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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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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호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 ‘벤처 선구자에서 금융인으로’

벤처 DNA로 일군 다우키움그룹...CEO 신뢰하는 ‘서포터형 오너’ “온라인 증권업은 된다”...키움증권 13년 연속 위탁매매 점유율 1위 인터넷은행 끝없는 도전...종합금융그룹 도약 목표 | 김형락 기자 rock@newspim.com “실패는 나를 키워준 자양분입니다. 실패는 여전히 나를 긴장하게 합니다. 끊임없이 뭔가를 하게 만들죠. 실패를 두려워하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습니다. 실패는 도전을 자극하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실패는 소중합니다.”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2012년 한국외국어대 동문특강을 통해 밝힌 ‘실패학개론’이다. 좀처럼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후배들을 위해 연단에 섰다. 성공한 벤처기업가인 김 회장이 실패예찬론을 풀어놓은 것. 뜻밖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왜 실패를 강조하는지 알 수 있다. 대학 졸업 뒤 겪은 두 번의 실직은 ‘월급쟁이’ 김익래를 ‘사업가’로 바꿨다.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을 걸을 땐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하드웨어 사업에 진출했다가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하드웨어 사업 실패는 소프트웨어 사업에만 전념하도록 해준 전화위복의 경험이었다. 김 회장은 숱한 실패 위에서 다우기술, 키움증권 등 24개 계열사를 거느린 다우키움그룹을 일궜다. IBM을 뛰쳐나온 ‘소신맨’ 1974년 한국외대 영어과를 졸업한 김 회장이 첫 직장으로 인연을 맺은 곳은 한국IBM이다. 삼성, 현대 등 걸출한 대기업 문을 두드렸지만 취업 문턱을 넘지 못했다. IBM은 김 회장의 떡잎을 단번에 알아봤다. 필기시험이 끝나고 면접시험에 들어갔는데 담당 부장이 김 회장에게 “다른 회사 갈 생각 말고 곧바로 IBM으로 오라”며 합격을 통보했다. 한국IBM에서 영업관리, 재무, 기획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IBM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번은 김 회장이 IBM 극동지역본부가 있는 홍콩으로 출장을 갈 기회가 있었다. 당시 극동지역본부 미국인 사장이 김 회장에게 IBM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김 회장은 평소 느낀 점을 가감 없이 말했다. “IBM은 건전하고 좋은 회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번 돈을 전부 본사로 가져가고 한국IBM이나 한국 발전에 소홀한 것 같습니다.” 솔직한 대답의 후폭풍은 거셌다. 얼마 뒤 홍콩에서 한국IBM으로 비밀전문 하나가 날아왔다. ‘김익래는 IBM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다. 그의 동향을 살펴 정기적으로 보고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사실을 안 김 회장은 미련 없이 사직서를 냈다. IBM은 오래 근무할 회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1976년 입사한 한국IBM을 2년 8개월 만에 박차고 나왔다. IBM을 그만두고 이름 없는 작은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1년이 채 안 돼 회사가 부도를 냈다. 또다시 직장을 잃었다. 두 번의 연이은 실패는 김 회장의 직업관을 바꿔놓았다. 월급쟁이에서 개인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국내 1호 벤처 ‘큐닉스’ 설립 김 회장이 처음 시도한 사업은 반도체칩 수입 오퍼상(무역중개상)이다. 이때 이범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자주 만났다. 반도체 관련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이 교수와의 만남은 창업 인연으로 이어졌다. 1981년 이 교수 스승이자 삼보컴퓨터 회장을 역임한 이용태 박사와 함께 컴퓨터회사 큐닉스(Qnix)를 세웠다. 국내 1호 벤처기업으로 평가받는 큐닉스 공동 설립에 참여하며 김 회장은 본격적으로 벤처업계에 발을 내디뎠다. 큐닉스는 마이크로소프트 제품 독점 대리점권을 확보하며 승승장구했다.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 제품 허가권 벌이로만 1년 지출을 충당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그 무렵 큐닉스는 이범천 사장과 이사 겸 사업본부장인 김익래 회장 2인 경영체제로 돌아갔다. 이 박사는 연구개발(R&D)을, 김 회장은 기획·영업·재무를 담당했다. 그런데 큐닉스의 방향을 두고 둘 사이에 의견이 충돌했다. 이 박사는 큐닉스가 컴퓨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이를 반대했다. 개인용 PC 제조업체들이 큐닉스 고객인데 그들과 경쟁하는 건 신의를 저버린 행동이라 여겼다. 결국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결별을 택했다. 6년여 만에 큐닉스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IMF 위기에도 R&D투자 늘려 큐닉스를 나온 김 회장은 당분간 쉬기로 마음먹었다. 등산, 테니스로 나날을 보내는 중에 큐닉스에서 함께 근무했던 직원 두 명이 찾아왔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지 않고 왜 빈둥거리고 있냐”며 따졌다. 김 회장은 동료들에게 대뜸 회사 이름부터 지어보라고 했다.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 지어온 이름이 ‘다우(多友)기술’이다. ‘벗 우(友)’를 ‘도울 우(佑)’로 바꿔 ‘다우(多佑)기술’로 표기하기로 하고 설립 작업에 들어갔다. 당장 돈이 필요했다. 큐닉스 지분을 정리한 돈이 2억원 남짓 있었다. 회사를 차리기엔 부족했다. 집을 담보로 한국종합기술금융(현 KTB네트워크)에서 2억원을 융자받아 총 4억원의 자본금을 마련했다. 시작은 거창했다. 1986년 1월 화야산 꼭대기에서 10명 안팎의 직원들과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고사를 지냈다. “오늘 여기 화야산에 모여 하늘에 고사를 지냄으로써 다우기술이 출범했습니다. 여기서 약속하겠습니다. 앞으로 10년 뒤 기업공개를 하겠습니다.” 대략 이런 얘기를 했다고 김 회장은 회상했다. 포부는 컸지만 무슨 일을 할지 업종조차 정하지 못했다. “돈을 멋있게 까먹어 보자”고 큰소리만 쳐뒀다. 그때부터 각종 해외 전시회를 찾아다녔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하루는 치안본부(경찰청)에서 조사를 나왔다. 작은 회사에서 해외출장이 잦은 걸 이상한 눈으로 본 것이다. 6개월 동안 발로 뛰어다닌 끝에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소프트웨어는 개발하긴 힘들지만 개발만 마치면 추가적인 원가 부담이 작고 이익이 컸다. 승부를 크게 내면서도 돈 때문에 고생을 덜할 수 있는 장사였다. 다우기술이 처음 착수한 사업은 PC 운영체제(OS) 유닉스(Unix) 한글화 작업이다. 김 회장이 정몽헌 현대전자 사장과 담판으로 유닉스 한글화 프로젝트를 따냈다. 프로젝트가 끝나자 수입이 없던 회사가 흑자로 돌아섰다. 김 회장은 자신감을 얻어 외국산 유명 소프트웨어 한글화 작업에 매진했다. 1997년 8월 27일은 김 회장이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루다. 다우기술을 10년 안에 거래소에 상장하겠다는 직원들과의 약속을 지킨 날이다. 기업 상장이 결정됐다는 연락을 받은 김 회장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통쾌한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다우기술에도 IMF 위기가 찾아왔다. 비용이란 비용은 모두 줄였다. 임금도 15% 내렸다. 단 연구개발 분야는 예외였다. 오히려 예산을 늘렸다. 위기를 헤쳐 나가자고 제품 개발에 주력하지 않으면 위기 뒤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끊임없는 기술개발은 IMF 극복 후 재도약의 디딤돌이 됐다. 통합메시징서비스 ‘큐리오(Qrio)’, 사이버증권거래시스템 구축 솔루션 ‘웹트레이드’ 등 밤샘 연구로 개발에 매진했던 솔루션이 주력 서비스와 상품으로 부상했다. 인터넷 증권사 ‘키움닷컴증권’을 가족사로 설립하는 밑거름을 다진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도 김 회장은 철저한 이익 중심 경영과 보수적 자금관리를 통해 실리를 추구한다. 3~4시간 거리의 근거리 비행은 이코노미를 이용한다. 검소함은 그의 성품 탓도 있지만 그룹의 성장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룹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다. 직원들이 한 명이라도 더 해외에 나가 많은 걸 보고 들어와 변화를 꾀해야 하는 시기다. 비즈니스 한 명 값이면 2~3명이 나갈 수 있다.” CEO 믿고 맡기는 ‘서포터형 오너’ 2000년 키움증권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누구도 지금의 성장을 예상하지 못했다. 자본금 500억원으로 시작한 증권사가 19년 만에 자본금 1조9000억원대 금융투자회사로 자리매김했다. 김 회장에겐 ‘온라인 증권업은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 이트레이드증권, 찰스슈왑 같은 회사들도 막 온라인 증권업을 시작하던 때였다. 사실 당초 키움증권 설립을 주도한 건 권성문 KTB투자증권 전 회장이라는 게 정설이다. 키움증권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1999년 키움증권 설립을 주도한 건 당시 1대 주주였던 권성문 회장이다. 그때만 해도 김익래 회장은 증권업을 잘 몰랐다. 다우기술은 300억원을 투자하는 출자자(LP)로 참여했다. 키움증권의 IT 시스템을 백업해 주는 역할이었다”고 말했다. 대주주 적격 심사가 권 전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냉각 캔’ 사건으로 검찰에 고발된 전력이 문제였다. 권 전 회장은 1999년 인수한 ‘미래와사람’이 냉각 캔을 세계 최초 초소형 냉장고라고 허위과장 공시를 내고 주가를 올린 뒤 유상증자를 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검찰이 ‘대량생산을 위한 금형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과장한 것만 인정해 이듬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결국 2대 주주였던 다우기술이 등판해 2000년 ‘키움닷컴증권’을 세웠다. 김 회장은 2001년부터 다우그룹 회장직을 맡으면서 계열사들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겨 운영했다. 키움증권도 마찬가지였다. 키움닷컴증권의 창립 멤버인 김봉수 전 거래소 이사장을 2001년 키움닷컴증권 신임 대표로 선임했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 경영 전권을 맡겼다. 김 회장 스스로도 키움증권의 성공 비결을 ‘다우기술의 IT 능력’과 ‘뜻있는 금융인들의 만남’으로 꼽았다. 증권업계 패러다임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꾼 키움증권의 성공 드라마는 김 회장뿐만 아니라 최고경영자(CEO)부터 말단 직원까지 주인공과 조연이 함께 만든 결실이라는 얘기다. 김 회장은 2000년 다우기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키움닷컴증권을 설립하면서 벤처기업도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돼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김 회장은 그룹 안팎에서 CEO를 믿고 기다리는 ‘오너’로 통한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인수합병(M&A) 같은 중요한 결정은 회장님이 보고받지만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 오히려 회장님과 의논하려 하면 결정하라고 CEO를 시켰더니 왜 자꾸 와서 상의를 하냐고 나무란다”고 말했다. 키움증권의 승부수는 아낌없는 전산 투자와 저렴한 수수료였다. 키움증권은 지점을 두지 않는 무점포 전략을 내세웠다. 자체 개발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인 ‘영웅문’을 통해 주식거래 업무를 처리했다. 금융투자업계는 반신반의했다. 기존 증권사들은 대부분 지점 중심 영업에 주력했다. 지점을 방문하거나 전화로 주식 주문을 내던 시절이었다. 키움증권은 각종 비용을 줄이고 낮은 수수료를 앞세워 개인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온라인 매매 수수료를 기존의 10분의 1 수준인 0.29%로 낮췄다.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점유율을 늘리며 금융투자업계 패러다임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꾼 주역으로 떠올랐다. 최근 증권사들이 수수료 인하 경쟁을 펼치는 와중에도 키움증권의 입지는 굳건하다. 키움증권의 주식시장 위탁매매 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16.45%로 2005년 이후 13년 연속 업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img4 인터넷은행 재도전...금융인 마인드 장착 키움증권은 요즘 금융투자업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회사로 꼽힌다. 인터넷은행에 도전하고 투자은행(IB) 사업을 확장하며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과거 김 회장은 제조업 마인드로 증권업을 바라봤다. 지금은 금융인 마인드까지 갖췄다. 키움증권이 IB를 공격적으로 시작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확실히 예전과 다르다”고 말했다. 다우키움그룹은 2007년부터 종합금융사로 도약할 채비를 시작했다. 키움닷컴증권이 ‘닷컴’ 꼬리표를 떼고 키움증권으로 이름을 바꾸면서다. 2010년 키움자산운용을 설립해 자산운용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2014년엔 우리자산운용을 755억원에 인수하며 운용업계 57위에서 단숨에 7위로 올라섰다. 2016년에는 우리은행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키움증권은 우리은행 지분 4%를 확보한 과점주주다. 다우키움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다우기술이 1997년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인터넷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그중 큰 수익을 올렸던 투자가 바로 키움증권이다. 그때부터 김익래 회장이 금융업에 관심을 갖고 저축은행, 우리은행 지분투자 등 금융회사 관련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키움증권은 지난 2015년부터 인터넷은행 문을 두드리고 있다. 온라인이란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 자산관리까지 사업영역을 넓히기 위해선 인터넷은행이 적격이라고 내부적으로 판단했다. 2017년에도 인터넷은행 진출을 검토했지만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 정책에 막혀 사업을 진행하지 못했다. 키움증권은 최대주주가 소프트웨어와 시스템 관련 솔루션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다우기술(47.70%)이다. 지난해 인터넷은행 진출에 청신호가 켜졌다.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의 인터넷은행 지분 상한을 34%로 높인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다. 금융당국은 올해 5월 안에 신규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내줄 방침이다. 키움증권은 지난해 전략기획본부를 중심으로 인터넷은행 사업을 준비하는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렸다. 하나금융그룹, SK텔레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신청을 준비 중이다. 올해 서울히어로즈 야구단의 메인 스폰서 자리도 꿰찼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인터넷은행 진출에 힘을 싣겠다는 구상이다. 김 회장의 길 따르는 막내아들...2세 승계 신호탄 김 회장은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지난해 베일에 가려졌던 막내아들 김동준 씨가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후계 구도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룹 안팎에선 ‘2세 경영’이 본격화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키움증권 고위관계자는 “김동준 대표는 경영 수업을 차근차근 밟는 중”이라며 “그동안 IT회사에서 경험을 쌓아 이제 창업투자회사 업무를 제대로 배울 시기가 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 회장의 큰딸은 주부다. 사위가 키움증권 투자운용본부 PI팀 소속 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현재 베트남 진출 사업을 맡아 베트남에 머물고 있다. 둘째 딸은 키움투자자산운용에서 해외채권팀장으로 일한다. 오너 자녀라는 티를 내지 않고 직원들과 섞여 지내려 하고, 부족함을 열심히 보완하려는 모습에 주변 임직원들의 평가도 호의적인 편이다. 사내에선 둘째 딸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높다. 60대 후반인 김익래 회장이 아직 정정하고 그룹 내 장악력을 갖고 있어 승계 이슈가 속도를 내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우키움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이 워낙 깐깐해 아들과 딸이 기대치만큼 올라오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자녀들 나이도 (승계 얘기가 나오기엔) 아직 어리고, 아들 승계를 공공연하게 얘기하긴 했지만 사실상 세 자녀 지분 배분 등 예민한 부분이 있다”고 전해 왔다. 또 다른 다우키움그룹 관계자는 “1950년생인 김 회장의 나이를 고려하면 다우키움그룹의 본격적 승계 시점을 5년 뒤 정도로 본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다우키움그룹의 지분구조도를 살펴보면 이미 김 대표가 지주회사 격인 다우데이타를 통해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키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우데이타의 주요 주주는 김익래 회장(40.64%)과 계열사 이머니(eMoney, 21.95%)다. 2014년 기준, 보유 중인 자사주를 빼면 이머니의 실질적인 최대 주주는 김동준 대표(26.91%)다. 금융투자업계에선 2014년 이후 김 대표가 이머니 지분율을 꾸준히 늘려 50% 이상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김 대표가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개인회사 이머니가 다우키움그룹의 지주회사 다우데이타에 대한 지분율을 차근차근 늘리고 있다는 점. 지난 2011년 이머니의 다우데이타 지분율은 10%대에 그쳤지만 올해 2월 약 22%까지 늘었다. 향후 다우데이타와 이머니를 합병해 승계 작업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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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호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개방·융합·창의 연구문화 절실”

