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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새해엔 ‘경협 열매’ 기대”

2019년 01월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새해엔 ‘경협 열매’ 기대”

201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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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 차례 방북...‘대북사업 대표주자’ 명성 유지
“금강산 관광 이른 시일 재개 기대”...대북 제재가 걸림돌
기업가 집안서 나고 자란 ‘뼛속 기업인’...“반드시 남북경협 성공”

| 유수진 기자 ussu@newspim.com


“금강산 관광이 2018년에는 어렵지만 멀지 않은 시기에 재개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대그룹은 앞으로 남북이 함께 만들어 갈 평화롭고 새로운 미래에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2018년 11월 19일 강원도 고성 동해선출입국사무소. 금강산 관광 시작 20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를 위해 전날 방북했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입경 직후 취재진 앞에서 차분히 귀환인사를 읽어 내려갔다. 1박2일간의 방북 성과가 담긴 일곱 문장을 담담한 목소리로 읽는 데에는 1분 3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북측으로부터 온 ‘깜짝 놀랄 만한’ 메시지는 없었다. 현 회장 본인도 다소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현 회장은 “북측에서도 빠른 금강산 관광 재개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도 “구체적인 논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말해 남북 경제협력 진전 여부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새해엔 반드시 ‘좋은 소식’이 있을 거란 기대감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남북 정상이 2018년에만 세 차례 만나 손을 맞잡는 등 한반도에 유례없는 평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계에서는 남북 경협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현대그룹과 현 회장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거란 데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고 있다.

2018년 세 차례 방북...“남북 경협 재개 기대”

현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은 지난 30년간 ‘대북 사업의 대표 주자’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점적 지위를 공고히 해왔다. 1989년 1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기업인 최초로 북한을 공식 방문, ‘금강산 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하며 첫발을 뗀 이후, 남북 경협사업에는 언제나 현대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따라 붙었다. 특히 현 회장은 2018년에만 세 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다시 한 번 대내외에 이 사실을 알렸다.

지난 2008년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후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지만 방북을 통해 변치 않는 위상을 자랑하며 향후 남북 경협이 본격화될 수 있도록 길을 터놨다. 특히 현대그룹은 문재인 정부가 적극 조성한 한반도 해빙 분위기에 힘입어 보수정권하에서 엄두도 내지 못했던 주요 행사들을 북한 현지에서 진행했다. 이를 통해 과거 함께 사업을 진행했던 북측 파트너와의 굳건한 관계도 재확인했다.

가장 최근엔 2018년 11월 ‘금강산 관광 시작 20주년’을 맞아 북측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와 함께 현지 행사를 주최했다. 아태는 북한에서 경제협력을 담당하는 민간 대외기구로, 현대의 대북 사업 파트너다. 이번 행사를 위해 현 회장을 포함한 현대 임직원과 초청인사 등 총 100여 명의 대규모 방북단이 금강산을 찾았다. 현 회장은 행사가 진행된 1박2일 동안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남북 경협이 빨리 재개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앞서 두 차례 방문 때도 같은 바람을 피력했다. 북측 역시 경협에 속도가 붙길 기대한다는 제스처를 적극적으로 취했다.

현 회장은 20주년 기념식에서 “하늘이 맺어 준 북측과의 인연을 민족 화해와 공동 번영의 필연으로 만들겠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해 북한 주민 등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기자들과 만나선 “이번 20주년 행사가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현 회장은 같은 해 9월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함께 방북길에 올랐다. 현 회장은 리용남 북한 내각부총리와 면담한 자리에서 “남북 관계가 안 좋으면 늘 마음이 아팠다. 빨리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리 부총리는 “현 회장 일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보다 한 달여 전인 8월엔 남편 고(故) 정몽헌 전 회장의 15주기 추모식 참석차 금강산에 다녀왔다. 현 회장은 2009년과 2013년, 2014년 등 세 차례에 걸쳐 금강산 추모식에 참석했으나,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에 돌입하면서 3년간 방북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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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회장이 2018년 11월 금강산문화회관에서 열린 ‘금강산 관광 시작 20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에서 기념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현대그룹]

가장 먼저 남북경협 TFT 조직...‘제재 해제’가 선행과제

현 회장은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11년 만에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자 가장 먼저 그룹 내 태스크포스팀(TFT)을 발족하는 등 본격적으로 사업 준비에 들어갔다. 10년간 멈춰 있는 남북 경협 시계가 조만간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현대그룹은 5월 현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현대그룹 남북경협사업 TFT’를 조직, 본격 가동하고 있다. 해당 TFT에서는 현대아산 대표와 그룹 전략기획본부장이 대표위원으로 실무를 지휘하고, 계열사 대표들이 자문 역할을 담당한다. 현 회장은 TFT 출범 당시 “금강산·개성 관광, 개성공단은 물론 향후 7대 SOC 사업까지 남북 경협사업 재개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문제는 남북 경협 재개를 위해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해제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현 회장 역시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남북 경협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이 부분을 조건으로 달고 있다.

