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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의 도시문화 읽기 : 도쿄 긴자의 봄

2019년 05월호

조용준의 도시문화 읽기 : 도쿄 긴자의 봄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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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준 편집위원 digibobo@naver.com


도시 디자인 학자들은 도시의 매력도 평가와 관련해 흔히 도시의 ‘10가지 매력(magic 10)’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10가지 매력적인 장소를 뜻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누구나 늘 가고 싶어 하고, 그 도시를 방문하는 여행자 역시 꼭 들르고 싶어 하는 장소가 열 군데쯤은 있어야 매력적인 도시라는 것이다.

그 장소는 시장일 수도, 식당일 수도, 미술관일 수도, 공원일 수도, 혹은 거리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점은 그 장소가 다른 나라의 그것과 비교해 확연하게 구별돼 사람을 이끄는 ‘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는 도시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과연 무엇이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가. 이를 살펴보는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한다.

지난 3월 19일 발표된 일본 국토교통성의 공시지가에 따르면 일본 전국에서 가장 비싼 땅은 여전히 도쿄 긴자(銀座)의 상업지역이다. 가장 비싼 ‘야마노 악기 긴자점’은 3.3㎡(1평)당 19억1865만원이다. 지난해 대비 3.1% 올라 4년 연속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긴자 공시지가 상승의 핵심 이유는 외국인 관광객 급증과 역세권 재개발 등 두 가지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긴자는 침체기를 겪기도 했지만, 최근 활발한 재개발사업과 함께 일본 최고 쇼핑거리로서 명성을 되찾고 있다.

‘긴자’라는 이름은 은화폐주조소(銀貨幣鋳造所)에서 비롯됐다. 1600년 동군과 서군이 맞붙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일본 열도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1년 교토 후시미에 막부의 은화주조소를 만들어 재정 기반을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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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식스의 내부 모습.


이에야스는 실권을 잡은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605년 쇼군 직을 아들 히데타다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시즈오카의 슨푸성에 머물며 섭정했다. 이에 따라 은화주조소도 1606년 슨푸성으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1612년 에도, 즉 지금의 도쿄 중심지 마루노우치와 히비야 지역에 대한 간척과 개간으로 수도로서의 도시 정비가 완료되자, 주조소도 다시 에도로 옮겨졌다.

그렇게 주조소가 들어선 지역은 ‘신료가에초’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즈오카의 주조소가 있던 지역 이름이 ‘료가에초’였기 때문이다. ‘료가에(両替)’는 일본어로 환전을 뜻하므로, 도쿠가와 막부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화폐가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료가에초’는 발음이 어려워서인지 슨푸성 시절에도 원래 지명 대신 쉽게 ‘긴자’라고 지칭됐다. 에도의 신료가에초 역시 슨푸성에서처럼 긴자라고 불리다가 그것이 굳어져 메이지 유신에 따른 행정 조처로 1869년 지금의 지명으로 확정됐다.

최근 긴자의 명성을 부활시킨 일등공신은 역시 2017년 4월 개장한 긴자 6초메의 대형 쇼핑몰 ‘긴자식스(GSIX)’와 이곳 6층의 츠타야 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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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이 미야케의 작품이 중앙 전시대에 놓여 있는 츠타야 서점.


옛날 마츠자카야 백화점 건물을 허물고 옆 블록 2개를 통합해 새로 지은 긴자식스는 지하 6층~지상 13층 규모로 공연장과 쇼핑몰, 오피스 등으로 구성된다. 일반 백화점의 2배 면적으로 260여 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데, 쇼핑몰 전체를 유명 예술품으로 꾸며 쇼핑을 하지 않아도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 발길이 이어진다. 개장 1년여 만에 약 2000만명이 방문해 600억엔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쇼핑몰이 들어선 이후 공시지가도 16.8%나 상승해 도심 재생 프로젝트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긴자식스 자체도 화제였지만, 6층의 츠타야 서점과 맨 위층의 옥상정원도 개장 때부터 사람이 모이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츠타야 서점은 노른자위 땅 한복판에, 그것도 농구장 5.5배 크기 약 2300㎡(약 700평) 면적에 값비싼 소비재도 아닌 책을 파는 곳을 들여놓았다는 파격 발상이 시선을 끌었다. 이보다 한 달 늦게 개장한 서울 강남 코엑스몰의 ‘별마당도서관’과 거의 흡사한 개념이다.

각종 플래그십 스토어의 강력한 유혹을 뚫고 6층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서점의 현관 격인 커다란 공간과 마주친다. 이 열린 장소에는 앤티크 가구 위에 책이 아니라 도자기나 화장품(심지어 립스틱까지)이 놓여 있기도 하고, 때로는 세계적인 다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패션 작품을 디스플레이한다. 그러나 시선을 돌리면 사방이 모두 높은 서고다. 서고들은 이곳이 도서관인가 싶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또한 서점 한쪽에는 스타벅스가 있어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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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큐 플라자 긴자 6층의 기리코 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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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큐 플라자 긴자 옥상의 테라스


옥상 정원도 매력적인 장소다. 이 정원에 올라가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널따란 잔디밭이다. 잔디밭 옆에는 벤치가 여러 개 놓여 있어 마치 런던 하이드파크나 뉴욕 센트럴파크 같다. 덕분에 느긋한 마음으로 데이트를 하거나 책을 읽을 수도, 커피를 마실 수도, 해바라기를 할 수도 있다. 입장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음료를 사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긴자에 있는 쇼핑몰들을 유심히 지켜보면 하나의 커다란 원칙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에코(eco) 테마’다. 친환경적인 요소를 도입해 도심의 삭막함을 최대한 덜어내고, 소비자로 하여금 자연 속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배려하는 마케팅이다.