‘문화기술’ 개념으로 과학 융합 문화경제 성장동력 제시 “프로그램 중심 과제 수행과 기관 간 수평협약 중요” “우주산업화 실행, 항우연·정부 협약 맺어 공조해야” | 김영섭 기자 kimys@newspim.com “이제는 우리의 눈높이나 연구 영역이나 연구 내용이나 모든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고 해야 된다. 그게 안 되니까 연구 부정이 생기는 거고, 양만 채우려 하고 질이 높아지지 않는다.” 원광연(67)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을 지난 2월 21일 세종국책연구단지에서 만났다. 2017년 10월 취임한 원 이사장은 “지난 1년 반이 생애 가운데 가장 바쁜 날”이었다고 했다. 며칠 정도의 휴가도 건강검진과 외국 학회 참가로 보냈다. 그는 1995년 ‘문화기술(CT, Culture Technology)’이라는 개념을 세계 최초로 제안한 인물이다. 2005년 KAIST(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설립을 주도했다. 특히 김대중 정부 시절 문화에 과학기술을 융합시킨, 이른바 문화경제론을 주창하며 한국 과학계에 간단치 않은 충격파를 던졌다. 동시에 문화예술계에도 널리 이름을 알렸다. 원 이사장은 연구기관 간 융합과 함께 연구의 자율성·창의성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그는 “결국은 연구자들이 스스로 이것은 나 혼자 할 수 없다, 아니면 우리 연구소에서만 할 수 없다, 이것은 같이 해야 되겠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그런 방향으로, 빠른 속도로 바꿔 나가야 하고 젊은 연구자들 중심으로 그런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과학기술계에 ‘문화’라는 화두를 던진다. 국과연은 과학기술 분야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지원·육성하는 기관이다. “문화도 이젠 경제이고 산업...과학기술이 문화 주도해야” Q. 카이스트 전산학과에 재직하면서 문화기술대학원을 설립한 게 눈에 띈다. A. 2005년 대학원을 만들었다. IT(정보기술), BT(생명공학기술), NT(나노기술), ET(환경기술), ST(우주항공기술)에다 CT(문화기술)를 추가했다. 이른바 6T다.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정책 관련 위원회에 참여했다. 우리나라가 이제 어떻게 앞으로 발전해야 되겠는가, 성장동력으로 뭘로 가져갈 거냐를 논의했다. ICT, 바이오, 나노는 당연히 나왔는데 그다음에 (과학과 용합한) 문화경제를 제시하니 과학계에서 놀랐다. 아니, 지금 할 것도 많은데 문화가 과학과 무슨 관계냐는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문화는 성장을 하거나 산업화한다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화는 첫 번째가 복지, 두 번째가 규제였다. 혁신성장의 한 방법으로 문화를 가져갔다는 게 아주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일이었다. Q. 그래서 그 이후 문화기술, 이른바 문화경제론이 시작됐나? A. 그래서 시작됐다. 나는 1995년부터 문화기술(CT)을 쓰기 시작했지만 순전히 학문적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제 정부에서 ‘문화도 경제다, 산업이다. 경제와 산업이 되려면 과학기술이 문화에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은 굉장히 혁신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과학기술을 문화에 접목시켜 복지 차원에서 활성화하고 성장동력으로도 삼으려면 가장 중요한 게 결국은 고급 인력 아닌가. 과학기술계 쪽에서 문화를 들여다봐야 된다 해서 카이스트에 문화기술대학원을 만들었는데, 그때도 반대가 엄청났다. Q. 문화기술대학원 성과라면? A. 노준형 교수는 내가 할리우드에 직접 찾아가 부인을 설득해서 모셔 왔다. 한국 가면 수입은 줄겠지만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노 교수는 할리우드 영화계 특수효과 전문가인데 제자를 많이 배출했다. 제자들이 한국 영화계 특수효과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노 교수 자신도 CGV 스크린X를 개발했다. 이런 것이 결국 과학기술하고 문화가 합쳐진 대표적인 사례다. 내 전공은 가상현실(VR)로 인공지능, 증강현실 분야에 걸쳐 있다. VR을 이용한 교육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활동하는 제자가 많다. “현대 문화는 네트워킹이며 디지털 기술에 종속돼 있어” Q. 문화를 좀 더 설명해 주면? A. 문화 하면 예술을 떠올리지만 집단이 갖고 있는 집단의 사고 방식, 행동 양식이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문화는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이제는 온라인 문화의 알고리즘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네트워킹하는 방식이 바뀐다. 그러니까 우리 문화가 지금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종속돼 버린다. 특히 과학기술이 어떻게 하느냐가 우리의 문화를, 문화의 형태를 좋은 방향으로도 나쁜 방향으로도 만들 수 있다. Q. 예술은 창의성인데 과학은 지속성과 재현성을 특징으로 든다. A. 흔히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는 예술도 창의성 플러스 지속성, 과학도 창의성 플러스 지속성이라고 본다. 유명한 예술가들을 보면 창의성만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작품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끝없이 고치고 노력하고 좌절하고, 결국 실험하는 거나 똑같다. 과학도 창의성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 우리나라 과학계에도 제일 아쉬운 게 창의성이다. 창의성의 핵심은 문제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Q. 한국 연구재단도 요즘 질적 수준을 강조하는 것 같다. A. 양적으로 논문 수는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왜 의미가 없는가 하면 요즘 어느 학회라도 절반 이상은 중국 사람들 논문이다. VR 분야에 중국 교수가 있어 연구실을 찾아갔는데 체육관만 한 크기에 가로 세로로 수백 명 학생이 연구를 하고 있었다. 당할 수가 없다(웃음). “출연연, 프로그램 중심으로 큰 틀에서 기획하고 연구 주도해야” Q. 프로젝트 중심의 연구과제 수행, 이른바 출연연 PBS 문제의 개선방안은? A. 작년 국무총리에게 현행 PBS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농담 삼아 ‘이 세상에 일단 취직했는데 월급은 반만 주고 그 반은 알아서 벌어라’ 하는 직종이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많지 않다고 했다(웃음). 꼭 이걸 해야 한다기보단 인건비를 따올 수 있는 과제를 하는 현행 PBS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기관 고유의 임무와 맞지 않는 연구를 어쩔 수 없이 하는 연구는 사실 그렇게 많진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볼 때 너무 노력을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Q. 현행 PBS의 대안은 뭔가? A.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발사체 사업도 PBS 과제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는 우주 탐험이라고 하는 항우연 고유의 미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주발사체 1단부 개발하는 사업을 PBS로 하고 그다음에는 3단부 개발하는 사업을 또 하고, 그다음엔 달에 가는 사업을 또 하는 등 개별사업 위주로 할 게 아니라, 큰 틀에서 사업은 사업인데 이걸 묶어 중장기적으로 하나의 큰 사업을 만들고, 그 사업을 정부와 항우연이 같이 기획하고, 항우연이 기관 차원에서 대등하게 과기정통부하고 협약하는 것이다. 지금은 연구책임자가 계약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PBS이긴 하지만, P가 개별 과제 프로젝트가 아닌 프로그램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큰 틀의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기관과 기관끼리 대등한 협약을 맺어 출연연 차원에서 중장기적으로 주도하는 방식이다. 사업의 기획은 당연히 정부 부처와 같이 한다. Q. 우주산업화 전략도 항우연과 정부가 대등한 관계에서 수립해야 하나? A. 그렇다.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사업 단위로 끊어서 놓고 보면 그 사이에 공백이나 불연속성이 생길 수도 있다. 발사체 만드는 사업은 민간이 하고, 우주 탐사를 항우연이 했을 때 그 둘 사이의 역할 분담을 깨끗하게 아주 칼로 베듯이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큰 틀에서의 중재는 과기정통부에서 할 것이다. Q. 출연연 통폐합 문제는? A. 하나하나가 다 독립된 법인이고 인사, 행정, 예산 시스템이 다 다르다. 연구문화도 많이 다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 통합이 아니고 소프트웨어적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시스템보다는 연구문화 자체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Q. 출연금 비중을 좀 높이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는지? A.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이 방만한 형태로 이제 인건비 확보됐고 연구비 확보됐으니 우리가 알아서 하면 되겠지 하는 식은 아니다. 정부, 민간, 국제사회 등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Q. 한국원자력연구원 안전연구 부지 추가 확보가 추진되고 있는데 알고 있는지? A. 알고 있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대전 원자력연구원에서 방사성 폐기물이 나오거나 안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연구는 한계가 있지만 미래 지향적으로 볼 때 반드시 해야 된다. 그런 연구를 꼭 해야 되는데 현재 부지에서 못하니 다른 데서라도 계속해야 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Q. 출연연 등 과학기술계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A. 인사, 행정, 회계 시스템보다는 연구문화 자체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요즘 나오는 문제들은 한 분야에서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어떤 문제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출연연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쉽게 합칠 수 있는 시스템, 쉽게 서로 같이 할 수 있는 연구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남은 임기 동안 매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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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호

김기준 코트라 동남아대양주본부장 “김정은 위원장, 하롱베이 크루즈 꼭 탔어야 했는데...”

하롱베이, 관광 매출 연 1조원의 ‘관광 캐시카우’ 외투기업 득실대는 하이퐁, 북한의 최우선 롤모델 한국기업들, 매년 1000개씩 베트남 진출...총 7200개 |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 “김정은 위원장이 하롱베이 크루즈를 꼭 탔어야 했는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한창이던 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기준 코트라 동남아대양주지역본부장을 만났다. 김 본부장은 베트남을 찾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롱베이(Halong Bay)와 하이퐁(Haiphong)을 둘러보지 않은 것을 연신 아쉬워했다. 베트남식 개발 모델을 꿈꾸는 것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이 이 두 곳을 둘러봤다면 북한 내 경제특구와 관광특구 조성에 확실한 자신감을 얻어 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나진·선봉 등에 경제특구를 건설하는 것과 함께 백두산, 원산-갈마지구 등을 관광중심지로 육성하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못지않게 외화벌이 통로가 될 것이란 기대를 품었을 듯싶다. 김 위원장이 본인 대신 오수용, 리수용, 현송월 등 수행단을 하롱베이와 하이퐁에 보내 도이모이(doimoi) 현장학습을 지시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하롱베이, 관광 매출 1조원의 ‘캐시카우’ 3000여 개 섬으로 이뤄진 하롱베이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돼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코트라에 따르면 하롱베이가 위치한 꽝닌성의 전체 관광객 수는 2017년 기준 987만명이고 이 중 외국인 관광객 수는 420만명에 이른다. 꽝닌성의 공식 관광 매출은 7억8500만달러로 우리 돈 9000억원에 육박한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원하는 북한 입장에서는 군침을 흘릴 만하다. 북한 수행단이 하롱베이를 거쳐 도착한 곳은 하이퐁이다. 베트남 3위 도시로 베트남 시가총액 1위 인 빈그룹의 자동차 업체 빈패스트를 비롯해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도 이곳에 공장을 두고 있다. 외국인직접투자(FDI) 기업이 집중된 곳이다. 특히 빈그룹은 라면 회사로 출발해 식품, 유통, 건설·부동산 등 전 방위로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기업이다. 40년 전 우리나라 대기업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2020년까지 제조업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베트남 정부의 목표를 최전방에서 수행 중이다. 북한 입장에선 최고의 벤치마크 대상이다. 김기준 본부장은 “베트남 어느 도시를 가도 중심가에 빈그룹 빌딩이 있다. 빈패스트는 민간 기업이긴 하지만 정부의 전략적 육성 기업이다. 베트남도 섬유 업종보다는 하이테크 기업을 키우고 싶어 한다. 기술과 자본이 있는 기업을 찾았는데 빈패스트가 손을 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 미국과 수교하고 WTO 가입하며 날개 지난해 코트라는 동남아대양주지역본부를 싱가포르에서 베트남 하노이로 옮겼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을 최전방에서 지원사격하기 위해서다. 신남방정책은 2020년까지 아세안과의 교역 규모를 중국 수준인 2000억달러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중 베트남이 1000억달러를 담당한다. “코트라가 지역본부를 싱가포르에서 하노이로 이전한 것에 베트남 정부도 상당한 의미를 둔다.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이 일본, 중국, 유럽 사람들 만나면 한국 얘기 많이 한다. 한국과 삼성전자처럼 베트남에 투자하라며 핀잔을 준다. 베트남인들은 베트남이 동남아 맹주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국과 10년 넘게 전쟁을 벌였던 공산국가 베트남이 아시아의 공장으로 변모한 것은 1986년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모이 선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후로도 1995년 미국과 수교하기까지 9년이 걸렸다. 2001년 미·베트남 무역협정 체결 이후 외투기업의 투자가 시작됐고 2007년 베트남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본격화됐다. 북한이 외투기업의 투자를 받을 정도로 세계 시장에서 신뢰를 얻기까지는 지난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김 본부장은 “2007년 WTO 가입하면서 실질적으로 시장이 확 열렸다. 그 전에 베트남은 WTO에 가입하지 않아 수출에 제약이 있었다. 2014년까지 베트남은 통신, 유통, 교육, 광고 등 서비스 시장을 전면 개방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직접 들어와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이 박닌성에서 첫삽을 뜬 것도 2007년이다. 김 본부장은 “삼성이 투자하기 전에는 베트남 정부 안에 친일파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친한파가 더 많다. 총리가 친한파이고 장관도 친한파가 많다. 여기에 삼성전자 1차 벤더가 200개에 달하고 총 16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로서는 고마울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한국기업 1년에 1000개씩 베트남으로 향해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공산국가 정치체제에 자본주의를 접목시켜 성공한 모델이지만 차이가 분명하다. 중국은 내수시장을 단단히 걸어잠근 채 외국기업의 투자도 자국 기업과 50 대 50으로 맞출 것을 고수한다. 반면 베트남은 시장을 완전히 개방했다. 롯데마트나 CJ 등은 100% 지분을 갖고 베트남에 진출했다. 김 본부장은 “베트남은 외투기업들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다. 중국처럼 외투기업들을 막 대하지 않는다. 삼성이 꼬꾸라지면 베트남도 같이 망가지는 구조다. 그러니 베트남 정부가 우리 기업들한테 친절하다”고 전했다. 우리나라가 베트남 시장에서 일본을 제치고 수적으로 압도적 1위다. 일본은 인도네시아 등 다른 나라를 곁눈질하며 들어온 데다 주로 인프라·금융 분야에 투자한 반면, 우리나라는 제조업의 직접투자가 대부분이다. 김 본부장은 “돈 대는 것은 일본인데 대우는 한국인이 다 받는다고 일본인들은 불평을 토로한다”고 웃어보였다. 베트남 시장이 열리고 31년간 우리 기업의 누적 진출이 총 7200개인데 지난 3~4년 동안 3000개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섬유 기업들이 호찌민으로 많이 갔고 2007년 삼성, LG 등 전자 대기업과 1차 벤더들이 하노이로 들어갔다. 그게 2차 붐이다. 지금은 중국으로 갔던 우리 기업들이 다시 베트남을 찾고 있다. 3차 붐이다. “싼 맛에 진출은 옛날 얘기... 경쟁력 갖춰야” 베트남 하면 흔히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단가 경쟁력을 떠올리지만 이미 베트남의 물가도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오르고 있다. 개발도상국인 만큼 앞으로도 임금 상승은 불가피하다. 정부가 나서서 임금상승률을 5%대로 막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이 싼 맛에 진출을 모색했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는 것이 김 본부장의 조언이다. 그는 “한국에서 쫓기듯이 나오는 기업이 많은데 그것은 위험하다. 엄연히 사회주의 국가이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분명 있다. 막 투자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간다는 식은 이미 한참 지났다.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들어와야지 싼 임금만 보고 들어오면 오래갈 수 없다. 곧 4~5년 후면 그런 기업들은 경쟁력이 없어질 것이다. 이미 하노이만 해도 하이테크 업종이 들어오길 원한다. 저임금 기업은 하노이에서 차로 3~4시간 거리로 밀려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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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덕순 KB국민은행 중소기업고객부 차장의 기업금융 '도전기'

성별·학력 문턱 넘어 남성중심 기업금융 ‘성과’ “박정림 KB증권 사장이 롤모델...여성 기업금융 전문가 꿈” | 최유리 기자 yrchoi@newspim.com | 정일구 사진기자 mironj19@newspim.com “기업금융이 남성 전유물이란 생각에 지레 겁먹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실 여성이어서 불리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여덕순(45) KB국민은행 중소기업고객부 차장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자신감이 넘쳤다. 그의 롤모델은 증권업계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박정림 KB증권 사장이다. KB국민은행에서 1년 계약직 부장으로 시작해 그룹 계열사 CEO에 오른 박 사장. 콜센터 계약직으로 출발한 여 차장은 박 사장처럼 기업금융에서 두각을 나타내 임원이 되는 게 목표다.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는 비즈니스 분야에서 새로운 여성 롤모델이 되겠다는 포부다. 기업금융 내에서도 여 차장이 속한 중소기업고객부는 격전지다. 최근 은행들은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와 기업대출 활성화에 맞춰 경쟁적으로 중소기업 고객을 늘리고 있다. KB국민은행이 가계대출 1등 은행에 이어 기업금융까지 선도하기 위해선 여성을 포함해 두터운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게 여 차장의 생각이다. 女행원 기피 기업금융 한계 돌파 시작은 미미했다. 여 차장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반기업 비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업무 특성상 주도적인 일보다는 보조와 지원 업무가 많았다. 성취감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KB국민은행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해 2000년 콜센터 계약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계약직으로 시작했지만 한계를 깨 나갔다. 2005년 시험을 통한 정규직 전환 제도가 생겼는데 그 이듬해 보기 좋게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영업점 창구에서 본격적인 대면 영업을 시작한다. 당시 창구직원들은 예·적금 유치나 카드 발급 등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했다. 반면 기업 고객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의 니즈는 명쾌하게 해결해 주기 어려웠다. 기업대출의 경우 담보가치 평가, 재무제표 분석, 세무 등에 전문성이 필요하다. 개인 실적을 떠나 업무 영역을 좀 더 넓혀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이유였다. “한 중소기업 사장이 외환 업무를 보러 은행에 왔는데 모든 자금 결제를 현금으로 하고 있었어요. 은행 신용장을 발행하면 자금 활용에 길이 생기는데 이를 못하고 있었던 거죠. 가끔 중소기업 자금담당 임원이나 경리직원들이 창구를 찾아오면 이런 부분이 필요하겠구나 짐작만 할 뿐 제가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시하긴 어려웠죠. 고객을 눈앞에서 놓칠 수 없어 그때마다 기업금융 담당 팀장이나 지점장 도움을 받았지만 기업금융에 대한 갈증이 없어지진 않았어요.” 2005년 여 차장은 기업심사역 교육 과정을 거쳤다. 영업점 일반 창구에선 여성 인력이 절반 이상인 반면 기업금융전담역(RM) 중 여성 비율은 10%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벽이 그의 도전을 막진 못했다. 6개월간 예비심사역 과정을 마치고 신촌지점에서 기업금융 담당자로 새롭게 출발했다. “신촌지점엔 기업금융 담당자가 한 명뿐이어서 여성들이 주로 하는 개인영업을 맡으라고 권유받았어요. 이전 경험도 살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당시 박정림 KB국민은행 여신그룹 부행장께서 지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저를 기업금융 담당자로 추천해 주신 겁니다. 욕심이 있는 친구니 믿고 맡겨보라고 말이죠.” 세심함·친밀함으로 승부 기회를 잡은 여 차장은 발로 뛰며 기업대출 실적을 열심히 끌어올렸다. 지역 특성상 임대사업자들이 대부분이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영업했다. 가깝게는 부품제조사들이 많은 인천부터 멀리는 강원도까지 고객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그 결과 기업금융 1년 만에 200억원 이상의 우량 기업대출을 새로 발굴했다. 그가 직접 부딪혀본 기업금융은 생각보다 잠재력이 컸다. 여성 특유의 세심한 업무 처리와 친밀한 마케팅이 더해지면 오히려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성 고객이 대부분이고 업무가 방대하다 보니 기업금융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있고, 야근도 잦아요. 낮엔 영업을 다니고 밤엔 담보평가 등 밀린 서류를 처리해야 하는 게 일상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장벽이 되진 않습니다. 남성 고객과 골프를 칠 일이 있으면 치고, 군대나 축구 얘기도 하면서 세심한 배려를 더하면 오히려 강점으로 바뀔 수 있어요.” 여 차장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기업금융 인력 양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인적 네트워크와 신뢰가 중요한 기업금융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 있는 인력이라는 생각에서다. KB국민은행이 가계대출 중심에서 벗어나 기업금융에서도 선두 은행을 노리고 있는 만큼 그의 책임감은 남다르다. KB국민은행은 올해 시중은행 중 처음으로 중소기업대출 1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기업금융에서 후발주자에 속하지만 앞으로는 기업과 은행이 함께 성장해 가야 합니다. 행원 입장에서도 기업대출뿐 아니라 임직원 급여이체, 퇴직연금, 세무상담, 증권사와 연계한 기업공개(IPO) 지원 등 경험의 폭이 훨씬 넓어지죠. 앞으로 기업금융 인력 양성 모델을 체계화해 기업금융 전문 여성 임원도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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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호

