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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살인' 고유정 범죄의 재구성

2019년 08월호

'희대의 살인' 고유정 범죄의 재구성

2019년 08월호

| 박준형 기자 jun897@newspim.com
| 이형석 사진기자 leeh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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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훼손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유정(36)의 잔혹한 범행 수법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범행 도구를 미리 준비하고 수면제 성분인 졸피뎀을 사용하는 등 계획된 범죄 정황이 밝혀졌지만, 고유정은 여전히 우발적 범행이었다고 주장하는 등 형량을 낮추기 위한 고도의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의혹이 가득한 의붓아들 사망 사건까지 고유정의 범행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범행 도구 89점에 졸피뎀까지...계획적 범행

경찰과 검찰에 따르면 고유정의 전 남편 강모(36) 씨는 지난 5월 25일 아들(5)을 만나기 위해 제주에 있는 집을 나섰다. 2017년 고유정과 이혼한 후 양육권을 이유로 아들을 만나지 못했던 강씨가 소송 끝에 면접교섭권을 얻어 아들을 볼 수 있게 된 날이었다.

2년 만에 아들을 만날 생각에 들뜬 강씨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제주에서 서귀포 모 테마파크로 향하던 강씨의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에는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에 아들의 이름을 넣어 개사해 부르던 강씨의 목소리가 녹음돼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세 사람은 서귀포 시내 모 마트에 들러 장을 봤고, 이후 고유정이 미리 예약한 제주 조천읍 모 펜션으로 향했다. 강씨의 차량은 마트 주차장에 세워둔 채 고유정의 차량으로 함께 이동했다. 고유정이 예약한 펜션은 무인 펜션으로, 주변에 인적이 드물고 CC(폐쇄회로)TV도 없었다.

세 사람은 오후 7시쯤 저녁식사를 했다. 고유정이 직접 카레라이스를 만들었으며 이때 고유정이 강씨의 음식과 음료에 졸피뎀을 넣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유정은 지난 5월 17일 주거지에서 20㎞ 정도 떨어진 충북 모 병원에서 졸피뎀을 처방받고 인근 약국에서 구매했다.

강씨는 키 182㎝, 몸무게 80㎏의 건장한 체격이다. 키 160㎝ 내외의 고유정이 강씨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졸피뎀 덕분으로 보인다. 오후 8시에서 오후 9시 16분 사이 강씨의 정신이 몽롱해지자 고유정은 흉기로 강씨를 찔렀다. 오후 9시 16분쯤 강씨가 동생의 전화를 받지 못했고, 이후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었던 점으로 미뤄 경찰은 범행 시각을 추정했다.

당시 아들은 펜션의 다른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들은 고유정의 범행을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현장에는 강씨가 피를 흘리며 주방을 거쳐 출입문 쪽으로 기어간 혈흔이 남아 있었다. 박기남 제주 동부경찰서장은 “살해 현장에 있는 혈흔의 양과 흩어진 방향 등을 분석한 결과 고유정이 흉기로 최소 3회 이상 공격해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며 “몸싸움 흔적도 없어 피해자가 일시적으로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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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은 지난 6월 12일 오전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됐다. 이날 고유정이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리자 희생자 유가족이 호송차량을 막고 있다


고유정은 범행 3일 전인 5월 22일 제주 시내 모 마트에서 표백제와 수관세정제, 박스테이프, 드라이버 등 흉기 및 청소도구를 구매하는 등 치밀한 계획 아래 범죄를 저질렀다. 강씨의 DNA가 나온 흉기 등 증거물만 89점에 달한다. 면접교섭권 소송 다음날인 5월 10일 이후에는 휴대전화와 인터넷에서 ‘니코틴 치사량’, ‘살인도구’, ‘시신 유기 방법’ 등 범행 관련 단어를 집중적으로 검색했다.

이튿날 고유정은 강씨의 시신을 훼손했다. 오전 11시쯤 고유정은 아들을 제주 친정집에 데려다준 뒤 다시 펜션으로 향했다. 낮 12시 30분쯤 펜션에 돌아온 고유정은 시신을 본격적으로 훼손했다. 혈흔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다리와 방수복, 커버, 테이프 등도 준비했다.

다음날 오전 11시쯤 고유정은 종이상자 등을 들고 펜션을 퇴실한 뒤 인근 쓰레기분류장에 종량제봉투 4개를 버렸다. 이후 시내 모 병원을 찾아간 고유정은 다친 손을 치료받았다. 고유정은 “전 남편이 성폭행하려 해 저항하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라며 구속 후 법원에 증거보존 신청을 했다. 더구나 고유정은 오후 4시 50분쯤 강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자신의 휴대전화로 ‘(성폭행 사실을) 고소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조작 문자까지 보냈다.

하루 뒤인 5월 28일 오후 3시 30분쯤 고유정은 범행도구를 구입했던 마트를 다시 찾아 남은 표백제와 테이프, 청소도구 등을 환불했다. 오후 6시쯤에는 다른 마트에서 비닐장갑, 향수, 종량제봉투 30장, 여행용 가방 등을 구입했다. 이어 오후 8시 30분쯤 고유정은 훼손한 시신이 든 캐리어를 차량에 싣고 전남 완도행 여객선에 올랐다. 오후 9시 30분쯤 고유정은 선상에서 시신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봉투를 바다에 유기했다.

오후 11시쯤 완도에 도착한 고유정은 차량을 몰고 경기 김포시 아버지 소유의 아파트로 향했다. 다음날 오전 4시쯤 도착한 고유정은 또다시 강씨 시신을 훼손했다. 고유정은 사다리와 방진복을 구입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했으며, 사전에 주문한 전기톱도 도착한 상태였다.

