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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침이 살살, 눈이 번쩍 기네스북에 오른 10대 신장요리

위구르족의 특별한 서역요리 구운 빵 ‘낭’은 신장요리의 대표 음식 | 김경동 중국전문기자 hanguogege@newspim.com 외지인이 중국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 가면 음식의 양과 요리 사이즈를 보고 놀란다. 신장요리 가운데 낭(饢), 다판지(大盤雞), 완런펀탕(萬人粉湯), 쭈이다유가오타(最大油糕塔), 완런좌판(萬人抓飯) 등 10종은 기네스북 신기록에 올라 있을 정도로 엄청 크다. 그래서 모든 음식이 신장으로 가면 적어도 배 이상은 커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신장에서 손님을 접대할 때 큰 접시에 음식을 풍성하게 담아내는 것이 기본 예의다.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고 포장해서 가져가는 것은 손님이 주인의 열정에 대한 최고의 답례다. 그래서 커우리런(口里人, 신장 사람들이 외지인을 이르는 말 )이 신장에 와서 오랫동안 생활하면 모두가 뚱뚱해진다는 말까지 나왔다. 음식을 통해 열량을 취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서북쪽에 위치한 신장은 아한대 기후에 속해 1년 중 추운 겨울이 절반을 차지한다. 다른 도시의 가을 정취가 무르익을 때 신장에는 눈발이 휘날리고, 다른 도시가 짧은 치마를 휘날릴 때도 신장엔 여전히 찬바람이 분다. 6월에 눈이 내리는 것도 신장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길고 추운 겨울에 몸의 열량 소비가 많아진다. 밥을 먹는 것은 열량을 공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혹독한 자연환경 탓에 신장의 식습관과 요리의 크기, 무게 등은 신장요리의 기본적인 특징이 됐다. 신장은 여러 민족이 어울려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전의 신장은 주로 유럽인종, 카프카스인종, 돌궐족 등이 주를 이뤄 체격이 크고 식사량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신중국 후 많은 신장 사람이 유전이나 교통 등 기본 인프라 건설에 투입됐다. 이런 일은 체력 소모가 크다. 힘든 일을 할 때 신장 사람들에게 최고의 위로가 되는 것이 음식이다. 큰 접시에 요리를 올려놓고 크게 한입 고기를 먹는 것은 노동 후 큰 기쁨이다. 신장의 큰 접시 요리를 말할 때 다판지는 빠뜨릴 수 없는 음식 중 하나다. 다판지는 신장 다민족 융합의 축소판이다. 신장의 전통음식은 아니지만 수십 년간 이민자들이 창의적으로 만들어낸 발명품이다. 향이 깊고 그윽한 다판지는 입맛에 맞고 실용적이어서 꽤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신장 샤오완(沙灣)현의 한 농민이 고추와 닭고기 볶음 식당을 열었다. 하루는 한 손님이 와서 맛을 보니 맛은 좋은데 양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주인에게 닭 한 마리를 모두 볶아 달라고 했다. 주인은 닭을 볶은 뒤 양이 넘치자 비빔면을 담는 접시에 담아줬다. 이후 다른 손님들도 큰 접시에 담아 달라고 했다. 원래 메뉴판에는 ‘고추닭볶음’이라고 쓰여 있었으나 후에 큰 접시에 닭고기를 담으면서 ‘다판지’로 불리게 됐다. 매운맛이 강한 큰 닭고기를 푹 삶아 흐물흐물하게 만든 다음, 황금빛 감자를 곁들인 후 선명한 빛깔의 청홍고추와 기름 소스가 진하게 풍기는 걸쭉한 국물에 손가락 두 개 넓이의 가죽허리띠 같은 ‘피다이몐(皮帶面)’을 넣으면 다판지가 완성된다. 신장 사람들 식탁의 메인은 보름달같이 큰 낭(饢)이다. 직경이 40~50cm인 낭은 만터우(饅頭), 화줸(花卷), 바오쯔(包子) 등의 주식과 비교해 크기에 있어서 정말 압도적이다. 위구르족과 카자흐족들이 주식으로 먹는 구운 빵의 일종인 낭은 크기에 있어서 천하에서 가장 큰 음식 중 하나다. 집에 낭이 있으면 마음도 배부르다는 말이 있다. 생존의 상징인 낭은 신장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식이다. 쑤낭(素饢), 러우낭(肉饢), 카오낭(烤饢), 낭바오러우(饢包肉), 차오낭(炒饢), 시과파오낭(西瓜泡饢) 등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야시장 노점상에서도 낭은 빠질 수 없는 메뉴다. 불고기를 낭 안에 넣어 신장의 지역 맥주인 둬밍다우쑤(奪命大烏蘇)와 함께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img4 가정식인 서우좌판(手抓飯)은 신장 사람들의 1년 노고를 위로하기에 충분하다. 양고기와 야채를 섞어 만든 서우좌판은 위구르족, 카자흐족, 우즈베크족 등 소수민족이 명절에 손님을 접대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이다. 몇 사람이 온돌 위에 앉아 중간에 깔아놓은 깨끗한 식탁 보자기 위에 큰 접시 좌판을 올린다. 손님이 모두 앉은 뒤 주인이 한 손에는 그릇을, 한 손에는 주전자를 잡고 손님에게 손을 씻도록 한다. 이런 과정이 끝나면 서우좌판이 들어온다. 서우좌판은 일반적으로 직접 접시에서 손으로 집어서 먹는다. 그러나 어떤 가정에서는 한족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숟가락을 준비하기도 한다. 신장에는 ‘3일 동안 라탸오쯔(拉條子)를 먹지 않으면 학질에 걸린다’는 말이 있다. 신장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패스트푸드다. 신장에서 면을 먹을 때는 절대 몇 그릇을 먹었다라고 얘기하지 않고 몇 접시를 먹었다라고 얘기한다. @img5 튀김옷을 묻히지 않고 기름에 슬쩍 튀긴 라탸오쯔는 신장비빔면의 원조다. 라탸오쯔의 핵심은 면에 있다. 위도상 높은 위치에 있는 신장은 소맥의 향과 맛이 진하고 그윽하다. 라탸오쯔에 기름을 넣는 것은 곧 영혼을 주입하는 것과 같다. 굵은 면발의 라탸오쯔 한 접시면 두세 명의 여자아이가 함께 먹기에도 충분하다. 신장미펀(新疆米粉)은 지옥과 천당을 왔다 갔다 하는 맛이다. 붉은 고추기름이 스며든 신장미펀을 맛본 신장 여자아이들이 고향의 맛을 정의할 때 쓰는 말이다. 대다수 사람들의 인상에 신장은 매운 음식의 고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다. 신장은 매운 고추의 원산지도 아니고 매운 음식을 먹기 시작한 역사도 길지 않다. 40년 전 신장요리에 매운 고추가 등장했다. 1980년경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쓰촨 사람이 신장으로 이주하면서 매운 고추도 함께 신장요리에 포함됐다. 매운 고추는 이미 신장요리의 특색이 됐다. 다판지, 비빔면(拌面), 차오미펀(炒米粉), 량피쯔(涼皮子) 등 전형적인 신장요리에도 매운 고추가 들어간다. 양꼬치를 파는 상인이 길거리에서 큰 부채를 부치며 짙은 연기 속에서 양꼬치를 굽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양꼬치’ 하면 ‘신장구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신장에서는 굽지 못할 것이 없다. 통양고기구이, 낭구이, 바오쯔구이, 호박구이 등을 비롯해서 ‘육해공구이’도 있다. 큰 접시가 유행인 신장에서 구이도 한 상 가득 채워야 만족스럽다. 신장의 가장 핫한 구이는 다양한 고기로 만든 육해공구이다. 엄청 크고 다양해서 ‘항공모함’으로도 불린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고기, 땅 위를 뛰어다니는 양, 하늘을 나는 닭은 ‘육해공구이’의 주요 재료다. 접시 아래에 감자, 고구마 등을 깔아 세 가지 단백질 육류의 유지방을 흡수한다. 양파는 신장구이로 빠질 수 없는 재료다. 한 손에는 고기를, 다른 한 손에는 양파를 잡고 있으면 신장 사람이 즐겨 먹는 육해공구이의 전형적인 모습이 된다. 육해공구이 한 접시를 몇 사람이 함께 들고 가져오면 강렬한 자극을 받을 것이다. 80~150cm 길이, 40~60cm 넓이의 접시에 구이가 가득 차 있는 모습이 오감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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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애니메이션 역사 새로 쓴 ‘자오쯔’ 감독

토종 애니메이션 ‘너자’ 사상 최고 박스오피스 작품성과 기술력 애니메이션 산업 성장 촉진 | 강소영 중국전문기자 jsy@newspim.com 양 갈래로 둥글게 묶은 머리, 짙은 다크서클, 익살스럽고 반항기 넘치는 표정의 소녀 캐릭터가 중국을 강타했다. 중국산 애니메이션 ‘너자(Ne Zha, 哪吒)’의 흥행이 빚어낸 현상이다. 도교에서 신봉하는 소녀 형상의 신 ‘나타’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너자’는 기존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탈피한 캐릭터, 중국 기술이라 믿기지 않는 훌륭한 특수효과,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중국 토종 애니메이션’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너자’는 단순히 중국 애니메이션의 상업적 성공을 넘어 취약했던 중국 문화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입증했다. 나아가 중국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문화 산업에 대한 희망을 키우는 효과까지 내고 있다. 실력에 시대까지 잘 타고난 ‘행운의 천재 감독’ ‘너자’ 신드롬으로 이 작품을 만든 애니메이션 감독 ‘자오쯔(餃子)’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그는 각종 행사와 매체의 인터뷰에 숨돌릴 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펑황망(鳳凰網)과의 인터뷰에선 “최근 매우 피곤하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히말라야에 들어가 외부와 연락을 끊고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고 밝혔다. 자오쯔 감독의 본명은 양위(楊宇)로 쓰촨성 출신이다. 전형적인 ‘바링허우(80後, 80년대 이후 출생자)’ 세대로 만화 마니아에서 전문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됐다. 필명인 ‘자오쯔’는 만두라는 뜻이다. 평소 만두를 즐겨먹어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그의 소박한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오쯔 감독의 성공 스토리는 애니메이션 못지않게 극적이다. 안정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약학대학 3학년 시절 친구가 소개한 3D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만화가의 꿈을 키우게 됐다. 그가 만화 산업에 발을 들일 당시만 해도 중국의 애니메이션 산업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국산 애니메이션에 대한 수요도 적었고, 애니메이션을 통한 광고 수입도 변변치 않았다. 특히 그는 관련 전공자가 아니어서 애니메이션 분야 취업도 쉽지 않았다. 자오쯔는 29살의 나이에 스스로 작품을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혼자 집에서 컴퓨터 한 대로 애니메이션 작업에 돌입했고, 3년 8개월 만에 첫 작품으로 16분짜리 단편 ‘씨스루(See Through·打, 打個大西瓜)’를 선보였다. 홀로 작품 제작에 매진하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지만, 생활 형편은 녹록지 않았다. 수입이 없어 매달 1000위안(약 17만원)에 불과한 어머니의 연금에 의존해 생활해야 했다. 사회생활과도 거리를 뒀다. 당시 그는 자기 집을 중심으로 40km 거리 이상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바로 빛을 보게 된다. 2009~2010년 사이 ‘씨스루’는 국내외 각종 영화제의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수십 개의 상을 받으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단은 ‘씨스루’에 심사위원특별상을 시상하면서 매우 독특한 시각적 효과와 주제를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많은 상을 휩쓸었지만, 그 후에도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자오쯔의 생활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의 명성을 이용하려는 사기꾼에게 속아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열악한 중국 애니메이션 산업 환경도 그대로였다. 우수한 스토리와 높은 기술력에 완성도 높은 작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최대한 적은 자본으로 대충 작품을 찍어내 정부의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업체가 대다수였다. 자연스럽게 중국산 애니메이션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수요가 없어 수익을 내기도 힘들고, 수익을 기대할 수 없으니 투자자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업계 전반이 침체를 겪다 보니 우수한 인력도 배출되기 힘들었다. 자오쯔 감독의 작품 생애에 전기가 찾아온 것은 2015년 여름이다. 유명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기업 인라이트미디어(ENLIGHT MEDIA)가 애니메이션 제작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자오쯔에게 투자하기로 한 것. 인라이트미디어는 자오쯔에게 어떠한 주제든 자유롭게 창작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작품을 만들도록 했다. 때마침 등장한 톈샤오펑(田小鵬) 감독의 애니메이션 ‘신서유기: 몽키킹의 부활(大聖歸來)’의 성공도 자오쯔 감독이 ‘너자’를 성공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신서유기: 몽키킹의 부활’은 중국 고전소설 서유기를 기반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으로, 기존의 중국 작품에서 찾을 수 없었던 높은 작품성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국산 애니메이션의 성장성과 상업성을 확인한 인라이트미디어는 자오쯔 감독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너자’의 제작에 투입된 협력회사와 작업팀만 60여 개에 달하고, 투입 인원은 중국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많은 1600여 명에 달했다. 자오쯔 감독이 ‘너자’를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시나리오 집필에 두 달여, 세부 작업과 제작 2년 등 총 5년이 소요됐다.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지난 7월 26일 첫 상영된 후 불과 열흘 만에 박스오피스가 21억3000만위안(약 3654억원)에 달했다. 화제성과 박스오피스 기록이 전 흥행작인 ‘신서유기: 몽키킹의 부활’을 쉽게 넘어섰다. 인기 연예인과 유명인 등도 SNS를 통해 ‘너자’에 대한 호평과 추천을 이어갔다. 관련 업계는 ‘너자’의 박스오피스가 40억위안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서유기: 몽키킹의 부활’로 국산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확인한 관객들은 ‘너자’를 통해 자국 애니메이션 기술이 기대 이상으로 발전했음을 깨닫고 환호했다. 더 이상 애국심에 기대지 않고 작품성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도 쏟아졌다. 중국 애니메이션 역사 새로 쓴 ‘너자’의 성공 비결 ‘너자’는 할리우드의 쟁쟁한 애니메이션 작품을 제치고 중국 애니메이션 시장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너자’의 성공은 △열정적인 천재 감독의 집념 △중국 애니메이션 산업 발전을 갈망하는 관련 업계의 노력 △중국 애니메이션 작품에 대한 높아진 관객의 눈높이 등 여러 여건이 종합적으로 맞아떨어져 이뤄진 결과다. @img4 자오쯔 감독은 중국인 누구나가 알고 있는 익숙한 신화 인물을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로 재탄생시켰다. 고정관념을 깬 캐릭터에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진취적인 성격을 입혀 기존 애니메이션과 차별화했다. 인라이트미디어의 전폭적 지원하에 제작 수준도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전체의 80%가 특수효과로 제작됐고,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느껴질 정도로 섬세한 작업이 이뤄졌다. 실제 제작 단계에서 예기치 못했던 난관과 기술력의 한계로 포기해야 했던 설정도 많았지만, 과거 중국 애니메이션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섬세한 표현력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협력업체와 기술자들의 노력도 ‘너자’의 성공에 큰 공헌을 했다. 자오쯔 감독은 방대한 분량의 작업을 위해 수많은 외주업체와 협력했는데, 감독의 요구는 기존의 작품과 차원이 달랐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시나리오와 각종 제작 환경을 볼 때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 탄생할 것을 예감했다. 우리는 제한된 자원과 시간으로 수차례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원가를 맞추기 위해 작품의 질을 낮출 것이냐, 아니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위대한 작품’을 완성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었다.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우수한 작품의 출현에 관객들도 적극 호응했다. 올해 초 짧은 광고 영상이 발표됐을 때만 해도 형편없는 중국산 애니메이션이라는 혹독한 평가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제작사가 공식 상영 전 진행한 수차례의 시사회에서 ‘너자’의 진가가 드러났고, 삽시간에 퍼진 ‘입소문’ 덕에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두게 됐다. 중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신서유기: 몽키킹의 부활’을 제작한 톈샤오펑 감독이 중국산 애니메이션 산업 발전의 길을 냈다면, ‘너자’의 자오쯔 감독이 관련 산업의 본격적 성장을 촉진하는 엔진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두 작품의 연이은 성공으로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높은 작품성을 추구하는 감독과 제작사가 늘면서 우수한 작품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활성화는 다시 우수한 인력 배출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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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중·미 무역분쟁의 본질과 중국 전략 그리고 한·중 관계