국내 첫 P2P 보험플랫폼 ‘다다익선’ 오명진 대표

잘나가던 보험계리사, 무모함에 도전하다 펫·자동차보험 고객 모아 보험사와 협상 계리사 내세워 유튜버 변신...‘보험사’ 설립이 꿈 | 박미리 기자 milpark@newspim.com | 이형석 사진기자 leehs@newspim.com “아내가 출산한 지 한 달 만에 제가 창업하겠다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죠. 어찌 보면 가장으로서 무책임했어요.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어할 때 흔들린 적도 있지만,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이었고 아직까지 후회하진 않아요.” 국내 첫 P2P 보험플랫폼 ‘다다익선’을 경영하고 있는 ‘두리’의 오명진 대표는 창업 당시 상황을 이같이 전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 다다익선이란 플랫폼은 많은 사람을 모아 보험상품 혜택을 더하거나 보험료를 낮추는 것을 지향한다. 현재 2만3000여 고객이 다다익선을 통해 펫보험, 자동차보험에 가입했다. 오 대표는 “보험료에는 위험을 보장하는 부분 외에 마케팅비, 계약관리비 등 사업비가 포함돼 있다”며 “사업비를 절감해 고객에게 혜택을 돌려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펫보험의 경우 시중보다 15%가량 저렴하게 가입할 수 있다. ‘혁신’에 한계, 무작정 퇴사 오명진 대표는 동부화재(현 DB손해보험) 상품개발팀의 ‘잘나가는 계리사’였다. 보험업계에서 계리사는 고연봉을 받는 전문직군이다. 하지만 대형 보험사의 한계에 부딪혔다. “당시 회사에 건강증진형 보험상품(고객이 건강 관리 시 보험료 할인)을 만들자고 설득했지만 안 됐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나온 결론이 경품으로 웨어러블 상품을 주자는 것이었죠. 혁신에 한계를 느껴서 사직서를 던졌습니다.” 이때가 동부화재 입사 딱 10년인 2015년 12월이었다. 시련은 바로 들이닥쳤다. 이듬해 1월 성급하게 열었던 보험 비교 사이트는 운영 1년 만에 중단됐다. “상품을 만들었던 계리사였으니 분석에 자신이 있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안 들어왔죠.” 그래서 그는 초심을 다시 찾았다. 그는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것은 P2P 보험플랫폼”이었다며 “보험 비교 사이트로 기반을 다진 뒤 P2P 보험으로 영역을 확장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렇게 2017년 ‘다다익선’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1년 정도 고군분투하자 좋은 소식이 들려왔단다. 하나금융투자가 투자를 결정한 것. 몇몇 개인으로부터 투자도 유치했다. “돈을 아끼려고 라면만 먹고 그랬던 때죠. 투자를 받으면서 숨통이 트였어요.” 최종 꿈은 ‘단종 보험사’ 설립 현재 다다익선은 현대해상, DB손보, 롯데손보, 메리츠화재, 한화손보, AXA손보, MG손보 등과 손잡고 펫보험, 자동차보험을 판매한다. 고객은 보험료 할인이나 보장 강화 등 원하는 조건을 추구하는 그룹에 들어가 보험에 가입한다. 이후 다다익선은 대표 계약자 역할을 하면서 보험사들 간 경쟁을 유도하고 협상에 나서 최대한 고객에 유리한 조건을 받아낸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다다익선을 통해 신규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 보니 적극적인 편이다. 오 대표는 인터뷰 도중 롯데손보와의 펫보험 협상을 꺼냈다. 통상 펫보험은 손해율이 200%에 육박한다. 보험료 할인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펫보험이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보니 계약을 체결하는 절차상 허점이 많았어요. 그래서 롯데손보에 사진 제출, 문구 기입 등 절차를 추가하면 손해율이 낮아질 것이라고 설득했죠.”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실제 해당 상품의 손해율은 80%에 못 미쳤고, 보험료를 최대 23.5% 할인받았다고 한다. 다다익선은 꾸준히 고객 의견을 듣고 있다. 홈페이지 하단에 적힌 ‘이런 보험 제안 작성하기’란도 그 창구 중 하나다. 최근 만들어진 ‘생활체육보험’이 대표적이다. 몇 명 이상이 모여야 가입할 수 있는 단체보험을 개별적으로 가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한 대학생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오 대표는 “혼자 고민하면 ‘이건 약관 구성이 힘든데’, ‘이건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데’ 등의 생각으로 접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황당한 아이디어가 트리거(Trigger)가 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조만간 유튜버로도 나설 생각이다. 계리사로서 ‘보험’의 개발 배경, 보험료 산출식 등 정보를 쉽게 제공하고 싶다는 바람에서다. 오 대표는 “가령 ‘치매보험, 이렇게 팔면 큰일 날 수 있다’ 등의 주제로 고객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싶다”며 “오명진에 대한 신뢰를 쌓으면 오명진이 보험사와 협의해 만든 보험이라는 신뢰감이 들 것이고 결국 다다익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종 꿈은 ‘단종 보험사’다. 최소 자본금 10억~30억원만 있으면 실생활에 밀착된 소액, 단기보험만 취급하는 단종보험사 설립도 가능하다. “웃으실 수도 있지만 최종 꿈은 보험사예요. P2P보험의 콘셉트를 가져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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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호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국내 최초 원양어선 지남호 승선...26세 젊은 선장 ‘캡틴 J. C. KIM’ 어선 두 척으로 회사 설립...창립 50년 매출 7조원대 대기업 ‘우뚝’ 창업 50주년 종합식품회사 도약 꿈꾸는 ‘청년 김재철’...도전은 현재진행형 | 박효주 기자 hj0307@newspim.com “항해 중에 사고를 당한다 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꼭 태워주십시오.” 청년은 절박했다. 1958년 대학 졸업을 한 달 앞둔 그는 간신히 실습항해사 자격으로 국내 최초 원양어선을 탔고, 숱한 위기를 이겨내며 연 매출 7조원대 대기업을 일궈냈다. 바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얘기다. 김재철 회장은 재계 1세대 중 한 명으로 원양어선 말단 선원부터 시작해 현재의 동원그룹을 일군 신화의 주인공이다. 슬하에 2남을 두고 있으며 장남인 김남구(56)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 금융업을, 차남인 김남정(46) 동원그룹 부회장이 산업을 각각 맡고 있다. 김 회장의 엄격한 자식 교육은 재계에서 유명하다. 그는 평소 “부모가 자식에게 주고 싶지 않지만 꼭 줘야 하는 것이 고생”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김남구 부회장이 대학 4학년이던 1989년, 북태평양 명태잡이 원양어선에 그를 태워 선원 생활을 경험하게 했다. 김남구 부회장은 생사를 넘나드는 원양어선에서 매일 18시간 넘는 중노동을 경험하며 “죽는 것 말고는 육상에서는 겁날 게 없겠구나”라며 담대함을 키웠고, 그런 경험이 지금의 한국투자금융그룹을 키워내는 데 밑거름이 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차남인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 역시 대학 졸업 후 참치 제조공장에서 참치캔 포장, 창고 야적 등 생산업무부터 시작했다. 이후에도 바쁘기로 소문난 청량리 시장 일대를 담당하는 영업사원을 거치며 회사의 가장 작은 일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게 했다. 어선 두 척으로 창업...“바다만이 살길” 김 회장은 1969년 현물차관을 통해 도입한 어선 두 척으로 ‘동원산업’을 창업했다. 올해로 창업 50주년을 맞은 동원그룹은 종합식품가공업, 금융업, 종합포장재, 물류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 명실상부한 대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김 회장이 나고 자란 전남 강진군 군동면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마을 대다수가 농사를 짓고 있었고, 학생들 역시 농대를 나와 가업을 이어받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가난한 농가의 7남 4녀 중 장남이었던 김 회장은 강진농고를 졸업할 무렵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 농대 장학생으로 선발됐지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립수산대학(현 부경대) 어로과에 입학했다. 좁은 국토와 자원이 없는 국가에서 바다를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대학을 졸업하고 배를 탄 지 3년 만인 1960년 말 김 회장은 26세 젊은 나이에 지남2호의 선장이 됐다. 그는 선장이 된 후에도 기술 개발과 어장 조건 연구에 몰두했다. 이는 그가 항상 가장 많은 어획고를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김 회장은 당시 20대 어린 선장이었음에도 ‘캡틴 제이 씨 킴(Captain J. C. Kim)’이란 이름으로 외국 수산업계에서 유명했다. 사모아 최고의 선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김 회장은 1969년 35세의 나이에 그동안 모은 1000만원을 자본금으로 동원산업을 창업했다. 위기 속 승부수...과감한 투자가 불러온 성공 김 회장이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1973년 10월 제1차 석유파동으로 배럴당 2달러에 불과했던 유가가 1974년에는 11달러, 1975년에는 12달러로 치솟았다. 석유파동으로 한국 경제는 경기 침체, 물가 상승, 국제수지 악화라는 삼중고에 시달렸다. 한국 경제의 악화는 급성장해 가던 한국 원양업계를 강타했다. 설상가상으로 세계 각국은 2백해리 경제수역을 선포하기 시작했고, 도산하는 업체가 속출했다. 원가 중 유류비가 40% 이상을 차지하던 원양어업은 석유파동과 연안어장 규제로 인해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됐다. 여기에 김 회장은 회사를 시작할 때 어선을 분할상환 방식으로 구입해 운영하고 있었기에 이를 상환하면서 이익도 내야 했다. 김 회장은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효율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 방침을 수립했다. 우선 해외기지 중심으로 진행했던 참치 판매를 독항 어업을 통한 일본 판매 중심으로 전환했다. 어획한 참치를 섭씨 영하 50도 이하로 급속 냉동해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독항 어선을 출항시켜 어가(魚價)가 높은 일본에 직접 판매하며 부가가치를 높였다. 양질의 참치를 잡기 위해 인도양 해역에서 대서양으로 새로운 어장을 개척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위기 상황 속에서 과감히 승부수를 던졌다. 1975년 2월 4500톤급 트롤 공모선 ‘동산호’를 건조한 것이다. 동산호는 선내에 공장시설을 갖춘, 당시로서는 세계적 수준의 대형 어선이었다. 건조비만 1250만달러로, 당시 동원산업의 전 재산보다 큰 금액이었다. 이후 1979년 이란의 원유 수출 중단으로 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1978년 배럴당 12달러였던 유가가 1981년 12월 34달러까지 뛰어올랐다. 1차 석유파동 때와 마찬가지로 폐업하거나 적자 운영에 시달리는 업체가 속출했다. 김 회장은 다시 몰아친 2차 석유파동을 극복하고 재도약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헬리콥터 탑재식 참치 선망어법 개발 계획을 수립했다. 선망어법은 미국에서도 1943년 이래 개발에 공을 들여 왔으나 실패를 거듭하던 상황이었다. 수많은 도전 끝에 파푸아뉴기니 근해에서 1회 투망에 250톤(당시 22만달러) 정도의 어획을 올리는 쾌거를 이뤘다. 이를 통해 선망 사업의 성공에 확신을 갖게 된 김 회장은 선망선을 급속도로 늘려갔고, 동원산업은 참치 어획에 있어 세계적 회사로 성장해 나갔다. 원양어업만으로 부족함을 느낀 김 회장은 1982년 식품가공업으로의 확장을 위해 중대한 결정을 한다. 이전까지 원어(原魚) 형태로 해외에 수출해 오던 참치를 통조림으로 가공해 국내 시장에 선보인 것이다. 1차 산업인 원양어업에서 2차 가공산업으로의 진출을 꾀하던 김 회장은 선진국의 식생활 패턴을 분석하고 제품 개발에 몰두한 끝에 참치캔을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김 회장은 참치캔으로 안정된 시장을 확보한 뒤 수산물 제조판매 부문을 확대하기로 했다. 가공식품의 다양화를 위해 제조공장을 준공하고 꽁치통조림, 조미김, 어육연제품 등을 생산하며 원양어업에서 식품가공업으로의 순조로운 확장을 이뤄 갔다. 원양어업 회사의 금융업 진출...재계 놀라게 하다 국내 원양어업계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진 김 회장은 축적된 자금과 경영 능력을 바탕으로 2차, 3차 산업 진출을 모색했다. 이때 김 회장이 주목한 분야가 금융업이다. 1981년 2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AMP 과정을 이수하던 김 회장은 하버드대학의 우수한 학생들이 제조회사가 아닌 증권회사에 더 많이 진출하는 것에 주목했다.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증권회사가 인기가 있다면 한국도 앞으로 증권업이 유망 산업이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국내에 돌아와 증권업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 확신은 곧장 실행으로 이어졌다. 1982년 70억원 규모의 한신증권(한국투자증권)을 성공적으로 인수하며 재계에 놀라움을 안겼다. 김 회장은 한신증권 인수를 통해 사업 전망이 밝은 금융업에 진출하며 사업다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후 잇따라 한신기술개발금융(1986), 한신경제연구소(1986), 한신투자자문(1988)을 설립하며 결과적으로 2차 산업과 3차 산업 진출에 소요되는 자금 조달의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한신증권은 1996년 4월 동원증권으로 상호를 바꾸고 자기자본수익률 업계 1위의 강자로 자리 잡았으며, 1997년에 이어 1998년도 증권감독원 경영평가에서 ‘최우수 증권사’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또한 이익공유(profit sharing) 성격의 원양어업 성과보상제도를 적용해 우리나라 증권업 최초로 인센티브제를 성공적으로 시행하기도 했다. @img4 청년시절 참치 납품했던 ‘스타키스트’ 품에 안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7년간 무역협회장 임기를 명예롭게 마친 김 회장은 2006년 다시 동원그룹의 키를 잡았다. 그리고 2008년 세계 최대 참치 브랜드인 ‘스타키스트’와 3억6300만달러에 달하는 대형 인수 계약을 체결하며 또 한 번 재계를 놀라게 했다. 스타키스트는 김 회장이 젊은 선장으로 사모아 어장을 누비던 시절, 어획한 참치를 납품하던 회사 중 가장 큰 고객이었다. 1963년 스타키스트는 사모아 섬에 참치캔 공장을 준공하고 미국 내 참치캔 시장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당시 사모아 참치캔 공장에 최초로 참치 원어를 납품한 이가 바로 김 회장이다. 남태평양을 누비며 참치를 잡아 납품하던 20대 선장이 미국의 거대 회사를 50여 년 후 인수하게 된 것이다. 적자에 허덕이던 스타키스트는 동원그룹에 인수된 후 경영이 안정되면서 매해 성장을 거듭해 가고 있다. 청년 김재철 회장...그의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 김 회장은 동원산업을 창업한 이후 종합식품가공업, 금융업, 종합포장재, 물류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고 동원그룹은 연 매출 7조원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수산-식품-종합포장재-물류의 4대 축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영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 ‘스타키스트’를 인수한 데 이어 아프리카 국영기업이었던 ‘S.C.A SA’와 미국의 종합포장재 회사 ‘탈로파시스템즈’, 베트남의 최대 포장재 회사 ‘TTP’, ‘MVP’를 인수하는 등 세계 시장을 향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 나가고 있다. 국내 대형 물류회사 중 하나인 동부익스프레스를 전격 인수하며 재계를 또 한 번 놀라게 하기도 했다. 올해는 종합식품회사로의 도약을 위해 속도를 낼 예정이다. 김 회장은 일반식품 부문을 맡고 있는 동원F&B와 조미유통 부문을 담당하는 동원홈푸드에 대한 증설 투자를 잇달아 단행하고 있다. 김 회장은 청년이다. 과감하게 도전하는 도전정신이나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열성적인 자세는 말단 선원으로서 배를 탔던 20대 때 그대로다. 그의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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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호

이판정 콤피아 대표 “포털 분양합니다!”

첫 개발 자국어인터넷주소로 콘텐츠실명제·포털공유론 제시 “키워드 포털 분양해 개인소유, 검색어광고시장 공유” ‘입으로 콜(Call)하면 쿨(Cool)하게 올라와(UP)’ 꿀업(ccoolup.com) | 김영섭 기자 kimys@newspim.com 이판정(55). 1995년 넷피아를 창업한 이후 많은 사람이 편한 길을 선택할 때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자국어인터넷주소 사업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1997년 네임서버 기반의 자국어인터넷주소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후 지금까지 95개국 자국어(National Language) 키워드형 인터넷주소 글로벌 아키텍처를 설계하고 각국에 보급해 왔다. 특히 넷피아는 2003년 2월 유엔의 공식 초청을 받아 유엔 주관 세계정보사회정상회의에서 넷피아의 키워드형 자국어도메인을 발표했다. 대한민국 벤처기업이 유엔의 공식 초청을 받아 발표한 최초의 사례다. 뿐만 아니라 2003년 유엔에서 발간한 ‘Digital Reach’에 넷피아의 자국어인터넷주소가 등재됐다. 이어 2000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최대주주인 미국 기업 리얼네임즈가 넷피아를 300억원에 인수하려는 제의를 거절, ‘골리앗과 맞서 싸운 다윗’의 대명사이자 용기 있는 벤처기업인으로 인정받는다. 넷피아와 25년을 함께해 온 그가 이젠 콤피아(Compia)로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나는 구글처럼 연간 150조원을 벌 수 있는 ‘키워드 포털’을 분양하는 사업자”라고 말했다. 그가 개발한 ‘꿀업(ccoolup.com)’ 앱에 대해 “입으로 콜(Call)하면 쿨(Cool)하게 올라온다(Up)는 의미이고, C가 두 개인 만큼 꿀업으로 부르게 됐다”고 설명한다. 이 대표의 지난 25년 사업은 인터넷에서 “실제 이름, 실명을 인터넷주소(도메인)로 갖도록 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인터넷 주소창에서 가고자 하는, 또 찾고자 하는 장소나 콘텐츠에 대해 “실질적인 이름, 실명”을 부여해 바로 찾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제 이 이름을 ‘자판’으로 입력하지 않고 입으로 부르면(Call) 바로 응답(Cool Up)하는 시스템 개발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모든 콘텐츠에 이름을 붙이는 ‘인터넷 콘텐츠 실명제’라고 할 수 있다. 금융 부조리를 뿌리 뽑기 위해 금융실명제가 도입됐듯이, 인터넷 주소 및 검색어 시장을 왜곡시키는 ‘공룡 포털’의 횡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콘텐츠가 주인으로서 모든 콘텐츠에 이름을 붙여 누구든지 한 번에 찾아가도록 ‘인터넷 실명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국 자국어로 실명을 불렀을 때 바로 원하는 사이트나 콘텐츠를 얻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 ‘실명’을 ‘꿀업’에 등록하면 ‘실명’의 검색어 포털 페이지는 개인 소유가 가능하다. 그래서 이 대표는 자신을 ‘구글 같은 포털 분양 사업자’라고 소개한다. 개인이 키워드를 분양받아 ‘구글식 검색포털’을 운영토록 하는, 이른바 ‘키워드 포털’ 분양 플랫폼인 꿀업은 2017년 12월 서울시 우수발명 전시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국내 기업 최초 유엔 발간 ‘Digital Reach’ 등재 Q. 이판정 하면 넷피아고, 넷피아는 자국어인터넷주소로 유명한데. A. 넷피아는 한글도메인네임이 아니라 95개국 자국어도메인네임을 만든 회사다. 한국에서는 한글도메인네임으로 불린다. 다시 말해 넷피아의 자국어 도메인네임이란 한국에서는 한글 실제 이름, 중국에서는 중국 이름, 일본에서는 일본어로 된 이름, 즉 기업명과 상표명 브랜드 그 자체가 곧 인터넷 식별체계가 된다. 이는 1999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태인터넷운영기술총회(APRICOT)에서 ‘아시아의 인터넷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 박사의 안내로 전 세계 최초로 발표되면서 시작됐다. 제가 쓴 ‘인터넷 난중일기’(도서출판 원목)에 보다 자세히 나와 있다. 일독을 권한다. Q. 꿀업과 인터넷실명제, 포털 공유를 이해하려면 ‘음성시대’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다. A. 지금은 모바일 시대이자 키워드로 입력하는 ‘자판시대’에서 입으로 입력하는 ‘음성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렇게 되면 산업군과 서비스, 소비패턴, 생활패턴이 모두 따라 바뀐다. 앞으로 산업군이 어떻게 형성될지 그 고민을 민관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이 분야에서 또 한 번 후회를 하게 되는 시대를 맞을 수 있다. 음성 시대이기에 미래는 콘텐츠네임 플랫폼이 국가적 큰 과제가 될 것이다. 콘텐츠네임 플랫폼은 각종 기기에서 필수적인 네임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모든 기기가 더욱 스마트해지는 혁신을 앞당길 것이다. Q. 콘텐츠네임 플랫폼이 왜 국가적 과제인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A. 주소창을 벗어나 모든 기기에서, 또 모든 인터페이스에서 콘텐츠로 직접 접속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지난 20년 넷피아의 노하우는 음성(말) 입력 시대를 대비한 20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모든 콘텐츠네임의 네임플랫폼을 위해 준비하는 20년이었다. 지난 20년과 미래 20년은 규모부터 ‘Billion(10억) 달러’ 단위에서 ‘Trillion(조) 달러’ 단위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다. 음성 시대로 넘어가면서 단순 웹주소인 도메인네임의 영역에서 모든 콘텐츠네임의 영역으로 전환되면서 이른바 ‘영역이 없는’ 산업으로 확장된다. 예를 들어 웹주소는 서버주소였지만 콘텐츠네임은 모든 하위 디렉토리의 콘텐츠 그 자체이기에 대상 영역이 사용자가 ‘말로 부르는’ 모든 영역이 된다. 이름을 가짐으로써 곧 해당 콘텐츠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과 같은 효과를 일으키며 산업의 선순환에 기여하는 필수 플랫폼이 된다. Q. 콘텐츠네임이 갖는 산업적 의미는 구체적으로 뭔가? A. 예컨대 아마존이 책을 파는 회사에서 이젠 종합 쇼핑몰 및 유통을 넘어섰고 산업의 상당한 부분까지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여기서 사용자가 반드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기존에는 아마존 영문도메인네임 등록비 연간 1만~2만원 정도의 시장이지만, 콘텐츠네임 시대에는 아마존이 파는 모든 상품명이 대상이기에 시장의 규모가 혁신적으로 커진다. 음성입력시대에는 사용자가 요구하는 사항이 혁신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즉, 자판입력시대는 리스트를 원했지만 음성시대는 즉답을 원하기 때문이다. 가령 집에서 사용하는 일명 AI스피커의 경우 리스트가 나오면 사용자는 외면한다. 음성은 즉답이고, 즉답을 위해서는 모든 온라인 콘텐츠에 이름이 필요하다. 모든 콘텐츠는 자신의 이름이 없고 긴긴 주소(URL)만 있기에 콘텐츠 입장에서는 매우 슬픈 일이다. ‘스마트폰의 꽃, 내가 인터넷콘텐츠(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긴 URL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꿀업(ccoolup.com)의 꽃이 되었다.’ 콘텐츠네임을 실현하는 앱 ‘꿀업’을 김춘수 시인의 ‘꽃’에 빗대어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 같다(웃음). Q. 콘텐츠네임의 실명, 인터넷실명제 시대에 결국 ‘네임’이 중요하게 됐나? A. 그렇다. 농업시대의 파워는 노동력이지만 산업시대의 파워는 자본이고 지하자원이 그 리소스였다. 지식정보산업시대의 파워는 정보력이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면 ‘지식정보시대의 자원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대부분 망설인다. 지식정보시대의 자원은 다름 아닌 우리가 매일 쓰는 언어 그 자체다. 언어에는 사적 자원과 공적 자원이 있다. 사적 자원은 기업의 이름과 상호, 상표 등이고 공적 자원은 주인이 없는, 즉 상표 침해가 되지 않는 이름인 일반명사 등이다. 현재 구글은 일반명사 약 10만개로 전 세계에서 약 150조원을 벌고 있다. 알다시피 20세기 자원을 파는 회사는 지난 100년간 늘 100대 기업에 올려져 있었다. 바로 지하자원의 대명사 석유 회사다. 그럼 21세기는 무엇일까? 바로 언어자원을 파는 회사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이 그 예다. 알파벳은 언어자원으로 각국에서 아무 마찰 없이 연간 150조원가량을 캐오고 있는 21세기 언어자원 회사다. 넷피아의 관계사인 콤피아는 모든 콘텐츠에 이름을 붙여 콘텐츠 유토피아를 만드는 회사다. 모든 콘텐츠 이름이 곧 도메인네임처럼 연결비용을 내는 리소스다. “우주 콘텐츠네임 등록센터도 구축하겠다” Q. 콘텐츠네임과 관련한 향후 계획은? A. 앞으로 지구의 모든 콘텐츠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콘텐츠에도 이름을 붙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래서 유럽연합(EU)에서 만들고 있는 ‘우주도시(City of Space)’ 측과 협업을 추진 중이다. 협업으로 ‘우주도시’에 가입하고 오는 2025년 우주에 우주 및 글로벌 콘텐츠네임 등록센터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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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호