긴자 5초메 니시긴자에 있는 도큐 플라자(Tokyu Plaza)도 에코 테마에 매우 충실하다. 긴자식스보다 1년 앞선 2016년 3월 개장한 이 쇼핑몰 역시 긴자한큐 백화점을 허물고 지하 5층, 지상 11층 건물로 다시 지은 도심 재생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긴자에서도 사람의 왕래가 가장 많은 소토보리 거리와 하루미 거리 교차로에 있어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기도 하다. 이 건물 6층의 기리코 라운지에서 내려다보는 출퇴근 시간대의 교차로는 그 번잡함이 시부야역 광장의 그것만큼이나 아찔한 아수라장을 보여준다.

건축적으로 이 건물은 전통공예의 하나인 ‘에도 기리코’를 모티브 삼아 착안한 독특한 외관을 보여준다. 에도 키리코는 에도 말기 도쿄에서 시작된 컷 글라스 공법의 유리공예와 세공품을 말한다. 1834년 무렵이 시초로, 1873년(메이지 6년) 메이지 정부의 식산흥업 정책의 일환으로 적극 장려돼 일본의 현대적인 유리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앞면이 유리 세공품처럼 생긴 도큐 플라자의 외형은 이 지역 유서 깊은 전통과 미래를 향한 혁신이 서로 융합한 모습을 상징한다.

도큐 플라자 긴자의 에코 테마는 휴식 공간인 6층 기리코 라운지와 옥상의 기리코 테라스가 대표한다. 라운지는 층고가 몇 개 층에 걸쳐 높게 뚫려 있는 데다 각종 식물로 장식해 마치 대형 식물원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옥상의 테라스 역시 벽면을 식물이 자라나는 화단벽으로 만들어 자연의 싱그러운 느낌을 배가시켜 준다.

그런데 긴자 지역 쇼핑몰의 에코 테마는 그냥 생겨난 게 아니다. 이는 바로 ‘긴자 꿀벌 프로젝트’의 영향을 받아 활성화됐다. 서울 명동이나 강남역 빌딩 옥상에서 꿀벌을 키우겠다면 제정신으로 받아들여질까? 그러나 긴자의 빌딩에서는 실제로 양봉이 이뤄지고 있다.

이야기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긴자마츠야 백화점 뒤편 한 빌딩을 관리하던 간부 다나카 야츠오는 지인과 식사를 하던 중 어느 양봉업자가 도쿄 빌딩 옥상에서 꿀벌을 키울 장소를 찾는다는 이야기에 흥미가 생겼다. 선뜻 자신의 빌딩 옥상을 빌려주겠다고 말하자 며칠 뒤 모리오카에서 양봉업을 하는 후지와라 세이타가 나타났다. 그는 메이지 시대부터 시작한 일본 근대 양봉의 선구자 후지와라 세이유 양봉장의 3대손이다.

후지와라는 다나카로 하여금 벌을 키우도록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긴파치(긴자와 꿀벌의 합성어)’라 불리는 긴자 꿀벌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수십 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였다.

처음 양봉사업을 시작한 2006년 꿀 수확량이 150㎏에 불과했지만 2010년에 800㎏으로 늘었다. 2013년에는 마침내 1t을 넘어섰다. 2017년에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은 덕에 수확량이 1647㎏에 달했다.

‘긴파치’는 양봉을 통해 긴자의 환경과 생태계를 살리는 동시에 채취한 벌꿀을 이용해 긴자 거리와 도시의 자연 공생을 실현하는 멋진 프로젝트였다. 채취한 벌꿀은 바에서 벌꿀 칵테일로, 케이크 가게에서 마들렌으로, 화과자점에서 양갱으로,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예배용 촛불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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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 빌딩의 양봉사업은 긴자 생태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긴자식스 옥상의 정원.


꿀벌이 긴자 하늘을 날자 거리 풍경도 달라졌다. 지금껏 열매를 맺은 적이 없던 나무들이 열매를 맺었고, 그 열매를 먹으러 새가 날아들면서 해충이 사라졌다. 긴자 생태계가 서서히 원래 모습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흔히 지구상에서 꿀벌이 사라지는 날이 곧 인류가 멸망하는 날이라고 이야기한다. 국제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는 꿀벌이 식량 재배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가 373조원이나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만 꿀벌의 경제적 가치는 6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니 친환경적인 에코 테마는 적게는 그곳 지역 주민, 나아가서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도심 재생 프로젝트가 이뤄졌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지만, 환경을 우선하는 건축물은 들어본 적이 없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공간에 더 많은 오피스를 넣으려는 건물주의 이해타산은 시민의 생태공간 확장과 늘 부딪친다.

긴자에 봄이 왔다. 긴자 에르메스 빌딩 앞에도 연분홍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삭막한 도심의 빌딩숲을 화사하게 물들여 주고 있다. 최근에 그려진 빌딩의 설치미술과도 아주 잘 어우러진다.

에르메스 빌딩의 벽화는 원래 없었는데 오는 6월 23일까지 열리는 마리 미나토의 설치미술 전시회의 일환으로 새롭게 그려졌다. 에르메스 빌딩 8층에는 ‘메종 에르메스’라는 갤러리가 있어 빌딩의 가치를 훨씬 높여주고 있다. 갤러리로 인해 빌딩 안에도 봄과 벚꽃의 기운이 가득하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무려 753만8997명이다. 2015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 한국을 찾는 일본인은 300만명을 밑돈다.

도시는 어떤 매력이 있어야 사람이 찾아올까. K팝과 한류가 그 해답의 전부가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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