| 박동훈 중국 연변대학 교수, 북한한국연구소 부소장 중·미 무역분쟁이 심화하면서 양자 관계가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는 듯하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중·미 관계의 불확실성도 한껏 증폭되고 있다. 중·미 간의 무역전쟁은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중·미 정상이 휴전에 합의함으로써 협상 앞날에 기대감이 모아졌으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부터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난국으로 빠져들었다. 미국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미국의 중국 관세 압박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무역분쟁에서 기술전쟁으로 중·미 무역전쟁의 배경에는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 문제 외에 기술산업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작용하고 있다. 2018년 3월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발표한 ‘301보고서’는 1974년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중국 기술 이전, 지재권과 혁신에 관련된 법률, 정책과 실천에 대한 조사 결과를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국은 이 보고서에서 중국의 불공정한 기술이전 제도, 기술혁신 성과 및 배상책임에서 외자기업에 대한 차별 정책, 인수합병(M&A)을 통한 미국 기업 선진기술 탈취 등을 문제 삼았다. 이는 중·미 무역분쟁이 단지 무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양국 간 기술 영역에서의 치열한 전쟁이 함께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 제2의 통신장비업체인 ZTE(中興通信)에 대한 제재가 대표적이다. 2018년 4월 16일 미국 상무부는 이란과의 불법 거래를 이유로 ZTE에 향후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제재를 가했다. ZTE는 핵심 부품의 약 30%를 미국에서 수입하는데, 퀄컴의 칩세트 등은 미국 기업이 사실상 독점 생산하는 첨단 부품이어서 대체재가 없다. 미국의 제재로 당시 ZTE는 주가가 폭락하는 등 존폐 위기에 몰렸다. 2018년 5년 중·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의 ZTE에 대한 제재는 완화 조짐을 보였고, 결국 ZTE가 10억달러의 벌금과 4억달러 예치금, 경영진 교체, 10년간 규제 준수 감시팀 설치 등 조건을 수용하면서 ‘한시적, 부분적’으로 금지령이 해제됐다. ZTE 외에 미국의 강한 견제를 받는 통신업체가 바로 중국의 대표적인 IT기술기업이라 할 수 있는 화웨이(華爲)다. 중·미 정상회담 진행 시점인 2018년 12월 1일 캐나다는 미국 당국의 요청에 따라 화웨이 그룹 부회장이자 수석재무관인 멍완저우(孟晚舟)를 공식 체포하면서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화웨이는 창립 30여 년 만에 세계 66개국 154개 통신업체와 5G 통신기술의 현장 시험을 하고 있다. 미국보다 2년 앞섰다고 한다.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동맹국들로 하여금 화웨이 제품을 쓰지 말 것을 경고하면서 뉴질랜드, 호주 등이 동참하고 있다. 급기야 2019년 5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중국 등 외부 위협으로부터 미국 정보통신 기술과 서비스를 보호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에 따라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블랙리스트인 “믿지 못할 실체 명단”에 올렸다. 무역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현재 발효 기준으로 미국의 대중 관세 부과 조치 대상품목 수입 규모는 2500억달러이며, 중국의 대미 관세 부과 조치 대상품목의 규모는 1100억달러에 이른다. 미국은 여기에 9월 1일부터 3000억달러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물린다고 밝혔다. 미국의 대중 추가 관세 부과 조치의 경우 그 대상품목은 주로 ‘중국제조 2025’ 정책의 수혜 업종에 해당한다. 또한 미국은 현재 과학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산업정책을 제재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 격차 축소와 패권국의 불안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뤄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대외개방 확대로 경제가 급성장세를 맞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 GDP는 2000년 기준 1조2000억달러에서 2016년 11조2000억달러로 10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에 반해 미국 GDP는 같은 기간 10조2000억달러에서 18조6000억달러로 1.8배 성장했다. 미국 대비 중국 GDP 비중은 2000년 11%에서 2016년 60%로 확대됐다. 경제 외형뿐만 아니다. 중국은 연구개발(R&D)과 국제특허 등 과학기술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미국을 따라잡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미·중 경제안보평가위원회는 2017년 보고서를 통해 만약 미국이 세계 시장 주요 기술 영역들에서 주도적 지위를 상실할 경우 미국의 경제와 미국 기업의 경쟁우위를 상실할 뿐만 아니라 국방공업의 발전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일방주의적 경제 압박은 5G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과 무관치 않다. 중국 4차산업 핵심 기술은 빅데이터(Big data),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로봇기술(Robotics), 유전자 편집(Gene editing) 등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이는 국방 분야에까지 심각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며, 궁극적으로 글로벌 세력 균형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중·미 간의 무역전쟁은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주도권 경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이 중국에 관세를 부과한 실제 목적이 무역적자 감축보다는 지식재산권에 관한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압박해 국가 주도의 기술 굴기 정책인 ‘중국제조 2025’를 억제하려는 것이 그 본질이다. 중국의 대응방향과 한·중 관계 중·미 관계는 새로운 갈림길에 들어섰다.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미국의 불안감이 증대됐고, 이러한 인식은 점차 미국 내에서 초당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중국 견제는 경제 영역을 넘어 안보 및 정치사회 제도와 이데올로기 영역으로까지 무한대로 확산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미국은 중국을 21세기의 주요 문제로 여기고 있고, 이 세계가 새로운 냉전 상황에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지중파 대표로 꼽히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중·미 관계는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면서 새로운 관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현재 세계 질서가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흔들고 있다고 보고, 현 질서에 대해 전방위적인 수정을 가하겠다는 심산이다. 이 때문에 궁극적으로 다자주의적 국제질서를 유지할 것인지, 미국 중심의 새로운 경제 질서를 재편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중·미 간 제도적 경쟁이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중국은 14억 내수시장을 확보하고 있고, 여전히 6%대의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의 중국 경제 제재는 중국 기업들로 하여금 심기일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미국이 국제사회를 동원해 중국에 대한 전략적 견제를 강화하려 하지만, 국제사회의 반응은 긍정적이지 않다. 인도는 다자적 제휴를 선호하며 중·미 사이에서 뚜렷한 대미 지지를 보이지 않고 있고, 일본 역시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고려해 미국의 대중국 강경 정책에 미온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다수의 유럽 국가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화웨이 사용 중단 요청에 대해 미온적인 상황에 비춰볼 때 미국의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 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중국은 현 국제질서의 수혜자로 어디까지나 다자주의적 국제협력체의 구성과 제도적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공세적으로 나올수록 중국은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며 양자 관계를 관리해 나갈 것이다. 요컨대 중·미 간 경쟁은 협력을 동반할 것이며,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정부와 다자주의적 국제협력체제를 지향하는 중국 간의 제도적 경쟁은 오히려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제고시킬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은 미국이냐, 중국이냐 하는 줄서기식 일원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한층 유연한 시각과 태도에 기초해 실무적인 영역들에서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한·중 양국은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서 신뢰 기반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 또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한·중 협력의 방향 설정과 함께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신한반도체제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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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Show must go on” 日 쇼 비즈니스의 상징 쟈니 기타가와

남성 아이돌 장르의 개척자, 쟈니 기타가와 사장 사망 1970년대부터 일본 가요계 주름잡아 SMAP·아라시 등 국민 아이돌 배출 ‘쟈니스 왕국’ 몰락 시작됐다는 지적도 나와 |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 2019년 7월 9일 쟈니스 사무소의 창업자 쟈니 기타가와(ジャニー喜多川· 향년 87세) 사장이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했다. 그는 6월부터 몸 상태 이상으로 병원에 긴급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SNS는 그에 대한 조의와 함께 “Show must go on”이라는 말로 뒤덮였다. 일본 최고의 연예기획사 창업자이자 쇼 프로듀서였던 쟈니 기타가와. 별세 직전까지 소속 연예인 발탁부터 공연까지 관여하며 쇼 비즈니스에 평생을 바친 그에게 “Show must go on”은 인생 철학 그 자체였다. 일본 최고의 연예기획사 일궈낸 주역 SNS를 뒤덮었던 이 문장은 사실 쟈니스 소속 탤런트가 출연하는 공연의 대사다. 도모토 고이치(堂本光一)가 19년째 주연을 맡고 있는 이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에서 최고의 쇼를 추구하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극 중 주인공은 “Show must go on(쇼는 계속돼야 한다)”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문화평론가인 사이죠 노보루(西条昇) 에도가와(江戸川)대학 교수는 “이 말은 원래 미국 쇼 비즈니스에서 사용된 것”이라며 “크게 히트하는 쇼가 있는가 하면 단기간에 사라지는 쇼도 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무대는 계속돼야 한다는 생각이 담긴 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쟈니 사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는 사이죠 교수는 “인터뷰 도중 쟈니 사장이 ‘쇼만큼 멋진 장사는 없다’고 말했다”며 “쟈니 사장은 사무소의 탤런트를 통해 엔터테이너로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쟈니 기타가와 사장은 193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의 일원으로 한반도에 들어와 전쟁고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한국어도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쟈니 사장이 처음 쇼 비즈니스 세계에 발을 들인 건 10대 시절이었다. 미국 현지를 방문한 일본 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통역을 맡은 게 시작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일본에서 밴드 활동을 하던 그는 자신이 코치를 맡고 있던 소년 야구팀 ‘쟈니스’ 멤버들을 스카우트해 1964년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을 시작했다. 쟈니스 사무소는 1970년대 그룹 포리브즈(フォ一リ一ブス)와 고 히로미(郷ひろみ)가 인기를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쟈니스 연습생 육성 시스템인 ‘주니어’ 제도도 정착됐다. 1980년대 배출한 다하라 도시히코(田原俊彦)와 곤도 마사히코(近藤真彦), 노무라 요시오(野村義男)의 ‘타노킨 트리오’도 큰 성공을 거뒀다. 특히 곤도 마사히코가 창립 이래 최초의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데 이어 소년대가 히트하고, 히카루GENJI가 사회 현상으로 일컬어질 정도였다. 현재 아시아권의 ‘남성 아이돌’ 장르 자체를 쟈니스가 개척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1991년 데뷔한 SMAP이 일본의 국민 아이돌로 자리 잡으면서 쟈니스 사무소의 입지는 공고해졌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기무라 타쿠야(木村拓哉), 초난강(草彅剛)이 소속돼 있던 이 그룹은 ‘일본의 인프라에 수도, 전기, 가스, SMAP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영향력을 자랑했다. 쟈니스 사무소의 영향력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SMAP의 국민 아이돌 계보를 이은 아라시(嵐) 외에도 토키오(TOKIO), V6, 킨키키즈, 칸쟈니에이또(関ジャニ∞), 헤이세이점프 등 인기 그룹이 활동 중이며, 킹앤프린스 등 신규 그룹도 일본 예능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쟈니스, 한국의 아이돌 시장에도 영향 쟈니 사장의 죽음은 한국에서도 보도될 정도로 나름 큰 뉴스였다. 쟈니스가 한국 연예계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지지 않았던 시절에도 쟈니스의 음악은 한국에서 암암리에 퍼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0년대 곤도 마사히코의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キンキラキンにさりげなく)다.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 인기를 끌던 히카루GENJI의 경우 한국의 팬페이지가 2000년대까지 운영됐으며, 이들을 모방한 그룹인 ‘통크나이’라는 그룹도 존재했다. 하지만 쟈니스가 음악보다는 ‘기획사 운영’ 면에서 한국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SM엔터테인먼트는 쟈니스의 시스템을 모방한 댄스그룹을 데뷔시켰으며, 주니어 시스템을 모방한 SM Rookies 시스템을 도입했다. 대성기획의 젝스키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젝스키스 멤버들은 블랙키스, 화이트키스로 나뉘었는데, 이는 쟈니스의 V6를 모방한 것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 아이돌 멤버들이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는 빈도가 늘어난 것도 마찬가지다. 쟈니스는 압도적인 회사의 영향력을 이용해 영화와 드라마 캐스팅에 관여하는데, 한국 기획사들이 이를 따라 한 것이다. 쟈니 사장 사후 ‘쟈니스 왕국’의 운명은 이처럼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성장한 쟈니스지만, 무대와 소속 연예인에 대한 쟈니 사장의 애정은 변함 없었다. 2003년엔 소속 연예인의 무대 연출을 통해 기쿠타 가즈오(菊田一夫) 연극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2011년과 2012년엔 기네스 기록 보유자로 이름을 올렸다. ‘가장 많은 1위 싱글을 프로듀스한 인물’(2011), ‘가장 많은 콘서트를 프로듀스한 인물’(2011), ‘가장 많은 차트 1위 아티스트를 만들어낸 프로듀서’(2012) 부문이었다. 그는 고령에 접어든 2010년대까지 무대 연출에 관여했다. 때문에 쟈니스 소속 연예인의 모든 콘서트에는 ‘종합연출 쟈니 기타가와’라는 크레딧이 들어갔다. 일본에 널리 알려진 쟈니 사장의 말투는 ‘You~ 해버려’인데, 그는 소속 연예인을 이름이 아닌 You로 불렀다. 이는 자신이 소속 연예인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해 누구는 이름으로 부르고, 누구는 그러지 못하면 관심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그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영향인지 소속 연예인들에게 자신을 부를 때 존댓말이 아닌 반말을 사용하도록 했다. @img4 흔들리는 쟈니스 왕국...그의 사후는? 일본 연예계에선 쟈니 사장의 사후 ‘쟈니스 왕국’의 행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쟈니스 왕국의 붕괴 신호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쟈니스의 간판 그룹이었던 SMAP의 해산이 신호탄이었다. 특히 소속사 내 파벌 싸움으로 그룹 멤버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룹이 갈라지면서, 소속사에 대한 비판이 높아졌다. 아티스트 관리 한계가 노출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여기에 2018년 인기 그룹인 토키오의 한 멤버가 미성년자와 얽힌 성추문으로 은퇴를 했으며, 올해 1월엔 아라시가 활동 중지를 발표했다. 연이은 악재는 쟈니스 위기설로 이어졌다. 특히 현재 쟈니스에 ‘간판 스타’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쟈니스에는 토키오, V6 등 인기 그룹이 건재하지만 SMAP이나 아라시처럼 ‘국민 아이돌’로 올릴 수 있는 그룹은 없다. 일본의 아이돌 평론가 나카모리 아키오(中森明夫)는 “아라시의 활동 중단은 쟈니스 몰락의 신호탄이었다”며 “SMAP 해산 이후 △토키오 멤버 야마구치 다쓰야(山口達也)의 성추문과 은퇴 △그룹 ‘다키&츠바사’의 해산 등 일련의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인상을 줬다”고 말했다. 여기에 소속사의 성공을 일궈냈던 창업자의 별세는 또 다른 악재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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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한국 중소기업 상품 대륙에 쫙~ 한국파워셀러협회 자오옌빈 회장

