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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대한민국 문화재

2019년 07월호

버려진 대한민국 문화재

2019년 07월호

무허가건물에 쓰레기·빨래 등 문화재 훼손 ‘버젓이’
경보설비·소화전 등 방재시설 태부족 “화재 대응에 한계”
“문화재 예산, 10년 전 OECD 국가 수준에도 못 미쳐”

| 박준형 기자 jun897@newspim.com


지난 4월 강원 고성·속초·강릉 일대를 삼킨 산불 당시 속초시 설악산에 위치한 신흥사에서 근무 중이던 안전경비원 A씨는 “불이 번지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시청 직원과 연락하는 것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A씨는 “산불 규모는 큰 반면 제대로 된 방재시설은 없어 불안감이 더욱 컸다”고 아찔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신흥사 극락보전에는 분말소화기, 소화전, 방수총 등이 있지만 경보시설이나 폐쇄회로(CC)TV는 전혀 없어 신속한 초기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다. 보물 제1721호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명부전, 보배루 등 목조건물이 있지만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는 방염제 처리도 이뤄지지 않아 사고 위험은 더욱 높다. 총 4명의 경비원은 문화재 안전경비원 자격 조건인 소방 관련 자격증도 갖추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 대동세무고교 인근 한 음식점의 야외 주차장. 낯설게도 그곳에는 통일신라 시대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3.5m, 폭 1.5m 규모의 3층 석탑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석탑은 오랜 기간 방치된 것으로 보였다. 주변에는 잡초와 수풀이 무성했고, 각종 폐목재를 비롯해 고철, 석재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심지어 석탑 상륜부는 훼손돼 사라진 상태였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라고 밝힌 한 남성은 문화재청에 “보물급으로 추정되는 문화재가 어이없는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며 관리를 요청했다.

최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계기로 ‘우리 문화재 보존’에 대한 우려가 늘고 있다. 전국 곳곳에 훼손 또는 방치되고 있는 문화유산이 많은데 보존에 관한 정책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아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엄격한 규제와 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지정된 문화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미 폐허처럼 변해 버린 유산도 있다. 관리 주체인 문화재청과 관할 구청은 부족한 예산과 인력으로 인해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빨래 건조장 된 백제 가마터...40년 넘도록 방치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가지정 문화재는 지난해 말 기준 총 3999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국보(336건), 보물(2146건), 사적(505건)은 총 2987건으로 약 74%를 차지한다. 그러나 관리는 형편없는 상황이다. 문화재청이 2017년 실시한 국가지정 건조물 문화재(국보·보물) 정기조사 결과 점검 대상 문화재 202건 중 38건(19%)이 C~E 등급을 받았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훼손 상태에 따라 A~F까지 6개 등급을 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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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247호인 서울 남현동 요지에선 빨랫줄 설치, 쓰레기 투기 등 문화재 훼손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문화재는 18건(9%)이었으며, 정밀진단이 필요한 문화재는 8건(4%), 수리나 보수·정비 등 손상 방지를 위한 조치가 필요한 문화재는 12건(6%) 등으로 조사됐다. 보물 제152호인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는 균열 등이 발견돼 E 등급을, 보물 제1576호 김천 직지사 대웅전은 벽체 손상, 천장 변형 등으로 D 등급을 각각 받았다.

사적 제247호인 서울 남현동 요지도 대표적인 사례다. 남현동 요지는 삼국시대 백제 질그릇의 특징인 문살무늬를 가진 질그릇 조각들이 발견되면서 1976년 4월 사적지로 지정됐다. 서울 지역에서 발견된 유일한 백제 가마터로, 백제 질그릇 생산 기술을 밝힐 수 있는 유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43년이 지난 현재까지 사실상 방치되고 훼손되면서 관리가 시급한 상태다. 나무판자와 화분, 플라스틱, 병 등 쓰레기가 버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무허가 건물까지 지어져 있어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찾아보기 어렵다. 백제 가마터 주변에는 울타리만 설치돼 있을 뿐 훼손을 막기 위한 CCTV 등 보호 장치는 부족하다. 남현동 주민 지용해(70) 씨는 “일반인들이 보면 여기가 백제 가마터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심지어 지난해까지는 무와 배추를 심던 밭이었다”고 말했다.

