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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협상 결렬 이후...남북경협도 안갯속으로

2019년 04월호

북미협상 결렬 이후...남북경협도 안갯속으로

2019년 04월호

| 이준혁 정치부장 jh34@newspim.com


‘세기의 핵담판’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다. 핵심 쟁점인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한 간극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2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머리를 맞댄 확대정상회담 도중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다. 당시 상황을 두고 CNN에선 “abruptly”라고 보도했다. 갑작스럽게 뛰쳐나왔다는 얘기다. 폭스뉴스도 “Hanoi talks kim-plode”라고 긴급 타전했다. 김 위원장의 ‘김’과 ‘implode(붕괴되다)’를 합성한 말이다.

주요 외신들은 하노이 대화가 폭삭 주저앉았다고 논평했다. 특히 ‘abruptly’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기분 나쁘게 퉁명스럽게 나왔다. 판을 깨고 나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원래 북·미 정상회담 계획은 공동합의문에 결재 서명도 하고 사진도 찍고 점심도 함께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협상 도중 판이 깨졌고 트럼프 대통령은 점심도 먹지 않은 채 서둘러 숙소인 하노이 JW메리어트호텔로 귀환, 단독 기자회견을 가진 뒤 곧바로 전용기를 탔다. 미국 대통령의 전용기인 ‘에어포스 1’에 오르기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남긴 말은 “아름다운 워싱턴으로 가야 된다”는 말이었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추가 계획도 없이 막을 내린 1박 2일 세기의 회동이었다.

그 이후 북·미 간 협상이 결렬된 이유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회담 결렬의 최대 피해자로 문재인 대통령을 지목한 주장이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 중재자를 자처하며 전력을 쏟아 왔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불투명해지면 국정 동력은 물론 외교력에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른바 북·미 간 힘겨루기 중간에 끼여 북한과 미국 모두와 껄끄러운 외교적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교가에선 ‘문재인의 딜레마’라는 말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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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신한반도체제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테이프 끊은 남북경협 어디로 가나

북·미 회담 결렬로 인해 대북 제재 완화의 문턱이 높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났다. 당장 남북 간 협력 사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이로 인해 금강산·개성공단 재개 및 철도·도로 연결 등도 불투명해졌다.

남북은 지난해 12월 26일 개성 판문역에서 남북철도 착공식을 열었다. 또 지난 2월 25일 철도·도로 협력 관련 자료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상호 교환했다. 통일부는 같은 달 27일 남측이 지난해 말 진행했던 ‘경의선·동해선 철도 현지공동조사 결과보고서’를 북측에 전달했다.

북측도 ‘철길 관련 종합자료’ 등을 우리 측에 제공했다. 당시 북한이 우리 측에 전달한 자료는 철도 2종, 도로 6종이다. 철도는 △개성~신의주 사이 철길 자료 △금강산~두만강 철길 종합자료이고, 도로는 △평양~개성 고속도로 공동조사 보고서 △도로설계 기준방안 △다리설계 기준방안 △도로 노반 시공 기준방안 △콘크리트 도로 포장 시공 기준방안 △아스팔트 도로 포장 시공 기준방안 등이다.

앞서 우리 측은 지난 1월 31일 도로 실무접촉 시 우리 측 도로 조사 결과보고서 및 5종의 자료(△도로 구조·시설 기준 △도로설계 기준 △도로공사 표준시방서 △토목공사 표준시방서 △콘크리트 표준시방서)를 북측에 전달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해제 상황을 지켜보면서 구체적인 현대화 공사를 추진할 계획이었는데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앞으로 진행 절차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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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6일 개성 판문역에서 진행된 ‘동·서해선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서 남북 관계자들이 철도 체결식을 갖고 있다.


남북 도로기준 합치고 도로협력단 구성했지만...

남북철도 연결사업은 이미 저만치 가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대북사업이다. 착공식을 가진 지 불과 두 달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관련 부처 간 협업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 철도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미 남북철도 시·종착역 기능을 담당할 거점역 선정에 착수했다. 실제로 철도시설공단은 ‘장래 효율적인 연계 운영을 고려한 철도망 구축방안 수립’ 연구용역을 3월 중 발주할 예정이다. 연구용역은 1년 정도 걸린다.