| 주옥함 중국전문기자 wodemaya@newspim.com | 정리=김경동 중국전문기자 hanguogege@newspim.com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세계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구촌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방 안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최신 자료를 검색하고, 친구들과 얘기하고, 물건을 사고, 심지어 해외직구도 한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은 중국의 한 젊은이가 있다. 한국의 강남대학교에서 부동산학을 전공한 한국파워셀러협회 자오옌빈(趙彥彬)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해외직구의 큰 조류를 깨닫고 전자상거래 업계에 뛰어들어 ‘한국파워셀러협회’를 만들었다. 그는 중국 소비자들이 다양한 한국 상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타오바오(淘寶)와 글로벌 협약을 맺어 한국 중소 브랜드를 중국 시장에 진출시켰다. 지난 7월 19일 뉴스핌·월간ANDA는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한국파워셀러협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중 양국의 크로스보더 전자상거래 교류에 지속적으로 공헌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자오옌빈은 2007년 중국 산둥(山東)성 타이안(泰安)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고향인 산둥반도에 1만 개 가까운 한국 기업이 있어 한국에 친밀감을 느꼈고,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한국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자오옌빈은 강남대에서 부동산학을 전공했다. 부동산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강남대의 대표적인 전공이 부동산학이고 교수진 역량도 아주 좋다. 그다음으로 부동산학은 경영 범위가 넓고, 단순히 주택과 토지 거래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지식이 필요한 학문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학에서 전공 지식만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직면한 상황에 대한 분석 요령과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방식 등도 배웠다”고 말했다. 자오옌빈은 재학 중에 창업을 했다. 그는 웃으면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독립심이 강했다. 대학 4학년 때 한국 친구와 함께 알리바바 C2B 플랫폼인 ‘1688망’에서 온라인마켓을 운영했는데, 1개월 만에 전체 분류에서 해외 인기 1위를 차지했다. 이때 전자상거래의 매력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학 중 한국파워셀러협회의 전신으로 의료관광 분야 회사인 야신궈지(雅馨國際)를 창립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자오옌빈이 유학하는 기간 전자상거래는 빠른 발전과 전환기를 맞았다. 2013년 자오옌빈은 전공 공부를 포기하고 ‘한국파워셀러’를 설립했다. 그가 처음 전자상거래를 접했을 때는 PC를 통한 전자상거래가 주를 이뤘다. 모바일을 통한 전자상거래가 본격화한 것은 2014년, 2015년경이다. 열심히 운영한 덕분에 한국파워셀러 규모는 갈수록 커졌다. 2017년 7월 그는 한국파워셀러협회를 설립하고 타오바오 취안츄거우(全球購)와 협력을 맺었다. 한국파워셀러협회 설립 배경에 대해 그는 “한국파워셀러는 주식회사였지만, 한국파워셀러협회는 협회 조직이다. 협회 조직을 통해 한국 중소 브랜드와 중국 바이어를 연결해 주는 교량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자오옌빈은 또 “경제 발전에 따라 새로운 중산층이 생겨나면서 품질에 대한 니즈가 높아졌다. 한국파워셀러협회는 기존 글로벌 구매의 채널 한계를 깨뜨리고 우수한 상품과 구매자를 연결해 주는 교량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파워셀러협회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자오옌빈은 “한국파워셀러협회는 2016년 말에 기획을 해서 2017년 3월 중순 설립됐다. 하지만 한·중 양국의 ‘사드 문제’가 불거졌다. 그때 한국의 여러 바이어가 일심 단결해 어려움을 극복했다. 예를 들어, 팔로워들의 열의가 식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연맹 초창기 멤버들은 태국, 홍콩과 일본 등지로 나가 생중계를 진행했다”고 털어놨다. 한·중 양국 관계가 서서히 회복되고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국 중소기업의 중국 진출 필요성이 커지자 한국파워셀러협회는 교류 플랫폼을 구축했다. 자오옌빈은 “한국파워셀러협회는 브랜드 살롱, 브랜드 신제품발표회 등의 대화채널을 통해 끊임없이 한국 브랜드와 바이어의 연결을 돕는 교류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2017년 7월 한국에서 처음 개최한 연맹설립대회 및 상품상담회에 30개 한국 토종 브랜드와 600여 바이어가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2019년 5월까지 잇달아 8차례 브랜드 다자간회의를 개최했는데, 누적 500개 기업의 브랜드와 1만명이 넘는 바이어가 참여했다”고 말했다. 자오 회장은 한국파워셀러협회가 브랜드의 탄생을 도운 과정과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한국파워셀러협회가 주최하는 브랜드 다자간회의와 브랜드 주간, 신제품 발표회 등의 형식으로 바이어와 브랜드 간 격의 없는 교류 및 합작을 일궈냈다. 또한 타오바오 생중계 시스템을 브랜드 홍보에 활용했고, 여러 명의 왕홍(網紅)과 계약을 맺어 샤오홍수(小紅書), 더우인(抖音) 등의 플랫폼을 통해 브랜드를 널리 알렸다”고 말했다. 한국파워셀러협회는 타오바오 쉬안츄거우와 강력한 협력관계를 맺고, 중국 지방정부와 합작해 한국 브랜드의 중국 시장 진출을 추진했다. 자오옌빈은 “연맹과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시 정부 간 협력은 긴밀하다. 웨이하이시로부터 정책과 물류, 구역 등 측면에서 도움을 받아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와 한국 기업이 공동으로 시장을 개척하기로 했다. @img4 2018년 10월 한국파워셀러협회는 웨이하이종합보세구와 함께 뷰티 페스티벌 및 한국파워셀러 더블쇼핑데이를 진행했다. 이는 한국파워셀러협회 설립 1주년을 맞은 첫 이벤트이자 연맹이 중국 본토시장을 개척한 첫 행사였다. 한·중 전자상거래 교류 전망에 대해 자오 회장은 “한·중 양국의 자유무역이 끊임없이 발전할수록 양국 간 전자상거래 교류도 늘어날 것이다. 미래에 한·중 양국의 전자상거래는 규모화, 체계화, 상시화될 것이며, 한·중 경제무역 협력의 모범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B2C 모드가 급속하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국경 간 전자상거래 규모는 계속 확대되고, 관리 감독은 더욱 엄격해질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5G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자상거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따라 그는 “젊은 사용자들이 소비주체로 떠오르면서 전자상거래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미래 양국 전자상거래는 더욱 진전된 인터넷 기술이 유입되고, 더욱 많은 비즈니스 모델이 파생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자오옌빈 회장은 “한국파워셀러협회는 한·중 전자상거래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파워셀러협회는 더욱 많은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업계 최전선에서 달릴 것이며, 정확한 정보를 제때 업계에 제공해 한·중 전자상거래 교류에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为中韩跨境电商交流贡献力量”——专访韩国买手联盟会长赵彦彬 互联网的快速普及让世界变成“地球村”,人们不仅可通过网络浏览最新资讯、与朋友聊天,还可购物,甚至是海淘。 有这样一位中国人,他在韩国江南大学攻读不动产专业,但毕业时却抓住海淘大潮进军电商业,成立“韩国买手联盟”,与淘宝全球购携手推进韩国中小品牌走入中国市场,也让中国消费者有更多选择韩国商品的机会,他就是韩国买手联盟会长——赵彦彬。韩国纽斯频(NEWSPIM)中文网记者7月19日对赵彦彬进行了专访,他表示将持续为中韩跨境电商交流贡献力量。 记者见到赵彦彬会长是在首尔新沙洞的韩国买手联盟总部。赵彦彬来自中国山东省泰安市,2007年来韩国留学,对于选择韩国的原由,赵彦彬表示:“高中时期偏科较为严重,数理化成绩优异,但英语却差强人意。同时,2007年有近万家韩国企业入驻山东半岛,经过综合考量,我决定来韩国进修。” 2007年至2013年,赵彦彬在韩国江南大学攻读不动产专业。对于进修该专业,赵彦彬说道:“首先,不动产专业是韩国江南大学的王牌专业,在韩国所有高校中,不动产专业排名位居第二,这里的师资力量十分雄厚。其次,不动产在经营的运用上范围较广,并非简单的房屋和土地交易,而是运用许多知识点。” 在校期间,赵彦彬试水创业,他笑称:“受父亲的影响,我从小比较独立,大学二年级开始做代购,大学四年级和韩国朋友一起做过阿里巴巴旗下C2B平台——1688网,并在一个月的时间内做到全网全部类目海外人气第一,让我首次体会到了电商的魅力。其实,我在校时便在韩国成立自己的首家公司,也是(株)韩国买手的前身——雅馨国际,公司主要从事医疗观光,让我有机会结交各国和各地的华人朋友。” 赵彦彬留学期间,电商业处于高速发展和转型期。2013年,赵彦彬放弃主修专业成立株式会社韩国买手。对此,他说道:“在我刚开始接触电商的时候,完全是PC电商时代的天下,电商真正逐步进入移动端电商是在2014年和2015年。在校进修不动产专业的这段时间,学习的不仅仅是专业知识,更重要的是让我学会了面对事情分析和解决问题的思维。电商是我自己喜欢且在校期间不断地尝试的事情,我觉得专业给我的思考问题的能力可以运用至更多领域,并非仅仅在主修专业上。” 赵彦彬会长经过对韩国买手的用心经营,公司规模日益壮大,2017年7月他成立韩国买手联盟,并与淘宝全球购携手,成为淘宝全球购在韩国的官方指定合作机构。对于韩国买手联盟成立背景,赵彦彬表示:“韩国买手联盟是协会组织,而‘韩国买手’则是公司性质的株式会社,希望通过协会组织加强社会责任感,成为搭建韩国中小品牌与买家嫁接的桥梁。” 赵彦彬补充道,韩国买手联盟成立的契机基于消费升级,新中产崛起的大背景,中国消费者对于全球好货和品质消费正产生着极大的需求。但长期以来,商家之间没有有效的沟通平台,形成了品牌和买手之间各自为战的局面,品牌缺少分销渠道,买手缺乏渠道信息,导致双方信息不对称,市场进程缓慢。韩国买手联盟旨在打破原有的跨境购买渠道局限,促进买手和品牌间的直接交流,为中韩品牌和优质买手搭建起合作桥梁。 韩国买手联盟的发展路上并非一帆风顺,赵彦彬深有体会,他说:“韩国买手联盟于2016年年底开始策划,原定于2017年3月中旬成立,但围绕中韩两国的‘萨德阴云’导致拖后。就在那时,奋斗在韩国的诸多买手开始团结一心,共同克服许多困难,例如当时为了不让各自买手的粉丝热度下降,联盟初创团队引导大家前往泰国、中国香港和日本等国家和地区进行直播。” 随着中韩两国关系拨云见日,交往日趋紧密,韩国中小企业急需快速进军中国的渠道,韩国买手联盟便在此搭建了交流平台。赵彦彬表示:“韩国买手联盟自成立以来,通过双促大会、品牌沙龙、品牌新品发布会等对话机会,不断帮助韩国品牌与买手搭建交流平台。例如,我们于2017年7月在首尔举办了联盟成立大会暨品牌洽谈会,在韩国首创品牌与买手面对面对接的大型洽谈会,汇聚了超过30家韩国本土品牌以及600余名买手参加;截至2019年5月,我们已相继举行了8场品牌对接会,累计参与品牌逾500家,参与买手超1万人。” 席间,赵彦彬向记者详细介绍了韩国买手联盟帮助品牌孵化的过程与范例,他说:“韩国买手联盟每一届主办的品牌对接会,实现买手与品牌间的零距离交流以及促成合作,通过品牌周和新品发布会等形式引爆品牌。在新媒体布阵方面,设立淘宝官方直播机构,签约多名网红,通过小红书、抖音等平台,为品牌提供精准造势和推广。例如,2017年与联盟合作的某韩国面膜品牌,联盟引导20个实力卖家打造爆款产品,当日创下日销量突破2万盒的业绩。该品牌在淘宝开售当天,登顶全网面膜类目的销售冠军。” 韩国买手联盟除了与淘宝全球购强强联手,还与中国地方政府合作,促进韩国品牌走入中国市场。赵彦彬表示:“联盟与山东省威海市政府(威海综合保税区)合作频繁,借助其政策、区域、物流等方面优势,推动中国跨境电商卖家与韩国企业拓展国际国内双向市场。2018年10月,威海综合保税区正式封关运行暨韩国买手联盟双促大会举行,这是韩国买手联盟周岁后的首个大会,也是联盟开拓中国本土市场的第一站。” 对于中韩跨境电商交流展望,赵彦彬会长表示:“中韩两国自由贸易不断发展,跨境电商交流也势必越来越频繁。未来,中韩电商合作会更趋于规模化、体系化、常态化,也将成为中韩经贸合作的关键典范。在B2C模式迅速发展的情况下,跨境电商规模不断扩大,监管制度势必会更加严格;随着消费群体的变化和转移,年轻的用户对相关领域需求会日益更加,推动整个行业的发展;5G时代的来临,中产消费井喷,该领域将步入一个新阶段,未来两国跨境电商会融入更多互联网新技术,衍生出更多新的商业模式。” 最后,赵彦彬强调韩国买手联盟将在中韩跨境电商领域扮演重要角色,他说:“韩国买手联盟将承担更多社会责任,走在行业最前端,为行业提供及时资讯,为中韩两国跨境电商交流贡献力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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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여우 눈을 한 남자’는 어디에 글리코·모리나가 사건

1980년대 서일본을 뒤흔들었던 식품기업 연쇄 협박 사건 ‘여우 눈을 한 남자’ 다수의 경찰에 목격됐지만 잡히지 않아 부라쿠민 해방동맹·주가조작집단 범인으로 의심받아 |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 1984년 3월 18일 오후 9시. 효고(兵庫)현 니시노미야(西宮)시에 위치한 한 저택에 총으로 무장한 정체불명의 남성 3명이 침입했다. 일본 굴지의 제과 대기업 ‘에자키 글리코’ 사장의 집이었다. 무장괴한들은 사장 부인과 딸을 화장실에 묶어둔 뒤 욕실에서 목욕을 하고 있던 에자키 사장을 납치했다. 화장실에 묶여 있던 부인은 간신히 줄을 풀고 나와 경찰에 신고했다. 1980년대 서일본을 뒤흔들었던 미제 사건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グリコ・森永事件)의 시작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요구 “10억엔과 금괴 100kg” 3월 19일 새벽 1시 오사카(大阪)에 위치한 글리코사 이사의 집에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범인은 지정한 장소로 현금 10억엔과 금괴 100kg을 들고 오라고 해당 이사에게 요구했다. 이사는 전화 후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오사카 경찰과 효고현 경찰이 합동 수사를 시작하게 됐다. 범인들은 다시 전화를 걸어 지정한 장소로 몸값을 가져오라고 했고, 경찰은 잠복했다. 하지만 범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서 경찰들은 의심을 품게 된다. 범인들이 몸값을 받아낼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의심이었다. 일단 그들이 요구한 현금 10억엔과 금괴 100kg의 무게는 230kg에 달했다. 몸값을 빨리 받고 도망쳐야 하는 범인이 요구할 만한 무게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사건 3일 후인 21일 에자키 사장이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납치 사건이 잊혀질 무렵이던 4월 2일 에자키 사장 자택으로 염산이 들어 있는 안약 케이스와 협박장이 배달됐다. 범인은 4월 8일까지 지정한 장소로 현금 6000만엔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다시 잠복했지만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이날 범인을 자칭하는 자들은 마이니치신문과 산케이신문의 오사카 지국으로 도전장을 보냈다. 그리고 이틀 뒤인 10일 오사카에 위치한 글리코사 본사에 화재 사건이 발생했다. 화재는 금방 진압됐지만, 계속되는 불상사에 사람들의 불안은 높아져만 갔다. 4월 23일 글리코사에 1억2000만엔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왔고, 이번에도 범인들은 돈을 받을 장소를 계속 바꾸다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앞선 사례와 마찬가지로 범인들은 오사카의 언론사들 앞으로 두 번째 도전장을 보냈다. 이들은 자신을 ‘괴도 21면상’이라고 자칭했다. 이는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의 캐릭터 ‘괴도 20면상’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범인들은 5월 말 다시 도전장을 보냈고, 6월 2일에 한 레스토랑 주차장에 3억엔을 넣은 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당일 경찰들은 해당 차의 엔진을 일부러 고장나게 만든 뒤 잠복했고, 한 남성이 나타나 그 차를 타고 출발했지만 얼마 못 가 잡혔다. 하지만 이 남성은 자신은 범인이 아니며, 누군가의 협박을 받아 지정한 장소로 차를 몰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경찰은 지정한 장소로 출동해 의심스러운 차량을 발견, 추적했지만 놓치고 만다. 그리고 6월 25일 범인들은 편지를 보내 글리코사를 용서하며, 협박을 멈추겠다고 밝혔다. 마루다이, 모리나가까지...식품회사들의 수난 글리코사에 대한 협박은 멈췄지만, 6월 22일 범인들은 다른 식품기업인 마루다이(丸大)에 협박장을 보냈다. 마찬가지로 돈을 준비하라는 협박문이었다. 6월 28일 범인들은 여성의 목소리로 녹음된 테이프를 틀어 지시한 곳으로 오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경찰이 마루다이 직원으로 변장해 간 해당 장소에는 지시문이 있었다. 지시문에는 지정한 열차를 타고 깃발이 보이면 가방을 던지라는 내용이었다. 이때 전철 안에 잠복해 있던 형사는 의심스러운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나중에 ‘여우 눈을 한 남자’로 알려지게 되는 유력 용의자였다. 형사는 이 남성을 주시하고 체포하려 했지만,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다가 범인을 눈앞에 두고 놓치게 된다. 이후 7월 다시 한 번 더 돈을 요구하는 협박 사건이 있었지만,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마루다이에 대한 협박은 끝났다. 범인들의 다음 타깃은 모리나가 제과였다. 같은 해 9월 12일 모리나가의 칸사이(関西) 판매본부에 협박장이 날아왔다. “글리코랑 같은 꼴을 당하기 싫으면 1억엔을 준비해라. 안 그러면 청산소다를 제품에 넣고 매장에 놔두겠다”는 내용이었다. 9월 18일 범인들은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녹음된 전화를 칸사이 지사로 걸어왔다. 하지만 범인은 지정된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고, 모리나가 제과에 대한 협박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범인은 처음에 보냈던 협박장대로 행동했다. 10월 7~13일 사이에 오사카와 교토, 효고, 아이치현의 슈퍼마켓에서 의문스러운 모리나가 제품이 발견된 것이다. 제품의 겉에는 “먹으면 죽는다”, “괴인 21면상” 등의 종이가 붙어 있었고 제품 안에는 청산소다가 들어 있었다. 10월 15일엔 NHK의 오사카 방송국으로 청산소다가 배달됐다. 범인들의 협박은 이후 다른 식품회사에 계속됐다. 11월엔 하우스식품, 12월엔 후지야(不二家)에 협박장이 갔다. 그리고 현장에선 여우 눈을 한 남자가 발견됐지만, 마찬가지로 형사들은 체포 지시가 없어 그를 놓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마추어 무선통신인의 도움으로 수상한 무선을 잡아내는 데 성공한다. 아마추어 무선통신인은 이를 녹음해 경찰에 신고했다. 여기서 사람, 뚜껑, 사람, 여섯은 일본의 숫자와 비슷한 음을 갖는 단어로, 1216을 뜻하는 것이었다. 경찰은 수사를 진행했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대로 범인들의 협박이 잠잠해졌나 했지만, 이듬해 2월 13일 범인들은 언론에 밸런타인데이 폐지를 주장하는 도전장을 보냈다. 같은 날 도쿄와 아이치현에는 “물러나는 게 좋아”라고 적힌 초콜릿들이 발견됐다. 초콜릿에는 청산소다가 들어 있었다. 그해 3월 6일 범인들은 와카야마(和歌山)현에 위치한 전통 일본과자를 만드는 한 회사에 협박장을 보냈지만, 이틀 뒤 협박을 연기하겠다는 편지가 도착했다. @img4 담당 경찰의 분신자살로 협박사건 끝났지만... 1985년 8월 7일 시가현 경찰본부의 본부장이 퇴직 날 자신의 관사 마당에서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범인들이 하우스식품을 협박했을 때 수상한 차를 놓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직하는 상황이었다. 유서는 없었지만 모두 이 사건이 원인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며칠 뒤, 범인들은 선언문을 보냈다. “회사 협박을 그만둬도 할 일은 많다. 악당 인생은 재미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이 선언이 분신자살한 본부장에 대한 조의라고 밝혔다. 사건은 끝났지만 범인들은 일본인들의 기억에 박혔다. 우선 ‘여우 눈을 한 남자’가 수사 관계자 총 7명에게 목격됐음에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격자들의 증언을 취합하면 이 남성은 35~45세로 추정되며, 키는 175~178cm 정도였다. 범인에 대한 추정도 계속됐다. 유력한 설은 일본에서 아직도 차별받는 부라쿠민(部落民)에 의한 범행이라는 것이다. 사건 발생 6년 전인 1978년 8월 17일에 글리코 상무 앞으로 돈을 요구하는 협박 테이프가 배달된 사건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해당 테이프는 스스로를 부라쿠민해방동맹 간부라고 자칭하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녹음돼 있었다. 그 내용은 돈을 내놓지 않으면 글리코 사장을 납치하고, 글리코사를 방화할 것이며, 청산을 살포한 과자를 유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협박은 6년 뒤 그대로 실현됐다. 또 다른 설로는 주가를 조작하려는 집단의 범행이라는 것이다. 범인들의 범행이 사람들을 해칠 것처럼 하면서도, 실제로는 청산이 든 음식에 경고문을 붙이는 등 인명 피해를 피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범인들이 범행을 통해 주가를 떨어뜨리고, 연이어 범행을 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보내 주가를 상승시켜 차액을 얻으려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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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한·일 갈등에도 ‘한류’는 이상무 신오쿠보 한류거리를 가다