'바이오 신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재계 리더 '우뚝'

서정진 회장, 청와대 초청 받아 바이오 대변자 역할 4년 만에 언론 앞에서 비전 발표하는 등 행보 두각 | 김근희 기자 keun@newspim.com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의 올해 행보가 남다르다. 신년 간담회, 청와대 초청,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발표 등을 이어가며 바이오 산업 맏형 노릇은 물론 재계 리더로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작은 바이오 벤처기업 창업자였던 서 회장은 17년 만에 대기업 총수와 나란히 청와대에 초청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달라진 위상만큼 서 회장도 바이오 산업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정진 회장에겐 남다른 2019년 올해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가장 눈에 띈 사람이 서 회장이었다. 서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산업계의 굵직한 인사들과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계와의 소통을 위해 마련한 자리에 참석했다. 서 회장은 공식 행사 후에도 문 대통령 및 일부 기업인들과 함께 25분가량 경내를 산책했다. 작은 바이오 벤처 창업자였던 서 회장이 17년 만에 굴지의 대기업 총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서 회장은 문 대통령에게 한국 바이오 산업의 성장성을 피력했다. 특히 “대통령께서 주 52시간 정책을 해도 우리 연구원들은 짐을 싸 들고 집에 가서 일합니다. 그리고 양심 고백을 안 하죠”라며 52시간 근무 정책과 현장 간 괴리를 꼬집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 회장은 연초부터 언론과의 접촉도 강화했다. 셀트리온 그룹 신년 간담회를 열고 직접 사업 및 비전을 발표했다. 서 회장이 언론 앞에 직접 나선 것은 2015년 3월 오창공장 준공식 이후 약 4년 만이다. 서 회장은 이어 올해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메인 트랙 발표를 지정받았다.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는 매년 40여 개국 1500여 개 제약·바이오 기업이 참여하는 제약·바이오 산업 최대 투자 행사다. 콘퍼런스에서 발표하는 장소는 기업의 업계 위상에 따라 달라지는데, 메인 트랙은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의 본 행사장으로 존슨앤존슨(J&J) 등 유수 기업들만 사용할 수 있다. 바이오 업계 리더로 거듭난 서정진 서 회장이 올해 이처럼 광폭 행보를 펼치는 것은 셀트리온그룹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셀트리온그룹은 바이오 업체 중 처음으로 사실상 대기업 반열에 들었다. 대기업 집단 기준은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이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2017년 4월 셀트리온을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했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셀트리온의 시가총액 순위는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고,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1위 기업이다. 명실상부한 ‘K-바이오’ 리더이자 재계 리더로 떠오른 서 회장이 업계를 대변해 한국 바이오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있는 셈이다. 서 회장이 문 대통령과 만남에서 셀트리온이 아닌 바이오 산업의 성장성을 강조한 것도, 52시간 근무로 인한 업계의 어려움을 전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그는 바이오 창업을 통해 ‘샐러리맨 신화’를 이룬 만큼 창업, 청년들의 도전을 격려하며 바이오 산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곤 한다. 서 회장은 앞서 신년 간담회에서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무수히 많은 장애물이 오지만, 지치지 않고 가다 보면 터널은 끝난다”며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가 용기를 갖는 데 셀트리온의 사례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샐러리맨 출신인 서 회장은 2002년 ‘바이오 불모지’라고 불리던 한국에서 셀트리온을 창업했다. 17년이 지난 현재 셀트리온은 미국, 유럽 등 선진 시장 등에 바이오시밀러를 판매하고 있으며, 첫 자가면역질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램시마’는 유럽에서 이미 원조 의약품의 시장점유율을 뛰어넘었다. 서 회장이 ‘2020년 은퇴’를 선언한 것도 바이오 산업의 리더로서 뜻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은퇴 이후 회사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꿀 계획이다. 대신 은퇴 후 창업 아카데미를 세우는 것이 꿈이다. 바이오 산업의 성장에 계속 기여하겠다는 의중이다. 직판체제로 ‘넥스트 셀트리온’ 예고 서 회장은 올해 새로운 도전을 예고했다. 셀트리온이 국내 최고의 바이오 업체로 성장한 만큼 이제까지와는 다른 비전을 제시하고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셀트리온은 2020년까지 완전한 바이오·화학 합성의약품 판매망을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국내 업체 중 제약 선진국 시장에서 직접 판매망을 구축한 기업은 없었다. 이는 인프라와 네트워크가 견고한 다국적 제약사들만 가능한 일로 여겨져서다. 서 회장이 직접 언론 앞에 나서면서 이 같은 계획을 밝힌 것은 ‘직접판매망 구축’의 중요성과 절실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은퇴 전 마지막 과제도 직접판매망 구축이다. 서 회장은 “안 가본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적중할지 장담은 못하지만 밀어붙이겠다”며 “바이오, 케미컬의약품, 유통망까지 다 장악하면 1400조원 규모의 세계 제약 시장에 한국 기업이 나갈 수 있는 길은 다 연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지난해 네덜란드 주재원으로 일하며 직접 영업 현장을 둘러봤다고 밝혔다. 유럽 의약품 시장은 입찰 중심인 만큼 직접판매망 구축 가능성이 있다는 게 서 회장의 판단이다. 회사는 올 하반기 ‘램시마 SC’를 시작으로 직접판매를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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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호

심효섭 KB자산운용 액티브운용본부장 "낙폭과대 우량주에 기회"

올해 주목할 업종으로 IT·조선·정유·음식료 꼽아 “수익보단 마이너스 관리가 먼저...낙폭과대주 체크해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긍정 평가 | 김민수 기자 mkim04@newspim.com | 정일구 사진기자 mironj19@newspim.com 지난해 국내 주식시장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연초엔 장중 2600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다 10월 대조정을 기점으로 2000선이 무너지는 등 변동성이 상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 사이에선 ‘패시브’가 화두로 떠올랐다. 펀드매니저가 골라주는 종목이 아닌, 지수 움직임에 따라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패시브 전략이 변동성이 확대된 시장에서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 해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액티브 전략의 매력이 사라진 건 아니다. 능력 있는 펀드매니저의 직감과 판단력이야말로 시장을 크게 이길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다. 올해 글로벌 증시 향방에 대한 이견이 극명한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의 금리 인상 컨센서스가 흔들리면서 최근 변동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No-Deal Brexit) 가능성도 글로벌 증시를 흔들 수 있는 이슈다. 자타 공인 액티브 운용의 실력자 심효섭 KB자산운용 액티브운용본부장을 만나 올해 증시 현안과 방향성, 개별종목 투자 팁에 대해 들어봤다. “작년과 모든 것이 반대” 시장을 이끄는 힘 연초 2000선을 하회하던 코스피 지수는 외국인 매수세에 힘입어 최근 2200선까지 고점을 끌어올렸다. 주요 기업들의 실적 우려가 높아진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흐름이다. 이에 대해 심효섭 본부장은 “작년과 모든 것이 달라졌다”며 “증시가 호조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답한다. “코스피는 글로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선행지수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작년 1년 내내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미국이 금리 인상 스탠스를 유지하면서 달러 강세가 심화됐고, 이는 곧 펀더멘탈이 약한 신흥국의 발작을 초래했죠. 여기에 미·중 무역분쟁 역시 투자심리를 한층 약화시켰어요. 하지만 올해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작년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기점으로 금리 인상 컨센서스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당초 시장에선 미 연준이 올해 최대 네 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12월 회의에서 금리 인상 횟수를 2회 이상으로 표현하며 다소 후퇴된 의견을 내놨고 1월 회의에선 ‘점진적인 추가 금리 인상(Further gradual increase)’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나아가 “양적긴축 프로그램을 조정할 수 있으며, 기존 가이던스를 재검토하고 있다”는 별도의 성명서도 내놨다. 글로벌 자금의 ‘머니 무브’ 역시 신흥국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1월 한 달 간 코스피로 유입된 외국인 자금은 4조3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환율 급등을 경험한 이머징 국가들도 외국인 자금 유입에 힘입어 3~10%대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상반기 반도체·IT, 하반기 정유·조선·음식료 “기본적으로 코스피 흐름을 추종하는 게 패시브 전략이라면, 액티브 운용의 기본은 코스피를 이기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바텀업 측면에서 구조조정을 통해 턴어라운드를 시도하거나 신제품, 신시장 개척으로 성장동력을 찾는 기업·종목을 선호합니다.” 심 본부장은 액티브 운용 담당자답게 올해 주목할 필요가 있는 업종 추천도 과감했다. 상반기에는 최근 지나친 낙폭으로 밸류에이션 매력이 최저점에 온 반도체와 IT, 하반기는 2020년 IMO 협약 관련 수혜주로 분류되는 조선과 정유를 첫손에 꼽았다. “현 상황에선 밸류에이션이 낮고 낙폭과대 종목이 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도체와 IT가 여기에 해당되고 철강도 마찬가지죠. 하반기엔 오는 2020년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IMO 국제협약 발효를 앞두고 조선, 정유도 호조를 보일 겁니다.” 그는 음식료주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 인건비, 원가 상승에도 가격을 인상하지 못해 실적이 많이 부진했어요. 하지만 올해 밸류에이션 매력과 더불어 원가 하락과 가격 인상 등 호재가 겹쳐 반등에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이너스 관리도 중요...낙폭과대주 체크를” 최근 패시브 전략이 각광받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일반투자자가 특정 업종이나 개별종목 추이에 관심을 갖는다. 누구나 소위 ‘대박’을 노리기 위해 저평가된 우량 종목을 선별해 집중 매집하는 ‘선구안’을 갖고 싶어 한다. “모멘텀이 좋고, 주위에서 다 사라고 하고, 매수 리포트가 쏟아지는 종목은 누구나 사고 싶은 종목입니다. 한마디로 모멘텀이 응축된 상태인 거죠. 적절한 시기에 탑승하면 단기간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로 물릴 가능성도 높아요. 경기가 너무 좋으면 다운텀이 골짜기가 깊은 것처럼, 좋은 종목을 추종하는 것만이 답이 될 순 없습니다. 경기와 주가는 결국 사이클입니다.” 때문에 심 본부장은 투자자들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마이너스 수익률이 나지 않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실을 보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개별 업종 및 종목을 편입하고자 할 땐 항상 낙폭과대주를 눈여겨보세요. 충분히 오른 종목에 들어가 그 이상 수익을 거두는 시간보다 단기 급락한 종목의 반등 주기가 상대적으로 빨리 찾아옵니다. 우량주란 확신이 드는 종목이 많이 빠졌다면, 그것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여기선 시간이 투자자들의 편이 될 수 있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국내주식 저평가 인식 전환” 심 본부장은 최근 화두로 떠오른 행동주의 펀드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주요국 증시 가운데 한국의 밸류에이션이 가장 싼 것은 배당 때문입니다. 국내 기업들의 기조가 바뀌긴 했지만 배당성향은 여전히 낮아요. 배당을 많이 하면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올라가고, 이는 기업가치 상승으로도 이어집니다.” 다만 일련의 행동주의 움직임보다는 정부 주도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노력을 더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기점으로 주주친화 정책에 대한 기업들의 마인드 변화를 꾀할 수 있고, 나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봤다. “충분한 캐시플로우(현금유동성)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현금보유량도 좋아 언제든 인수합병(M&A) 시장에 뛰어들 여력이 있는 회사가 많습니다. 이들 기업이 현금보유액을 자신의 돈이 아닌 줄 돈으로 인식하고 배당성향 향상에 나선다면 주가 상승에도 호재가 될 겁니다. 이미 미국이나 일본 기업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기업가치가 10배 이상 성장한 바 있습니다. 한국 역시 좋은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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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더본코리아, 국내 1350여개·해외 80개 매장 운영 ‘쿡방·집밥 슈가보이’에서 외식업계 ‘대변가’로 관광 ·유튜브·교육에서 ‘미래 먹거리’ 찾는다 | 장봄이 기자 bom224@newspim.com “저는 무엇보다 먹는 걸 좋아합니다. 강의에서 젊은 친구들 만나면 잘하는 일 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 하라고 해요. 아직도 음식 공부 하고 음식 관련 자료 찾아보는 게 제일 재미있습니다.” 국내 외식업계는 물론 방송 예능 프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다. 백 대표는 작년 한 해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물론 국회 국정감사, 정부 행사 등에도 참석하며 적극적인 대외활동 행보를 보였다. 특히 외식업과 자영업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냈고, 그의 솔직 화법은 수많은 팬과 동시에 ‘안티’ 팬을 낳았다. 그는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한다. “비난받을 때 받더라도 우리나라 외식업에 필요한 얘기는 계속 하겠다. 미래에 되돌아보면 반드시 필요한 얘기가 될 것이다.” 그는 이미 국내 외식업계 파워 리더로 부상했다. “식당 운영이 재미있어” 위기를 기회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1966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사회사업학과(구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포병 장교로 군대를 마친 후, 1993년부터 서울 강남 논현동에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인테리어 사업으로 시작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식당을 하나 인수했다. 외식업에 첫발을 들여놓은 순간이었다. 백 대표는 뉴스핌 월간ANDA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인테리어 회사 하다가 식당을 인수했는데 재미있었다. 처음엔 식당에서 벌어서 (인테리어 사업 적자를) 메우는 식이었다. 그러다 인테리어 사업도 잘되면서 건축 자재를 수입하는 회사로 키우게 됐다. 건축 회사가 성장하면서 식당에선 손을 뗐다. 그런데 건축 사업이 잘됐지만 재미가 없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고 미래가 명확하지 않은 게, 재미가 없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건축 회사가 망하고 식당만 남게 됐다. 채권자들 불러놓고 이 식당으로 어떻게든 빚을 갚겠다고 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식당을 운영했다. 이전에는 진심보다 어떻게 손님에게 포장해서 내놓을까, 잘 속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마음을 내려놓으니 편해졌다. 손님에게 덜 친절하더라도 편하게 생활하니 오히려 진심으로 다가왔다. 일도 재미있어서 음식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쏟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일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면 손님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으로 너무 재미있었고, 사업은 점점 커졌다.” 1994년 더본코리아 설립...브랜드 확장 가속화 더본코리아 법인은 1994년 설립했다. 이후 1998년 한신포차, 2005년 새마을식당, 그다음 해에는 홍콩반점0410 등 브랜드를 차례로 내놓았다. 그가 손대는 브랜드마다 성공의 연속이었다. 특히 2006년 시작한 커피 프랜차이즈 빽다방은 가장 많은 가맹점을 보유하게 됐다. 현재 더본코리아 브랜드 수는 총 20개(공정거래위원회 등록 기준)로, 11개 브랜드는 가맹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내 매장 수는 1350여 개, 해외 매장 수는 80개다. 해외 사업은 2005년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일본, 미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에 본가, 새마을식당 등 다양한 브랜드가 진출했다. 현재 중국 내 매장 수는 24개에 이른다. 그의 브랜드 강점은 ‘가성비’다. 대표 주자인 빽다방은 아메리카노 가격이 1500~2000원, 원조커피 2000~2500원, 라떼 2500~3000원, 바닐라라떼 3000~3500원이다. 저가 커피 브랜드 중에서도 저렴한 편이다. 디저트 가격도 마찬가지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1500원, 사라다빵 2000원, 소세지빵 2500원 등이다. 양은 많고 가격은 낮은 가성비를 앞세우며 인기를 얻고 있다. 백 대표는 가성비를 생존 전략으로 강조한다. 그는 “처음엔 어떻게 경쟁에서 쉽게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성비를 택했다”며 “경기가 어려워지고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다 보면 결국 비싼 음식부터 줄이게 된다. 외식업이 살려면 셋 중에 하나다. 소비자가 소비를 늘리거나, 우리가 가격을 낮추거나, 아니면 매장 수가 줄어야 한다. 이 중에 뭐가 먼저냐의 문제다. 외식업이 발달한 미국이나 일본만 봐도 임대료나 인건비가 우리보다 비싼데 3000~4000원대로 먹을 수 있는 외식 매장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틈나는 대로 해외에 나가 둘러본다. 미슐랭이나 전통 있다는 집은 안 간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집에 가는데 결국은 다 가성비 식당이다. 미국, 중국, 일본 등도 가성비 가게가 많다”며 “외식문화가 발달한 해외 프랜차이즈들은 잘된다. 우리나라가 식당 개수가 많다고 하지만 비율로 따지면 일본이 개인 가게보다 프랜차이즈가 더 많다. 우리가 비정상적인 게 아니다. 물론 경쟁력 없는 프랜차이즈는 도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슈가보이’에서 자영업 ‘대변자’로 백종원 대표가 방송가에서 주목받은 건 2015년 방송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부터다. 백 대표는 당시 방송에서 요리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남다른 철학, 재치 있는 입담으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쉬운 요리법을 공개해 높은 인기를 얻었다. 쿡방(요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송)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다고 평가받았다. 특히 요리할 때 설탕을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슈가보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tvN ‘집밥 백선생’, ‘한식대첩’,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SBS ‘골목식당’ 등 여러 음식·외식업 관련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앞세운 집밥 백선생에서는 만능간장, 대패덮밥, 가지볶음, 백종원 김치찌개·된장찌개 등을 선보였다. 방송 다음날 동네 슈퍼마켓에서 재료가 품절되는 현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야말로 ‘히트’ 레시피였다. 그가 방송에서 인기가 높은 비결 중 하나로 말투와 입담이 꼽힌다. 특유의 충청도 사투리 억양과 꾸밈없는 말투는 많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보는 이들에게 친근감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거침없는 ‘사이다’ 발언으로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도 참고인으로 출석한 그는 국감 스타로 등극했다. “도태될 자영업자는 도태돼야 한다”는 발언은 화제를 낳았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백 대표는 “자영업 하지 마라, 포화 상태다 그러면서 당신은 프랜차이즈를 늘리느냐는 비판을 받는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지만 저는 원래 이런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해야 하고, 나아가 이런 사업을 하려는 사람을 도우려는 것”이라며 “능력이나 준비가 돼 있는 자영업자가 훨씬 더 경쟁력이 있다고 누누이 얘기했다. 대책 없이 경쟁력도 갖추지 않고 들어왔다가 망하는 것보다는 눈높이를 낮춰 차라리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것도 좋지 않으냐는 생각이다.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 없다면 건전한 프랜차이즈는 준비 안 된 자영업자가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곳이 될 거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음식과 관련된 노하우와 레시피를 담은 저서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주요 저서로는 ‘백종원의 혼밥 메뉴’, ‘백종원의 장사 이야기’,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메뉴55’, ‘백종원의 식당 조리비책’, ‘초짜도 대박나는 전문식당’, ‘백종원의 肉’ 등이 있다. 관광·유튜브·교육 ‘미래 먹거리’ 백 대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개인 계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그가 최근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 꽂혔다. 유튜브를 활용한 영상 관련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 국내 관광·음식 사업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우리나라에 수출이나 다양한 사업 분야가 있지만 미래 유망 사업은 관광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관광에 필요한 유튜브 활동을 해보려고 한다. 혼자서 할지, 사람들을 모아서 투자를 할지, 아니면 아예 사업화할지에 대해선 고민하고 있다.” 2017년 1월 오픈한 제주도 더본호텔도 관광 사업 준비의 일환이다. 백 대표는 “휴가 때마다 비용 때문에 사람들이 동남아를 검색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에도 진주 같은 제주도가 있지 않으냐”며 “어쨌든 관광지로 발전시키려면 국내 사람들이 먼저 자주 가야 하고, 관광지로 정착되면 외국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올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제주도는 물가가 비싸졌기 때문에 나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전했다. 더본호텔 숙박비는 스탠드 더블 2인실 기준으로 6만원이다. 2인 조식이 포함된 패키지는 7만원이다. 호텔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춘 것으로, 역시 가성비 호텔로 온라인상에서 입소문이 났다. 지난해 더본호텔의 평균 객실점유율은 96%를 기록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백 대표는 한식 세계화에 대해선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자신도 해외 사업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지만 현지에서 한식이 생활화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더본코리아는 중국에서도 지속 투자해 사업을 확대해 가고 있다. 중국의 경우 프랜차이즈 형태로 진출한 것은 아니다. 관리자는 파견하고 현지에서 투자를 받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현지 직원 교육센터를 짓고 있다. 조만간 교육시설이 완성되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교육 분야의 사업 아이템도 추진 중이다.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하나의 사회 공헌이자 사업 아이템으로 봤다. 식당 형태로 운영하면서 모든 창업자들이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배울 수 있는 방식으로 교육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뭐가 부족한지 모르고 자영업을 시작하는 게 문제이기 때문에 창업자들이 학원을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발전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백 대표는 말했다. ‘될 수 있으면 창업하지 말라’고 권하는 그이지만, 청년들에게는 창업하라고 말한다. 방송 프로그램(골목식당)에서도 제대로 할 것 아니면 하지 말라는 취지로 말한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창업의 목적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청년들이 귀한 경험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창업을 활용하라고 강하게 권한다. 예산고 이사장...정치는 ‘손사래’ 백종원 대표의 조부는 예덕학원재단(예산고, 예화여고)을 설립한 백창현 씨다. 충남교육감을 지낸 부친 백승탁 씨는 예산고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백 대표가 이 자리를 맡고 있다. 배우자는 배우 소유진 씨로 2013년 1월 결혼했다. 백 대표와 동갑내기인 배우 심혜진 씨가 두 사람을 소개시켜 준 것으로 알려졌다. 백 대표는 집에서도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 아내 음식은 본인이 담당하고 있다며 가정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선 백 대표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외식·창업 분야의 중심에 그가 서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절대 없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고 말해 꼬투리를 잡혔는데, 그건 내가 과거에 ‘절대 결혼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결혼했기 때문에 ‘절대’라는 단어를 더는 쓰지 않는다는 것이지, 정계 입문에 여지를 남긴 것은 아니다. 이제는 ‘분명히’라는 단어를 써서 말하겠다. 분명히 정치는 안 한다. 외식 사업으로 사회에 순기능적 영향을 미치고 싶을 뿐이다. 자영업자들은 쓴소리를 싫어하겠지만 지금 지적받은 것을 훗날에는 다행이라며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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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호

