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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을 도운 부시와 중국 굴기를 막으려는 트럼프

2019년 01월호

개혁개방을 도운 부시와 중국 굴기를 막으려는 트럼프

2019년 01월호

|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chk@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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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중국을 방문한 조지 허버트 워커(H.W) 부시(오른쪽) 전 미국 대통령이 덩샤오핑(왼쪽)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바이두]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기 전인 1973년, 미국 국무부(외교부)에 주영국 대사와 주프랑스 대사 두 개의 빈자리가 났다. 백악관은 유능한 외교관 부시에게 가고 싶은 곳을 고르라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부시가 선택한 것은 런던과 파리의 대사가 아닌 베이징 대표처 연락사무소장 자리였다. 때는 수교(1979년) 전으로 아직 정식 대사관도 개설되지 않았다.

‘주영국, 주프랑스 대사라면 국무부 장관(외교부 장관)으로 가는 수직 사다리를 타는 것이고, 미국 외교관이면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인데 이런 곳을 마다하고 하필 베이징이라니…’ 주변의 수군거림이야 어떻든 그렇게 부시는 미국의 초대 중국 주재 연락사무소장을 자처해 중국으로 향했다.

2018년 12월 5일(현지시간)은 조지 허버트 워커(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아버지 부시’)의 장례일이다. 세계가 부시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분위기이나 중국만큼 ‘소회’가 남다른 나라도 드물 것 같다. 중국에 있어 부시는 언제나 따뜻하고 고마운 라오펑유(老朋友, 오래되고 절친한 관계)였고, 부시 전 대통령에게 중국은 평생 동안도 호기심을 다 못 채울 매력적인 나라였다.

40대 후반 젊은 외교관인 부시 전 대통령이 중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미·중이 아직 정식 수교를 맺기 전인 1970년대 초반으로, 중국에서는 서서히 문화대혁명의 막이 내릴 무렵이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정식 수교 전 워싱턴과 베이징을 연결하는 연락관 업무를 수행하며 죽의 장막 속 중국 권부와 깊은 친분을 맺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논란에 휩싸인 워싱턴 정가와 달리 베이징은 부시에게 흥미롭고 호감이 가는 나라였다.

평소 부시 전 대통령은 “중국에서 지낸 날들이 일생 중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회고록 ‘부시의 중국일기’에서 그는 “내가 관료로서 미래를 돌보지 않고 중국 근무를 자원한 것은 장구한 역사의 나라 중국의 신비감에 매료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는 시간만 나면 부인과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 후통(좁은 골목의 옛 서민 주택가) 구석구석을 다니며 중국을 돌아봤다. 당시는 아직 개혁개방 전이었다. 하지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그가 체험한 중국은 지저분하고 위험한 곳이 아니라 서정 가득하고 사람 냄새 나는 곳이었다. 신문들은 ‘자동차 왕국에서 온 자전거 타는 대사’라는 미담 기사로 부시의 베이징 생활을 소개했다.

‘새벽 공원의 노랫소리와 태극권을 하는 주민들, 하나둘 하나둘 하는 구령소리, 군중의 행진과 나팔소리, 따르릉거리는 자전거소리,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 기적소리를 뿜고 달리는 기차, 거리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확성기 방송소리, 얇은 피에 싸서 먹는 카오야(구운 오리고기)’. 죽어도 잊지 못할 중국에 관한 기억들이라며 그는 ‘부시의 중국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1970년대 말 덩샤오핑(鄧小平)이 집권하고 개혁개방이 시작된 후에도 부시 전 대통령은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그는 중국 개혁개방의 지도자 덩샤오핑을 가장 많이 만난 미국 정치인이기도 하다. 언제부터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라오펑유’ 관계로 발전했다.

지난 1982년 5월 미·중 관계는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 문제로 갑자기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 부통령 신분으로 중국에 건너가 덩샤오핑과 한 시간 단독 회담을 한 뒤 교착 상태를 풀었다. 부시 전 대통령과 덩샤오핑 두 사람 간의 신뢰가 얼마나 두터웠는지 실증하는 사례다.

부시 전 대통령은 1989년 2월 미국의 41대 대통령에 취임한 후 제일 먼저 중국을 방문해 덩샤오핑을 만났다. 덩샤오핑은 라오펑유 부시 대통령을 맞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의 눈에 덩샤오핑은 ‘작지만 총명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였다. 생전 부시 전 대통령은 “덩샤오핑이 중국을 바꿨고, 중국인에게 희망을 가져왔다. 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장시간 중국 생활을 한 것 외에 1993년 대통령직 퇴임 후에도 15년간 무려 22차례나 중국을 방문할 정도로 중국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부시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잡음이 많았던 베이징올림픽 개최를 적극 지지해 줬고, 중국은 그 고마움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중국 사회가 그를 라오부시(老부시, 웃사람을 친근감 있게 부르는 호칭)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베이징올림픽 때 그는 미국 대표단 명예단장 자격으로 베이징에 왔고, 개막식에서 특별 축하연설도 했다. 그는 베이징올림픽 개막날인 2008년 8월 8일 아침에 열린 중국 주재 미국대사관 신관 개관식에서 “이곳에 오니 마치 고향집에 들른 것처럼 마음이 푸근하다”고 말해 많은 중국인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중국에 있어 베이징올림픽이 열리던 2008년은 막 중국 굴기의 나팔소리가 울려퍼지려고 할 때였다.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은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30년 전 개혁개방이 막 시작되던 때 이미 중국 굴기를 예감했다”고 털어놨다. 개혁개방이 실패할 거라던 다른 서방 전문가들의 회의적인 견해와 달리 당대 최고의 ‘중국 전문가’ 부시 전 대통령은 일찍부터 중국 개혁개방의 성공을 확신한 것이다.

2018년 개혁개방 40년을 맞은 중국은 그 세월을 훨씬 뛰어넘어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든든한 친구 ‘라오펑유’를 잃었다. 적이라기보다 중국을 언제나 다정한 친구로 대하려 했던 ‘라오부시’가 떠난 빈자리에는 지금 중국 굴기를 제압하겠다고 벼르는 트럼프 대통령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비록 남의 나라 애사(哀事)지만 ‘아버지 부시’의 장례를 추도하는 중국의 표정이 각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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