한류백화점·한류플라자 등 여전히 성업 중 총각네·서울시장 등도 일본 손님들로 북적 “한·일 관계 알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 오영상 기자 goldendog@newspim.com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내린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한·일 갈등이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에서는 유니클로, 데상트 등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고, 여행사에는 일본 여행을 취소하겠다는 전화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 내 사정이 이러할진대 일본 쪽 분위기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특히 이번 갈등으로 K-POP을 중심으로 한 3차 한류 붐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컸다.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7월의 마지막 날 일본 내 한류의 중심지라는 신오쿠보(新大久保)를 찾았다. JR 신오쿠보역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다리 밑을 지나 작은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면 한류 거리가 시작된다. 거리에 들어서면 낯익은 한글 간판이 이곳이 한류 거리임을 실감케 한다. 이날은 유난히도 더웠다. 아침부터 수은주가 치솟으면서 12시경에는 35도를 넘어서는 불볕더위였다. 하지만 무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한류 거리에는 걷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그들 대부분은 한국의 아이돌에 열광하고 한국 음식에 푹 빠져 있는 일본인들이었다. 한·일 관계 악화에도 한류는 죽지 않았음을 몸소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한·일 갈등 “신경 안 써”...BTS·트와이스 “짱” 한류 거리에 처음 들어서서 만나게 되는 곳이 ‘한류백화점’이다. 방탄소년단(BTS), 트와이스, 세븐틴, 레드벨벳 등 K-POP 아이돌에서부터 이민호, 송중기 등 배우에 이르기까지 한류 스타들의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사방 벽면에는 이들의 사진이 빼곡하게 걸려 있고 앨범, DVD, 펜던트, 열쇠고리, 티셔츠 등 수백여 종의 관련 굿즈(goods)가 진열대를 장식하고 있다. 손님이 너무 많아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한국인 점원에게 최근 한·일 갈등으로 인한 영향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전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소 영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물었던 질문이 무색하리만큼 “손님은 여전히 많고, 매출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손님의 대부분은 10~20대 젊은 일본 여성들이었지만, 아직 초등학교 1학년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어린 학생들과 40~50대 중년 여성 등 다양한 연령대의 일본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왔다는 40대 여성은 “나는 이민호, 딸은 BTS의 팬”이라며 사진과 앨범을 사러 왔다고 말했다. 나이를 묻는 말에 웃음으로 얼버무렸던 친구 사이라는 두 중년 여성은 슈퍼주니어, 송중기, 워너원 등 족히 7~8개 팀의 한류 스타 방송 영상을 녹화한 DVD를 사재기하듯 쇼핑 바구니에 쓸어담고 있었다. 최근의 한·일 갈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알고는 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알아서 하면 될 일”이라며 “이런 일로 한국이나 한류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한류 스타들의 굿즈를 판매하는 곳이 한류 거리에만 한류백화점을 비롯해 한류플라자, 한류랜드 등 10여 곳이 성업 중이었다.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던 한류플라자 측에서도 최근 한·일 관계가 영업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의 한류 붐이 이전과 다른 점은 과거 중년 여성들이 주도했던 한류 소비층이 이제는 10~20대의 젊은 여성들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령대를 불문하고 한류는 이미 일본 여성들 사이에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한국 식품점, 일본 손님이 90% 발길을 옮겨 한국 식품을 판매하는 슈퍼마켓인 ‘서울시장’에 들렀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니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무슨 제품들을 파나 찬찬히 둘러보기가 힘들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김치, 깍두기 등과 같은 반찬부터 라면, 과자, 음료수에 소주, 막걸리까지 한국에서 파는 모든 식료품은 다 팔고 있었다. 한국 슈퍼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제품 표시가 일본어로 돼 있고 가격이 조금 비싸다는 것 정도다. 판매하랴, 진열하랴 종업원들도 얼마나 바쁜지 인터뷰 요청도 힘들 정도였다. “전에도 한국 슈퍼는 있었지만 손님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90% 가까이가 일본 사람”이라는 대답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김밥, 떡볶이, 반찬 등을 파는 즉석식품 코너에도 손님들이 장사진을 이뤘고, 한국과 똑같은 식으로 판매하고 있는 호떡 코너는 말 그대로 ‘호떡집에 불났다’는 표현을 실감케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기자의 앞에서 물건을 고르던 20대 일본인 여성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요즘 내 친구 누구는 한국 음식만 먹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회사원이라는 기무라 고(44) 씨는 쟈쟈멘(일본에서는 짜장면을 ジャージャー麺이라고 부른다)을 사러 왔다며, 인스턴트 짜장면을 두 종류나 구매했다. 그는 “요즘 일본에서 짜장면이 인기라 여러 종류가 판매되고 있지만, 한국의 짜장라면이 제일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한류는 바야흐로 일본인의 식문화도 바꾸고 있는 중이다. 건너편에 있는 ‘총각네’도 상황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화장품을 판매하는 입구 쪽 매장을 지나 안쪽 식품 매장에 들어서자 시식을 권하는 종업원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왔고, 일본 주부들은 삼계탕이나 육개장 등을 시식하며 조리법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열성을 보였다. 종업원들은 태극기와 한국 이름이 적힌 명찰을 가슴에 달고 제품에 대해 설명하며 한류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핫도그 가게 앞 ‘장사진’...치킨집도 대기 줄 거리 곳곳은 물론 골목 안쪽에는 한국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다채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김밥, 떡볶이에서 치킨, 불닭발, 부대찌개, 한정식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들이 총망라돼 있다. 그중 신오쿠보 한류 거리의 최고 히트 상품이라는 핫도그 가게 앞에는 예외 없이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손님들은 갓 튀겨 나온 핫도그 하나씩을 입에 물고 치즈를 길게 늘어뜨리며 너나 할 것 없이 핫도그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이날의 햇볕은 핫도그라도 튀겨버릴 만큼 뜨거웠지만 기다림마저도 행복하다는 표정들이었다. 이 핫도그를 먹는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게 이른바 ‘인싸’들의 필수 코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가히 그 인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바삭한 식감이 일품인 프라이드 치킨, 오븐에 구운 오븐구이 치킨 등 한국식 치킨도 최근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핫(Hot)하게 떠오르고 있는 인싸템의 하나다. 신오쿠보에 한국 치킨을 먹으러 왔다는 두 여대생은 ‘남대문 치킨’이라는 가게로 들어섰다. 이 집은 1층에는 치킨집, 2층에서는 한정식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일본 내 한국 음식의 위상을 직접 들어보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당시 부재 중이었던 점장이 절대 인터뷰는 하지 말라고 했다며 끝내 거절했다. 직접 이야기를 듣진 못했지만, 매장 안을 가득 채운 손님들만으로도 한국 음식의 인기를 짐작하기에는 충분했다. ‘정랭경열(政冷經熱)’이란 말이 있다. ‘정치는 냉각돼도 경제는 활발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최근의 한·일 관계는 ‘정랭경랭(政冷經冷)’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 내 한류는 여전히 뜨겁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 식지 않는 한류를 기반으로 한 한·일 간의 민간 교류 열기가 차갑게 식어버린 정치와 경제를 다시 한 번 뜨겁게 달궈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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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곤도 세이이치 대표 “정치교류 끊겨도 민간교류는 계속돼야”

민간 교류에 대한 메시지 발신이 정부의 역할 청소년 등 젊은 세대의 교류가 특히 중요 얼굴 떠올릴 수 있는 ‘친구’ 만들기가 핵심 | 오영상 기자 goldendog@newspim.com “국가 간의 정치 관계라는 것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정치·외교 관계가 악화됐을 때에도 민간 교류는 계속해야 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외교관 출신으로 일본 문화청 장관을 지낸 곤도 세이이치(近藤誠一) ‘곤도 문화외교연구소’ 대표는 일본 정부에 한·일 문화·인적 교류 추진을 위한 제언을 했다. 그는 “민간 교류는 한·일 관계의 근간”이라며 “정치 교류는 끊겨도 민간 교류는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곤도 대표와의 인터뷰는 지난 7월 29일 도쿄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곤도 대표와의 일문일답. Q. 제언을 마련하게 된 계기는. A. 한국의 강경화 외교장관이 외교부 내에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한·일 문화·인적 교류에 대한 제언을 마련했다. 이 소식을 듣고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상이 일본도 제언을 마련하자며 의뢰해 시작했다. 서울에서 한국의 TF팀과 함께 논의도 했고, 강 장관과 만나 제언에 대해 설명도 했다. 위안부 문제가 계기가 됐지만, 초계기 레이더 사건 이후 제언 마련을 더욱 서둘렀다. 지난해 8월부터 준비를 시작해 그해 10월 고노 외무상에게 제언을 전달했다. Q. 한국과 공동 작업도 있었나. A. 함께 작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의견을 공유했다. 양국 정부가 열린 발상에서 시작한 만큼 정부 입장에서 좀 떨어져 제언을 마련한다는 인식도 공유했다. 아직 공동으로 하는 것은 없지만, 공동 작업은 언제든 환영한다. Q. 민간 교류가 왜 중요한가. A. 정부 간의 관계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정치 관계는 파도가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각각의 입장이 있어서 간단히 타협할 수도 없다. 타협하려 나서면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강대강’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긴다. 지금의 한·일 관계도 그렇다. 하지만 그와 관계없이 민간에서는 착실히 교류를 이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 교류는 상황에 따라 끊길 수 있다. 하지만 민간 교류는 어떠한 경우에도 계속돼야 한다. 민간 교류마저 끊기면 서로 간에 나쁜 이미지가 고착되고 만다. Q. 이번 제언에서도 이것을 강조했나. A. 정부 간 관계가 악화되면 민간 관계도 안 좋아진다. 정부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일수록 민간 교류를 활성화해야 하는데 오히려 교류가 줄게 된다. 정치·외교 관계가 악화됐을 때도 민간엔 문화·인적 교류를 계속하라고 명확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정치 문제는 정부가 처리할 테니 민간은 교류를 계속하라고 전하라는 것이 이번 제언의 핵심이다. 고노 외무상도 초계기 문제 등에서 한국에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당시에도 민간 교류에 영향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가 민간에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이러한 것은 앞으로도 계속 정부에 말해 나갈 것이다. Q. 친구 만들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 유학이나 홈스테이 등을 통해 그 나라에서 실제로 살아봄으로써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드는 것이 민간 교류의 중요한 포인트다. 양국 간에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친구 얼굴을 떠올리면 관계를 보는 데 중립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나아가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친구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이것이 민간 교류의 핵심이다. 나도 한국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지금도 연말이면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고 있다. Q. 한·일 간에는 과거사 문제라는 특수성이 있다. A. 오랜 시간 전쟁을 치르고 싸워 왔던 독일과 프랑스도 민간 교류가 현재의 관계를 만든 기초가 됐다. 물론 한·일과 독·불은 다른 점도 있다. 독·불은 서로 싸웠지만 식민 지배는 없었다. 이러한 것이 한·일 간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긴 하다. 또 독·불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왕래가 수월하고 친척이 있는 경우도 있다. 한·일은 바다가 있어 간단히 왕래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독·불의 사례를 좋은 모델로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Q. 특히 청소년 교류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A. 일본 언론NPO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 와 본 적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호감도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일본에 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두 배 정도 호감도가 높았다. 일본에 대한 나쁜 선입견이 있어도 일본인과 만나고 생활해 보고, 일본 이곳저곳을 보다 보면 이해도가 높아지고 호감도도 상승한다. 청소년 시기에 이런 경험은 특히 더 중요하고 효과도 높다. 여행이 중요한 이유다. 유학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Q. 같은 조사에서 한국의 중장년이 일본에 와서 좋은 이미지를 갖고 돌아갔다는 결과도 있다. 일본인에 대한 결과도 있나. A. 그건 보지 못했다. 대신 내가 한국에 다녀와서 느낀 개인적인 인상을 말하고 싶다. 한국은 상냥하고, 거리도 깨끗하고, 물건도 풍부하고, 훌륭한 문화재를 갖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가보지 않으면 가질 수 없다. 한국에 한번 가봄으로써 부정적 이미지가 긍정적 이미지로 바뀌는 계기가 된다. 일본의 중장년들도 한국에 꼭 가보기를 권한다. Q. 제언 중에 고도 인재 육성이란 무엇인가. A. 민간 교류 확대를 위해서는 K-POP과 같은 대중문화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이 좋아하는 나라 중의 하나가 프랑스다. 프랑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 대한 그 정도 이해는 없다. 일본 서점에 가면 한국에 대한 책이 있긴 하지만 한국의 소설, 한국의 사상서 등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러한 부분을 지원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Q. 전통문화 교류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 고도한 지식을 가진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는 것과 비슷하다. 높은 가치관은 전통문화에 잘 표현돼 있기 때문에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판소리와 일본의 가부키(歌舞伎)는 형식이나 내용은 다르지만, 그 속에 내포된 가치관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양국 사이에 흐르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Q. 지자체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A. 한국에서 여행하는 곳은 서울, 부산, 경주 정도인 것 같다.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방의 사람들과 만나면 더욱 마음이 열릴 수 있다. 각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요즘 지방 소도시로 여행하는 해외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 지자체가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홍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Q. 식문화 교류에 대해서도 제언했다. A. 음식은 가장 쉽고 효과가 높은 교류 아이템 중 하나다. 한국에서 일본 요리를 보급할 전문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음식과 관련한 외국인의 일본 내 연수나 취업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일본에서 한국인이 음식점을 창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턱을 낮추는 것도 문화·인적 교류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본다. 회의에서는 한국에서 니혼슈(日本酒·사케)의 관세가 비싸기 때문에 많이 접하기 어렵다며 관세를 낮추자는 의견도 있었다. Q.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A. 정부의 지도나 지시가 필요하다. 민간에 확실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민간 교류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발신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다. Q. 마지막으로 한·일 관계에 대해 한마디 부탁드린다. A. 한·일 양국의 우호를 바탕으로 세계 평화에 공헌할 수 있도록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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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기술굴기의 견제 타깃,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지금