고대사 연구가로 변신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30년 금융관료,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 출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이정표 제시 위한 작업” 경제위기는 진행형...한반도 ‘대물류의 장’에서 해법 찾아야 | 김연순 기자 y2kid@newspim.com | 민지현 기자 jihyeonmin@newspim.com | 윤창빈 사진기자 pangbin@newspim.com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현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이 고대사 연구가로 변신했다. 한민족의 기원을 추적한 책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를 발간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30여 년간 금융실명제, 외환위기, 저축은행 부도 사태 등 경제위기 때마다 각종 현안을 도맡아 처리하며 ‘대책반장’이란 별명을 얻은 정통 경제관료다. 개각설이 나돌 때마다 어김없이 유력한 경제사령탑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이다. 이 때문인지 김 전 위원장의 고대사 연구, 한민족 DNA 찾기는 낯설기까지 하다. 한민족 DNA 추적은 미래에 관한 얘기 하지만 그의 ‘한민족 DNA 추적’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관한 얘기다. 김 전 위원장은 월간ANDA와의 인터뷰에서 줄곧 “한민족 DNA를 찾는 내 목표는 과거가 아닌 미래 얘기를 하려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고대사, 유라시아 역사에서 한민족의 뿌리를 찾고, 이를 토대로 세계 경제, 한국 경제의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을 찾는다는 얘기다. 몽골고원에서 중앙아시아, 유럽 대평원까지 10년간 50차례 5만km에 이르는 그의 현장답사와 집요한 추적의 기록이 단순한 고대 역사서로 읽히지 않는다. Q 정통 경제관료인데 고대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을 굉장히 부러워했다. 원래 대학에서 사학을 공부하려고 했지. 훨씬 재밌잖아(웃음). 부모님 권유로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대학 졸업 후 슐리만처럼 무역회사인 삼성물산에서 1년 동안 근무하다가 주재실업이란 회사를 차렸다. 슐리만은 암스테르담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며 큰돈을 벌어들인 뒤 트로이 유적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2차 오일쇼크 때 회사는 망하고 우연치 않게 공무원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Q 왜 ‘한민족 DNA’를 찾게 됐는지? A “1960년 이후 60년 동안 세계 GDP는 7.5배 증가했지만 우리나라 GDP는 40배 증가했다. 우리처럼 폭발적인 에너지로 성장한 케이스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우리는 이걸 기적이라고 한다. 인력, 기술, 자본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이 기적이 왜 일어났는가를 찾아가는 여정이 내 인생의 여정이다. 첫 번째가 승부처를 해외에 둔 전략이고, 더 중요한 마지막 열쇠가 한국인, 한민족 DNA다. 유전자에서 기적의 비밀을 찾은 거다.” Q 한민족 DNA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비밀을 찾은 건가? A “한국인의 특징은 끈질긴 생존 본능, 승부사 기질, 강한 집단의지, 개척자의 정신 4가지로 요약된다. 이 기질이 어디서부터 유래했냐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2500년 동안 유라시아 대초원(연해주부터 만주, 몽골고원, 중앙아시아, 우크라이나, 동유럽, 아나톨리아 반도까지 동서 8000km)에서 세계사를 호령한 기마민족, 초원제국 전사들과 DNA가 똑같다. 책에서 계수로, 유전학적으로 증명을 했다. 기마민족의 오리진(기원)이 어디냐를 밝혀낸 거다. 북방 기마민족의 오리진이 바로 한민족이다.” Q 한민족이 기마민족의 기원이라는 근거는? A “단재 신채호 선생은 흉노는 우리나라와 동족이라고도 하고 고조선의 속민이라고도 했다. 중국 사서에 보면 고조선과 흉노를 같이 본다. 흉노의 무덤, 유물, 생활관습, 언어 이런 것들이 우리와 굉장히 유사점이 많다.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은 누구냐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고구려의 후예다. 고구려 후예 중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동생이 대하발인데 칭기즈칸은 대하발의 19세손이다. 책에 나오는 얘기다. 누르하치(후금)도 역사책에 발해왕의 후손이라고 얘기한다. 이게 족보다. 시대에 따라 흉노·선비·돌궐·몽골·여진으로 불렸던 기마민족은 수많은 유적·유물이나 사서의 기록과 문화·언어·관습에서 우리하고 긴밀한 관계에 있다. 그 기원이 고조선이다.” “북방 기마민족의 기원이 바로 한민족이다” Q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A “유라시아 대륙을 넘나들며 사비로 발품을 팔아 현장에서 하나하나 확인한 이유는 우리의 저력, 우리의 힘과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물론 한민족의 우월성을 자랑하려고 한 건 아니다. 우리가 미래에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세계 경제는 굉장히 어렵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세계 경제의 진단과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Q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A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경제 침체는 ‘계속되는 위기(on-going crisis)’로 이어지고 있다. 1929년의 대공황은 수요 부족이라는 심플한 원인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전개되는 글로벌 경제위기는 과부채 문제(과잉 유동성)에 기인한다. 1970년대 말부터 40년 가까이 대규모 유동성을 동원해서 성장했는데 그 결과 가계, 기업, 정부, 금융회사 모두 빚더미에 앉았다. 그게 터진 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초대형 유동성 공급으로 외형상 2008년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것으로 보이지만 세계는 잠재 리스크가 누증되고 불안정은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부채로 인해 생긴 위기를 또 부채로 막은 거다. 과부채 문제가 해소되기 전까지 불안 국면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분쟁, 유럽 리스크 등의 암초가 터지면 글로벌 침체로 굉장히 어려운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Q 한국 경제의 어려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되는 건가? A “대외적으로 어려운 경제 환경과 함께 대내적으로 한국 경제의 암초를 다섯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우선 과도한 부채, 특히 가계부채가 문제다. 또한 산업 경쟁력 상실인데 우리 1등 산업 반도체, 디스플레이, 무선통신 등이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청년실업과 고용절벽, 경제 양극화와 갈등도 한국 경제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세계 경제 어려우니 우리도 숨고르기할 때 Q 그렇다면 한국 경제는 위기인가? A “세계 경제가 나쁘면 한국은 무조건 나쁘게 돼 있다. 세계는 지금 위기다. 그러면 한국 경제도 위기다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 경제가 나쁜 것이 정책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첫째 요인은 해외다. 세계가 어려우면 당연히 우리도 어렵다. 국내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1km를 100m 달리기하듯이 뛰어왔기 때문이다. 숨고르기를 해야 하는 때이고, 숨고르기를 안 하고 또 뛸 수는 없다. 안에는 숨고르기를 하는 상황이고, 밖은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한다.” Q 한국 경제 위기와 관련, 소득주도 성장 등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A “잘나가던 한국 경제가 갑자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답이 안 나오는 거다. 정책의 결과로 위기가 왔다, 이런 얘기들은 식상하다.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정부 정책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다. 근데 그건 마이너한 거다. 우리나라는 해외에서 살아나가는 경제이고, 세계가 굉장히 나쁘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세계 움직임을 보면서 우리의 위치, 우리가 앞으로 닥칠 문제들을 봐야 한다. 세계 11위 경제가 정부 정책 때문에 흔들리지는 않는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가지고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 건지를 찾아야 한다.” Q 한국 경제 위기 극복의 활로는 어떻게 찾아야 하나? A “우리가 기적을 일으켰던 가장 중요한 게 DNA였기 때문에 그걸 돌파하는 열쇠도 DNA다. 성공의 가장 큰 비결이 안에 있다. 앞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에서 발전해 나가고 살아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우리 안에 이미 있다. 한민족의 DNA는 위기와 기회를 만나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다는 특질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Q 한민족의 특질이 위기 극복에 어떤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나? A “우리가 위기와 마주했을 때 어떻게 돌파할 수 있느냐가 이 책의 결론이다. 2차 산업혁명을 뛰어넘는 새로운 생산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경제위기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의 주요 생산기지를 선으로 이어보면 한반도가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반도는 세계적인 물류·생산기지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한다. 여태껏 해보지 않은, 혁명적이고 독창적인 생산 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기에 국제적 협력과 이익의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 Q 새로운 생산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A “한반도는 세계 거대 제조업체의 중심에 있다. 쉽게 말해 생산기지와 물류기지로 가장 적합한 곳이다. 많은 분석학자들 얘기다. 세계적인 생산국가인 중국, 일본, 한국, 미국을 둔 세계 500대 제조업체의 중앙이 한반도다. 또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러시아의 시베리아횡단철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고, 목포에서 신의주와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대(大)물류의 장이 한반도에서 구현될 수 있다. 현재 1년에 4개월 정도만 열리는 북극 항로도 2030년에는 1년 내내 열리게 된다. 북극 항로를 통하면 부산에서 출발해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가는 데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것보다 40% 비용이 절감된다. 한반도가 세계적인 물류중심지가 될 수 있다.” Q 국제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A “국제 협력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론의 땅이 한반도라고 본다. 중국은 훈춘에서 태평양까지 북한, 러시아로 인해 16km가 막혀 있다. 중국은 생산기지가 되고 싶어 한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땅을 같이 내면 된다. 러시아는 경제 돌파구로 극동에 명운을 걸었다. 북한도 연결만 되면 경제 개발이 가능하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신도시를 지은 유일한 나라이고 세계적인 개발 경험이 있다. 미국 역시 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 수 없다. 국제적인 협력 속에서 새로운 생산 모멘텀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국제 협력을 이룰 수 있는 최적지가 한반도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한민족의 DNA를 통해서 위기를 돌파해 보자는 거다.” 국가부도의 날과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 Q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봤나? 당시 재경부 외화자금과장이었다. 영화 내용과는 달리 환율을 높여야 한다(원화 절하)고 주장했고, 한은이 반대했다고 하는데. A “영화는 허구이기 때문에 안 봤다. 1997년 1월 21일 외화자금과장으로 발령 났고 당시 그 전모를 나 이상 아는 사람은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그렇고) 당시 내가 환율을 원샷에 절하하고 그다음에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는 반대 입장을 전했다. 원샷으로 환율 절하를 해버리면 부채가 늘고 물가 상승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였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당시 한국은행에서 반대한 것으로 안다. 더 이상은 얘기 안 하겠다.” 김 전 위원장은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당시 상황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대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노통 취임 2주 만에 국장(금감위 감독정책1국장)으로 처음 만났다. 당시 대통령 사저에서 경제부총리, 경제수석, 금감위원장 등이 모여서 회의를 했지. 당시 마이너스 성장, SK글로벌 사태, 카드 사태 터지고 차입이 다 끊어지는 복잡한 상황이었는데... 금감위원장이 취임한 지 1주일 정도밖에 안 돼 내가 자료를 만들고 난 밖 소파에서 대기하는 중이었지. 근데 누가 나오는데 노통이더라고. 노통이 “누구십니까?”라고 물어. 그래서 “전 누굽니다. 자료 때문에 있습니다” 했더니 “들어오소. 밥 먹읍시다”라고 하더군. 그때 처음으로 노통을 만났고 차관보, 차관 거치면서 평생 일을 가장 많이 해본 대통령이 됐지.” 김 전 위원장은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계급장 떼고 붙은 공무원이 저다. 노 전 대통령과 부동산 대책, 신불자 대책, 가계부채까지 토론을 많이 했다. 당시 (노통은) 공무원들한테 인기 짱이었다. 종종 생각난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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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호

임철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우리 발사체로 달탐사 문제없어요”