이어 5월 30일 오전 7시 10분쯤 고유정은 아파트 인근에서 범행 도구를 버렸다. 추가로 훼손한 시신은 종량제봉투에 넣어 이날 오후 11시와 다음날 오전 3시쯤 두 차례에 걸쳐 아파트 내 쓰레기분리수거장에 버렸다. 이후 고유정은 오전 4시쯤 충북 청주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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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이 조사를 받은 제주 동부경찰서.


시신 없는 사건...“우발적 범행” 주장 되풀이

고유정이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강씨 가족은 강씨에게 연락이 닿지 않자 의아했다. 강씨가 고유정과 아들을 만나러 간 이후 오랫동안 휴대전화가 꺼져 있자 강씨 가족은 직접 강씨를 찾으러 나섰고, 결국 5월 27일 오후 파출소에 실종신고를 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고유정을 찾은 것은 사건 발생 1주일이 지난 6월 1일. 경찰은 이날 청주 자택에 있던 고유정을 살인 등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현장에서는 범행 도구와 강씨 혈흔이 묻은 이불 등이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고유정의 잔혹한 범행 수법이 드러났다. 하지만 고유정이 시신 훼손·유기 혐의에 대해서만 인정할 뿐, 계획된 범행이라는 점과 졸피뎀 투약 사실을 부인하면서 정확한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고유정은 경찰과 검찰에서 “전 남편이 성폭행하려 해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유정은 검찰에 송치된 후에도 범행 동기와 시신 유기 장소 등에 대해 진술을 거부했다. 진술 거부로 일관하다가 이후에는 “기억이 정리되지 않아 진술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씨의 시신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제주 동부경찰서와 완도해양경찰서는 고유정이 강씨 시신을 훼손·유기한 곳으로 추정되는 전남 완도와 경기 김포를 중심으로 수색을 벌이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그간 뼈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DNA 감정을 의뢰한 적은 있으나 모두 동물 뼈로 판명 났다. 범행 장소에서 수거한 머리카락 56수에 대해서도 국과수 감정을 의뢰했지만 DNA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수사기간을 연장하면서 보강수사를 벌였지만, 결국 시신을 찾지 못한 채 범행 37일 만인 7월 1일 살인 및 사체 손괴, 은닉 3가지 혐의로 고유정을 구속 기소했다. 시신을 찾지 못하면서 사체 유기 혐의는 빠졌다.

고유정의 계획적 단독범행으로 결론 내린 경찰과 검찰은 지금까지 밝혀낸 증거들로 혐의 입증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범행 동기도 현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대한 우려와 전 남편 사이의 아들 양육 문제 등이 범행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시신 없는 살인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질 경우 최종 형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고유정은 성폭행을 피하기 위한 우발적 범행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오른손을 다쳤다며 증거보전 신청을 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 태도를 보이고 있다. 모두 자신의 범행에 대해 정상참작을 받아 형량을 줄이겠다는 의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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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이 지난 6월 12일 오전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의붓아들 사망 사건 재조명...재판에 영향 끼칠까?

이번 사건으로 3개월 전 발생한 고유정의 의붓아들 사망 사건도 재조명됐다. A(4)군은 3월 2일 오전 10시쯤 고유정의 현 남편 B(37)씨와 함께 살던 충북 청주시 모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군은 전날 B씨와 같은 방에서 잠이 들었으며, 안방에서 따로 자고 있던 고유정은 숨진 A군을 발견한 B씨의 비명을 듣고 119에 신고했다. A군은 B씨와 전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제주 친가에서 지내던 A군은 고유정 부부와 함께 살기 위해 2월 28일 청주에 왔다가 이틀 만에 숨졌다.

당초 A군 사망원인은 질식사로 추정됐다. 정확한 사인은 특정되지 않았으나 국과수는 부검 결과 ‘질식사 추정’이라는 소견을 내놨으며 약물이나 독극물도 검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청주 상당경찰서는 고유정이 전 남편 살인 사건으로 붙잡히자 A군 사망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B씨는 6월 13일 고유정이 A군을 죽인 정황이 있다는 취지로 제주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B씨는 고소장에서 “아들이 숨진 날 고유정이 태연히 외출 준비를 마친 점, 아이의 피가 묻은 전기매트랑 매트리스를 모두 치운 점 등으로 미루어 고유정이 아들을 살해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최근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고유정이 아이가 숨지기 전날인 3월 1일 저녁 전 남편 살해 당시에도 먹였던 카레를 우리에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검찰은 사건 초기부터 수사를 진행해 온 청주 상당경찰서에 사건을 이관했다.

경찰은 A군이 잠든 후부터 숨진 채 발견될 때까지 고유정의 행적 등을 조사하고 있다. 당시 고유정은 감기를 이유로 다른 방에서 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고유정의 휴대전화,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디지털 포렌식 기법으로 분석하고 A군에 대한 약물 투약 여부, 처방 내역 등도 분석했다. 다만 현재까지 고유정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어떤 증거도 없는 상황이다. 고유정을 상대로 한 대면 조사에서도 별다른 성과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A군 사망 사건 수사는 고유정이 저지른 일련의 범행 동기와 계획성 여부 등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물론, 최종 형량을 결정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유정의 혐의점이 발견돼 추가 기소될 경우 경합범(확정 재판을 받지 않은 여러 범죄 또는 판결이 확정된 죄와 판결확정 전에 범한 죄)으로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큰 가운데 병합심리를 받는 것이 형량 측면에서 고유정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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