2012년 미 의회 보고서 통해 제재 본격화 대이란 제재 위반 및 안보 우려 주요 원인 제재 유예조치 끝나는 8월 19일 이후 주목 | 정산호 중국전문기자 chung@newspim.com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됨에 따라 중국 기술굴기를 상징하는 통신기업 화웨이(華為)를 둘러싼 미·중 간의 갈등도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화웨이 제재 이슈는 미·중 무역협상의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로, 그 배경에는 실타래처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 5월 화웨이를 수출제한 리스트에 올린 데 이어 8월 7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기관에 화웨이 등 중국 업체의 통신 장비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발표, 미·중 무역분쟁은 점점 더 극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5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수출제한 리스트에 화웨이를 비롯한 계열사 68개 업체가 이름을 올렸다. 해당 리스트에 오른 업체들은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는 미국 기업들로부터 부품과 기술을 입수할 수 없게 된다. 해당 조치가 발표된 이후 인텔과 퀄컴, ARM을 비롯한 통신·반도체 업체들이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제재에는 IT기업인 구글도 동참했는데, 화웨이 스마트폰 OS(운영체제)의 신규 라이선스 발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5월 20일 미국 기업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미 상무부는 화웨이에 내린 ‘수출제한 리스트(Entry List)’ 시행을 90일 유예했다. 국가 안보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제품에 대해 예외적으로 화웨이와의 거래가 허용된 상태다. 유예 조치는 8월 19일까지 유지된다. 미 당국의 유예 조치 연장 혹은 제재 해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통신 및 스마트폰 반도체 조달 및 차기 칩셋 개발에 지장이 생기게 된다. 특히 구글 안드로이드 허가가 중단되면 화웨이는 기존 판매 휴대폰에 대한 OS 갱신, 향후 신모델에 대한 GMS(구글 모바일 서비스) 및 업데이트 작업 등을 수행할 수 없게 돼 영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이는 특히 화웨이 스마트폰이 선전하고 있는 유럽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의 스마트폰 판매량 중 안드로이드 점유율은 80.1%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양국은 7월 29~30일 양일간 상하이에서 화웨이 제재 해제 의제를 포함한 고위급 무역협상을 진행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헤어졌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월 1일부터 30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하려던 계획을 취소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월 7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기관에 화웨이 등 중국 업체의 통신 장비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이 규정은 8월 13일부터 발효되며 60일간의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안으로 확정될 예정이다. 이는 지난 5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시행한 화웨이 제재(블랙리스트)와는 별도의 조치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 이유로는 크게 ‘대(對)이란 제재 위반’ 및 ‘안보 우려’ 두 가지로 꼽힌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를 논하기 위해선 화웨이와 함께 중국의 유명 통신기업 중싱통신(中興通訊, ZTE)을 빼놓을 수 없다. 두 기업은 미국이 중국 기업 때리기에 나설 때마다 단골손님으로 등장했다. 2012년 10월 8일(현지시간) 미 하원 정보위원회는 조사보고서를 통해 화웨이와 ZTE가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연방정부에 정부 입찰 사업에서 두 기업을 제외할 것을 권고했다. 보고서는 화웨이와 ZTE가 중국 당국의 사이버 첩보활동을 돕고 있다고 적었다. 마크 로저스 미 하원 정보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는 각종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화웨이와 ZTE가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해당 보고서가 발표되자 성명을 통해 “보고서 내용이 근거 없는 소문들로 가득하다”면서 “이 보고서의 작성 목적은 중국 기업의 미국 시장 진입을 가로막기 위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ZTE 또한 “미국에 공급하는 모든 통신설비는 미국 당국이 관리·감독하는 시설에서 안전성을 평가받는다”면서 “ZTE가 미국에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인민일보(人民日報)가 전했다. 이후 잠잠했던 미국의 화웨이와 ZTE 때리기는 2018년 2월 FBI, CIA, NSA 등 미국 주요 정보기관들이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해당 기업들의 안보 위협에 대해 경고하고 나서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크리스 레이 당시 FBI 국장은 “미국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회사들이 미국 통신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걱정된다”고 말했다. 2018년 4월 ZTE는 미국 당국으로부터 대이란 제재 위반 관련 허위진술을 했다는 이유로 미국 기업과의 7년간 거래금지 명령을 받았다. ZTE는 경영진 교체 및 10억달러(약 1조2159억원)의 벌금과 4억달러(약 4863억원)의 보증금 납부를 조건으로 미국의 제재를 풀었다. 당시 인텔과 퀄컴 등에서 스마트폰 제조 부품의 상당 부분을 공급받던 ZTE는 존폐 위기에서 구사일생했다. 2018년 6월 28일 미국 하원은 ZTE와 화웨이가 미 국방부에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국방수권법 수정안을 가결했다. 이보다 앞서 상원에서 가결된 국방수권법 수정안에는 ZTE에 대한 미 공급업체들의 부품 거래 중단 내용이 담겼다. 같은 해 12월에는 멍완저우(孟晚舟)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부회장이 ZTE와 같은 대이란 제재 위반을 이유로 캐나다에서 체포됐다. 이후 거액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된 멍 부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미국 송환심사를 받고 있다. 미 사법당국은 올해 1월 멍 부회장과 화웨이를 기술 탈취 및 대이란 제재 위반으로 기소하면서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화웨이는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화웨이 통신망에 백도어(정상적인 시스템 접근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보 접근을 가능케 하는 프로그램)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동맹국들에 5G 통신망 도입에서 화웨이를 배제할 것을 요구했다. 호주, 일본,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 미국의 요청에 따라 자국 5G 통신망 구축 사업에서 화웨이의 참여를 제한하거나 제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 측은 백도어 관련 의혹에 대해 ‘공개 검증’을 요구하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2018년 10월 한국 내 화웨이 5G 통신망의 보안 문제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자 화웨이 측은 “자사 제품과 솔루션은 전 세계 이동통신사, 포춘 500대 기업 및 170여 개 이상 국가의 고객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사이버 보안이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정부가 보안 검증을 요구한다면 당연히 따를 것”이라며 자사 통신망 보안에 대해 자신감을 피력했다. 화웨이는 세계 각지에서 진행 중인 5G 통신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비슷한 입장을 취하며 자사 통신 설비 및 기술에 문제가 없음을 당국에 어필하고 있다. 지난 7월 중국 신화통신(新華社)에 따르면 캐서린 첸 화웨이 수석 부사장은 미국이 동맹국들에 화웨이 기술 도입 금지 압박을 지속적으로 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50개사와 5G 네트워크 상용화 계약을 체결했으며, 그중 28개가 유럽 기업과의 계약이라고 밝혔다. 이 중에는 미국 최대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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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환율전쟁 포성 이제라도 달러 사야 하나

|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chk@newspim.com 8월 5일 중국의 역내 및 역외 위안화 대달러 환율이 모두 7위안대를 넘어섰다. 위안화 가치가 2009년 환율 개혁 이래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시장은 설마 했던 위안화 환율 포치(破7, 달러당 7위안대로 위안화 가치 하락)가 현실이 됐다며 술렁이고 있다. 2008년 12월 위안화 가치는 강세로 전환, 달러당 7.03위안에서 6.8위안으로 상승했다. 이후 2016년 12월과 2018년 6~10월 두 차례 7위안에 근접한 적은 있었으나 한 번도 포치를 기록한 적은 없었다. 위안화 환율은 줄곧 6위안대에서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에 7.0위안을 뚫고 단숨에 7.1위안대로 치솟았다. 8월 6일 달러지수가 약세를 보인 가운데 중국 인민은행은 중간가 기준환율을 달러당 6.9683위안으로 전날에 이어 또다시 높여 고시했다. 위안화 가치를 전날에 비해 다시 0.0458위안 떨어뜨린 것이다. 미국은 이런 중국 통화당국의 스탠스에 불만을 표시하며 끝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 무역전쟁이 전방위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포치’, 외자 이탈·거품 붕괴 신호탄? 중국 자본시장과 투자자들은 위안화의 7위안대 진입을 우려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시장 일각에는 외자가 이탈하고 위안화 자산 거품이 언제 붕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한껏 증폭됐다. 실제로 8월 5일 당일 중국 증시에서는 외국인 투자자금의 순유출이 늘어났다. 6일에도 주가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상하이지수 2800포인트 선이 무너졌다. 그렇다면 포치를 계기로 위안화의 약세가 다시 추세로 굳어지고, 앞으로 중국 내 외자 유출과 함께 위안화 자산 거품도 계속해서 빠지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중국 시장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우선 포치를 대하는 입장이 외부 서방 전문가들의 태도와 사뭇 다르다. 8월 6일 중국 유력 경제매체인 매일경제는 이전 외환관리국 관리의 말을 인용, “포치는 별다른 일이 아니다”고 전했다. 위안화 환율 진폭이 2018년 11%(6.3~6.9위안)였던 데 비해 올해 위안화 가치는 최고 6.7위안, 최저 7.1위안 좌우라며 작년에 비해 진폭이 작은 편이라는 것이다. 현재 중국 시장에는 포치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심리적 지지선이 무너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포치 가능성은 2015년 8.11 환율개혁 이후 늘 상존해 왔던 것으로 새삼 불안해할 일이 아니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2018년 하반기와 2019년 5월 이후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포치 가능성이 거론됐다. 자오상증권은 이번 포치는 인민은행이 위안화 환율의 탄력성을 시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며, 장기적으로 유연한 환율 변동성은 외자 유출 압력을 줄이는 데 오히려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A증시 한 관계자는 “기관투자자들이 환율 파동에 대해 갖는 공포의 양상이 환율 불안이 고조됐던 지난 2015년, 2016년과 비교해 많이 다르다. 위안화 환율이 증시를 교란시킬 가능성은 이전보다 훨씬 낮아졌다”는 진단을 내놨다. 시장의 또 다른 전문가는 현재 달러지수 강세는 최고점에 도달해 약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고, 미·중 양국 간 금리 차를 감안할 때 2019년 하반기 중국 자본시장 유입자금은 상반기 수준보다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펀더멘탈이 말하는 위안화의 미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역시 “경제 펀더멘탈 측면에서 볼 때 포치로 대변되는 위안화 약세는 추세적 가치 하락으로 보기 어렵다”며 위안화 환율 안정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현재 중국 거시경제 상황은 상반기 성장률이 6.3%로 정부 목표치 6.0~6.5% 범위에 들었고, 재정 상황이나 금융 리스크 모두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 국제수지도 안정된 수준이고, 자본 유출입 상황도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외환보유액도 넉넉히 갖추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선진국이 통화 완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중국은 주요 경제국 중 유일하게 금리 인하 없이 통화 안정 속에 경기를 지탱하고 있다. 중국은 위안화 자산가치가 여전히 낮은 수준이고, 글로벌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도 여전히 높다며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5월 위안화 가치가 하락 기미를 보이는 중에도 중국 외환보유액은 2019년 6월 말 현재 3조1192억달러로 5월 말에 비해 오히려 182억달러 불어났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됐음에도 2018년 말에 비해 465억달러 증가했다. 중국 외환보유액은 4월 한 달 소폭 감소한 것을 빼고, 상반기 내내 지속적인 증가세를 나타냈다. 위안화 가치 하락에도 은행 쪽에서 외화 매입 수요가 늘거나 매각 수요가 감소한 흔적도 별로 감지되지 않고 있다. 외환시장의 수급은 대체로 균형을 이룬 것으로 외환 당국은 보고 있다.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데 달러 현금을 보유해야 하는 게 아닌가. 달러 재테크 상품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우리와는 상황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중국 기업과 투자자들도 지금이라도 달러와 달러 상품을 매입해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에 빠져 있다. 위안화 가치 하락이 초래하는 환율 리스크를 앉아서 당하지 않겠다는 심산인 동시에 약위안-강달러 시대에 투자 수익을 올리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달러 강세가 꼭짓점에 왔다”는 주장을 펴며 이런 때에 위안화 자산을 팔고 달러를 매입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선택이라고 조언한다. 이들은 미국 연준이 이미 금리 인하 기조로 돌아선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대량의 달러 현금 매입 보유로 확실치 않은 위안화 급락 위험을 모면하려 했다가는 자칫 달러 하락 전환에 따른 혹독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는 충고다. 불확실한 대박 vs 확정된 작은 수익 중국 대다수 금융 전문가들은 중·미 간의 금리 차를 살펴보면 위안화 자산을 던지고 달러 투자로 수익을 내겠다는 판단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시장금리 수준을 반영하는 미·중 10년물 국채 수익률을 비교해 볼 때 중국은 여전히 3%대로 2% 이하의 미국보다 크게 높다. 올 8월 5일 중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3.066%를 나타냈고, 미국은 1.73%까지 떨어졌다. 이런 격차는 다른 금융상품으로 확산하고 있다. 올해 들어 달러 재테크 상품의 평균 수익률은 3% 이하에 머물렀던 데 비해 위안화 재테크 상품 평균 수익률은 줄곧 4% 이상을 유지했다. 올해 7월 27일~8월 2일 달러 재테크 상품 평균 수익률은 2.5%, 위안화 재테크 상품 평균 수익률은 4.08%로 나타났다. 따라서 중국의 투자자가 약위안화를 예측하고 위안화(상품)를 팔고 대신 달러에 투자한다면 이는 일단 확정된 금리에서 손실을 보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 강세로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이 미·중 금리 차로 얻는 확정수익보다 클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약위안화에 베팅할 수 있겠지만, 이는 도박과 같은 모험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실제 8월 6일 개장 전 인민은행이 8월 14일 홍콩에서 환율 방어를 위한 300억위안 상당의 중앙은행증권을 발행하겠다고 밝히면서 약위안화 기세가 다소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인민은행 관계자는 과거 20년 위안화의 대달러 환율 추이를 살펴볼 때 위안화 가치 상승기가 하락기보다 더 많았고, 위안화 대외구매력도 꾸준히 안정적으로 증가해 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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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롯데·이마트 철수 사드 때문 아냐’ 中, 글로벌 유통기업 무덤...왜?