취임 한 돌 특별인터뷰...한국형 발사체 1단 개발도 자신감 “우주개발 투자 지속돼야”...미국의 2%, 일본의 20%에 불과 “발사체·위성 분야 산업체 이전은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 김영섭 기자 kimys@newspim.com “75톤급 액체엔진을 지상에서 시험했지 않습니까, 붙들어 놓고. 문제가 없었어요. 그리고 날려봤어요.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많은 문제가 해결된 거라고 보면 되죠, 일단은.” ‘한국의 NASA(미국 항공우주국)’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임철호 원장을 만났다. 자력 개발 한국형 발사체(누리호)의 주력 엔진인 75톤급 액체엔진의 비행 성능을 검증한 작년 말 시험발사체 발사에 대해 말을 꺼내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투박하고도 시원스런’ 말투가 인상적이다. 새해 1월 24일 취임 1주년을 맞은 임 원장은 75톤급 액체엔진의 4개 묶음(클러스터링) 기술 개발에 대한 질의에도 조금의 주저 없이 ‘온몸으로’ 자신감을 내보였다. 웃으면서 “(클러스터링 담당) 본인들이 저보다 걱정 안 해요”라고 말한다. 75톤급 액체엔진 1기로 구성된 시험발사체는 지난해 11월 28일 나로우주센터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목표 기준치인 연소 지속시간 140초 이상을 달성한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이제 남은 것은 누리호의 1단부를 구성하게 될 75톤 액체엔진 4기의 클러스터링 기술이다. 항우연은 누리호 발사체를 플랫폼으로, 오는 2030년까지는 ‘우리의 달 탐사선을, 우리 땅에서, 우리 발사체로 쏘아올린다’는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말 그대로 ‘스페이스 클럽’에 당당히 대한민국의 이름을 올린다는 것이다. 나아가 ‘달 탐사선의 달 착륙’은 대한민국 우주탐사 시대의 본격 개막을 알리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Q. 누리호의 핵심이자 최대 관건은 75톤급 액체엔진의 클러스터링이라고 하는데 큰 문제는 없는 것인지? A. 제가 발사체 하는 연구원들한테 ‘클러스터링 쉽지 않을 텐데’ 이렇게 계속 이야기하면 자기들은 걱정하지 않는대요. ‘왜 걱정하지 않냐’고 했더니 ‘다 따로따로 있는 걸 그대로 시험한 거 4개를 그냥 묶는 거라서 별 위험한 게 없다. 하나하나가 잘되면, 다시 말해 N이 1일 때 잘되면 N이 4일 때도 잘된다.’ 뭐 이런 거죠. Q. 이런 로켓 엔진을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몇이나 되나? A. 성능의 차이는 있지만 우주발사체 기술을 확보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유럽, 일본,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이란과 북한 이렇게 10개국이다. 이 중에서도 우리가 개발 중인 75톤급 정도의 성능을 내는 엔진을 가진 나라는 이스라엘, 이란, 북한을 뺀 7개국뿐이다. Q. 시험발사체 이후 한국형 발사체 개발까지 남은 일정과 계획은? A. 한국형 발사체는 오는 2021년에 두 차례 발사할 예정인데, 올해는 한국형 발사체 3단 인증모델을 만들고 이에 대한 추진기관 종합연소시험을 진행한다. 내년에는 1단 부분의 제작과 종합연소시험을 할 계획이다. Q. 결국 우리의 위성을 우리가 만든 발사체로 우주공간에 올리겠다는 것이 목표인데 2021년부터 위성을 발사하나? A. 한국형 발사체는 2021년 2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발사한다. 첫 번째 발사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전통적인 고유의 것을 싣고 발사하고, 두 번째 발사에는 우주기술 검증 목적의 소형 과학위성을 탑재한다. 그리고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형 발사체의 신뢰도 향상을 위해 매년 발사할 계획이다. 2022년에는 시험위성 발사, 2023년에는 500kg급의 중형 위성, 2024년에는 과학위성을 차례로 발사할 계획이다. Q. 한국형 발사체로 달 탐사선 발사도 가능한가? A. 달 탐사선 발사를 위해서는 현재의 3단형 발사체에 1단을 추가해 4단형 발사체로 만들어야 한다. 우선 2020년에 발사하는 시험용 달 궤도선은 미국의 스페이스엑스 로켓으로 발사한다. 이어 2030년까지 달 착륙선을 발사한다는 목표인데, 이때는 한국형 발사체를 사용할 계획이다. Q. 한국형 발사체 이후 어떤 발사체를 개발할 계획인가? 소형 발사체도 개발하고 대형 발사체도 개발하나? A. 지난해 수립된 제3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에는 한국형 발사체를 플랫폼으로 해서 소형 발사체와 대형 발사체 등 다양한 크기의 발사체를 개발하는 것으로 돼 있다. 소형 발사체는 500kg 이하의 소형 위성을 실어나르는 발사체로, 대형 발사체는 저궤도 대형 위성이나 지난해 발사한 천리안 2A호와 비슷한 무게 3톤 이상의 정지궤도 위성을 탑재할 수 있는 발사체로 개발하는 것이다. Q. 새해 주목할 만한 우주개발은 무엇인가? A. 우선 위성 분야에서는 지난해 발사한 천리안위성 2A호가 기상관측 임무에 착수하게 되고, 한반도 주변에 대기오염 물질 이동경로 관측이 가능한 천리안 2B호 발사 준비에 들어간다. 민간에 위성기술 이전을 위해 진행 중인 차세대 중형 위성 1호도 발사 준비를 시작한다. 지금보다 더 정밀하면서 전천후 지구관측이 가능한 아리랑 6호, 30cm급 이하로 지구 정밀관측이 가능한 아리랑 7호도 개발 중이다. 발사체 분야에서는 한국형 발사체 3단 인증모델을 만들고 추진기관 종합연소시험을 진행한다. 내년에는 1단 제작과 종합연소시험을 할 계획이다. 75톤 엔진 4기를 묶는 클러스터링 기술도 개발해 나갈 예정이다. 달 탐사 분야는 올해부터 실제 달에 가게 될 비행모델 조립에 착수한다. 시험용 달 궤도선에 실리는 탑재체는 올 하반기 개발이 완료된 후 각종 우주환경 테스트를 진행하게 된다. Q. 2018년 제3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을 보면 위성과 우주발사체 개발을 앞으로 산업체에서 담당하게 되는데 항우연은 어떤 연구개발을 하게 되는가? A. 선진국에서는 민간기업이 발사체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발사비용을 절감한 발사체 개발과 관련 기술을 확보해 가고 있다. 또한 뉴 스페이스로 불리는 일부 기업의 자발적 투자와 기술 혁신 등 산업체 중심의 신산업이 창출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민간의 우주산업 참여를 유도하고 우주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발사체, 위성 개발사업은 민간기업 주관 체계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산업체로의 이전은 점진적으로,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산업체 이전 로드맵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앞으로 항우연은 그동안 축적된 기술을 민간에 이전하고 기업이 수행하기 어려운 핵심 기술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 Q. 앞으로 우리나라 항공우주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무엇이 시급한가? A. 선진국에 비해 출발은 늦었지만 그동안 정부와 국민의 지원 속에 큰 발전을 해왔다. 하지만 선진국들이 항공우주 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민간기업들도 우주개발 사업을 확대해 가는 상황에서 우리도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선진국 대비 우리나라의 우주 분야 투자 규모는 미국의 2%, 일본의 20%, 인도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앞으로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고 독자적인 우주기술을 확보하고 국제 공동의 우주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주개발 투자 규모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의 우주개발 프로젝트를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진행시켜야만 우수한 인력도 유치할 수 있고 산업체도 지속적으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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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호

전경대 맥쿼리운용 CIO “2% 저성장 시대, 확실한 것만 담는다”

“업황 성장 가시성 명확한 성장주에 투자” 올해 증시테마 ‘남북경협주, 지배구조 개선, 콘텐츠 한류’ | 김형락 기자 rock@newspim.com “대학생 때 1주일에 한 번씩 증권사 객장에 갔다. 그리곤 객장 내에 돌아다니는 추천주 인쇄물을 보고 좋다는 주식을 담았다. 당시 주식시장은 뜨거웠다. 90년대 중반 외국인 투자 한도가 풀리면서다. 코스피 지수는 1000선을 넘나들었다. 덕분에 투자한 종목 수익률도 괜찮았다. 대학 등록금에 보태려고 시작한 주식투자였는데, 운이 참 좋았다.” 전경대 맥쿼리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CIO)은 자신의 첫 주식투자를 이렇게 기억했다. 그도 한때 객장에 떠돌던 정보를 듣고 종목을 고르는 평범한 투자자였다. 실력보단 ‘초심자의 행운(beginner’s luck)’이 크게 작용했다. 그에게 행운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1996년 군 입대를 준비하며 모든 주식을 정리했다. 덕분에 금융시장을 강타한 IMF 외환위기를 운 좋게 피할 수 있었다. 전역 후엔 주가가 너무 싸 보였다. 당시 삼성전자 주식을 3만8000원에 담았다. 포스코도 9만원에 샀다. 투자 전략은 단순했다. 싸 보이는 종목을 사서 오르면 팔았다. 수익률이 오르자 자신감도 붙었다. 주식투자를 제대로 배워 보고 싶었다. 기회가 왔다. 첫 직장으로 들어갔던 삼성생명이 동양투신을 인수했다. 운용 분야로 이동할 사람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바로 손을 들었다. 하지만 입사 1년 차 신입사원이 주식 운용을 맡을 순 없었다. 펀드 관리와 회계 업무에 만족해야 했다. 직접 펀드를 운용하고 싶은 갈증이 커졌다. 하지만 준비가 필요했다. 2000년 회사를 나와 호주 유학길에 나섰다. 이때 대학원에서 파이낸스(finance), 애셋 매니지먼트(assets management)를 공부했다. ‘가시성’ 있는 기업에 투자 전경대 본부장은 주식투자에서 ‘예측 가능성’을 가장 중시한다. 변동성이 큰 기업은 싫어했다. 화학, 조선, 철강, IT 등 경기에 민감한 시크리컬 업종은 자연스럽게 포트폴리오에서 빠졌다. 롯데칠성, 농심, 신세계푸드, KT&G 등 음식료, 유통 업종에서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을 주로 샀다. “모든 기업의 주가 흐름은 결국 펀더멘탈(기업 기초체력)을 따라간다. 펀드매니저는 자신이 배팅한 기업의 주가가 예측했던 결과와 맞아떨어질 때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던 전 본부장에게 변화가 생겼다. 포트폴리오 주요 종목이 성장주로 바뀐 것이다. 한국이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전통적 관점의 성장주에 갇히지는 않았다. 전 본부장이 정의하는 성장주는 산업구조를 살폈을 때 턴어라운드(실적 개선)하는 회사들이다. 전 본부장은 “개인적으로 매출이 꾸준히 성장하는 필수 소비재에 장기 투자하는 걸 좋아하지만 이런 접근법은 경제성장률이 5% 내외였을 때 효과적”이라며 “지금은 성장률이 시중은행 금리와 비슷한 2% 수준이기 때문에 예측 가능성 하나만으로는 주식투자 매력이 떨어진다”고 전했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때는 경제 성장과 함께 내수시장도 커졌기 때문에 필수 소비재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지만 저성장 시대에는 투자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전 본부장은 “단기 성장성을 보이는 산업에도 포트폴리오 비중을 할애한다”며 “최소 6개월 이상 상승 사이클 확신이 드는 회사를 찾아 담는다”고 전했다. 작년, 재작년 MLCC 관련주 투자가 대표 사례다. 삼성전기, 삼화콘덴서는 펀드 수익률 방어에 효자 역할을 했다. 전 본부장의 대표 펀드인 맥쿼리뉴그로쓰펀드는 설정 후 81.4%(작년 말 기준)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다만 지난해 증시 부진 여파로 최근 1년 수익률은 -22.70%로 떨어졌다. 올해 3대 테마 ‘경협·행동주의·콘텐츠’ 전 본부장은 올해 증시 테마로 남북경협주, 지배구조 개선, 콘텐츠 한류를 꼽았다. 남북경협주는 꾸준히 스터디 중이다. 전 본부장은 “대북 제재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며 “올해 증시 테마의 한 축은 경협주 옥석 가리기”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의 인도주의적인 대북 지원을 눈여겨보고 있다. 그는 “국내 생산이 넘치는 분유, 비료 등 생활필수품 위주로 원조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며 “북한 철도 개량 사업은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아 국내 업체들의 수혜가 불투명하다”고 분석했다. 수도권 근처에 있는 아스콘 업체들의 혜택 가능성도 크다고 전망했다. 중국보다 지리적 근접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제2의 한진칼이 될 기업들도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해 강성부펀드가 한진칼 지분을 인수하며 행동주의 펀드가 주식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기업 지배구조 펀드 투자 수요가 늘며 그동안 소액주주를 신경 쓰지 않았던 회사들의 변화에서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전 본부장은 “대주주 지분율이나 배당성향 같은 일괄적 지표보다는 회사의 지배구조, 지분구조를 꼼꼼히 살핀다”며 “내부거래, 불필요한 부동산 자산 투자 등을 통해 대주주 일가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을 선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소 기계업체, 중견 식품기업에 주목하고 있다. 콘텐츠 한류 열풍도 투자 아이디어 중 하나다. 미·중 무역협상이 원만히 마무리된다면 중국의 지식재산권 보호가 한층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작년에 YG엔터, SM엔터 주가가 좋았던 이유는 한류 콘텐츠가 일본 시장에서 통한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라며 “중국 시장에도 같은 기대감이 있었는데 지식재산권 개념이 없어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지식재산권 보호가 강화되면 다시 재평가받을 기회가 온다”며 “중국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용한다면 웹툰, 드라마 제작사와 엔터테인먼트·게임 업체들이 다시 부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올해 대형주보단 중소형주에서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수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지수가 올라간다면 대표주를 사야겠지만 지금 증시엔 대형주 말고도 좋은 중소형주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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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대 맥쿼리운용 CIO "2% 저성장 시대, 확실한 것만 담는다"

“업황 성장 가시성 명확한 성장주에 투자” 올해 증시테마 ‘남북경협주, 지배구조 개선, 콘텐츠 한류’ | 김형락 기자 rock@newspim.com “대학생 때 1주일에 한 번씩 증권사 객장에 갔다. 그리곤 객장 내에 돌아다니는 추천주 인쇄물을 보고 좋다는 주식을 담았다. 당시 주식시장은 뜨거웠다. 90년대 중반 외국인 투자 한도가 풀리면서다. 코스피 지수는 1000선을 넘나들었다. 덕분에 투자한 종목 수익률도 괜찮았다. 대학 등록금에 보태려고 시작한 주식투자였는데, 운이 참 좋았다.” 전경대 맥쿼리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CIO)은 자신의 첫 주식투자를 이렇게 기억했다. 그도 한때 객장에 떠돌던 정보를 듣고 종목을 고르는 평범한 투자자였다. 실력보단 ‘초심자의 행운(beginner’s luck)’이 크게 작용했다. 그에게 행운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1996년 군 입대를 준비하며 모든 주식을 정리했다. 덕분에 금융시장을 강타한 IMF 외환위기를 운 좋게 피할 수 있었다. 전역 후엔 주가가 너무 싸 보였다. 당시 삼성전자 주식을 3만8000원에 담았다. 포스코도 9만원에 샀다. 투자 전략은 단순했다. 싸 보이는 종목을 사서 오르면 팔았다. 수익률이 오르자 자신감도 붙었다. 주식투자를 제대로 배워 보고 싶었다. 기회가 왔다. 첫 직장으로 들어갔던 삼성생명이 동양투신을 인수했다. 운용 분야로 이동할 사람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바로 손을 들었다. 하지만 입사 1년 차 신입사원이 주식 운용을 맡을 순 없었다. 펀드 관리와 회계 업무에 만족해야 했다. 직접 펀드를 운용하고 싶은 갈증이 커졌다. 하지만 준비가 필요했다. 2000년 회사를 나와 호주 유학길에 나섰다. 이때 대학원에서 파이낸스(finance), 애셋 매니지먼트(assets management)를 공부했다. ‘가시성’ 있는 기업에 투자 전경대 본부장은 주식투자에서 ‘예측 가능성’을 가장 중시한다. 변동성이 큰 기업은 싫어했다. 화학, 조선, 철강, IT 등 경기에 민감한 시크리컬 업종은 자연스럽게 포트폴리오에서 빠졌다. 롯데칠성, 농심, 신세계푸드, KT&G 등 음식료, 유통 업종에서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을 주로 샀다. “모든 기업의 주가 흐름은 결국 펀더멘탈(기업 기초체력)을 따라간다. 펀드매니저는 자신이 배팅한 기업의 주가가 예측했던 결과와 맞아떨어질 때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던 전 본부장에게 변화가 생겼다. 포트폴리오 주요 종목이 성장주로 바뀐 것이다. 한국이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전통적 관점의 성장주에 갇히지는 않았다. 전 본부장이 정의하는 성장주는 산업구조를 살폈을 때 턴어라운드(실적 개선)하는 회사들이다. 전 본부장은 “개인적으로 매출이 꾸준히 성장하는 필수 소비재에 장기 투자하는 걸 좋아하지만 이런 접근법은 경제성장률이 5% 내외였을 때 효과적”이라며 “지금은 성장률이 시중은행 금리와 비슷한 2% 수준이기 때문에 예측 가능성 하나만으로는 주식투자 매력이 떨어진다”고 전했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때는 경제 성장과 함께 내수시장도 커졌기 때문에 필수 소비재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지만 저성장 시대에는 투자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전 본부장은 “단기 성장성을 보이는 산업에도 포트폴리오 비중을 할애한다”며 “최소 6개월 이상 상승 사이클 확신이 드는 회사를 찾아 담는다”고 전했다. 작년, 재작년 MLCC 관련주 투자가 대표 사례다. 삼성전기, 삼화콘덴서는 펀드 수익률 방어에 효자 역할을 했다. 전 본부장의 대표 펀드인 맥쿼리뉴그로쓰펀드는 설정 후 81.4%(작년 말 기준)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다만 지난해 증시 부진 여파로 최근 1년 수익률은 -22.70%로 떨어졌다. 올해 3대 테마 ‘경협·행동주의·콘텐츠’ 전 본부장은 올해 증시 테마로 남북경협주, 지배구조 개선, 콘텐츠 한류를 꼽았다. 남북경협주는 꾸준히 스터디 중이다. 전 본부장은 “대북 제재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며 “올해 증시 테마의 한 축은 경협주 옥석 가리기”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의 인도주의적인 대북 지원을 눈여겨보고 있다. 그는 “국내 생산이 넘치는 분유, 비료 등 생활필수품 위주로 원조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며 “북한 철도 개량 사업은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아 국내 업체들의 수혜가 불투명하다”고 분석했다. 수도권 근처에 있는 아스콘 업체들의 혜택 가능성도 크다고 전망했다. 중국보다 지리적 근접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제2의 한진칼이 될 기업들도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해 강성부펀드가 한진칼 지분을 인수하며 행동주의 펀드가 주식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기업 지배구조 펀드 투자 수요가 늘며 그동안 소액주주를 신경 쓰지 않았던 회사들의 변화에서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전 본부장은 “대주주 지분율이나 배당성향 같은 일괄적 지표보다는 회사의 지배구조, 지분구조를 꼼꼼히 살핀다”며 “내부거래, 불필요한 부동산 자산 투자 등을 통해 대주주 일가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을 선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소 기계업체, 중견 식품기업에 주목하고 있다. 콘텐츠 한류 열풍도 투자 아이디어 중 하나다. 미·중 무역협상이 원만히 마무리된다면 중국의 지식재산권 보호가 한층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작년에 YG엔터, SM엔터 주가가 좋았던 이유는 한류 콘텐츠가 일본 시장에서 통한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라며 “중국 시장에도 같은 기대감이 있었는데 지식재산권 개념이 없어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지식재산권 보호가 강화되면 다시 재평가받을 기회가 온다”며 “중국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용한다면 웹툰, 드라마 제작사와 엔터테인먼트·게임 업체들이 다시 부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올해 대형주보단 중소형주에서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수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지수가 올라간다면 대표주를 사야겠지만 지금 증시엔 대형주 말고도 좋은 중소형주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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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호

곤충 애벌레로 '폐사율 제로' 사료 만드는 이종필 CIEF 대표

미래 新성장산업 ‘곤충’...양돈·양계·양식어민 주목 高사료값에 안전성 답보...‘동애등에’ 수요 증가세 동애등에 사료 먹인 동자개...폐사율 제로 | 이규하 기자 judi@newspim.com “메기목 동자개과의 민물고기인 동자개에 곤충사료를 썼더니 한여름 양식장의 무더위를 견디는 등 폐사율이 제로에 가깝게 떨어졌다. 특히 성어가 되기 위해서는 2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나 곤충을 배합사료로 시험한 결과 1년 만에 출하가 가능해졌다. 곤충사료가 폐사율을 감소시키고 양식 생산원가 절감에 큰 효과를 불러온다.” 미래 신(新)성장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곤충 산업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씨아이이에프(CIEF) 이종필 대표가 ‘파리목의 동애등에 애벌레’를 꺼내 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배합사료의 주요 동물성단백질 원료인 ‘어분(魚粉)’의 안정적 확보가 중요한 시점에 ‘동애등에’는 축산업과 수산업 분야가 주목하는 대체재다. 이미 가축 농가와 내수면 양식 어민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곤충으로 통한다. 현재 우리나라 양식업에 쓰이는 물고기 생사료 총량은 49만톤에 달한다. 이 중 40만톤은 국내에서 ‘불법 어획’으로 잡은 치어나 미성어다. 그러다 보니 생사료 자체가 수산 자원을 고갈시키는 바다 황폐화의 주범으로 불린다. 수입으로 들어오는 나머지 9만톤의 경우도 여러 물고기를 갈아 만든 생사료인 만큼, 무엇이 섞였는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는 처지다. 지난해 7월 수은이 발견된 양식 넙치(광어)가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다랑어 부산물을 공급하던 부산 기장 소재 광어 양식장 3곳이 기준치를 넘는 수은 함유량으로 비상이 걸린 바 있다. 더욱이 기생충·세균·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인한 대량 폐사가 잦은 것이 수산 양식의 현주소다. 수산 분야의 경우 총 생산비의 60% 이상이 사료비인 만큼, 어민 입장에서는 값싼 생사료 배합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국제 곡물가격 상승이 생산자의 생산비 상승, 소비자의 제품 구매비용 상승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다 황폐화를 불러오는 치어·미성어 불법 어획을 정부로서도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종필 대표도 이러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했다. 이 대표는 “양식장 물고기가 병에 걸리거나 일찍 폐사하는 이유는 ‘나쁜 어분’ 때문”이라며 “국내 어분은 대부분 질이 낮은 하급 어분이어서 질병으로 인한 폐사, 생산성 저하를 보완하기 위해 첨가제를 과다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특히 질병 예방 백신의 항체 면역효과가 기대 이상으로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바다 황폐화를 막는 길이 바로 ‘곤충’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세계적인 친환경 청정 지역인 네덜란드의 식용곤충 생산기업 프로틱스(Protix)의 사례를 들었다. 이 회사는 곤충을 재료로 어분을 만들어 연어에 먹이고 있다. 최고급으로 꼽히는 네덜란드산 연어 양식에서 곤충 단백질은 그야말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성장산업인 셈이다. 2017년 프로틱스가 받은 투자는 4500만유로(약 570억원 규모)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에도 프로틱스 못지않은 곤충 생산 기업이 있다. 김제자유무역지역관리원에 위치한 CIEF다. 현재 대지 1만6000평(5만2800m²), 건물 면적 3000평(9900m²)의 공장에서 33톤 규모의 동애등에 성충과 애벌레가 사육되고 있다. 이는 1톤 트럭 33대 분량에 해당한다. 동애등에 성충은 주로 물을 먹고 산다. 때문에 맑은 산과 계곡 등에 주로 서식한다. 인분 등 더러운 것을 먹고 질병을 옮기는 일반 파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동애등에 애벌레들은 친환경적으로 처리한 음식물쓰레기를 먹는다. 이종필 대표는 처치 곤란한 국내 음식물쓰레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 “하루에 동애등에 생체 6톤을 말려 2톤가량의 사료를 생산한다. 수요가 늘어 추가로 사육가공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라며 “전국 4곳에 공장을 짓게 되면 국내 음식물쓰레기 처리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친환경적으로 가공된 음식물쓰레기 사료는 운송비만 주고 조달받고 있어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농촌진흥청은 동애등에 유충을 이용한 산란계 사료첨가제의 효능을 검증한 바 있다. 산란계에 급여하면 계란 생산성, 호우유닛, 난중, 난각 두께, 면역물질 증가 등의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이에 따라 일부 바다 양식장과 내수면 양식장, 양돈, 양계장의 곤충 사료 주문이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서울대 수의대, 농촌진흥청 등이 ‘동애등에의 면역 증강을 통한 조류인플루엔자(AI) 억제 효과 검증 및 제품 개발’ 공동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수산 당국의 관심도 높다. 국립수산과학원이 곤충 사료를 활용한 안전성 검증을 이미 마친 상태다. 이종필 대표는 “동애등에 배합사료를 급여한 결과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증가해 폐사가 줄고 사료 효율 110%의 성과를 냈다”며 “제주 광어·돌돔 양식장, 완도 광어 양식장, 영광 뱀장어 양식장, 김제 메기 양식장 등 전국적으로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기호성이 좋아 섭식량이 증가하고 수질 개선 효과도 보고 있다. 백신, 항생제, 영양제 등을 쓰지 않아 경영비도 절감된다”면서 “CJ, LG생활건강 등 유수 대기업들이 동애등에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해외 바이어들도 직접 공장을 찾아 사업성을 타진하고 있다. 조만간 4, 5개의 특허가 출원되고 해외 판매망도 늘려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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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호