국보급 문화재에 소화기만 덩그러니

허술한 관리와 더불어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는 점도 문제다. 소방청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문화재 화재 건수는 총 48건에 달한다. △2008년 8건 △2009년 4건 △2010년 7건 △2011년 6건 △2012년 4건 △2013년 1건 △2014년 5건 △2015년 3건 △2016년 3건 △2017년 4건 △2018년 3건 등이다. 해마다 평균 4개가 넘는 문화재가 불에 탄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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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4일 찾은 강원 속초시 신흥사 극락보전의 모습. 신흥사에는 극락보전을 포함한 보물 5점이 보존돼 있다. 이곳은 지난 4월 발생한 강원도 산불 발화지점에서 직선거리로 약 4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특히 국내 문화재 대부분이 불에 취약한 목조임에도 방재시설 구축은 미비하다. 중요 목조 문화재 437개 중 138개(37%)는 자동화재속보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화재 발생 시 소방관서에 자동으로 화재를 알려주는 자동화재속보설비는 소방시설법 등에 따라 국보·보물 목조 문화재에 반드시 설치돼야 한다. 그러나 보물 제1942호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등 4곳엔 이런 시설이 없다.

소화전이 설치되지 않은 중요 목조 문화재도 437개 중 61개(14%)에 달했다.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보물 제1995호)과 의성 만취당(보물 제1825호), 남한산성 행궁(사적 제480호) 등이 포함된다. 소방 관계자는 “소화전은 필요한 용수를 제때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며 “소화전 없이 소방차 적재 용수로 대규모 화재를 진압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자동화재속보설비가 없는 국보·보물에 대해선 올해 중으로 설치를 마칠 계획”이라면서도 “다만 방재설비가 문화재 경관을 훼손하는 경우엔 설치 여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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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대동세무고교 인근에 위치한 정체불명의 석탑.


흉물로 방치된 비지정 문화재

비지정 문화재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는 크게 규정·관리되는 지정 문화재와 등록 문화재, 별도로 규정·관리되지 않는 비지정 문화재로 나뉜다. 국가지정문화재, 시도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 등이 대표적인 지정 문화재다. 등록 문화재는 지정 문화재로 선정되지 않은 것 중 보존 가치를 인정받은 문화재다. 반면 비지정 문화재는 문화재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부족해 지정·등록되지 않은 문화재다. 다만 지정·등록만 되지 않았을 뿐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문화재에 속한다.

비지정 문화재로 분류되는 순간 당국의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다. 방대한 수량의 비지정 문화재를 일일이 관리할 예산과 인력이 현실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결국 각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비지정 문화재를 관리해야 하지만, 관리 의무가 없어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실제로 서울 25개 구청을 모두 확인한 결과, 구(區) 내 비지정 문화재 현황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곳은 영등포구 1곳에 불과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설령 비지정 문화재라도 위치와 소유주 파악 등 최소한의 관리는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문화재 훼손은 소리 소문 없이 이뤄지기 때문에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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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남산 삼릉계곡에 위치한 불상.


문화재 관리 예산 턱없이 부족...전문인력도 없어

국가지정 문화재 관리 주체는 정부와 지자체다. 정부와 지자체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가지정 문화재 관리·보호를 위해 수리나 필요한 시설의 설치, 장애물 제거 등을 명령할 수 있다. 국가지정 문화재를 손상하는 행위를 할 경우 3년 이상의 징역형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과 관할 구청은 예산 문제로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화재 관리 예산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사적지 보존을 위한 지원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남현동 요지 관리 주체인 관악구청의 경우 당초 남현동 요지 경관개선사업을 통해 역사문화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사업비 부족으로 울타리와 안내판을 재설치하는 수준으로 계획이 변경됐다.

지자체가 일차적인 문화재 관리를 담당하고 있지만 이를 수행할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문화재 전담 부서가 있는 곳은 서울과 부산, 인천 등 10개(58.8%)에 그친다. 기초지자체 226개 중에선 수원, 부여, 공주 등 12개(5.3%)에 불과하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관리를 위한 재정 규모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화재청 재정지출 규모는 △2015년 6887억원 △2016년 7311억원 △2017년 7891억원 △2018년 8017억원 △2019년 9008억원 등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지만, 정부 예산 대비 0.18%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 보존 사업과 전문 인력 양성을 확대하려면 재정 규모를 늘려야 한다”며 “현재 우리 정부 예산 대비 문화재청 재정지출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의 10년 전 수준인 0.3%보다도 낮은 편”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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