로컬굴기 유통환경 지각변동 까르푸조차 백기 유연성 결여된 외자 경영시스템도 실패 원인 현지 유통시장 2차 변혁기, 코스트코 진출 눈길 | 강소영 중국전문기자 jsy@newspim.com 중국 시장 진출 24년 만에 프랑스 유통기업 까르푸가 최근 중국 시장을 떠난다고 밝혔다. 까르푸보다 1년 늦게 중국에 진출했던 메트로도 철수를 위해 자산 매각 대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7년 전 상하이 번화가에 입성했던 일본 다카시마야도 철수 방침을 정하고 2020년까지 백화점 영업을 마친다고 밝혔다. 사실상 ‘실패’를 선언한 이들 외국 브랜드는 변화무쌍한 중국 소비시장에서 끝까지 버텨낸 유통기업들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여러 외국 유통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다 백기를 들었다. 특히 최근 2년간 철수가 집중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통 사업에 풍부한 경험을 가진 외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유를 중국 소비시장 역사를 통해 짚어본다. 까르푸가 물꼬 튼 중국 대형마트 시장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말까지 외국 유통기업들은 중국 소비시장 호황 속에 승승장구했다. 특히 일찍 진출한 까르푸 등 글로벌 유통기업은 서구식 마트 개념을 도입해 중국 소비시장 파이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다양한 물품을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서양식 대형마트가 당시 최고의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img4 2000년대 중반 중국 제조업계는 까르푸에 제품을 납품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했다. 카르푸 진열대에 물건을 올리면 엄청난 매출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까르푸는 유통시장에서 ‘성공의 타이틀’과도 같았다. 까르푸 타이틀은 상품에만 로열티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었다. 초기 까르푸 경영·관리직을 맡았던 중국 인력들은 이후 H&M, 나이키, 아디다스, 애플 등 유명 외국 브랜드와 중국 대기업에 스카우트돼 맹활약했다. 까르푸가 진출했던 1995년 중국 소비 시장은 불모지와 같았다. 우선 상품의 종류와 양이 턱없이 부족했고, 상품 유통구조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당시 중국인의 소비 패턴은 획일적이었다. 식품을 사려면 재래시장을 찾았고, 다소 고급스러운 옷과 전기제품을 사려면 백화점으로 향했다. 이런 상황에서 쾌적한 실내에서 모든 종류의 제품을 한 번에 살 수 있는 서양식 마트의 등장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까르푸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영업시간 전부터 매장 앞은 물건을 사려 몰려든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까르푸가 비교적 빨리 중국 시장에 진출해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국내 정책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고, 이를 적절히 이용한 결과였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로 개혁개방 정책이 전개된 후 각 지방정부의 급선무는 외자 유치였다. 그해 국무원이 소매시장 영역의 외자 유치를 허용하는 문건을 발표했고, 베이징·상하이·톈진 등 11개 도시에서 한두 개의 외자 유통기업 유치가 시범적으로 진행됐다. 다만 외자의 단독 진출은 허용하지 않고 중국 자본과 합자기업을 설립하도록 했다. 당시 전국 영업 허가를 받은 외국계 유통기업은 일본의 이토 요카도(Ito Yokado)와 네덜란드 자본이 투자한 완커룽(萬客隆) 두 곳뿐이었다. 이에 까르푸는 우회적인 전략을 택했다. 사실상 까르푸가 지배하는 중국 대형마트 브랜드 촹이자상창(創益佳商場)을 만들어 중국 시장에 간접 진출했다. 이후 까르푸는 중국 각지에서 합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매장을 늘려나갔다. 상하이·장쑤·광둥·쓰촨 등에 27개 대형마트를 개장했다. 이런 전략으로 까르푸는 외자 영업허가증 제도와 관련 정책 규제를 피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정식 영업허가를 얻은 경쟁사보다 앞서 매장 수를 늘리면서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이후 외국 유통기업은 중국 시장에서 최고의 호황기를 맞게 된다. 경제가 덜 발달한 내륙 시장에서도 외국 유통업체의 인기는 대단했다. 2005년 안후이성 우후(蕪湖)에 개장한 월마트 매장은 하루 매출이 최고 300만위안(약 5억원)에 달하기도 했다. 우후는 중국의 전형적인 3선 도시로 오늘날도 낙후한 소도시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 문을 연 월마트의 위치는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시내와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개장 초기 고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당시 중국 시장에서 대형마트는 개장만 하면 손님이 알아서 찾아오는 상황이었다. 까르푸로 시작된 대형마트 시장은 이후 급팽창했다. 1994~1999년 대형마트의 시장점유율은 1%에서 5%까지 치솟았다. 1999년 상하이 롄화마트(聯華超市)의 연매출은 74억위안으로 상하이 제일백화점의 매출 65억위안을 훨씬 웃돌았다. 중국 유통시장에서 대형마트의 황금기가 도래한 것이다. 2010년 전후 中 유통시장 급변, 외자기업 위기 그러나 2010년 전후로 시장 분위기가 급변했다. 급격하게 늘어난 국내외 대형마트,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전자상거래 활성화의 악재가 겹치면서 유통업계의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0년 중국에서 400~2500㎡ 규모 대형마트는 이미 포화에 이를 정도로 늘어났다. 인구 1만명당 이용하는 마트 면적 규모도 홍콩과 대만을 넘어섰다. 대형마트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고객’이 부족한 상황에 이르렀다. 2009년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국 유통업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중국인 소비 규모가 2003년 이래 처음으로 하락했고, 대형마트의 매출도 감소했다. 전자상거래의 위협도 대단했다. 당시 중국 소비시장에서 온라인 구매 비중은 전체의 2%에 불과했지만,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신선도 유지가 필요 없는 비식품 제품의 마트 매출이 급감했다. 안후이성 우후의 월마트에서 11년간 일하다 최근 폐점으로 직장을 잃은 위안화(袁華) 씨는 “2008년 겨울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해 갑작스러운 폭설로 날씨가 매우 추웠는데, 하루는 남성용 내복 매출이 7만위안에 달했다. 그러나 전자상거래가 발달하면서 의류와 같은 비신선 제품을 마트에서 사는 사람이 갈수록 줄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비식품은 신선식품보다 이윤이 컸기 때문에 대형마트 매출 감소의 영향은 더욱 컸다. 이후 해외 유명 마트의 ‘비보’가 연이어 전해졌다. 최근 3년 동안 월마트는 중국에서 70여 개 점포의 문을 닫았다. 2018년 월마트의 중국 매출 증가율은 0.3%, 까르푸는 마이너스 4.7%를 기록했다. 그나마 이 두 회사는 높은 브랜드 인지도 덕분에 경쟁사보다 실적이 나은 편이다. 현재 중국 시장의 10대 대형마트 브랜드 가운데 외자는 월마트와 까르푸 두 곳만 남았다. 한국 유통기업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한국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지만, 이마트·롯데마트의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못했다. 1997년 중국에 진출한 이마트는 2017년 9월 빠져나왔고, 실적 부진에 ‘사드 보복’ 악재까지 더해진 롯데마트는 2018년 10월 중국 시장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근근이 버티던 여타 외국 유통기업들도 최근 2년 앞다퉈 중국 시장을 떠나고 있다. 2004년 중국에 진출한 아마존이 올해 7월 철수 방침을 밝혔고, 까르푸도 같은 시기 중국 시장 최종 철수 의사를 발표했다. 실적 하락에 시달리던 월마트는 경영전략 수정에 나섰다. 황금시장에서 외자 무덤 된 중국 유통시장 그러나 이런 시장 환경 변화와 위기는 외자 유통기업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변화 속에서도 성장을 이어간 중국 유통기업과 달리 유독 외자 기업이 적응을 못한 것을 왜일까. 중국 매체 티엠티포스트(TMTPOST)는 외자 기업의 경직된 경영구조를 원인으로 분석했다. 유연성이 떨어지는 경영 시스템으로 인해 시장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본사의 경영 지배를 엄격하게 받는 미국 유통기업은 중국 시장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힘들었다. 월마트도 온라인숍을 개설하며 시장 변화에 적응하려 했지만, 복잡한 중국 시장에서 독자적인 온라인 판매 시스템에 의존해 성공하기 쉽지 않았다. 까르푸도 2017년부터 온·오프라인 판매 융합 전략을 전개했지만, 경영 위축 상황을 만회하기엔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까르푸 등 외국 유통기업은 비단 중국 시장에서만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까르푸와 월마트는 일본, 한국, 홍콩 및 싱가포르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연이어 철수했다. 제품 공급업체에 높은 수수료와 각종 판촉비를 전가하는 전통적 경영 방식 답습도 외자 유통기업의 몰락을 부추겼다. 과거 소수의 유통기업이 시장을 장악했던 시기 대형마트에 입점하기 위해 도매상과 제조사들은 높은 비용을 기꺼이 감수했다. 그러나 중국의 유통구조가 다변화된 후 대형마트의 경영에 반기를 드는 제조업체가 늘어났다. 캉스푸(康師傅), 중량그룹(中糧集團), 주싼유즈(九三油脂) 등 대형 식품기업이 까르푸의 높은 수수료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외자가 중국 유통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것은 시장 변화 속도가 유독 빠른 중국의 특성도 한몫했다. 대만 유통 체인 다룬파는 중국 최대 유통사로 성장하며 중국 시장에 안착했지만, 2018년 알리바바에 매각됐다. 다룬파가 사실상 중국 시장에서 철수한 것은 외국자본의 중국 경영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됐다. 1997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다룬파는 다른 외자 유통기업과 확연히 다른 전략을 구사했다. 경제 수준이 높은 대도시를 먼저 공략하는 경쟁 업체와 달리 농촌과 중소도시 시장 개척에 먼저 나섰다. 결과적으로 다룬파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2015년 다룬파는 10여 년의 노력 끝에 월마트를 제치고 중국 최대 유통기업의 자리에 올랐다. 다룬파에 대한 소비자의 만족도도 매우 높았다. 무료 주차, 간편한 교환과 환불, 소비자의 무료 대중교통 이용 등으로 시장에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다룬파의 매각 소식에 중국 유통시장 전문가들은 “경쟁 상대를 이긴 다룬파가 ‘시대(변화)’에 지고 말았다”며 급변하는 중국 유통시장에서 외자가 적응하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 유통시장 2차 변혁기, 코스트코 진출 눈길 2020년을 앞두고 중국 유통시장은 또 한 번의 변화에 직면했다. 다수 외자 유통기업의 철수 이후 중국 유통시장에 완전히 새로운 국내 기업의 진출, 글로벌 유통시장 변화에서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기업의 중국 진출이 이어지고 있는 것. 중국 국내기업 진출의 가장 큰 특징은 IT기업의 유통사업 확장이다. 알리바바, 텐센트, 징둥, 메이퇀 등 인터넷과 전자상거래로 성공한 기업의 오프라인 유통시장 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 알리바바의 마윈이 제시한 ‘신소매’ 개념이 확산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신소매란 온·오프라인 유통의 장점을 결합한 유통 전략이다. 연이은 외자 유통 공룡의 중국 ‘엑소더스’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흥행몰이에 성공한 미국의 코스트코와 독일 최대 유통체인 ALDI의 중국 진출이 눈에 띈다. 코스트코와 ALDI는 모두 글로벌 유통시장 환경 악화로 여타 유통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역성장에 성공한 기업이어서, 이들이 중국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유통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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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파산 도미노 현실화되나 부동산 업계 파산 속출

|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chk@newspim.com 올해 들어 중국에서 모두 300개 가까운 부동산기업이 디폴트를 선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경기 부진 속에 중소 부동산기업들이 최악의 ‘여름 한파’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7월 29일 베이징 신징바오(新京報)에 따르면 2019년 7월 24일까지 모두 3, 4선 도시(규모가 작은 지방도시) 중소기업 위주의 274개 부동산개발사가 부도를 냈으며, 24일 하루에만 3개의 부동산기업이 디폴트 대열에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부동산기업들의 대량 도산은 레버리지 축소를 위한 거시조정 정책으로 융자 환경이 악화한 데 따른 것이라며, 이로 인해 이미 2018년 하반기부터 부동산 분야 한계기업의 경영난이 심화해 왔다고 분석했다. 부도 기업 중에는 지방도시 중소 규모의 부동산개발기업 외에 전국 500대 기업 중 215위에 속하는 인이(銀億)그룹도 포함돼 주목을 끌었다. 인이그룹의 부도는 거시정책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자체 부채 압박 때문이며, 현재 규모에 상관없이 많은 부동산기업이 이와 유사한 채무상환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들어 인이그룹은 채무상환 압력과 함께 경영 안팎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최악의 유동성 위기를 겪어 왔다.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들어 7월까지 중국에서는 부동산 긴축과 관련한 정책들이 모두 15차례나 시행됐다. 당국은 거품을 해소하고 레버리지를 억제하기 위해 특히 부동산개발 분야에 대한 대출과 각종 신탁, 사모 분야의 융자 통로까지 차단했다. 중국 당국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부동산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업계 구조조정과 관련, 금융 리스크의 마지노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융자 환경을 완화하지 않으리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부동산업계의 경영난은 쉽게 개선되지 않을 전망이며, 한계기업들을 중심으로 부동산 분야의 디폴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거시 조정정책에 따라 부동산기업들이 자체 건전성을 강화하거나 다른 생존책을 모색해야 할 때라며, 자동차와 농업 분야 등으로의 사업 다각화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국 부동산업계 재편 바람도 한층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올해 디폴트를 선언한 274개사는 절대 규모 면에서는 적지 않은 수지만 중국 부동산기업 전체로 보면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궈타이안(國泰安) 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중국 부동산개발기업 수는 19만1700개에 달한다. 2003년 7만4200개에 비해 14년 만에 158% 늘어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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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바이두가 베팅한 전기차 중국판 테슬라 ‘웨이마’

5조원 가치 유니콘, 바이두와 손잡아 가성비 높은 전기차로 시장 호평 | 이동현 중국전문기자 dongxuan@newspim.com ‘중국판 테슬라’로 꼽히는 신흥 전기차업체. 웨이마자동차(威馬汽車, 이하 웨이마)가 상반기 전기차 판매량 순위 상위권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웨이마는 설립 초창기 바이두, 텐센트 등 거대 인터넷 기업의 ‘낙점’을 받으며, 현재까지 유치한 투자금만 230억위안에 달한다. 지난 3월에도 바이두를 주축으로 하는 기관투자자들로부터 시리즈 C 투자금 30억위안 펀딩에 성공했다. 이 자금은 유통채널 확보와 기술 개발에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후룬연구원(胡潤研究院)은 웨이마의 기업가치를 300억위안(약 5조원)으로 평가했다. 현재 웨이마를 비롯한 신흥 전기차업체들은 자동차업계로 외연 확대를 노리는 인터넷 공룡 BAT(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와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투자 유치와 기술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웨이마는 바이두와 손을 잡고, 텐센트와 알리바바는 각각 웨이라이(NIO), 샤오펑(小鵬)을 지원하면서 신흥 ‘전기차 삼각구도’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합리적 가격으로 시장공략 성공 지난 2015년 설립된 웨이마는 지리(吉利)자동차 경영진 출신인 선후이(沈暉) CEO가 이끌고 있다. ‘웨이마’란 명칭은 세계 챔피언을 뜻하는 독일어 ‘Weltmeister’에서 따왔다. 웨이마는 ‘스마트카 대중화’를 목표로 내세우며 지난해 4월 전기차 모델 SUV EX5를 선보였다. 경쟁사인 웨이라이(NIO)가 ‘프리미엄 브랜드’를 지향한 데 비해, 웨이마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시장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웨이마는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2030세대 소비자를 타깃으로 13만~20만위안(2200만~3400만원)의 합리적 가격대에 고품질 순수전기차(EV)를 선보인다는 전략을 펼쳤다. 정부 보조금을 적용하면 웨이마 EX5의 가격은 11만2300위안(약 1900만원)까지 떨어진다. 전략은 적중했다. 웨이마는 가성비와 품질을 무기로 신흥 전기차 업체 중 올 상반기 판매 선두 그룹에 들며 만족스런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중국 승용차연합회(乘聯會)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3대 신흥차 업체인 웨이라이(蔚來), 웨이마(威馬), 샤오펑(小鵬)의 도매 판매량은 각각 9596대, 8747대, 7481대를 기록했다. 실질적인 차량인도 건수 면에선 선두를 차지했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웨이마의 상반기 차량인도량은 8536대로 신흥 전기차업체 중 1위를 기록했다. 이어 웨이라이(蔚來), 샤오펑(小鵬)이 각각 8493대, 7656대로 집계됐다. 웨이마는 차량공유 및 렌터카 업계에도 진출하며 외연 확대에 나섰다. 자회사 ‘GETnGO’를 통해 하이난(海南)에 EX5 1000대를 배치, 차량 렌트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향후 웨이마는 차량 렌트 사업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하는 한편, 차량 주행 데이터를 축적해 나갈 계획이다. 이는 전기차 제조사에서 ‘지능형 차량 서비스’기업으로 거듭난다는 웨이마의 방침과 맥을 같이한다. 자동차업계 베테랑 선후이 CEO 20년 이상 자동차업계에 종사한 선후이 CEO는 ‘스마트카의 대중화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지난 2015년 웨이마를 설립했다. 그는 미국 UCLA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오랜 기간 미국과 유럽 자동차업계에서 일했다. 미국 자동차부품업체 보그워너(BorgWarner)에서 아시아 사업을 담당했고, 중국 사업을 총괄하는 최고경영진 자리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2007년 귀국한 그는 중국에 진출한 피아트의 경영을 맡아 피아트와 광저우자동차 간 합작사를 설립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2009년엔 지리자동차 리수푸(李書福) 회장의 요청으로 지리차 경영진으로 합류했다. 2014년 지리차를 그만둔 뒤에는 스마트카에 특화된 업체를 목표로 상하이에서 창업을 했다. 그가 이끄는 웨이마는 불과 2년 만에 100억위안의 투자금을 유치하며 유니콘 기업으로 도약했다. 웨이마자동차는 여타 신흥 전기차업체와 달리 저장성 원저우(温州)시에 자체 전기차 생산공장을 갖춰 품질관리 면에서도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올해 안에 2종의 신규 모델 EX5 Pro 및 EX6를 추가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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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배터리 왕에서 전기차 업계 황제로 비야디 창업자 ‘왕촨푸’