윤창보 유니베스트자문 대표가 본 '한국증시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들'

“기업이익·수출 양호, 한국경제 괜찮다” “미국 쏠렸던 자금, 이머징 배분 본격화” “2차전지·5G 유망...시장 10%+α 전략 10% 추가수익 가능” | 정경환 기자 hoan@newspim.com “미국으로만 쏠렸던 글로벌 투자자금이 올해는 균형을 찾아갈 겁니다. 이미 이머징으로 돈이 들어오고 있어요.” 윤창보 유니베스트투자자문 대표는 2019년 한국 증시가 2018년보단 편안할 것이라며 이같이 예상했다. 적어도 지금의 하락세는 멈출 것으로 봤다. 그가 자신하는 배경은 ‘자금 수급’이다. 윤 대표는 “새해 가장 중요한 화두는 우리뿐 아니라 글로벌 전체적으로 봐도 자금 흐름”이라며 “미국으로 쏠린 돈이 이제 균형을 맞춰 갈 것”이라고 했다. 2016년 하반기부터 2018년까지는 미국만 유독 좋았다. 때문에 자금도 오로지 미국으로 몰렸다. 그는 이머징 시장에서 돈이 많이 빠졌는데 우린 유동성이 좋은 시장이어서 더 많이 빠졌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글로벌 투자자금이 미국 일변도에서 이머징, 유럽 등으로 나눠지며 균형을 찾아갈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런 게(투자자금의 미국 편중 현상) 해소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이머징 마켓은 기업이익 하락폭보다 주가 하락폭이 더 컸다. 그러니 돌아설 자리가 있다.” 그는 “새해 우리 증시는 기본 10%에 플러스 10% 정도 갈 수 있다”며 “IMF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같은 시스템 리스크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시장이 그 수준까지 빠졌으니 이게 안정만 돼도 오른다. 그게 10~15% 수준이다. 거기에 자금 유입이 시작되면 10% 정도는 더 갈 수 있다”고 봤다. 새해 증시 여건 개선...“우리 경제 나쁘지 않아” 2018년 12월, 얼마 전 이사를 마친 강남의 사무실에서 윤 대표를 만났다. 31년 주식 운용 경력의 전문가인 그의 답변은 명쾌했고, 한마디 한마디가 똑 부러졌다. 윤 대표는 “(나의 의견이) 시장의 대체적인 전망과는 다를 것”이라고 전제한 뒤 “투자자 관점에서 2018년보다 새해 증시가 더 편안할 거다. 2018년에는 (11월까지) 1월 빼고 다 빠졌는데 새해엔 변동성이 확 줄어들고 하락이 멈출 것”이라고 자신했다. ‘유니크(unique, 유일한·독특한)’와 ‘베스트(best, 최고의)’를 합쳐 만들었다는 유니베스트투자자문 대표인 그는 우리 경제가 절대 나쁜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 기업 이익이 늘었다. 증가폭이 낮아졌을 뿐 늘고 있다. 우리는 수출이 중요한데 수출이 매월 히스토리컬 하이(Historical High, 사상 최고치)를 찍는다. 실제 데이터도 그리 나쁘지 않다. 정부가 경기 침체가 아니라고 한 것도 그런 차원이다.” 최악의 경우 반도체가 망가지면 반도체 비중이 워낙 크니 조금 마이너스(-)로 갈 수도 있겠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는 다 괜찮다고 봤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현상으로 세계를 보면 안 되고, 세계 현상으로 한국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 현상으로 보면 (세계 경제가) 다 망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라며 “국내 소비는 안 좋지만 수출이 잘된다는 건 해외 소비가 좋다는 의미다. 그래서 한국 시각으로 보면 안 되고 세계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설령 글로벌 자금 유입이 없더라도 지금 상태에서 외국인 자금이 더 이상 빠져나가지만 않는다면 우리 시장은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오른 게 없고, 오히려 남들보다 더 빠졌기 때문에 미국의 낙폭이 커져도 우리 증시는 그렇지 않다는 것. “(우리는) 이머징에서 돈이 빠질 때 크게 얻어맞았고, 중국 이슈 나오면서 중국 의존도 높다고 또 한 번 맞았다. 그래서 주가수익배율(PER)이 이렇게 낮아졌다.” 윤 대표는 “미국 시장은 히스토리컬 하이로 가면서 PER이 하이가 됐는데 우리는 히스토리컬 하이로 가면서도 PER이 예전보다 낮아졌다”며 “이게 무슨 의미냐면, 사람들은 이익이 안 났을 거라 생각하지만 주가에 비해 기업이익이 많았다는 얘기다. 예전엔 미국이 빠지면 우린 더 빠졌는데, 지금은 우리가 못 올랐기 때문에 미국이 빠져도 많이 안 빠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한국 주목하는 ‘글로벌 IB’ 그의 예상대로 외국인은 더 이상 한국 주식을 안 팔까. 윤 대표는 그럴 것이라고 단언한다. “2018년에 한국 주식이 빠진 이유는 우리가 안 좋아서가 아니라 미국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이익이 많이 났음에도 PER이 낮아졌다. 반면 미국 경제는 지금 꼭지다. 이미 노란불이 들어왔다. 금리를 올리니 마니 하는 논란이 나오는 게 그런 이유다.” 윤 대표는 “자금이 균형을 찾으면 안 팔거나 조금 살 수도 있다. (한국 주식을) 사면 더 오를 것이고. 그 시그널이 벌써 나오고 있다. 미국이 흔들리는 게 대표적인 예다. 이런 것들이 오로지 미국으로만 가던 걸 반성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즉 돈을 다 미국에만 넣을 것이 아니라 이머징이나 유럽으로도 가야 한다는 반성이 나올 것이며, 그럼 일단 (한국 주식을) 사는 건 차치하더라도 파는 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그는 봤다. 사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이미 한국이나 이머징 시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2018년 11월 모간스탠리는 한국 주식을 팔지 말라고 했고,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했다. 윤 대표는 “2018년 1월부터 11월까지 선진국 시장은 마이너스, 이머징 시장은 플러스(+)였던 때가 11월 딱 한 달이었다”며 “이머징 시장 상장지수펀드(ETF)에만 돈이 들어왔다. 이는 돌아서기 시작한 것이고, 글로벌 자산 배분이 새롭게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당장은 변동성이 있을 수 있지만 이미 추세가 돌아섰다는 것이다. 미·중 간 무역분쟁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헤게모니 싸움이지, 세계 경제를 깨자는 게 아니다. (미국이) 강경하게 나가는 건 빨리 항복하라는 의미다. 충돌이 일어나면 다 죽는다. 세계 경제를 침체시키자는 게 절대 아니다. 본질은 미국 패권주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과거 유가 상승으로 소련의 힘이 커지자 중동을 등장시켜서 죽였고, 엔화가 달러에 맞먹는 안전자산으로 올라서자 플라자 합의로 일본을 죽였는데, 이제 중국 차례가 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앞서 언급한 골드만삭스의 원자재 가격 상승 전망도 G2 간 무역분쟁이 완화될 것이란 전제가 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윤 대표는 풀이했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려면 중국의 투자가 살아나야 한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해결까진 아니더라도 보다 완화된 메시지가 나올 것을 예측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는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 변경에 따른 수혜도 기대할 수 있다. 미국의 대(對)중국 적자가 50%나 된다. 중국 의존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아무리 리쇼어링(Reshoring, 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 기업들을 불러들이는 것)해도 중국에서 사 와야 할 게 너무 많다”면서 “이 체계를 바꾸려는 것이다. 바꾸는 과정에서 우리가 거기 들어갈 수만 있으면 우리에겐 득”이라고도 했다. 그는 “우리 경제지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제일 먼저 떨어졌다”며 “이는 곧 가장 먼저 돌아설 수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2차전지·5G·LNG·MLCC 등 유망 향후 유망 업종으로는 2차전지를 꼽았다. 최근 그는 LG화학 탐방을 다녀왔다고 한다. “지금은 다 불안하다. 그럴 때엔 누구나 다 인정해 주는 걸 찾는다. 전기차 때문에 2차전지 좋다는 거 다 안다. 이런 데서 좋은 기업 찾으면 시장 10%+α 전략으로 10%를 더 벌 수 있다.” 그는 이어 “2차전지는 글로벌 4사밖에 없다. 빅(Big) 4는 삼성SDI, LG화학, 파나소닉, CATL. 파나소닉은 거의 테슬라와만 거래하고 있고, CATL은 수준이 우리 기업에 못 미친다. 나머지 시장은 다 한국 거다”며 “놀라운 것은 요즘 보고서들을 보면 2021년이 지나면 2차전지 시장이 반도체 시장보다 더 커질 거라고 한다. 아무도 안 믿는다. 가봐야 안다. 그런데 우리 주식시장이 한 단계 레벨업되려면 삼성전자를 뛰어넘는 또 다른 초대형 기업이 나와야 한다. 여기(2차전지)에서 나올 가능성이 제일 많다”고 했다. 5G와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Multi Layer Ceramic Condencer) 그리고 액화천연가스(LNG) 관련 업종도 관심 대상이다. 윤 대표는 “중요한 것은 통신사가 아니라 장비업체다. 장비를 먼저 깔아야 되니까”라고 했다. 이어 “삼성전자, 에릭슨, 노키아, 화웨이 등 3~4개사가 있는데, 화웨이는 미국이 중국 견제하는 차원에서 자꾸 쓰지 말라고 하는 중이다. 그게 우리한텐 유리하다”고 봤다.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G 장비 시장에서 두 자릿수 점유율을 확보하라고 했는데, 이런 게 시장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며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들은 우리나라 기업들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노키아, 에릭슨, 화웨이도 다 우리 것 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인도, 중국, 일본 등 전 세계가 5G로 간다. 그럼 시장이 커진다. 이럴 때 누가 그 밸류체인에서 잘하고 있는가를 보면 된다. 시장이 열려 있는 쪽, 그중에서 우리 기업들이 잘하고 있는, 경쟁력 있는 쪽이 (수익을 볼) 확률이 높다”고 했다. 윤 대표는 또 “MLCC 좋다는 건 다 알고, LNG는 전 세계 에너지원이 석유에서 가스로 바뀌고 있다. 중국도 2017년 하반기부터 가정용 연료를 석탄에서 가스로 바꿨다. 2030년이 되면 전 세계 에너지의 50% 이상이 가스로 바뀐다”며 “LNG는 채굴·보관·운송이 어렵다. 조선주나 채굴, 보관 관련주도 좋겠고, 석탄을 못 쓰게 하니 비료주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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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새해엔 ‘경협 열매’ 기대”

2018년 세 차례 방북...‘대북사업 대표주자’ 명성 유지 “금강산 관광 이른 시일 재개 기대”...대북 제재가 걸림돌 기업가 집안서 나고 자란 ‘뼛속 기업인’...“반드시 남북경협 성공” | 유수진 기자 ussu@newspim.com “금강산 관광이 2018년에는 어렵지만 멀지 않은 시기에 재개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대그룹은 앞으로 남북이 함께 만들어 갈 평화롭고 새로운 미래에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2018년 11월 19일 강원도 고성 동해선출입국사무소. 금강산 관광 시작 20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를 위해 전날 방북했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입경 직후 취재진 앞에서 차분히 귀환인사를 읽어 내려갔다. 1박2일간의 방북 성과가 담긴 일곱 문장을 담담한 목소리로 읽는 데에는 1분 3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북측으로부터 온 ‘깜짝 놀랄 만한’ 메시지는 없었다. 현 회장 본인도 다소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현 회장은 “북측에서도 빠른 금강산 관광 재개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도 “구체적인 논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말해 남북 경제협력 진전 여부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새해엔 반드시 ‘좋은 소식’이 있을 거란 기대감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남북 정상이 2018년에만 세 차례 만나 손을 맞잡는 등 한반도에 유례없는 평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계에서는 남북 경협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현대그룹과 현 회장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거란 데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고 있다. 2018년 세 차례 방북...“남북 경협 재개 기대” 현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은 지난 30년간 ‘대북 사업의 대표 주자’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점적 지위를 공고히 해왔다. 1989년 1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기업인 최초로 북한을 공식 방문, ‘금강산 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하며 첫발을 뗀 이후, 남북 경협사업에는 언제나 현대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따라 붙었다. 특히 현 회장은 2018년에만 세 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다시 한 번 대내외에 이 사실을 알렸다. 지난 2008년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후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지만 방북을 통해 변치 않는 위상을 자랑하며 향후 남북 경협이 본격화될 수 있도록 길을 터놨다. 특히 현대그룹은 문재인 정부가 적극 조성한 한반도 해빙 분위기에 힘입어 보수정권하에서 엄두도 내지 못했던 주요 행사들을 북한 현지에서 진행했다. 이를 통해 과거 함께 사업을 진행했던 북측 파트너와의 굳건한 관계도 재확인했다. 가장 최근엔 2018년 11월 ‘금강산 관광 시작 20주년’을 맞아 북측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와 함께 현지 행사를 주최했다. 아태는 북한에서 경제협력을 담당하는 민간 대외기구로, 현대의 대북 사업 파트너다. 이번 행사를 위해 현 회장을 포함한 현대 임직원과 초청인사 등 총 100여 명의 대규모 방북단이 금강산을 찾았다. 현 회장은 행사가 진행된 1박2일 동안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남북 경협이 빨리 재개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앞서 두 차례 방문 때도 같은 바람을 피력했다. 북측 역시 경협에 속도가 붙길 기대한다는 제스처를 적극적으로 취했다. 현 회장은 20주년 기념식에서 “하늘이 맺어 준 북측과의 인연을 민족 화해와 공동 번영의 필연으로 만들겠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해 북한 주민 등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기자들과 만나선 “이번 20주년 행사가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현 회장은 같은 해 9월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함께 방북길에 올랐다. 현 회장은 리용남 북한 내각부총리와 면담한 자리에서 “남북 관계가 안 좋으면 늘 마음이 아팠다. 빨리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리 부총리는 “현 회장 일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보다 한 달여 전인 8월엔 남편 고(故) 정몽헌 전 회장의 15주기 추모식 참석차 금강산에 다녀왔다. 현 회장은 2009년과 2013년, 2014년 등 세 차례에 걸쳐 금강산 추모식에 참석했으나,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에 돌입하면서 3년간 방북을 하지 못했다. 가장 먼저 남북경협 TFT 조직...‘제재 해제’가 선행과제 현 회장은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11년 만에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자 가장 먼저 그룹 내 태스크포스팀(TFT)을 발족하는 등 본격적으로 사업 준비에 들어갔다. 10년간 멈춰 있는 남북 경협 시계가 조만간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현대그룹은 5월 현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현대그룹 남북경협사업 TFT’를 조직, 본격 가동하고 있다. 해당 TFT에서는 현대아산 대표와 그룹 전략기획본부장이 대표위원으로 실무를 지휘하고, 계열사 대표들이 자문 역할을 담당한다. 현 회장은 TFT 출범 당시 “금강산·개성 관광, 개성공단은 물론 향후 7대 SOC 사업까지 남북 경협사업 재개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문제는 남북 경협 재개를 위해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해제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현 회장 역시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남북 경협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이 부분을 조건으로 달고 있다. 현 회장은 지난해 마지막 방북 직후 경협 재개에 대한 전망을 묻는 질문에 “미국의 제재가 풀리면 곧바로 경협사업이 재개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며 “시설정비를 고려하면 제재 해제 이후 관광 재개까지 3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는 세 차례의 방북이 각각 특정한 목적에 따라 이뤄진 만큼 북측과 경협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나누진 않았지만 관광 재개에 대비, 시설물 상태 등 현지 상황을 점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 회장은 왜 이토록 남북 경협을 고집할까. 재계에 따르면 2008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지난 10년간 현대가 입은 매출손실이 약 1조5000억원, 영업적자는 2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기간 현대는 생존을 위해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남북 경협에 대한 현 회장의 의지는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매년 신년사를 통해 굳건한 집념을 드러내며 ‘남북 교류의 문이 열릴 때’를 기다리자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이는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들고 지켜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 때문이다. 현 회장에게 남북 경협은 단순히 사업이 아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인 셈이다. 현대의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은 꽁꽁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녹이기 위해 직접 소 1000마리를 몰고 북으로 향했다. 분단 이후 멀어져만 가던 남북을 하나로 묶기 위해 기꺼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은 것이다. 뒤를 이은 정몽헌 회장 역시 모든 걸 쏟아부어 금강산 관광을 실현, 본격적인 남북 경협의 물꼬를 텄다. 이를 너무나도 잘 아는 현 회장은 두 사람의 뜻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데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현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은 분단의 장벽을 넘기 위해 자신이 평생 일군 현대의 자산과 역량을 금강산과 북녘에 아낌없이 투자했다”며 “남과 북은 정몽헌 회장이 모든 것을 쏟아붓고 결국 자신의 삶까지 희생하며 다져놓은 굳건하고도 소중한 인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업주부가 기업을?”...현정은 회장 몸속에 흐르는 ‘기업가 DNA’ “30년 동안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여성이 대기업 총수 역할을 잘 해낼 리 없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 2003년 그룹 총수 자리에 오를 당시 재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우려가 많았다. 대북 송금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남편 정몽헌 회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전업주부였던 현 회장이 하루아침에 재계 15위 현대그룹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다. 하지만 현 회장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아니었다. 기업가 집안에서 출생해 날 때부터 몸속에 ‘기업가 DNA’를 갖고 있었다. 특히 결혼 후에도 전면에 나서진 않았지만 며느리이자 아내로서 재계 대표 대기업 총수를 지근거리에서 살피며 경영 감각을 익힌 것으로 전해진다. 현 회장은 1955년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과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의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외조부는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의 부친인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자로,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의 가풍 속에서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세상의 변화와 여성 사회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경기여고를 졸업한 뒤 이화여대 사회학과에 진학한 이유다. 당시 현 회장은 사회학 교수를 꿈꾸며 여성의 사회 진출이나 여성 개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러던 중 1976년 삶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사업을 계기로 친분이 두터워진 정주영 명예회장과 현영원 회장이 사돈을 맺기로 한 것. 이들의 인연은 울산에 조선소를 지으려던 정 명예회장이 해운 전문가인 현영원 회장에게 조언을 청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가 부친의 적극적인 권유로 현 회장과 정몽헌 회장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정 회장과의 결혼은 단순히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데 머물지 않았다. 훗날 재계 1위에 오르는 현대가(家)의 다섯 번째 며느리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현 회장은 조용히 시아버지와 남편, 집안 어른들을 뒷바라지하고 자녀를 돌보는 ‘그림자 내조’를 시작했다. 당시 현대가는 며느리들의 사회활동을 제한하는 등 보수적인 색채가 강했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교수에 대한 꿈은 버리지 않았다. 이화여대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학을 파고들었고, 첫딸을 낳은 이후엔 미국으로 건너가 페어리디킨슨대 대학원에서 인성개발학을 연구하는 등 학업에 대한 갈증을 채워 나갔다. 귀국 후 현 회장은 육아에 전념했으나 집에만 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자녀들과 함께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인성 교육에 힘썼고, 개인적으로는 걸스카웃연맹 중앙본부 이사, 대한적십자사 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사회활동 경험을 쌓았다. 현 회장은 2003년 남편 정 회장이 세상을 등지자 그 뒤를 이어 그룹 회장 직에 올랐다. 남편을 잃은 슬픔을 추스르기도 전에 계열사 유동성 위기와 경영권 분쟁 등에 시달렸지만 ‘현다르크’라는 별명답게 뚝심 있는 정면 돌파로 그룹 재건에 앞장섰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회상한다. “현대그룹 회장으로서 거대한 조직을 이해하고 구성원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 공동의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대학에서의 공부가 많은 도움이 됐다. 그때 공부하고 체득한 것들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 그 당시에는 상상조치 하지 못했다”고. 시아버지인 정 명예회장은 ‘평생 존경의 대상’으로 꼽는다. 그는 “며느리로서는 물론 사회학과 인성개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정 명예회장님은 언제나 제 존경의 대상”이라며 “그의 경영철학과 유지를 받들어 현대그룹과 남북 경협사업을 이끌었던 정몽헌 회장의 옆을 지켰던 것도 제 삶의 커다란 경험 중 하나”라고 했다. 현 회장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민족 화해와 공동 번영이란 소명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두 사람의 유지를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다. 현 회장은 최근 금강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반드시 제가 남북 경협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걸 마음속에 갖고 살아 왔다”며 “남북 경협사업에 대한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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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호