철도공단이 제시한 후보지는 서울역과 용산역, 청량리역, 수서역 등이다. 앞으로 남북으로 연결될 철도노선은 경의선(서울~개성~신의주)과 경원선(서울~철원~원산), 동해선(강릉~고성~나진) 등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노선별로 적합한 시·종착역을 선정하는 한편 통합·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연구용역이 끝나면 결과를 국토부에 보고하고, 국토부는 곧바로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할 방침이다.

남한과 북한의 고속도로 연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북한 고속도로 건설에 필요한 사전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남과 북의 고속도로 설계·시공·유지관리 기준을 통일시켜 남북이 공동으로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추진할 때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지난 2월 27일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 관련 업계에 따르면 남북고속도로 연결에 대비해 남북한 통합 고속도로 공사시방서를 내년 말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고속도로의 설계, 시공, 유지관리에 필요한 일종의 방대한 설명서를 통합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도로공사는 ‘통일 대비 북한 건설 인프라 현황분석 및 개발에 관한 연구’ 용역을 발주할 계획이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북한의 지질, 기술인력, 장비, 기후를 비롯한 건설 환경을 조사하고 분석해 최적의 남북한 통합 고속도로공사시방서를 제시할 계획이었다”며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 제재가 그대로 유지된 채 협상이 결렬됐기 때문에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일정을 조정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정부 부처는 물론 철도·도로 관련 산하기관들도 일제히 대북 사업을 정조준하면서 기능을 재편해 왔다는 사실이다. 도로공사는 지난해 4월 구성한 남북도로협력사업단(T/F)을 지난 1월 2일부로 남북도로협력처로 승격시켰다. 이세홍 처장을 중심으로 남북도로계획팀, 남북도로사업팀 2개 팀으로 구성했다. 남북 도로협력사업 추진과 남북 도로기술 교류 업무를 수행한다는 취지다.

남북은 지난해 4월 판문점 정상회담 직후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에 합의하고 이를 위한 기초조사를 벌이며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8월 경의선 도로에 대한 공동조사를 진행했고, 동해선은 지난해 12월 말 공동조사 대신 고성~원산 간 도로 약 100㎞ 구간 현장을 점검했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남북철도 연결사업이 ‘올스톱’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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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철도, 올해는 설계까지만 목표로”

난관에 봉착한 정부의 입장은 “미국발 훈풍은 불지 않아도 남북 간 애드벌룬을 띄워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남북철도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중 설계 단계까지는 연내 진행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신혜성 통일부 남북경협과장은 최근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상황을 유동적으로 관리하며 현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해 나가겠다는 입장 아래 철도사업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과장은 또 “정부는 지난해 진행됐던 조사를 토대로 필요할 경우 추가 정밀조사를 진행하고 앞으로 현대화를 어떤 수준, 어느 속도로 할지에 대해 남북이 협의를 해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설계하는 것까지 올해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대북 제재하에서 공사는 쉽지 않은 측면이 있으나 다른 교류협력은 충분히 진행할 여지가 있다”고 부연했다. 결국 대북 제재에 위반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남북 간 협력방안을 찾겠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한 대북 전문가는 “대북 제재를 유지하면서 경협을 통한 협력방안을 찾는 것은 미국과의 공조를 유지하면서 북한과도 더 진일보한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의미”라며 “북·미 간 진장감이 깔려 있는 살얼음판 위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가야 하는데, 어느 쪽에도 서운함을 주지 않는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신한반도 구상, 느리지만 단단하게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 방안도 미국과 협의할 것”이라며 “비핵화가 진전되면 남북 사이에 경제공동위원회를 구성해 남북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경제적 성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진전 없이는 대북 제재 해제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밝힌 만큼 당분간 남북 경협이 속도를 내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의 ‘신(新)한반도 체제’도 속도조절이 불가피하다. 신한반도 구상은 남북이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고, 남북 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경제협력 공동체를 만든다는 청사진이다. 그러나 북·미 회담이 결렬되면서 경제협력 구상이 단기간에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문 대통령의 신한반도 구상 등이 전면 수정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로선 굉장히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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