‘왕촨푸는 에디슨과 경영 귀재 잭 웰치 혼합인물’ 워런 버핏, 2008년 비야디에 2억3000만달러 투자 | 김경동 중국전문기자 hanguogege@newspim.com 중국 비야디(比亞迪, BYD)가 배터리를 넘어 신에너지자동차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최근 증시 부진 속에서도 비야디 주가는 전기차 판매 호조와 도요타와의 합작 등에 힘입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왕촨푸(王傳福, 53) 회장이 2007년 6월 설립한 비야디는 배터리와 신에너지를 위주로 한 자동차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배터리 부문에서는 주로 리튬배터리 소재 연구개발을 비롯해 음이온전지, 태양에너지전지 등을 취급한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외장커버 프레스몰드, 클램프(clamp) 게이지 설계 및 제조 등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1993년 27세의 왕촨푸는 한 배터리업체에서 총경리를 맡았다. 배터리업계에 뛰어든 왕촨푸는 일본에서 수입해 오는 배터리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1995년 왕촨푸는 250만위안의 자금을 투자 받아 작은 공장을 빌린 뒤 20여 명의 직원을 데리고 충전배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가 창업한 비야디의 출발이다. 당시 비야디의 목표는 소니와 산요 등 일본 수입 배터리와 경쟁하는 것이었다. 2000년께 비야디는 가성비를 앞세워 세계 최대 핸드폰 배터리 생산업체가 됐다. 모토롤라, 노키아, 소니에릭슨, 삼성 등과 협력하며 3대 충전지로 불리는 니켈전지, 리튬전지, 카드뮴전지 기술·생산 분야에서 글로벌 4대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왕촨푸 회장은 “소니, 산요와는 달리 비야디는 배터리 리콜을 당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과정에서 기술과 사업 노하우를 쌓은 왕촨푸는 더 큰 사업계획을 세웠다. 그는 2003년 시안의 친촨자동차(秦川汽車) 지분 77%를 사들이면서 자동차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이때 비야디의 주주와 투자자들은 사업 타당성을 놓고 논쟁을 벌였고, 주가도 크게 떨어졌다. 왕촨푸는 배터리 분야에서는 전문가지만 자동차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그는 배터리를 제조하는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자동차 생산라인을 자력으로 구축했다. 또 스마트폰 배터리 분야에서의 성공 모델을 거울 삼아 새로운 자동차 왕국 건설을 계획했다. 2006년 10월, F3로 이름 붙여진 비야디의 세단 승용차가 중국에서 도요타와 폭스바겐 제타 등 세계적인 브랜드 차량보다 더 많이 팔리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특히 산시(陜西)성 정부와 협력을 맺고 시안(西安)에 F3를 택시로 공급했다. 2009년 비야디자동차는 44만8397대를 팔면서 395억위안의 매출을 거뒀다. 또한 가솔린엔진을 장착한 플러그인 전기자동차의 개발과 판매에 나서면서 GM, 닛산, 도요타 등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워런 버핏의 40년지기 겸 사업 파트너 찰리 멍거(Munger)는 왕촨푸를 발명가 에디슨과 경영의 귀재 잭 웰치(John Frances Welch Jr)를 혼합해 놓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워런 버핏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비야디 전기자동차를 추천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워런 버핏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2억3000만달러를 들여 비야디 지분 9.09%를 매입했다. 왕촨푸는 비야디가 2020년 중국 최대 자동차 생산기업이 되고, 2025년에 글로벌 1위 업체가 되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 6년 동안 비야디는 전기자동차 프로젝트를 위해 적어도 10억위안을 투자했으며, 2009년 금융위기 때 오히려 1000여 명의 직원을 추가로 채용해 2만명으로 늘렸다. 화공학 연구원이었던 왕촨푸는 비야디자동차를 대표 국산 브랜드로 만들었다. 왕촨푸의 취미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렉서스를 가지고 노는 것이다. 그는 차의 엔진을 분해해 작동 원리를 연구하면서 실험실에 처박혀 있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 왕촨푸는 직원들 눈에 철저하게 ‘기술’에 미친 사람으로 보였다.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2019 글로벌 부호’ 452위에 올라 있는 그는 지금도 자주 직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2019년 상반기 비야디는 22만8072대를 판매해 전년 대비 1.59% 증가한 실적을 올렸다. 그 가운데 신에너지자동차의 상반기 판매량은 14만5653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94.5% 증가했다. 최근 비야디는 도요타와의 합작을 통해 전기자동차 및 배터리를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도요타 브랜드를 사용해 세단(sedan)과 다목적스포츠차량(SUV) 등을 공동 개발, 2025년 전에 중국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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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런정페이와 황무지 일군 화웨이의 두 천재

홀로 1만명 역할 해낸 정바오융 화웨이 태자로 불린 기술천재 리이난 | 김경동 중국전문기자 hanguogege@newspim.com 화웨이가 지금의 스마트폰, 인터넷통신 분야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두 천재의 도움이 컸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중 한 명은 회사를 위해 온갖 충성을 다한 뒤 지금은 중병을 앓고 있는 정바오융(鄭寶用․55)이며, 또 다른 한 명은 런정페이(任正非)가 자식처럼 아꼈지만 결국 독립을 선택한 젊은 천재 리이난(李一男․49)이다. 두 사람 모두 한때 런정페이의 후계자로 거론된 바 있는 인물이지만, 지금은 둘 다 그의 곁에 없다. 하이테크 선두주자인 화웨이는 천재들이 모이는 곳, 최고의 인재들을 배출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런정페이 회장은 글로벌 천재를 올해 20~30명, 내년엔 200~300명 모집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천재에 대한 집착이 크다. 화웨이의 첫 번째 천재인 상무부총재 정바오융은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중국 최고 명문 칭화대학을 다니다 친구의 말 한마디에 칭화대학 박사학위를 내던진 인물이다. 당시 정바오융은 친구인 궈핑(郭平, 현재 화웨이 부회장)의 권유로 칭화대학 박사 과정을 내팽개치고 화웨이에 입사했다. 그는 화웨이의 창업 멤버 중 한 명으로 통신기술 제품 개발과 교환기 설계, 개발 등에 많은 공로를 세웠다. 런정페이는 친근하게 그를 ‘바오바오’라는 애칭으로 불렀으며, 사원번호 2번을 내줬다. 이는 화웨이에서 사원번호 1번인 런정페이를 제외하고 정바오융의 서열이 가장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바오융은 화웨이 직원들 눈에 강호의 호기가 넘쳐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런정페이와도 정면으로 부딪쳤으며, 부하직원들에게 자신의 굵은 어깨를 보여주며 불량배와 싸웠던 이야기도 자주 해줬다. 그에게서 지위가 높다고 거들먹거리는 오만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부하 직원들과 잘 어울렸으며, 그들을 집으로 불러 식사 대접을 하고 바둑을 두기도 했다. 정바오융은 런정페이 아들 런핑(任平)의 선생님이기도 했다. 런핑이 심하게 장난을 치면 회장의 아들이라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따끔하게 야단쳤다. 정바오융은 화웨이의 명실상부한 2인자가 되면서 업무 분야도 연구개발에서 점차 관리 쪽으로 전환했다. 1998~2001년까지 그는 자금운용을 책임졌는데, 화웨이전기(華為電氣)가 에머슨(EMERSON)과 거래하는 것을 주도하면서 화웨이가 중대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승승장구하던 정바오융은 2002년 과로로 몸이 쇠약해지면서 뇌암에 걸렸다. 현재 치료를 받기 위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런정페이는 정바오융에 대해 “화웨이에서 혼자 1만명의 역할을 해냈다”고 평가했다. 치료를 위해 미국에 간 정바오융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졌다가 2013년 화웨이로 돌아왔다. 하지만 어떤 임무도 주어지지 않았고, 비서도 없고, 전화도 없는 유명무실한 직위였다. 예전의 사원번호 2번도 23만번대로 바뀌었다. 정바오융의 화웨이 시대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런정페이가 아꼈던 또 한 명의 천재인 리이난은 런정페이의 마음에 상처를 준 인물이다. 정바오융이 화웨이 최고의 천재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리이난과 비교하면 약간 부족한 감이 있다. 일반 사람들이 15세 때 고등학교 시험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리이난은 이미 화중이공대학(현재의 화중과기대학)에 입학했다. 화웨이에 들어온 지 몇 년 안 돼 그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상무부 부총재 자리에 올랐다. 리이난은 기술부문 책임자로서 기술적인 독립을 위해 과감하게 CDMA를 버리고 GSM을 채택했다. 결국 이 선택은 화웨이가 ZTE를 꺾고 오늘의 화웨이로 일어설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화웨이의 ‘태자’로 불리던 리이난은 미래의 기술 트렌드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줬고, 직원들은 “리이난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웨이의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며 놀라워했다. 화웨이 내부에서는 당시 리이난의 실질적 지위와 권력이 ‘좌비우방(左非右芳, 런정페이와 쑨야팡)’에 버금가는 것으로 알려져 그가 런정페이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리이난은 천재 중의 천재였다. 하지만 그는 오만한 성격으로 인해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했다. 런정페이는 리이난을 줄곧 자식처럼 아꼈으나 꾸짖을 때는 매서웠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칭찬만 받아 오던 그로서는 참을 수가 없었고, 결국 화웨이를 떠나 스스로 회사를 세웠다. 2000년 리이난은 1000만위안 상당의 설비와 자산을 가지고 화웨이에서 독립해 ‘강완네트워크(港灣網絡)’라는 회사를 차렸다. 그 회사는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화웨이의 경쟁 상대가 됐다. 하지만 화웨이의 집중적인 견제로 어려움에 처하게 됐고, 2015년 6월 리이난은 내부자거래 혐의로 선전시 공안국에 체포돼 징역까지 살았다. 결국 리이난은 강완네트워크를 화웨이에 넘겼으며, 화웨이는 리이난의 회사를 인수하면서 그를 화웨이 단말기회사 부총재에 임명했다. 하지만 리이난은 1년이 채 안 돼 다시 화웨이를 떠났다. 정바오융과 리이난, 이들 두 천재 동료가 회사를 떠난 뒤 75세의 런정페이는 아직도 자신의 후계자를 찾지 못한 채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화웨이에는 인재가 많다. 런정페이는 마음에 드는 천재가 나타나면 자신의 업무를 맡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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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과류 대표하는 세 마리 다람쥐 온라인 판매로 우뚝 선 ‘싼즈쑹수’

온-오프라인 융합 판매 채널 다변화 모색 세 차례 도전 끝에 선전거래소 IPO에 성공 | 김경동 중국전문기자 hanguogege@newspim.com 전자상거래를 통해 마른 과일, 각종 견과류 등으로 국민간식 시장을 석권한 싼즈쑹수(三只松鼠)가 제2 도약을 준비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 전자상거래 동종 업계 매출에서 독보적인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싼즈쑹수는 지금까지 업계에서 달성하지 못한 매출 100억위안을 눈앞에 두고 있다. 2년 동안 세 차례 기업공개(IPO)에 실패했던 중국 레저식품업계 선두주자 싼즈쑹수가 지난 7월 12일 드디어 자본시장의 문을 두드리며 상장에 성공했다. 싼즈쑹수는 발행가 14.68위안의 4100만주를 발행하며 창업 7년 만에 선전거래소 A시장(창업판)에 상장했다. 발행 전 21.14위안까지 오르면서 44.01% 상승해 시가총액이 84억8000만위안을 기록했다. 싼즈쑹수는 실제 거래가 이뤄진 12일부터 연속 3일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17일 종가 28.14위안으로 시총 113억위안을 돌파했다. 싼즈쑹수는 ‘3마리 다람쥐’라는 재미있는 기업 이름 때문에 더욱 소비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대부분의 유통업 창업자가 오프라인에서 시작해서 온라인으로 진입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싼즈쑹수는 발상의 전환으로 먼저 온라인에서 제품을 판매하면서 성장했다. 스마트폰 기업 샤오미의 영업 기법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창업자이자 CEO인 장랴오위안(章燎原, 43)을 포함해 5명이 창립한 싼즈쑹수는 주류인 전자상거래 플랫폼 외에 오프라인 직영점 70여 개와 80여 개 체인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알리바바 소매 플랫폼과 체인점을 연결하는 형식으로 오프라인 소매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온라인 채널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던 싼즈쑹수는 톈마오(天貓), 징둥(京東), 웨이핀후이(唯品會) 등을 통한 플랫폼 매출이 많았다. 싼즈쑹수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28억7000만위안으로 전년 대비 27.17% 증가했다. 상반기 1~6월 말까지의 매출액은 40억8500만~44억9300만위안, 순이익은 2억5300만~2억9800만위안으로 추정된다. 중상산업연구원(中商産業硏究院)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레저식품업의 2018년 온라인 총 매출액은 621억3100만위안이며, 그 가운데 싼즈쑹수의 매출액이 69억6200만위안으로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2, 3위 매출을 합해도 싼즈쑹수와 비슷하다. 싼즈쑹수는 시장점유율을 11.2%까지 끌어올려 업계 1위 자리를 지켰다. 전자상거래로 시작한 싼즈쑹수는 어떻게 기존 전자상거래 채널에서 벗어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적절한 융합을 통해 전방위적인 채널을 만들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다. 간식 업체가 다음 단계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상대를 추월하기 위해서는 차별화가 필수적이다. 싼즈쑹수의 급성장은 온라인 굴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온라인의 강점이 점차 줄어들면서 성장 신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기로에 섰다. 상장이라는 ‘성인식’을 통과한 싼즈쑹수의 다음 행마는 어디일까. 장랴오위안 회장은 “상장은 단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앞으로 디지털화를 통해 더욱 좋은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다음 목표는 식품산업의 공급사슬 플랫폼으로 변신해 글로벌 공장들과 원료상을 연결, 최전선의 판매상들에게 시너지 효과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사슬의 디지털화는 간단하게 말해서 C2M(Customer-to-Manufacturer), C2F(Customer-to-Factory)를 의미하며, 조직의 디지털화는 관리의 경계를 확대해 매장을 고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 3월 싼즈쑹수는 제품에서 곰팡이와 벌레가 발견되면서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싼즈쑹수는 원활한 공급사슬을 위해 온라인 ‘윈짜오(雲造)’ 시스템을 개발, 상품의 생산부터 소비자가 수령할 때까지의 기한을 늦어도 20일 내로 단축했다. 싼즈쑹수가 기획한 미래 5년은 전국에 6대 물류창고와 단지를 건립, 공급상이 상응하는 단지에 공장을 건립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디지털화를 통해 소비자 요구를 꿰뚫어 보고, 상품이 최단시간에 배송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에 매출액 100억위안 규모의 레저식품 회사는 없었으며, 전국적 규모의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싼즈쑹수는 상장을 통해 제2의 도약을 꾀하면서 과도한 론칭 비용, 취약한 공급사슬, 저조한 순이익을 개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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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숨가쁜 굴기 일단 정지! 화웨이 운명 트럼프 의중에...

화웨이 상반기 실적 미국 제재 뚫고 초고속 성장 미국 제재 이후 유럽 시장 등서 팽창세 멈칫 |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chk@newspim.com 중국 기술 굴기의 상징 기업인 화웨이(華爲)가 미국의 제재 속에서 오히려 더 빠른 성장세를 나타냈다. 화웨이는 지난 7월 30일 발표한 2019년 상반기 실적 에서 매출이 23% 넘게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9% 가까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다만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 스마트폰 영업이 난조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디이차이징(第一財經)을 비롯한 중국 주요 매체 및 기관 분석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화웨이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2% 늘어난 4013억위안에 달했고, 영업이익률은 8.7%를 기록했다. 매출 가운데는 소비자 업무 분야가 2208억위안으로 가장 컸다. 미국 ‘파상 제재’에도 상반기 영업은 선방 화웨이의 상반기 스마트폰 출하량은 1억1800만대로 전년 동기에 비해 24%나 증가했다. 지난 5월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스마트폰 영업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를 일단 떨쳐낸 것이다. 특히 이동통신사들과의 영업에서 화웨이는 이미 50건 이상의 상용 5G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이 전 세계 각국을 향해 화웨이 장비에 대한 견제에 나섰음에도 전 세계 통신기지국 공급 대수는 모두 15만대를 넘어섰다. 화웨이 측은 5월 이후 미국의 제재가 본격화됐으나 화웨이는 공급망 글로벌 고객들과의 거래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왔다고 밝히고, ICT 영역의 생산 출하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무역전쟁이 기술 냉전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미래를 위한 기술 투자에 한층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번 상반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도 올해 세운 1200억위안의 연구개발(R&D) 투자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량화(梁華) 동사장은 “조직은 외부 압력이나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잠재력도 최대에 달한다”며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화웨이의 기업 목표를 한층 뚜렷하게 되새겨 줄 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정면 승부를 택한 것을 히말라야 등정의 최고 난코스에 비유하며 “화웨이는 결코 이런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글로벌 영업, 미국의 제재가 관건 하지만 화웨이의 영업도 글로벌 전체 시장 차원에서 볼 때 이전처럼 안정적이지는 못한 상황이다. 분석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올 1분기 화웨이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0.5%에서 15.7%로 치솟아 애플(11.9%)을 제치고 세계 2위 스마트폰 기업이 됐다.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1분기에 화웨이는 유럽 시장에서 26%의 점유율을 기록, 삼성(31%)을 뒤쫓았다. 이렇게 호조를 보이던 화웨이의 영업은 5월 미국의 블랙리스트(거래제재 명단) 발표로 구글이 기술 제공과 함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사용을 금지,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G메일, 유튜브 등의 서비스를 제한키로 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만약 구글이 화웨이의 안드로이드 사용 허가를 중단할 경우 화웨이는 기존 판매 휴대폰에 대한 안드로이드 갱신, 향후 신모델에 대한 GMS 서비스 및 갱신 작업 등을 수행할 수 없게 돼 영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특히 2019년 1분기 화웨이가 약진세를 보이기 시작한 유럽 시장이 주로 안드로이드 기반 운영체제이고 GMS가 대세여서 8월 19일 제재가 예정대로 시행될 경우 화웨이가 받을 타격은 매우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의 스마트폰 판매량 중 안드로이드 점유율은 80.1%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기관 Gfk에 따르면 지난 5월 화웨이의 독일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6%에 달했다가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발표된 후 5월 마지막 주에는 12%로 급격히 떨어졌다. 독일 판매업계 관계자들은 구글 서비스 및 기술 제공 금지 계획이 나온 이후 화웨이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월 대비 절반이나 감소했다고 밝히고 있다. 화웨이폰 출하량 40% 이상 감소 전망 블룸버그통신은 이런 정황에 비춰볼 때 화웨이의 올해 글로벌 시장 스마트폰 출하량은 40~60% 줄어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런정페이 회장도 이 보도에 대한 포브스의 팩트 체크 인터뷰에서 확실히 40% 정도는 줄어들 것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중국 시장에서 판매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런정페이 회장은 또 2019년 매출 증가율이 20% 이하에 머물 수 있다며, 올 한 해 전체 목표는 1250억달러라고 소개했다. 다만 화웨이는 국내 시장에서 선전함으로써 해외 시장 판매 둔화의 충격을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다. 중국증권보 보도에 따르면 화웨이는 2019년 2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3730만대를 출하했다. 전체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후퇴 흐름을 거스르고 화웨이의 2분기 출하량은 31% 늘었고, 시장점유율도 무려 38.2%에 달했다. 세계 스마트폰업계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에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저항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애국주의 소비 심리가 일부 작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제재 이후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화웨이폰 구매 붐이 강하게 일어났다. 2분기에 화웨이 출하량이 급격히 늘어난 대신 상대적으로 OPPO, VIVO 등 다른 국산 브랜드 출하량은 20% 가까운 감소세를 보였다. 소비자들의 화웨이 몰아주기 심리가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편에서는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로이터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22일 7개 IT기업의 요구에 따라 미국 기업들의 대화웨이 수출 거래 제한을 완화하는 방안에 대해 매우 유연한 입장을 내비쳤다. 이들 7개 기업에는 퀄컴, 구글, 인텔, 시스코, 마이크론 등 미국의 주요 기술기업이 모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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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전통 브랜드 100년 역사의 ‘펑황자전거’

