 다시 카프리행 페리가 떠나는 항구로 가서 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배가 카프리 마리나그란데 항구에 도착했다고 해서 긴 시간 이동으로 지친 몸을 호텔 방에 바로 눕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또 항구에서 푸니쿨라를 타고 15분 동안 올라가거나, 아님 버스를 타고 지그재그 고갯길을 한참 견뎌야 한다. 중심지 마을, 진정한 휴식처는 바로 섬의 정상 부근에 있다.

그런데 푸니쿨라를 타는 것도 간단치만은 않다. 워낙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통에 오전 시간이 아니면 푸니쿨라를 타는 데도 한참 줄지어 서서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카프리에 올라왔건만, 일순 당신을 당혹케 할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샤넬, 루이비통, 페르가모, 보테가베네타 등 온갖 명품 브랜드 가게들이 골목길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카프리 중심지 초입에서부터 시작되는 이들 명품 숍은 당신에게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일깨워 준다. 당신이 지금 평범한 관광지가 아니라, 지구촌에서 내로라하는 부자들이나 셀리브리티들이 놀러오는 동네에 막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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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리는 사실 부자들과 셀럽들의 휴양지다.


그렇다. 사실 카프리는 부자들의 놀이터이자 휴양지다. 물가와 호텔비 모두 비현실적으로 비싸므로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이 갈 곳이 결코 아니다. 생수를 제외한 모든 물가가 이탈리아 본토보다 적어도 3배 이상 비싸다. 생수만큼은 신기하게도 바가지 요금을 씌우지 않았다.

카프리는 옛날부터 그랬다. 로마제국 때부터 황제와 귀족들의 별장이 즐비했던 휴양지였다. 2대 티베리우스 황제(Imperator Tiberius Iulius Caesar Augustus, B.C 42~A.D 37)의 경우 로마에 있지 않고 아예 카프리 섬에서 제국을 통치했던 인물이다.

이로 인해 그가 섬 안에 틀어박혀 온갖 변태적 음행을 일삼았다고 하는 일명 ‘티베리우스의 전설’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이는 그의 은둔생활로 인해 생긴 일종의 루머였을 가능성이 높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검투 경기를 주최하지도 않았고, 멋진 건물을 짓는 대규모 토목공사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쾌적한 카프리에서 혼자 유유자적한 생활을 했으므로, 그에 대한 시민들의 감정이 좋을 리 없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일반적인 시선과 달리 19세기 독일의 역사가 크리스티안 몸젠은 그를 ‘로마가 가졌던 가장 훌륭한 황제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동시대인들에게는 악평을 받았지만, 그는 실제로 자신의 역할을 100% 잘 수행한 군주였다는 것이다. 카프리 섬으로 은둔하기 이전에 정보 수집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춰놓고 섬 안에서 제국을 손바닥 안에 놓고 조종하며 통치했으므로 그의 재임 시절 로마는 평화로웠고, 재정은 풍족했다고 한다.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 역시 7권 ‘악명 높은 황제들’ 편에서 “로마제국은 타키투스 같은 공화정 동조자가 뭐라고 비판하든 카이사르가 기획하고, 아우구스투스가 구축하고, 티베리우스가 반석처럼 다져놓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티베리우스가 이처럼 로마를 멀리하고 카프리에 틀어박힌 것은 사람들과 계속 부딪쳐야만 하는 환경을 잘 견디지 못하는 내성적 성격 때문이었다. 그가 자신의 은둔 장소로 카프리를 선택한 것만 보아도 카프리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 수 있다. 카프리에는 티베리우스 저택이 있던 터와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티베리우스 집터와 상당히 떨어진 곳에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기리는 ‘아우구스투스 정원’도 있다. 이 정원에서 보는 카프리 바다의 풍경 역시 절경이다. 사실 카프리가 로마 황제들의 전용 휴양지가 된 것은, 아우구스투스가 당시 카프리를 영유하고 있던 나폴리에 이스키아 섬을 내주는 조건으로 카프리를 취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카프리가 로마 황제의 사유지였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다음 카프리는 다시 나폴리 왕국의 부속 도서로 편입됐다. 한때 프랑스 나폴레옹 1세의 지배를 받다 영국에 점령당한 이후 따뜻하고 아름다운 휴양지로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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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우스 저택 근처에 프랑스 귀족 쟈크 페르셍이 1904년에 지은 ‘빌라 리시스(Villa Lysis)’.


