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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시대 살아가는 방법] '삼고'보다 ‘삼평’…평범이 최고 가치인 日청년들

2019년 01월호

[저성장시대 살아가는 방법] '삼고'보다 ‘삼평’…평범이 최고 가치인 日청년들

201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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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에 현실감 못 느끼는 日청년들, ‘평범한 사람’을 최고의 배우자감으로 꼽아
불황서 자라 미래 불안한 청년들 “안정이 최고”...아베노믹스가 변화 일으킬까

|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


“평범한 배우자를 찾습니다.”

사회적 동물인 이상 인간은 남과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 사람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특별하다는 건 희소한 자원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며, 곧 경쟁력을 뜻한다. 대중심리학자들이 툭하면 근거로 가져다 쓰는 인간의 ‘생존 본능’도 강하고 경쟁력 있는 개체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는가. 차별화된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인지상정인 셈이다.

그런데 일본은 당연해 보이는 본능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돈 잘 벌고 화려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을 최고의 배우자감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평범한 외모에 평균 수준의 연봉, 평온한 성격까지, 드라마 속 ‘지나가는 행인 3’을 묘사한 것처럼 평범한 사람이 2010년대 이후 일본에선 가장 ‘핫한’ 남편감이다.

조화를 중요시한다는 일본의 국민성 탓일까?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물론 아니다. 재미있게도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평범함은 배우자의 미덕이 아니라 되레 부덕(不德)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삼평(三平)’은 어째서 갑자기 최고의 배우자감이 된 걸까. 궁금증을 풀 실마리는 바로 ‘잃어버린 20년’, 즉 불황에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안정’이 최고

선호하는 배우자감이 바뀌었다는 건, 사람들이 결혼 후 꾸리길 원하는 가족의 모습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좀 더 크게 해석해 본다면 결국 사회가 변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삼평에는 어떤 사회 변화가 담겨 있는 것일까.

일본의 트렌드 마케팅 전문가 우시쿠보 메구미(牛窪恵)는 이 질문에 “안정지향주의”라고 답한다. 그는 2010년대에 결혼 적령기를 맞은 1980년대 이후 출생 세대들의 특징으로 “디플레이션과 저성장 속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점을 꼽는다. 불황의 터널 속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불황에‘만’ 익숙한 사람들이 됐다는 것이다.

불황에 익숙하다는 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버하는 것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경제에 관해서만큼은 팩트다.

일본의 버블이 최고조를 맞이해 붕괴하기 시작하던 80년대 후반. 지금의 일본 청년들은 당시 아주 어렸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나지 않았다. 인생의 대부분을 디플레이션 속에서 자란 이들에게 경제성장이나 인플레이션은 ‘유니콘’과 같다. 얘기는 많이 들어봤는데 실제로 보거나 겪어본 적 없어서 현실감이 없는 대상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태어났던 그 시절과 지금의 물가는 변하지 않았으며, 주가는 되레 꺾여 있다. 기업도 가계도 성장보다는 비용 감축에 관심이 많고 현상 유지만 해도 선방한 셈이 된다. ‘잃어버린 20년’? 이들에겐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은 얘기다.

그러다 보니 이들 세대는 오늘보다 내일 더 잘살 거란 생각을 막연히 해볼 수 있어도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진 못한다. 대신 이들은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빠지는 디플레이션에 익숙하다. 미래에 불안감을 안고 있을 때 사람은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안정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본의 청년 세대도 마찬가지다.

일례가 일본 청년들의 해외 유학이다. 한때 4만명이 넘던 해외 유학생은 2만5000명으로 줄어들었다. 해외에 나갔을 때 드는 비용, 실패 가능성 등의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를 우려한 일본 정부는 새해에 ‘해외로 청년 보내기 관민(官民) 대책협의회’라는 회의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안정 지향은 낭비를 줄이고 절약을 통해 ‘현상 유지’를 하려는 전략으로도 이어진다. 그 결과 일본 청년들의 소극적 소비는 점점 더 심해진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29세 이하 세대주의 승용차 보급률은 48%로 60대 이상(64%)에 크게 못 미쳤다. 아직 모은 돈이 없어서 차를 못 산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자동차공업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차가 없는 10~20대 응답자의 54%는 차를 구입할 생각조차 없다고 답했다. 이 외에도 주류, 담배 소비 와 함께 연애, 기념일 챙기기 등 ‘소비’와 이어지는 모든 것에서 청년들은 저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한때 일본에서도 큰 키에 두툼한 지갑, 고학력의 ‘삼고(三高)’가 최고의 배우자감으로 꼽히던 시절이 있었다. 버블이 최고조였던 1980년부터 버블이 무너져 ‘잃어버린 10년’을 겪던 2000년대 초반까지가 여기에 해당된다.