하윤수 교총 회장 “교육법정주의·교권확립 새해 과제”

“교권 보호와 학교교육 정상화” 교권2법 입법 촉구 “敎政靑협의체 구성, 교육수석비서관 부활해야” “현장성과 균형적 접근, 일관성 있고 예측가능한 정책” 주문 | 김영섭 기자 kimys@newspim.com “전국 50만 교원은 학생 교육에 전념하고 싶다!” 하윤수 36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회장은 얼마 전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1947년 11월 설립된 한국교총은 국내 최고·최대의 통합 전문직 교원단체로, 18만 교원이 가입돼 있다. 대한민국 18만 교원을 대변하는 교총 수장이 1인 시위에 나선 것은 교총 72년 역사에 처음이다. 하 회장은 실질적인 교권침해 대처와 예방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교총은 교권 보호와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이른바 ‘교권 2법’을 제안하며 관련 법률을 국회에 발의해 놓은 상태다. ‘가르칠 맛 나는 학교, 선생님이 행복해지는 파워교총’을 모토로 2016년 6월부터 교총을 이끌고 있는 하 회장을 만나 교권 보호의 중요성, 교육법정주의 등 여러 교육 현안에 대해 물어봤다. “교총 회장 1인 시위는 72년 교총 역사에 처음” Q.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하는 모습이 많이 보도됐다. 어떤 내용인가? A. 1인 시위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교육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하다. 교육자가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펼칠 수 없는 교육 현실에서 미래 교육을 논하고 대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에 실질적인 교육자의 교육활동 보장과 교권 보호를 위해 교총이 오래전에 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국회는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 교권침해의 실상과 교육현장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전달하고 조속한 법 개정을 강력히 촉구하기 위해 1인 시위에 나선 것이다. 정부 자료를 보면 최근 4년간 전국에서 1만2000여 건의 교권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33건이나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교총이 자체 파악한 바로도 2007년 204건에서 2017년에는 508건으로 무려 250%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Q. 교권 보호를 위한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A. 근본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육현장에서는 그저 학부모의 선처(?)와 합의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교원지위법(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학폭법(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아동복지법 등 교육 3법의 국회 통과가 중요한데 아동복지법은 2018년 11월 개정안이 통과됐다. 남은 2법은 교권침해에 대해 교육감이 의무적으로 고발하도록 하고(교원지위법),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v위)의 결정에 대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불복하려는 풍조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학폭위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Q. 국민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대학입시제도다. A. 기본적으로 제도가 너무 자주 바뀌고, 학생의 실력만으로 온전히 대학에 진학하기 어렵다는 것이 큰 문제점이다.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원하는 공부를 하면 그 결과가 대입에 반영되고, 국영수 점수가 높은 학생이 아니라 지원한 대학의 전공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갖췄는지를 평가하는 선발전형이 도입돼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사실상 대학 진학으로 유도하는 ‘외길 진로 체제’를 바꿔 다양한 진로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Q. 교육정책의 혼선을 줄이고 교육의 안정을 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A. 현장성을 최우선으로 반영하고, 균형적으로 접근하며,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또 한쪽의 시각과 주장에 치우칠 경우 교육적 논리보다 정치적·이념적 논리에 함몰되기 쉬운 만큼 다양한 목소리를 폭넓게 듣되 교육적으로 판단하고 중립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주요 사안에 대한 논의 및 결정 구조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교원단체와 교육부, 국회, 정당, 청와대가 참여하는 ‘교정청협의체’를 구성하고 청와대의 ‘교육수석비서관’을 부활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각종 교육 문제에 대해 사안마다 다수의 갈등 상황이 표출돼 온 만큼 정책결정 기관과 학교 현장이 함께 참여해 주요 사안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고 정책의 현장 적용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img4 “교육법정주의 확립 앞장설 것” Q. 교총이 사회적 공헌에도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A. 직전 부산교대 총장 때도 그랬지만 교총 회장이 된 후에도 소외계층을 위해 ‘희망의 사다리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전국 교육자를 대상으로 성금을 모금해 학생을 도와주는 ‘1교사-1학생’ 결연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또 시력이 좋지 않아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매년 5월 스승의 달에 다비치안경과 공동으로 전국에서 학생을 선발해 안경을 무료로 제공하고, 매달 전국 초·중·고·특수학교 등을 방문해 학교별 50명 내외의 어려운 학생에게 무료로 시력검사를 한 뒤 안경을 전달하고 있다. 특히 저 스스로 독립운동가 자손으로서 해외에도 희망의 사다리 교육을 전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18년 7월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한민족의 후손인 고려인들에게 한국 도서와 안경을 기증했다. 우즈벡에 보다 많은 책을 보내 교총 도서관을 개관하고, 한국어 교사의 한국 연수 등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Q. 새해 한국교총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이 있다면? A. 무엇보다 교육 본질 회복을 통한 공교육 강화 및 신뢰 회복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교육법정주의 확립에 앞장설 것이다. 현 정부 들어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육정책의 잦은 변동이다. 너무 자주 바뀌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가 정부를 불신하고 사교육 시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특히 대학입시의 경우 고교 학년마다 수능과목이 다르니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학생의 부담을 덜면서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한번 정해진 정책이나 제도를 쉽게 바꾸지 않아야 한다. 쉽게 바꾸지 못하도록 법으로 확고히 잡아주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 또 하나는 교권 보호 강화에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교육의 실질적 주체인 교육자의 권리가 침해당하면 교육 자체가 붕괴되고 말 것이다. 교육자의 교육적 지도 강화와 함께 점증하는 교권침해에 법과 제도로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국회에 이미 ‘교권 2법’의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국회는 교육현장의 교권침해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엄중히 인식하고 조속히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img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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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호

신학철 LG화학 대표, 혁신 DNA 심는다

3M 출신 ‘파격 인사’...‘노력과 훈련’으로 승승장구 전통 제조업 LG화학에 변화와 혁신 DNA 전파 | 김지나 기자 abc123@newspim.com 보수적인 기업문화로 유명한 LG그룹. 그중에서도 그룹 모태인 LG화학이 글로벌 기업 3M 출신 신학철 수석부회장을 신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영입한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격적인 인사였다. 한국인으로 글로벌 대기업의 최정상까지 올라선 그의 성공담을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3M과 LG의 기업문화는 결이 달랐기 때문이다. LG화학은 전통적으로 기초소재 사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석유화학 회사다. 최근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전기차 배터리 등 전기사업을 키워 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기초소재사업 부문의 매출 비중이 약 70%에 이른다. 이에 박진수 부회장을 비롯해 전통적으로 LG화학의 수장은 석유화학사업본부에서 나왔다. 반면 3M은 신제품을 통해 벌어들이는 매출 비중이 약 30%에 이를 만큼 ‘혁신기업’으로 유명하다. 그런 조직의 정점에 있었던 신 부회장을 LG화학 수장 자리에 앉혔다는 것은 3M의 혁신 DNA를 LG에 심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3M 필리핀 지사 노조문제 해결 후 역량 인정받아 신 부회장은 1984년 3M 한국지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필리핀 지사장을 거쳐 한국인 최초로 3M 해외사업을 이끌며 수석부회장까지 오른 전문경영인이다. 1957년생으로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고, 유학 경험이 없는 ‘토종 한국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3M에 입사한 신 부회장은 입사 9년 만에 한국3M 소비자사업본부장 자리에 앉았다. 이후 필리핀 3M지사장으로 발령받아 2년 반 동안 필리핀에서 생활하게 됐다. 필리핀에서의 경험은 신 부회장이 한 단계 도약하는 발판이 됐다. 신 부회장이 지사장을 맡을 당시인 1996년 필리핀 지사는 노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에 신 부회장은 필리핀 직원을 개인적으로 한 명씩 만나 그들이 겪는 고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노사 문제를 해결해 실적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어니스트 건들링의 저서 ‘나도 3M에서 일하고 싶다’에 따르면 신 부회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나는 고객 방문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방금 필리핀 3M 매출이 10억페소를 돌파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을 직원으로부터 전달받았다. 지난 2년 반 동안의 정말 힘들었던 일들이, 또 그것을 극복하느라 전 직원이 하나가 되어 모든 것을 쏟아부어 회사를 회생시킨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 그때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 아닌가 싶다.” 이후 미국 본사는 신 부회장의 역량을 높게 평가해 본사로 불러들였다. 미국 본사에서 신 부회장은 사무용품‧연마재사업부(이사), 전자소재사업부장(부사장), 산업용접착제 및 테이프사업부장(부사장), 산업용비즈니스 총괄(수석부사장)을 거쳐 해외사업부문 총괄(수석부회장), 글로벌 R&D‧전략 및 사업개발‧SCM‧IT 등 총괄(수석부회장)의 자리에 올라섰다. ‘내적 자신감’으로 3M 최고위직까지 질주 신 부회장은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내적 자신감’이 있었다고 얘기한다. 그는 2013년 부산고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반복된 훈련, 하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꺾이지 않는 내적 자신감을 형성한다. 언제부턴가 이게 생기기 시작했다. ‘아, 자신 있다.’ 이런 게 형성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수월해지고 습관이 된다. 본인이 가진 것을 사랑하는 것이 내적 자신감의 시작이다”라고 강조했다. LG와 결이 다른 조직에서 30년 넘게 몸담았던 신 부회장이 LG화학에서 어떤 그림을 그려 나갈 진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석유화학산업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LG화학에 변화와 혁신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요건이 됐다. LG화학에 변화와 혁신 DNA를 어떻게 심을 것인가는 앞으로 신 부회장이 새롭게 도전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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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호

"벤처투자, 변동성 줄이면 돈 번다" 김지원 아주IB투자 대표

“VC투자는 될성부른 떡잎 찾는 것...변동성 관리해 리스크 낮춰” “휴젤, 판권판매 안 된다 설득... 5배 이상 수익으로 돌아와” “최초 발굴, 투자한 ‘젠바디’ 내년 IPO 30배 이상 수익 전망” 관심 분야 바이오·헬스케어, IT산업... 美시장 확대 본격화 | 김민경 기자 cherishming17@newspim.com | 최상수 사진기자 kilroy023@newspim.com “VC(벤처캐피탈) 투자의 가장 큰 리스크는 변동성이다.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실적이나 시장 변동성은 있을 수밖에 없다. 기회가 있을 때 일부 처분하는 등 회수 시기에 대해 균형을 맞춘다. 이 밖에 산업 섹터와 투자 스테이지를 세분화해 리스크 총량을 조절한다.” 김지원(사진) 대표가 이끄는 아주IB투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업력을 갖고 있는 VC다. AUM(투자 규모)은 지난 9월 말 기준 1조4000억원 수준으로, 설립 이후 현재까지 28개 펀드를 청산했다. VC 투자 20여 년...가능성 본 휴젤 5배 ‘잭팟’ 김지원 대표는 지난 1999년 아주IB투자에 입사했다. 앞서 금융권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보수적인 분위기가 아쉬웠다고 한다. 본인이 하는 만큼 성과를 내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도전적인 업무를 원했지만 이 같은 일이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이에 아주IB로 자리를 옮긴 후, 김 대표는 투자처를 직접 발굴해 A부터 Z까지 함께 키워 나갔다. 수많은 벤처기업을 겪으며 ‘옥석 가리기’에 대한 인사이트도 생겼다. VC에 몸담은 지 20여 년. 그는 지난 2003년 진행한 휴젤이 가장 인상 깊었다. 임상1상 진행 중이던 휴젤에 얼리스테이지 투자를 검토하면서 김 대표는 우리나라 미용 시장 성장성을 높게 평가했다. 김 대표는 “당시 메디톡스가 보톡스 시장에 진출해 있었고 휴젤은 후발주자였지만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회사가 성장성도 차별성도 갖고 있었기에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업 초기 단계인 휴젤에 30억원을 투자하고 회사의 임상 설계부터 판매 전략까지 함께 진행했다”고 말했다. 전문적으로 구체적인 조언을 줄 순 없지만 대신 전문가를 매칭해 주거나 판매 전략, 상장 계획 등 김 대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에서는 함께 고민하며 성장해 나간다는 설명이다. 휴젤의 경우 특히 원천기술을 통해 상용화한 약물을 판매하는 법인 설립과 판권 판매를 놓고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판권을 판매하는 ‘쉬운 길’을 택하고 침체에 빠진 많은 벤처기업을 봐 온 김 대표는 휴젤에 “벤처 정신을 잃지 말자. 업사이드를 위해 지금 당장 벅차더라도 판매법인을 만들어 영업을 지속해야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김 대표는 최종적으로 휴젤 투자를 회수하면서 약 5배 정도의 수익을 냈다. 모든 투자가 긍정적인 결과물을 낸 것은 아니다. 예컨대 척추디스크 수술을 위한 고정장치 등 의료기기를 제조, 판매하는 유앤아이라는 회사는 상장까지 10년이 걸렸다. 김 대표는 “당시 시중에 유통되던 제품 대부분은 외국계 회사 것이었다. 이 정도 기술을 가진 국내 기업은 유앤아이가 유일했다. 진입장벽이 높아 초반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사장님이 굉장히 우직하고 꾸준한 분이었다. 이런 분이라면 언젠가는 일을 낼 거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유앤아이는 김지원 대표의 지원을 받아 10년 동안 꾸준히 제품 개발과 생산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BAM 생체분해형 마그네슘 상업화에 성공하면서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2015년 코스닥에 입성했다. 벤처 대박?...철저한 변동성 관리가 수익성 좌우 그는 VC 투자에 대해 “무작정 대박을 꿈꾸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철저한 기업 검증과 리스크테이킹을 거쳐 수익을 안정적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차별화 포인트가 있어야 투자 매력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벤처기업의 비즈니스가 산업 트렌드에 맞는지 여부다. 예컨대 똑같은 바이오 투자라 하더라도 당뇨병 치료제는 이미 경쟁력이 떨어진다. 얼마나 좋은 기술을 갖고 있는지, 사업이 완성되면 시장에 어느 정도 어필할 수 있는지 봐야 한다.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거나,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회수 시기에 대해서도 김 대표는 “시리즈A, 시리즈B, 시리즈C, IPO, 상장 이후 등 시기를 나눠 조금씩 지분을 청산한다.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실적이나 장세에 따른 변동성은 있기 마련이다. 특히 바이오기업의 경우 호흡이 길기 때문에 중간에 엎어지는 경우도 잦다”고 설명했다. ‘사람’에 대한 중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김 대표는 CEO의 비즈니스 철학을 중요하게 본다. 벤처기업 대표들 가운데는 자기만의 상상에 빠져 허황된 비즈니스를 꿈꾸는 사람이 종종 있다고 했다. 이 경우 사업이 성공하기 상당히 어렵다. 김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맨파워’라고 한다. 좋은 기술과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이를 사업화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운용역들의 경쟁력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드러냈다. 김지원 대표가 이끄는 아주IB투자에는 32명 전문인력 중 10년 이상 근무자만 13명이다. 통상 7~8년이 펀드 청산기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사이클을 경험한 운용역이 많다. “AUM을 만들고 이익을 만들어 내는 것도 사람이다. 다른 금융사들도 우수한 인력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회사의 성과가 좌우된다. 차별화된 인센티브 시스템을 확보하고 펀드레이징 특화 부서를 만들었다. 투자에만 집중할 수 있어 퍼포먼스를 내기 좋은 환경이다.” 올 연말 김 대표가 주목하는 산업은 라이프사이언스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시장 확대 속도가 빨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구 변화도 급속하게 진행돼 이를 뒷받침할 바이오, 헬스케어 등도 눈여겨본다. 4차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IT산업에 대해서도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김 대표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등 미래 부가가치가 높은 4차산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내년 중 실리콘밸리에 추가로 현지사무소를 설치, 2000억원 규모 펀드를 레이징해 스타트업 투자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아주IB투자는 올해 말까지 1조6000억원의 AUM을 달성할 전망이다. 여타 VC와 최대 4~5배 차이 나는 운용 액수로, 2000억원 규모 펀드가 올해 안에 결성을 앞두고 있어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 내년에도 김 대표가 선택한 ‘VC 대어’들의 엑시트는 이어진다. 가장 기대감이 큰 곳은 진단키트 제조, 판매사인 젠바디. 김 대표는 “브라질 월드컵 당시 지카바이러스가 유행하지 않았나. 빨리 진단해서 치료해야 하는데 신속한 진단 키트가 없었다. 젠바디는 지카, 뎅기, 황열 등 더운 나라의 감염성 질환 진단 키트에 경쟁력이 있는 회사다. 우리가 제일 먼저 발굴해 첫 투자했는데, 기업가치가 300억원 내외에서 작년 세컨더리마켓 기준 1조원 이상으로 훌쩍 뛰었다. 30배 이상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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