이 밖에도 섬의 곳곳에는 전설적인 여배우 리즈 테일러와 브리지트 바르도, 한때 모나코 왕비이기도 했던 그레이스 켈리 등이 방문했던 사진이 기념판으로 제작돼 세워져 있다. 또한 고급 레스토랑에는 이곳에서 식사했던 세계적인 스타들과 셀럽들의 사진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카프리 섬은 마리나그란데 항구를 낀 동쪽의 카프리와 서쪽의 더 높은 지역인 ‘아나카프리’로 나뉜다. 이탈리아 말이나 라틴어에서 ‘아나(ana)’는 위쪽을 뜻하는 접두사이므로, 아나카프리는 곧 위에 있는 카프리라는 말이 되겠다. 실제로 아나카프리가 150m 더 고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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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리즈 테일러가 카프리를 방문한 기념판.


카프리에서 아나카프리로 가려면 택시나 버스를 타야 하는데, 절벽에 길을 냈기 때문에 차 한 대 겨우 비켜 지날 정도로 좁은 도로로 간다. 쪽빛 바다를 낀 하얀 집들이 발 아래 그림처럼 펼쳐져 탄성이 나오지만, 때로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하기도 하다.

카프리가 호화롭고 귀족적인 분위기라면, 아나카프리는 소박하고 서민적이다. 실제로 카프리의 각종 호텔이나 레스토랑, 상점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은 아나카프리다. 카프리에는 호텔이나 별장들밖에 없어서 실질 주거공간들은 아나카프리에 있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몬테솔라로를 올라가기 위해 아나카프리로 온다. 몬테솔라로를 오르는 1인용 리프트인 세조비아(Seggiovia)가 아나카프리의 빅토리아 광장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 1인용 리프트는 스키장의 리프트와 똑같은데 단지 혼자 타는 거라서 작고, 그래서 더 공포를 자아낸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타기 어려울 정도로 아찔한 높이를 약 20분 동안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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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솔라로를 오르는 1인용 리프트인 세조비아. 산자락에 노란싸리꽃이 잔뜩 피어 있다.


그러나 여름에 세조비아를 타면 몬테솔라로 산자락에 가득 피어난 노란싸리꽃, 즉 스패니시 브룸(Spanish Broom)을 덤으로 볼 수 있어 그 재미로 공포를 잊을 수도 있다. 스패니시 브룸의 학명은 스파티움 준세움(Spartium Junceum). 콩과의 낙엽관목으로 지중해, 유럽 남서부가 원산지다. 우리말로는 노란싸리, 혹은 금작화(金雀花)다. 여름의 지중해 주변에는 어디를 가든 이 꽃이 항상 피어 있다. 특히 황무지와 같이 거칠고 척박한 땅에 군락으로 피어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프랑스 프로방스나 이탈리아 토스카나, 스페인 안달루시아나 산간지방을 여름에 여행한다면 반드시 만날 수 있는 것이 이 꽃이다. 꽃은 향수, 변비약, 이뇨제로 사용한다. 매우 강하면서 달콤한 바닐라 냄새가 난다. 줄기는 빗자루, 캔버스, 실, 로프, 바구니 등 공예품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직공의 꽃이라고 해서 위버스 브룸(Weaver’s Broom)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스패니시 브룸에 한눈을 팔면서 공포를 잊다 보면 리프트는 어느새 산 정상에 올라선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시선이 닿는 곳마다 절경이요, 그림엽서다.

‘카프리의 깊은 밤(Capriccio, Love And Passion)’이란 영화가 있다. ‘모넬라’나 ‘레이디 두 잇(Lady Do IT)’ 등 에로 영화로 유명한 틴토 브라스 감독이 이탈리아에서 1987년 제작한 영화다. 역시 에로물로 두 부부의 불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를 안다면 나이가 적어도 50대는 넘었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에는 1989년에 개봉됐기 때문이다.

아나카프리 한 가게의 점원과 잠시 담소를 나누는 도중에 우연히 이 영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그 청년에게 한국에서는 이 영화가 ‘Capri in deep night’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상영됐다고 전해줬다. ‘deep night’이라는 내 표현에 청년이 키득키득 웃어댔다. 그러더니 너무 재미있다면서 나와 사진을 찍자고 자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이렇게 우리는 ‘카프리의 딥 나잇’으로 친구가 됐다.

사실 젊은 시절 카프리를 간다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가는 곳마다 빈부의 격차를 확연히 느낄 수 있고, 거기서 오는 위화감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카프리는 돈을 많이 벌어 경제적으로 안정된 다음에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뭐 어쩌랴. 열심히 일했다면, 그래서 셀프 보상을 해야겠다면 젊은 날에도 카프리로 가서 즐길 수 있는 거지. 30대 초반의 나 역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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