버블 시대의 일본은 자고 일어나기만 해도 자산이 불어나던 희망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의욕적이었고 타인과는 차별화되고 싶다는 경쟁심리도 왕성했다. 비록 버블 붕괴 후 현실의 삶은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경제성장과 희망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이런 태도는 이어졌다.

하지만 불황 속에서 태어나 불황의 기억만 갖고 있는 그 아랫세대는 얘기가 다르다. 너무 잘생기고 예쁜 사람은 바람을 피우거나 결혼 생활에 지장을 줄 리스크가 있다. 경제 상황이 불안한 만큼 연봉액수보다 중요한 건 잘리지 않고 얼마나 오래 다닐 수 있느냐였다. 또 성격이 평온해야만 문제에 휘말릴 리스크가 적어진다. 결국 이들 청년 세대는 위험을 최소화하고 안정성 추구를 최우선으로 치는, 불황에 ‘최적화’된 사람들인 셈이다.

아베노믹스, 日 청년에 희망 줄 수 있을까

일본은행(BOJ)은 2018년 “디플레이션이 없어졌다”고 선언했다. 오랜 기간 이어진 불황의 늪에서 탈출한 원동력으로 첫손에 꼽히는 건 ‘아베노믹스’일 것이다.

2012년 출범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며 엔저 환경을 유도했다. 또 법인세율을 최고 37%에서 20%대로 내리면서 수출기업들이 회생했고, 덕분에 일본의 제조업경쟁력지수는 10위에서 4위로 올라섰다. 여기에 일손 부족까지 겹치면서 구직자보다 일자리가 더 많은 상황이 연출됐다.

청년들은 환호했다. 경제는 활황이라고 하고, 취업난은 해소됐다. 아베 정부는 고령층 사회보장 혜택을 줄여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데도 적극적이다.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2018년 8월 교도통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60대 일본 국민의 아베 총리 지지율이 28%로 저조했던 것에 비해 29세 이하 국민들은 56%의 지지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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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 둘러싸인

다만 이들의 지지율만큼 아베노믹스가 효과를 발휘해 ‘희망’을 보여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베노믹스의 3개 화살을 쏘기 시작한 지 5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임금 인상은 제자리걸음인 상태다. 청년층 임금의 경우, 20~24세 실질 연수입은 1991년 295만엔으로 정점에 달한 후 2009년까지 계속 감소했다. 2014년 이후 반등하고 있다지만 2016년 기준 258만엔으로 아직도 1991년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게다가 임금이 오른다고 해도 청년들의 소극적인 소비행태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임금 인상이 소비 증진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도 이미 많이 나와 있는 상태다.

구가 나오코(久我尚子) 닛케이종합연구소 주임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1989년과 2014년을 기준으로, 일본의 30세 미만 남성의 평균 가처분소득은 월 18만4000엔에서 23만엔으로 증가했다. 여성도 16만4000엔에서 18만3000엔으로 늘었다. 소비자물가를 고려한 실질증감률도 남성 12.2%, 여성 0.5% 증가했다. 저축액 역시 남성은 25년간 23.8%, 여성은 1.3%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일본의 30세 미만 남성의 실질소비변화량은 9.3% 감소했고, 여성은 5.4% 감소했다. 소비 의욕도 줄어들어 남성은 83.6포인트에서 67.6포인트로, 여성은 93.3포인트에서 87.9포인트로 내려앉았다.

구가 연구원은 “일본은 성숙한 소비사회로 돈을 지출하지 않아도 질 높은 소비생활을 영위하는 게 가능하다”며 “이런 사회에서 성장하고 생활하다 보면 물건에 대한 소비성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원래부터 근검절약에 익숙한 1980년 이후 출생 세대의 경우 이 경향이 한층 더 강해질 거란 유추도 쉽게 내릴 수 있다.

즉 아베노믹스에 따른 변화가 크게 다가오지 않는 이상, 강력한 불황의 ‘관성’으로 인해 청년 세대는 현재의 라이프스타일을 계속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자신감 넘치는 ‘삼본’의 등장

물론 긍정적인 변화의 신호도 있다. 결혼 상대자로서 ‘삼본’(三本)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삼본은 삼고와 삼평에 이어 등장한 결혼 관련 신조어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을 뜻한다. ‘본질적·본격적·자기본위적’의 3가지 본을 가졌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삼본들은 소비를 꺼리는 삼평과 달리 아웃도어 활동이나 이벤트 등 체험형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들이다. 배우자로서 삼본이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건 절약과 현상 유지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세태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일본의 배우자상은 버블 시절 삼고에서 불황에 익숙해진 세대들의 삼평으로 이어졌다. 과연 삼본은 삼평의 뒤를 이어 차세대 선호 배우자상이 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일본이 불황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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