현 회장은 지난해 마지막 방북 직후 경협 재개에 대한 전망을 묻는 질문에 “미국의 제재가 풀리면 곧바로 경협사업이 재개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며 “시설정비를 고려하면 제재 해제 이후 관광 재개까지 3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는 세 차례의 방북이 각각 특정한 목적에 따라 이뤄진 만큼 북측과 경협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나누진 않았지만 관광 재개에 대비, 시설물 상태 등 현지 상황을 점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 회장은 왜 이토록 남북 경협을 고집할까. 재계에 따르면 2008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지난 10년간 현대가 입은 매출손실이 약 1조5000억원, 영업적자는 2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기간 현대는 생존을 위해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남북 경협에 대한 현 회장의 의지는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매년 신년사를 통해 굳건한 집념을 드러내며 ‘남북 교류의 문이 열릴 때’를 기다리자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이는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들고 지켜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 때문이다. 현 회장에게 남북 경협은 단순히 사업이 아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인 셈이다.

현대의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은 꽁꽁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녹이기 위해 직접 소 1000마리를 몰고 북으로 향했다. 분단 이후 멀어져만 가던 남북을 하나로 묶기 위해 기꺼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은 것이다. 뒤를 이은 정몽헌 회장 역시 모든 걸 쏟아부어 금강산 관광을 실현, 본격적인 남북 경협의 물꼬를 텄다. 이를 너무나도 잘 아는 현 회장은 두 사람의 뜻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데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현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은 분단의 장벽을 넘기 위해 자신이 평생 일군 현대의 자산과 역량을 금강산과 북녘에 아낌없이 투자했다”며 “남과 북은 정몽헌 회장이 모든 것을 쏟아붓고 결국 자신의 삶까지 희생하며 다져놓은 굳건하고도 소중한 인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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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회장 등 금강산 관광 시작 20주년 기념행사 참석자들이 기념공연을 관람한 후 무대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전업주부가 기업을?”...현정은 회장 몸속에 흐르는 ‘기업가 DNA’

“30년 동안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여성이 대기업 총수 역할을 잘 해낼 리 없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 2003년 그룹 총수 자리에 오를 당시 재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우려가 많았다. 대북 송금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남편 정몽헌 회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전업주부였던 현 회장이 하루아침에 재계 15위 현대그룹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다.

하지만 현 회장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아니었다. 기업가 집안에서 출생해 날 때부터 몸속에 ‘기업가 DNA’를 갖고 있었다. 특히 결혼 후에도 전면에 나서진 않았지만 며느리이자 아내로서 재계 대표 대기업 총수를 지근거리에서 살피며 경영 감각을 익힌 것으로 전해진다.

현 회장은 1955년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과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의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외조부는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의 부친인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자로,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의 가풍 속에서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세상의 변화와 여성 사회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경기여고를 졸업한 뒤 이화여대 사회학과에 진학한 이유다. 당시 현 회장은 사회학 교수를 꿈꾸며 여성의 사회 진출이나 여성 개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러던 중 1976년 삶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사업을 계기로 친분이 두터워진 정주영 명예회장과 현영원 회장이 사돈을 맺기로 한 것. 이들의 인연은 울산에 조선소를 지으려던 정 명예회장이 해운 전문가인 현영원 회장에게 조언을 청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가 부친의 적극적인 권유로 현 회장과 정몽헌 회장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정 회장과의 결혼은 단순히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데 머물지 않았다. 훗날 재계 1위에 오르는 현대가(家)의 다섯 번째 며느리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현 회장은 조용히 시아버지와 남편, 집안 어른들을 뒷바라지하고 자녀를 돌보는 ‘그림자 내조’를 시작했다. 당시 현대가는 며느리들의 사회활동을 제한하는 등 보수적인 색채가 강했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교수에 대한 꿈은 버리지 않았다. 이화여대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학을 파고들었고, 첫딸을 낳은 이후엔 미국으로 건너가 페어리디킨슨대 대학원에서 인성개발학을 연구하는 등 학업에 대한 갈증을 채워 나갔다.

귀국 후 현 회장은 육아에 전념했으나 집에만 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자녀들과 함께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인성 교육에 힘썼고, 개인적으로는 걸스카웃연맹 중앙본부 이사, 대한적십자사 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사회활동 경험을 쌓았다.

현 회장은 2003년 남편 정 회장이 세상을 등지자 그 뒤를 이어 그룹 회장 직에 올랐다. 남편을 잃은 슬픔을 추스르기도 전에 계열사 유동성 위기와 경영권 분쟁 등에 시달렸지만 ‘현다르크’라는 별명답게 뚝심 있는 정면 돌파로 그룹 재건에 앞장섰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회상한다. “현대그룹 회장으로서 거대한 조직을 이해하고 구성원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 공동의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대학에서의 공부가 많은 도움이 됐다. 그때 공부하고 체득한 것들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 그 당시에는 상상조치 하지 못했다”고.

시아버지인 정 명예회장은 ‘평생 존경의 대상’으로 꼽는다. 그는 “며느리로서는 물론 사회학과 인성개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정 명예회장님은 언제나 제 존경의 대상”이라며 “그의 경영철학과 유지를 받들어 현대그룹과 남북 경협사업을 이끌었던 정몽헌 회장의 옆을 지켰던 것도 제 삶의 커다란 경험 중 하나”라고 했다.

현 회장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민족 화해와 공동 번영이란 소명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두 사람의 유지를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다. 현 회장은 최근 금강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반드시 제가 남북 경협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걸 마음속에 갖고 살아 왔다”며 “남북 경협사업에 대한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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