전 중국을 대표하는 간판 브랜드 한때 부의 상징, 혼수품으로 각광 | 이동현 중국전문기자 dongxuan@newspim.com 세계 최대 자전거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 통하는 중국. 한 해 생산되는 자전거만 9000만대가 넘는다. 펑황자전거(鳳凰自行車)는 명실상부 ‘자전거 강국’인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간판 업체로 꼽힌다. 펑황자전거는 지난 2007년부터 5년 연속 ‘상하이산 수출 명품’으로 선정되며 유서 깊은 브랜드인 라오펑샹(老鳳祥), 상하이파이(上海牌)시계와 함께 상하이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중국 상무부도 지난 2006년 펑황자전거를 라오쯔하오(老字號, 오랜 역사를 지닌 중국 브랜드)로 공식 선정했다. 중국인들에게 사랑받는 펑황자전거의 발자취를 짚어본다. 100년 역사 자전거 브랜드, 과거 혼수품으로 인기 펑황자전거의 역사는 청나라 말기 광서제(光緖帝)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나라 말기 상하이 상인인 제동생(諸同生)이 상하이 난징루(南京路, 지금의 난징둥루)에 동창거행(同昌車行)을 설립했다. 이 업체가 바로 100년 역사를 지닌 펑황자전거의 전신(前身)이다. 중국 ‘제1호 자전거업체’인 동창거행은 자전거와 자전거 부품을 판매했다. 초창기에는 수입산인 영국 BSA의 자전거를 취급했다. 당시 지금의 ‘할부판매’와 유사한 방식으로 매달 제품 대금을 납부할 수 있어 큰 인기를 누렸다. 1922년 동창거행은 페달, 프레임, 차축 등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세우고 자체 생산에 들어갔다. 페이마(飛馬), 페이잉(飛鷹), 페이런(飛人) 등 다양한 상표로 자전거를 판매했다. 신중국 성립 후인 1958년 상하이의 267개 소규모 자전거업체들이 합병을 단행했다. 1959년 1월 이들 업체의 통합 기업이 펑황(鳳凰) 상표를 정식으로 등록했다. 60년대 들어 펑황자전거는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본격적으로 현대적인 제조업의 형태를 갖췄다. 펑황자전거는 60년대 이후 공급이 달릴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또 다른 자전거업체인 융주(永久), 페이거(飛鴿)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자전거 브랜드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특히 혼수품으로도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자전거는 재봉틀, 라디오, 손목시계와 더불어 중국인들의 ‘4대 귀중품’이자 ‘필수 혼수품’으로 불렸다. 이 때문에 펑황이라는 자전거 상표는 부와 행운을 상징하는 브랜드로서 혼례를 진행할 때 양가의 ‘체면’을 살려주는 중요한 ‘예물’로 각광받았다. 물자가 귀한 사회주의 체제하의 중국에서는 ‘배급권’을 통해서만 자전거를 구매할 수 있었다. 당시 자전거 한 대 가격은 650위안으로, 상당한 고가품에 속했다. 품질 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1965년부터 중국에서 열린 전국자전거품질평가회에서 펑황자전거는 7차례 1등을 차지했다. 또 1995년부터 16년 연속 ‘상하이 대표 명품’으로 선정됐다. 증시에도 상장됐다. 펑황자전거는 지난 1992년 상하이 증권거래소에서 A·B주를 발행했다. 같은 해 펑황자전거의 생산량은 500만대를 넘어섰다. 자전거 외에 호텔, 무역 등 사업 다각화도 추진했다. 펑황자전거는 지난 2010년 혼합소유제 개혁을 통해 체질 개선에 나섰다. 복지부동한 국유기업의 경영 방식에서 탈피해 현대화된 기업체제 구축에 나선 것. 그 일환으로 제품 고급화 및 다양화를 추진했다. 펑황자전거는 산악자전거 등 고가형 특화 자전거 개발에 나서면서 ‘브랜드 업그레이드’에 시동을 걸었다. 6년간의 업그레이드 작업을 통해 시장 니즈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업체로 거듭났다. 아동용 자전거에서부터 오토바이, 리튬배터리 자전거, 스마트자전거 등 다양한 제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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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온라인 국민 재테크 상품 ‘위어바오’ 인기 뚝

한때 인구 3명 중 1명 투자, 세계 최대 규모 MMF 출시 후 최저 수익률, 가입자 이탈 가속 | 강소영 중국전문기자 jsy@newspim.com 중국의 ‘국민 재테크 상품’ 위어바오(餘額寶)의 수익률이 출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속적인 수익률 하락에 위어바오 가입자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서둘러 돈을 인출해 새로운 상품으로 갈아타려는 가입자도 늘어나고 있다. 중국 금융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하며 재테크 시장을 평정했던 위어바오의 입지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지난 7월 9일 톈훙위어바오(天弘餘額寶)의 7일 연화수익률(용어풀이 참조)은 2.269%를 기록했다. 상품 출시 이후 최저치다. 1만위안을 예치했을 때 하루에 얻을 수 있는 수익이 0.62위안에 그친다. 2013년 6%가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아래로 떨어진 셈이다. 은행보다 높은 수익률로 엄청난 이용자와 시중 자금을 끌어모았던 위어바오의 수익률이 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초만 해도 그나마 은행 예금보다 수익률이 조금 높고 자금 입출금이 자유롭다는 장점으로 투자자들을 붙잡을 수 있었지만, 수익률 하락이 이어지면서 가입자 이탈이 증가하고 있다. 경기 둔화와 통화 완화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위어바오의 수익률은 한동안 반등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출시와 동시에 폭발적 인기, ‘국민 재테크 상품’ 위어바오는 2013년 6월 혜성처럼 등장했다. 알리바바 그룹이 자사의 결제대행 서비스 플랫폼 즈푸바오(支付寶, 알리페이)를 통해 만든 인터넷 머니마켓펀드(MMF) 상품이다. 전통 재테크 상품인 MMF 상품이 핀테크와 결합해 당시로는 상당히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금융 상품으로 여겨졌다. 즈푸바오에서 자금을 위어바오로 옮긴 후 톈훙(天弘)펀드가 제공하는 톈훙위어바오MMF에 투자해 수익이 나면 배분을 받게 된다. 현재 20여 개의 펀드 상품과 연계돼 있다. 위어바오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정기예금을 웃도는 수익률, 자유입출금 예금과 같은 편리한 유동성, 여기에 타오바오 결제 기능이 더해지면서 출시와 동시에 가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은행에 자금을 예치했던 사람들이 앞다퉈 위어바오로 갈아타면서 전통 금융권이 타격을 입기도 했다. 위어바오에 긴장감을 느낀 금융권이 다양한 인터넷 재테크 상품을 개발하고 각종 수수료 할인에 나서면서, 핀테크 시장 발전과 전통 금융시장 개혁을 촉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8년 말 기준 톈훙위어바오의 자금 규모는 1조1300억위안, 총 수익은 509억위안으로 집계됐다. 위어바오가 지난해 하루 평균 창출한 수익은 1억3900만위안, 출시 후 2018년 말까지 수익 총액은 1700억위안을 넘었다. 가입자는 5억8800만명으로, 중국인 3명 중 한 명이 위어바오 고객인 셈이다. 단일 펀드 상품으로는 세계 최다 고객 수를 자랑한다. 특히 농촌지역 고객이 1억명에 달한다. 위어바오 고객층이 전역에 분포하고 있다는 의미다. 위어바오는 중국 MMF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효과도 창출했다. 위어바오로 많은 자금이 몰리고, 유사 상품 출시가 봇물을 이루면서 MMF 시장 규모가 급격하게 확장됐다. 올해 7월 기준 중국 MMF 시장은 9조위안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후 규모가 줄어드는 추세다. 출시 6년 만 수익률 최저, 수익 하락 배경과 원인 위어바오가 출시되기 전 중국인들의 금융 재테크 방식은 매우 단순했다. 대다수가 매우 낮은 금리의 은행 예금에 돈을 맡겼고, 고액 자산가들은 정기예금 혹은 전통 재테크 상품에 투자했다. 2013년 상반기 중국 자본시장은 사상 유례 없는 자금난을 겪은 터라 사람들은 비교적 수익률이 높은 MMF 상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출현한 위어바오는 중국인들의 재테크 습관을 단번에 바꾸는 역할을 했다. 가장 큰 매력은 용돈 수준의 적은 금액으로 고수익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 투자를 하기엔 자금력이 부족한 젊은 계층과 서민들도 쌈짓돈 투자로 고수익이 가능해지면서 시장의 호응이 컸다. 자금난이 극심했던 터라 수익률도 매우 높아서 소액 투자자들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2014년 1월 위어바오의 수익률은 최고 6.7%에 달했다. 기존의 재테크 상품보다 자금 운용이 편리하다는 것도 강점이었다. 전통 MMF 상품은 T+1 거래제도를 적용했지만, 위어바오는 T+0 거래로 자유입출금 예금처럼 유동성이 편리했다. 그러나 시중의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위어바오의 수익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2014년 6월부터 중국 증시가 초호황 장세를 연출하면서 시중 자금이 A주로 집중됐다. 위어바오에서 A주로 유출되는 자금이 급증함에 따라 위어바오의 수익률도 함께 곤두박질쳤다. 특히 2015년 하반기 A주가 폭락한 후 저점매수 수요가 늘어나고 시중 유동성도 풍부해지면서 위어바오의 1만위안 단위 수익률이 처음으로 1위안 아래로 주저앉았다. P2P 재테크 상품의 성행도 위어바오에 큰 타격을 입혔다. A주가 침체기에 진입하면서 시중 자금이 다시 위어바오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수익률도 다시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7년 1분기 위어바오의 설정 금액이 1조위안을 돌파하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MMF 상품이라는 타이틀도 얻게 됐다. 위어바오가 출시됐을 때와 당시의 금융 환경은 이미 크게 달라져 있었다. 전통 은행권의 방어와 견제가 심해졌고,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도 갈수록 엄격해졌다. 2017년부터 위어바오는 감독기관의 관리하에 각종 투자 제한을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1인당 최대 예치금액을 10만위안으로 제한하고, 1일 예치금액 최대 한도를 2만위안으로 규제했다. 2018년부터는 MMF 상품이 광의통화(M2) 감독 대상에 편입되면서 위어바오의 영업 자율성은 더욱 제한됐다. 게다가 그해 경기하방 압력이 가중되면서 정부가 통화완화 정책을 전개했고, 그로 인해 위어바오를 포함한 MMF 상품 전반의 수익률이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시장에 고수익 상품들이 대거 쏟아지면서 위어바오의 투자 매력도 줄어들었다. 금융 상품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진 투자자들은 새로운 상품의 투자에 적극적이어서 위어바오의 입지는 더욱 위축됐다. 지나치게 커진 MMF 시장 규모도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시장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커지면서 수익률 하락이 가속화됐다. 여기에 2019년 들어 주식시장이 다시 호황으로 돌아서면서 위어바오의 수익률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지는 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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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한·일 무역전에 中 고순도 불화수소 어부지리

반도체 기술 약진으로 고순도 불화수소 고속 성장 생산공정 기술 급개선, 일본산 대체 가능성은 미지수 | 강소영 중국전문기자 jsy@newspim.com 한·일 경제마찰로 주요 원료 확보에 대한 한국 반도체업계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업계가 반사이익 기대감에 들썩이고 있다. 중국 증시에서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 기업의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하고, 중국 관련 산업의 잠재 성장성을 부각한 연구보고 자료가 잇달아 발표되는 등 시장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으로부터 수입이 막힌 한국 업계가 원료 공급선 다변화에 나서면서 중국 기업이 ‘어부지리’ 격으로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중국 내부에서는 불화수소 산업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격려도 이어지고 있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가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산과 대만산 불산 테스트에 나섰다는 소식이 중국 매체를 통해 전해지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에 필수적인 원료로, 일본은 이 품목을 포함한 다수의 첨단산업 원료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일본이 수출 규제를 강화한 소재인 투명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세 가지 가운데 고순도 불화수소의 대일 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오히려 고순도 불화수소의 대중 수입 의존도는 46.3%로 일본(43.9%)보다 높다. 이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상당히 커졌음을 알 수 있다. 2018년 기준 중국의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 규모는 20만t을 넘어섰다. 주요 생산 기업으로 시장의 이목이 쏠리는 A주 상장사는 톈츠재료(天賜材料), 쥐화구펀(巨化股份), 싼메이구펀(散煤股份) 등이다. 이들 세 기업의 지난해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량은 각각 2.5만t, 1.8만t, 1만t에 달했다. 이들은 중국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 분야 ‘빅3’ 기업이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수적인 화학물질이다. 이 때문에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건 중국에서도 이 분야에 대한 업계, 시장 및 정부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던 터다. 지난 1970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불화수소 산업은 2003년부터 급속 성장기를 맞았고, 2005년 이후 양적 성장이 두드러졌다. 2014년 둬푸둬(多氟多)가 1만3500위안을 투자해 연간 생산량 1만t의 설비를 갖추면서 양적, 질적 성장을 이루게 됐다. 그 전까지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고순도 불화수소의 중국 자체 조달 능력이 대폭 제고됐고, 다른 화공 기업의 이 분야 진출도 확대됐다. 중국 산업계는 자국의 고순도 불화수소 산업이 이미 성숙 단계에 진입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불화수소의 순도 제고 외에도 대량생산을 위한 설비 분야에서도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 중국 업계의 판단이다. 현재 중국의 불화수소 생산 기업이 50여 개에 달하고, 이 중 13개 기업은 연간 생산량이 3만t을 넘는다. 1만t급 생산설비도 수십 기에 달한다. 대형 생산설비를 구축하면서 세계 최대 생산기지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생산 과잉과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진 후 중국 정부가 생산량 규제에 나서면서 설비 가동률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설비 가동률이 50% 아래로 떨어졌고, 이후 다시 회복세로 돌아섰지만 2018년 기준 가동률은 61%에 그친다. @img4 불화수소 업계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순도를 더욱 높이는 기술 혁신이 오히려 더욱 촉진됐다. 2018년 12월 중국 쒀얼웨이란톈(索爾維藍天)이 기존 제품보다 순도가 더욱 높아진 불화수소 생산설비를 대폭 확대했다. 잉펑그룹(鷹鵬集團) 및 다른 경쟁 업체들도 순도를 높이기 위한 설비 확대에 앞다퉈 나섰다. 특히 2017년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고속 성장기에 진입하면서 고순도 불화수소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이는 다시 관련 산업의 질적 발전을 촉진했다. 2018년 중국의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량은 24만t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에서 고순도 불화수소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산업 분야는 집적회로(47.3%)다. 그다음으로 태양광 산업(22.1%)과 액정디스플레이(18.3%) 순이다. 집적회로, 박막트랜지스터 액정디스플레이 (TFT-LCD), 반도체 등 중국의 첨단 산업이 고속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어 중국의 고순도 불화수소 산업도 장기적인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한·일 경제 마찰로 인한 수출 확대 기대감이 겹치면서 불화수소 생산 기업이 관련 업계와 자본시장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산 고순도 불화수소가 일본산을 대체할 수 있을지, 그리고 한국 반도체와 OLED 기업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에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중국 불화수소 산업계가 고속 성장을 지속하고 있지만, 일본 제품의 품질에는 미치는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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